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
모리치오 비롤리 지음, 김경희.김동규 옮김 / 인간사랑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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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들은 서문에서 공화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하여 2가지를  논하고 있다. 먼저 (1) “보수주의자들은 공화주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대의제를 특히 강조하면서 직접민주주의와 ‘참여의 과잉’을 비판하고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2) 역자를 포함한 “진보주의자들은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국민 모두가 동등자로서 서로를 대면할 수 있는 공적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역자들의 주된 관점이 무엇이든 간에 국가를 유지하고 공공성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위의 두 가지 관점을 함께 지켜야 한다. 권력을 무제한 국민의 손에 넘긴다면 실제로는 폭도의 손에 넘기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소외된 계층에게 무제한의 경쟁만을 강요하면 같이 사는 사회가 될 수 없다. 빈민층에 대한 구제는 현대복지국가가 아닌 고대 시대부터 있어왔던 국가의 기본정책일 따름이다. 현재 이른바 우파 정권의 ‘좌파주의적 정책’에 대해 오해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좌파정책이 아니라 그저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떤 관점이 더 중요하고 더 정답인지, 혹은 심지어 한쪽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두가 우리의 공동체와 공화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역자들이 강조하듯이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법의 지배"를 받으며 행해져야 진정한 ‘레스 푸블리카’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공산혁명을 꿈꾸는 자들은 각각의 관점이 가지는 약점을 이용하거나 묘하게 관점을 뒤틀어서 오해하게 만든다. (1) 대의제로 인하여 인민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뺏긴냥 선전하고, (2) 공공성의 부족함을 근거로 모든 부가 일부계층에 독점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원하는 목표는 공동체의 몰락이자 붕괴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자들은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건국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유용하게 사용하였던 ‘종족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언급하려는 의도이다. 이들은 ‘국가민족주의’를 언급하지는 않고 있으며, 단지 종족민족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공화주의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적 내용은 ‘국가민족주의’로 읽혔다. 기본적으로 종족민족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들의 주장은 맞다. 최근 오히려 과도한 ‘종족민족주의’를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고 있음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국가공동체와 공화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로서의 종족민족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아무에게나 친일파 덧씌우기를 쉽게 하며, 역사이론을 친일미화론이라고 공격하며 극우이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최근 이 책을 포함하여 읽은 ‘좌파’ 학자들의 예전 책들을 근거로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족의 영속적 성격을 강조하는 원초론"은 주관적, 국가민족이라고 하면, "민족을 근대화의 부산물로 간주하는 도구론"을 객관적, 문화민족이라 분류하기도 한다. (참조 링크: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리뷰)

이를 나는 위에서 각각 종족민족주의와 국가민족주의로 표현하였다. 국가란 말이 서로 반대편에 있어 약간 헷갈릴 수 있으나 대략적 의미는 원초적 민족과 국가조직적 민족이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원초적 민족 보다 객관적/문화적/국가조직적 민족이 더 먼저 나왔고 우선한다는 말이다. 원초적 민족이란 근대에 생성된 거의 허구에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우리 한민족은 단일 민족이 아니다.


책은 그리 길지 않은데, 앞부분에 1) 역자의 서문과 2) 이탈리아판 서문과 3) 영어판 저자 서문과 4) 영어판 독자를 위한 소개의 글이 먼저 나온다. 역자의 서문을 바탕으로 위에서 책의 전체 개괄을 정리해 봤는데, 이후에 이어지는 저자의 서문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본문이 제대로 읽힐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6장으로 이루어진 본문 내용은 매우 읽기 쉬웠다. 아니 쉬웠다기 보다는 매끄럽게 읽혔다. 조금 집중해서 읽으면 매우 도움되는 전형적 인문학 서적(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다.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바를 요약하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대의제와 공공성을 언급했는데, 이런 모든 것은 결국 법에 의한 자유의 제한을 어떻게 하느냐라는 관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즉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위에서 언급한 '법의 지배'에 달려 있다. 법의 지배가 없으면 특정인이나 일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오히려 제한되는 상황이 온다. 즉 "자기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행동했던 사람들에게 제약을 늘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주종적 지배(또는 예속)와 법에 의한 제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핵심을 찾을 수 있다. 모두가 자유를 누리고 권한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자발적 지배를 받아야 한다.

"예속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와 간섭 내지 속박이 없는 상태로서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우리는 전자를 후자 위에 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에게 예속되어 억압받는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발적으로 간섭을 받는 수준으로 자유를 떨어뜨려야 한다. 이른바 방종과 자유를 가지고 설명한다면, 누국가의 방종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누군가 방종하면 다른 이는 예속, 노예화 된다) 모두가 어느 정도 자유를 반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자유의 제한을 정한 것이 법이다. 공동체로서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지배가 최우선이다.



또한 이런 법에 의한 지배에는 모두가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어떤 법에 대해 일정 부류는 찬성하나 다른 부류는 반대하는 것이다. 국가의 자의적인 간섭이냐, 아니면 국가의 정당한 개입이냐 하는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란도 모두가 법의 지배 안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절대로 공화주의를 무너뜨리고 1인, 1당 독재체재를 세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정권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자들은 교묘히 자유를 외치나 실제로는 국가와 공동체의 전복을 꾀하는 '국가의 적'임에 분명하다.

공화주의는 모든 국민(인민)이 자유를 누리게 한다. 따라서 공화국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이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공화주의를 허물려는 시도들에 대해서 명확히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다. 말로만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을 내세우는 북한은 실제로는 자유가 없으며, 1인, 1당에 의한 무제한의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절재로 공화국이 아니며 세습왕조와 귀족과두제가 혼합된 정치형태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고유의 의무인 애국심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한다. 우리나라의 범위가 헌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북한까지 포함되는 이유는 북조선이 존재하는 한 언제 우리의 자유가 억압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제한의 방종을 하는 북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헌법의 지배가 그곳의 인민들에게도 미치도록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법의 지배를 기초로 자유와 애국으로 세워지는 공화국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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