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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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시간으로부터"는 독자들을 지구의 과거와 미래를 통해 지질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저자인 헬렌 고든은 과학적 사실을 개인적인 일화와 엮어 유익하고도 흥미로우면서도 호소력 있는 서사를 형성한다. 이 책은 화석, 지진, 화산 등 지질학의 다양한 요소를 탐구하는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복잡한 과학 개념을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복잡한 개념들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마치 물질이 대지에 분해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질학에 관심이 있지만 과학적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또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저자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세계 곳곳의 여러 지질학 유적을 여행했던 경험을 책에서 공유한다. 단순히 과학책이 아닌 인간적인 과학책이고, 공감할 수 있다.

*도서출판 까치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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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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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본에 갔을 때 이 책이 신간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독소전쟁(대조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은 네이버 카페 '부흥'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였다.

피해자로서 다뤄지는 맥락을 제외한다면, 오늘날 각종 미디어에서 여성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여겨져 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수많은 작가들은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능력과 성취를 발휘할 수 있다고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전쟁 참여만큼은 예외로 하는 것이 오늘날 페미니즘이 바라보는 여성ㆍ전쟁관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말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을까?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비롯하여, 이질적인 사례들을 제외한다면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성을 동원했던 사례가 존재했다. 그것은 독소전쟁 시기의 일로, 구(舊)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에서 여성들을 대규모로 전쟁에, 그것도 전선에 동원한 일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그와 같은 양상은, 일부 비슷한 노선을 걸었던 중국 공산당에서도, 소련의 적이었던 나치 독일이나,이후 자유 진영의 미국에서도 없었다.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쓰여진 소설임을 고려하다 보면, 몇 가지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국적인 소재를 무대로 한 것, 싸우는 여성들을 소재로 한 것, 그들이 여성과 전투원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한다는 것 등이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등, 각종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것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싸우는 여성에 대한 판타지와 같은 것으로, 극중 인물들-주인공 세라피마를 비롯한 여성 저격대원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성 저격대원들이 싸우는 것은 독일군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아마 대부분 남성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여성과 국가, 여성과 전쟁, 그리고 여성과 전사, 서로 일부이자 또는 그 전부인 이들 존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소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는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이며, 병력 동원 가능 인구의 감소, 나아가 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애써 이와 같은 문제를 회피하여 온 이들은 독소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을 상상하며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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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전 중국의 일상을 거닐다
카키누마 요헤이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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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야 워낙 역사 분야의 서적으로 유명한 곳인데,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가 중앙아시아사까지 출간되는 등 학계 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출판사가 출판사이다보니 표지 및 구성도 꽤 예쁘리라 생각했다. 이런 출판사에다, 와세다대, 버밍엄대, 중국사회과학원 등 권위 있는 대학 및 기관에서 수학 및 연구를 했던 저자의 약력은 충분히 책을 구입하고 싶게 만들었다.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24시간을 살아가는 내용의 역사서가 몇 권 출간되는 등, 생활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책 표지나 본문이 산뜻하면서도 역사적 분위기를 잘 살렸다. 책 표지가 무엇을 나타낸 그림인지 독자제현들은 혹시 아는가? 후한 시대 호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저택 모양 토기이다. 아래에 사진을 첨부한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책의 본문을 찍어 올리는 것이 혹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설명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생활사를 표방하는해당 책은 역시 다양한 유적 및 유물 사진을 활용하는 한편, 사진 자료가 마땅치 않을 때에는 직접 그린 그림을 책에 수록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대 중국인들이 눈뜰 때부터 잠잘 때까지의 삶을 살펴볼 수 있음이 장점이다.

퀴즈. 이 책은 제1장 새벽 4~5시에서 시작하여 제13장 저녁 7시경에 끝난다. 즉,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공백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잠자는 시간이라 공백이라 여기면 곤란하다. 여기에는 굉장히 당대 사회상을 잘 반영한 구성이 숨어 있다. 송나라 때 카이펑이 불야성이라 불렸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 전에는 도시 거주자들은 철저히 통행금지, 즉 통금의 제약을 받았다. 이 책이 다루는 고대 중국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색이자 요약은, 이 책이 민중들의 일상사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진ㆍ한사를 보면 당시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교양서적보다는 학술서적 느낌이 나는 만큼, 일정 정조는 독해 수준을 요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민중의 일상을 평이한 문체로 서술하였다. 예를 들어 시장에는 몇시에 나갔고, 거기서 어떤 것을 얼마만큼 구매했는지, 결제 수단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하며 출산, 양육을 하였는지 등등 고대 중국의 24시간뿐만 아니라 한 인간 및 집단의 생애 주기에 대한 파악도 가능할 수 있다.

