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아이사카 토마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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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본에 갔을 때 이 책이 신간 베스트셀러 매대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독소전쟁(대조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은 네이버 카페 '부흥'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였다.

피해자로서 다뤄지는 맥락을 제외한다면, 오늘날 각종 미디어에서 여성은 전쟁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여겨져 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수많은 작가들은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능력과 성취를 발휘할 수 있다고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전쟁 참여만큼은 예외로 하는 것이 오늘날 페미니즘이 바라보는 여성ㆍ전쟁관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말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을까?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비롯하여, 이질적인 사례들을 제외한다면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성을 동원했던 사례가 존재했다. 그것은 독소전쟁 시기의 일로, 구(舊)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에서 여성들을 대규모로 전쟁에, 그것도 전선에 동원한 일이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그와 같은 양상은, 일부 비슷한 노선을 걸었던 중국 공산당에서도, 소련의 적이었던 나치 독일이나,이후 자유 진영의 미국에서도 없었다.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쓰여진 소설임을 고려하다 보면, 몇 가지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국적인 소재를 무대로 한 것, 싸우는 여성들을 소재로 한 것, 그들이 여성과 전투원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한다는 것 등이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등, 각종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런 것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일종의, 싸우는 여성에 대한 판타지와 같은 것으로, 극중 인물들-주인공 세라피마를 비롯한 여성 저격대원들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성 저격대원들이 싸우는 것은 독일군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아마 대부분 남성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여성과 국가, 여성과 전쟁, 그리고 여성과 전사, 서로 일부이자 또는 그 전부인 이들 존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소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는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이며, 병력 동원 가능 인구의 감소, 나아가 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애써 이와 같은 문제를 회피하여 온 이들은 독소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을 상상하며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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