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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평점 :
로벨리가 이 책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인물은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로벨리는 그를 인류 최초의 과학자로 조명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지만 혁명적이었습니다. "세상을 설명하는 데 신이 정말 필요한가?" 천둥이 치면 신의 분노라고 설명하고, 홍수가 나면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던 시대에, 그는 자연 현상 안에서 법칙을 찾으려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신에게 넘기는 대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탐구를 시작한 것입니다. 로벨리는 바로 그 순간이 과학의 진짜 출발점이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과학을 지식의 축적이 아닌 인간의 태도로 정의합니다. 과학은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답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더 나은 설명을 찾아 다시 질문하는 과정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그랬듯, 그 메시지가 와닿은 건 우리가 흔히 과학을 확실성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증명했다고 하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로벨리는 오히려 반대를 말합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용기, 그것이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라고. 우주과학, 기상학, 지질학, 생물학이 모두 그 태도 위에서 자라났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거창한 과학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뭔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칩니다. 왜 그런지 묻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넘겨버립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 '원래 그런 것'에 멈춰 선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적 논의가 촘촘하게 쌓인 책이라 가볍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다시 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이 말하는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 멈추고, 천천히 들여다보고, 다시 묻는 것. 책을 다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느려지고, 조금 더 깊어진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앞에서 혼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 주변에서 보면 좀 피곤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꾼 것은 바로 그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과학을 결과가 아닌 태도로 정의하며, 2,600년 전 한 철학자의 질문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줌.
악마 전우치 : 철학과 과학사가 촘촘하게 교차하는 구조라 배경지식 없이 펼치는 독자에게는 간혹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구간이 찾아오기도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