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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일을 한다는 것 - 서로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조직론 ㅣ CEO의 서재 47
우다가와 모토카즈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6년 3월
평점 :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묘하게 지칠때가 많습니다. 결론은 났는데 뭔가 찜찜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자리를 떴다는 느낌. 그 어색한 침묵과 표정들이 계속 따라오는 날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누구나 해봤을 고민들일 것입니다. 이 책이 무슨 답을 주지 않을까?
이 책이 다른 책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저자가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위로가 아니라 전제로 꺼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조직 관련 책들이 소통을 잘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이 책은 반대편에 섭니다. 아무리 대화를 잘해도,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 타인의 경험과 가치관을 완전히 내 것처럼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레비나스가 이야기하는 타자(他者)가 떠올랐습니다. 소통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는 사람.
이 냉정한 출발점이 오히려 현실적인 협업을 가능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설계된 협업은, 누군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무너집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다리를 놓는 방식은, 오해가 생겨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줄 것 같습니다. 출발점을 낮추는 것이 기대치를 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한 협업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역설.
갈등을 '기술적 문제'와 '적응 과제'로 나누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매뉴얼이나 규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조직에서 진짜 골치 아픈 갈등은 대부분 적응 과제에서 옵니다. 서로 다른 경험, 다른 가치관, 다른 직업윤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 이건 규정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적응 과제를 기술적 문제처럼 다루려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갈등이 생기면 프로세스를 고치거나 규칙을 추가했지만, 정작 그 갈등의 뿌리에 있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기대치는 한 번도 제대로 꺼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화, 관찰, 해석, 개입의 네 단계는 그 과정을 천천히 밟아가는 방법입니다. '골짜기를 건너는 과정'이라는 비유가 와닿았습니다.
책에서 예상치 못하게 긴 시간을 머물렀던 대목은 권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조직에서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면 협업이 결국 영합이나 강요, 혹은 고립으로 흘러간다는 지적. 총론에는 모두 찬성하는데 각론에서 번번이 막히는 상황, 상사 앞에서 아무도 반론을 꺼내지 않는 회의.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그 장면들의 이면에 권력의 불균형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말합니다.
협업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조직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 위치가 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자각이 없으면 아무리 대화의 기술이 좋아도 구조적인 문제는 반복됩니다.
책을 덮고 나서 다음 회의가 조금 달리 보였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이해하려 하기보다, 지금 이 대화에서 우리가 어떤 구조 안에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됐습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이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천사 전우치 : 조직 갈등을 기술적 문제와 적응 과제로 나누는 시각이 명쾌함.
악마 전우치 : 책이 얇아서 읽기 좋았지만 더 많은 사례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