중국사 등 동양사, 복잡한 정치사보다는 민중의 일상사, 때로는 타임워프해서 과거로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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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죄책 -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분석한 정신과 의사의 심층 보고서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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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이 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어떻게 끝났는지를 알기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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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전투원이 활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미군 점령 하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삶,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겪은 일본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평이한 문체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된 사건들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를 통하여 어느 일본인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한국전쟁이 결코 '구원'과 '부흥'의 서사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일종의 '비극'의 서사였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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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omn.kr/24t5w


2019년 NHK(일본방송협회)는 <숨겨진 '전쟁 협력' : 조선전쟁과 일본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미 국립공문서관(NARA)에서 무려 1033페이지에 달하는 1급 비밀(TOP SECRET, 이는 최고 등급의 기밀로 분류됨을 의미한다) 보고서 및 부속 문건에 관한 서류철에 관한 것이었다. 서류철에는 미군을 따라 비밀리에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한 일본인들에 대한 미군 측 심문 기록 등이 담겨 있었다. 


다큐 제작진은 비밀 보고서 내용에 언급된 일본인들의 신원을 토대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사망하였고 일부 생존자들과 그 동료들, 그리고 유족들을 만나며 그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까지의 삶, 참전 당시의 행적들, 그리고 그 이후의 삶과 죽음을 일본 국·내외 정세와 연관지어 추적하였고,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다부동의 가산 전투에서 북한군 진지를 공격하던 히라쓰카 시게하루의 전사에서 정점에 이른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수습되지 못한 히라쓰카의 유해, 노구로 한국을 찾은 히라쓰카의 동생 데루마사씨와 다부동 전투에 참전한 한국군 노병의 만남, 데루마사씨의 다부동 전적지 참배 장면 등을 차례로 비춘다. 히라쓰카의 죽음은 과연 누굴 위한 죽음이었을까? 


이 다큐를 기획한 NHK 사회부의 후지와라 가즈키는 2018년 7월 위 비밀 심문 보고서의 발견자, 즉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를 취재하면서 해당 다큐를 기획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서적 <한국전쟁에서 싸운 일본인>은 앞서 언급한 NHK 다큐를 대대적으로 보완한 논픽션이다. 필자는 2021년 여름, 경남 진주에서 열린 '한일역사교육교류회'에 한국 측 보고자로 참석하여, 해당 다큐 및 서적을 활용한 수업 사례를 발표하였다. 질의 응답을 시간을 통하여 일본 역사교사들 중에도 자국민이 한국전쟁의 지상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행사 종료 후, 책을 번역하는 일이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라 생각하고 번역에 착수하였다. 세 곳의 출판사에 번역기획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중 마지막 출판사였던 소명출판에서 원고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어 출간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은 앞서 국내에서 출간된 저작물들에 비하여, 미군 기지에 고용되어 직접 한반도로 간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지상전을 겪었고, 일부는 실제로 총을 들고 싸웠다. 즉, 전투원으로도 활동한 것이다. 그렇기에 '참전'한 다른 일본인들보다도 극비리에 취급되었던 이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단 일본인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 혹은 그들의 유족이나 동료들이 증언하고, 그 내용이 일부 신문 기사에 실리기도 하였으나 역시 망각되거나 무시되었다. 일본인들조차 알지 못했던 이 사건은 당연히 국내에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전쟁 당시 주요 지휘관이었던 백선엽조차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미군 측이 작성한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이 점은 물론 당시에 일본을 점령한 미군 및 일본 정부 측의 은폐, 관계자들의 사망은 물론, 평화헌법 체제 하에서 '조선 특수'를 누리는 일본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도 기인하겠으나, 이를 증명한 공문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기인한 바 크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문서의 존재는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실재했음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예를 들어 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역사 갈등에서도 공문서의 존재를 밝히고 이를 해석하는 것이 중대한 의미를 지녔다. 심문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미군은 물론 일본 정부도 은폐하려 했던 '참전' 일본인들의 존재와 활동 양상은 마침내 그 실체를 뚜렷이 드러내게 되었다.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심문 기록 및 증언 다수가 직접 인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귀중한 사료적 가치 또한 지닌다. 


한국전쟁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주로 이 전쟁을 이용해 특수를 누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소해 활동 등 실전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될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직접적인 전투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군의 요구로 직접 한국전쟁의 지상전에까지 참가한 일본인들에 관한 내용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인이 실탄을 지급받고 직접 북한군 및 중국군과 교전했다는 사실을, 1급 기밀(TOP SECRET) 해제를 통해 밝혀냈기 때문이다. 


일본인 전투원이 활동했다는 사실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미군 점령 하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삶,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겪은 일본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평이한 문체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된 사건들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를 통하여 어느 일본인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한국전쟁이 결코 '구원'과 '부흥'의 서사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일종의 '비극'의 서사였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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