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책이어서 청년시기에 볼 기회도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사랑에 기술을 붙이는 것이 마땅치 않아 보지 않았었다. 다른 책을 읽는 틈틈이 읽을만한 e-book으로 읽게 되었다. 예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지금 읽는 것이 더 나았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읽음으로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읽을 때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의 기술에 대한 직접적 기술이라기 보다는 사랑에 대한 철학적 서술이다.그런 면에서 가장 정교하고 잘 구성이 된 부분은 2장 '사랑에 관한 이론'이다. 사람이 관계한 모든 존재들, 부모, 친구, 연인/부부 그리고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정리하였다. 사랑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발전하는가. 특히 신에 대한 사랑을 설명한 부분은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밝혔음에도 그 구성은 아주 정확하고 정교하다.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유태인이어서 기독교적 철학의 근간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또한 동양적, 무교적 철학에 대한 논리도 정연하였다.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정교한 사랑의 이론을 읽으면서 심지어 너무 아름답게 기술되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리뷰에서 쓰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저자 스스로 '사랑의 실천'에 대해 넘어가면서 독자들이 실망할까 걱정하고 있다. 실천에 대해서는 앞뒤 기술이 전혀 맞지도 않는데다 이것저것 목적도 없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데일 카네기의 <어떻게 친구를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책을 아주 통속적인 책으로 보았고, 필목사의 <긍정적 사고력>이라는 종교서적이 사실 카네기의 책과 다를바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카네기의 책은 요새 <날마다 친구로 만들라>,<카네기 인간관계론>으로 번역되는 책이고, 필목사의 책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요새 유행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과 같은 책일 것이다. 저자의 말은 다 맞지만 아쉽게도 내가 읽기엔 이 책 <사랑의 기술>이란 책은 <긍정의 힘> 보다도 낫지 않고,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비하면 가치가 엄청 떨어지는 책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책의 내용은 전형적인 '지식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부류이고, 그래서 슬프다. 사랑의 실천 부분을 중간 정도 읽다가 내가 메모한 내용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헛소리다"였다.
사랑의 실천방법에 대해 기술하면서 자아도취를 극복하기 위해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며 당연히 맞는 이야기이다. '자기기만'에 대한 내용인데, 이 책이 그런 내용을 가장 먼저 주장한 책일까? 잘 모르겠지만 실제적 사랑의 실천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개선책, 혹은 철학적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이 과연 실제로 도움이 될까. 다른 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이미 주장하던 것들이. 또한 다른 방안으로 '신념'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상당히 통속적이고 다른 책들보다 오히려 가치가 적다고 느껴졌다. 실제적인 도움을 줄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논리를 펴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최종 주장, '사랑의 발전을 배제하는 사회는 기본적 필연성과 모순으로 멸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였다던 유대교에 기반한 무신론자가 주장하는 종말론인듯 하다. 그 앞의 내용들과 무슨 연관성인지 조금 웃겼다. 또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신앙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고 있는 합리적 신앙이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은 그 내용이 맞음에도 무신론자로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다. 아마도 무신론적 신앙 혹은 종교를 결국 원했던 것일까. '사랑의 실천' 장의 가장 앞에서 명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연관이 될까. 그런 명상이 실제 사랑의 실천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 합리적 신앙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한마디 말도 없이 책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