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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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시인의 시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조그만 흥분을 주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볼 기회를 만났으니까.

  

첫번째 느낌

 

새 시집 '래여애반다라'는 그간의 시집과 조금은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이성복시인의 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겠지만 초기 시의 슬픔이랄까 아픔이랄까 어릴적 자신과 만나는 계기였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이어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까지 시를 보다보면 아찔해지고 자그마해지는 자신을 보게되었다.

이후 최근의 시집은 조금 리듬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차피 매 시집마다 리듬이 같지는 않았지만 최근(10년전?) 시집들은 느리고 쉬워서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래여애반다라'는 그 사이에 있으면서도 조금 다르다. 굳이 무식한 내가 표현하자면 '교과서' 같다고나 할까. 마치 시 교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과하지 않으면서 너무 쉽지 않으면서 느리고 빠른 다양한 리듬의 시를 읽다보니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3부에 '시창작연습'이라는 시가 3개가 있는데 이것 외에도 누드, 조각, 그림에 관한 시 등에서 마치 로댕의 조각실에 앉은 릴케의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세부적 리듬은 전혀 다르지만 시를 대하는 목적 자체가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4부의 '빛에게'부터 5부 '느티나무식당'까지는 겸손한 마음으로 읽었다.


두번째 느낌

 

'봄밤'의 2부터는 사실 나에게 불편했다.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특히 이 시집에서는 성에 관한 에로스적인 시가 많았다. 에로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은 읽다보니 이것이 젊은이들의 성적 환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죽어감, 늙어감에 따른 인생의 표상으로서 무기력함을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 시집에서 받은 두 번째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공명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죽어감을 그렇게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대해 아래와 비슷하게 말하고 싶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쭈그러지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죽음을 마주 대하고 싶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끔찍하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그냥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죽음이나 문학의 죽음이나 얻을 수 없는 불가능에 대해서 논하거나, 그냥 죽는 것을 담담히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죽음으로 얻지 못하는 욕망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얼굴을 확인하는 것을 끔찍하거나 비참하게 느끼고 싶지 않다. 그냥 누워있는 나를 천천히 보는 것이 낫다.


그러면 이 시집의 제목인 '래여애반다라'는 무엇인가.


그 세세한 설명을 알고 싶지 않고 그저 시에서 느껴본다면, '오다, 서럽더라'부터 '래여애반다라'까지의 시에서 시인은 다른 시에서 바닥에 깔던 죽음에 대한 사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이 시들이 시집의 주체이리라.

 

일련의 다른 시와는 아주 조금 다르게 위 시에서는 죽음과 관련하여 자신이 태어난 근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바람의 어떤 딸들이 밤의 숯불 위에서 춤추는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바람이 온 길을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의 딸들처럼 춤추며 세상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죽음과 인생에 대해 시인이 정확히 어떤 해석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 명확한 것은 나는 그 해석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불가능의 얼굴을 보여준 시집을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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