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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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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역체가 너무너무 읽기 힘들었다. 나도 말이 무슨 소설책 말투라든지, 문어체라든지 하는 소릴 자주 듣곤 하는데, 그런 내가 불편하다고 느꼈을 정도면 도저히 읽을 만한 번역이라 하기 힘들 것 같다. 그 때문에 <파리대왕>의 장면 장면들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았으며, 더더욱 기괴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소설의 배경은 전쟁 중, 혹은 전후(戰後)라고 느껴졌다. 누군가는 영국에 원자폭탄이 터졌다는 언급이 있다고 하던데, 다시 읽어 볼 땐 아무래도 그런 내용 대신 이런 것만 보였다.

"그때 분 폭풍이 바다로 몰고 갔어."(p.10)

원자폭탄이 만들어 낸 폭풍일까, 아니면 그냥 망망대해에 불어오는 폭풍이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 소년들을 더욱 전율하게 할 것이었다.



추락한 비행기, 공중전, 낙하산에 매달린 시체. 심지어 소년들을 구해주러 온 것도 순양함의 커터를 타고 온 해군 장교.

Distopia. '미래'라는 건 지금보다 더 발전하거나 찬란하기만 한 게 아니다. 과학기술면에서는 어떨까? 오히려 더 후퇴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경험해보았다면 이런 예감쯤은 쉽게 할 수 있을까.



전개는, 살아남은 소년들이 무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하다 내분을 일으키는데, 이들의 역할은 섬에서의 생존(①)이냐, 아니면 구조(②)냐로 대립되고 있다. 둘 다 생존을 위한 활동이지만, ①은 외부 세계의 존재를 전제로 한 생존 방식으로, 어떤 궁극적인 생존을 의미한다. 한편, ②는 섬 자체에서 자급자족 가능한 생활 양식으로, 일시적인 영위라고 볼 수도 있겠다. ②를 맡은 소년들은 사냥 등으로 우위를 점하고, 동시에 ①이 요구하는 봉홧불 올리기를 무시한다. 마치 고의적으로 봉홧불 올리기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규칙이란 것이 있다. 그 규칙은 소라에서 나는 신호로 상징된다. 자신들이 이미 알던 세계가 멸망한 듯한 상황에서도, 그 멸망한 듯한 세계의 규칙은 어느 정도까지는 지속된다. 그러다 결국엔 소년들은 잔인한 동물적 본성으로 돌아간다.



유일한 어른인 해군 장교가 등장하기 전까진, 아이들이 인류 전체였다. 다른 세상이 절멸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얼핏한 단서로 외부 세계는 있으리라 암시되지만, 한정된 시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여전히 의문스럽다. 다른 세상, 그들을 제외한 모두는 존재하는지.



어른들이 없다면, 아이들 사이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국에 힘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해군장교가 나타나자, 애들은 다시 애들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해군 장교와 같은 어른들 역시, 전쟁을 일으켰을 이들로, 본질에서는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어른들의 전쟁으로, 그리고 아이들의 싸움으로 섬은 불길로 뒤덮였다. 모두를 궤멸시키려던 그 전화(戰火가, 순양함이 애들을 구조하러 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전쟁의 역설일까.



인간 본성의 어두움과 어리석음을 다룬 이 소설. 놀이, 전쟁은 결국 본질에서 같은 것일까. 어른들이 보기에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집단 따돌림, 외부인(이방인), 배제된 자, '돼지'의 존재. 얼굴에 분칠을 하고 '야만인'이 되어 버린, 인간은 사소한 것으로도 인간성을 너무나도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자기 파괴적이고, 고집스런, 계속 자신의 믿음을 고집하는, 인간이란...



아, 생각해보니 윌리엄 골딩은 해군 중위로 제대한 뒤 교사로 살다 갔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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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비극 -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인민 3부작 1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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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세계 인구의 4반을 거느린-이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아직 나는 찾지 못했다-제국은, 진대 이후로 여전히 제국으로 남아 있다. 제국은 한때 민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가능성과 시도를 점쳤지만 그 끝은 제국으로 귀결되었다. 황제가 없음에도, 신격화되고 종신 집권하는 지도자, 이에 복종하는 인민-아니, 신민(臣民), 사상 최대 규모의 관료제-공산당, 그리고 식민지-시짱(티베트), 신장(위구르) 등.



그러나 수많은 세기 동안, 중화인민공화국은 그 자체가 혁명을 형상화한 것처럼 여겨졌으며, 그것을 형상화한 것은 마오쩌둥-이제는 '마오'라는 성을 지닌 수많은 중국인들을 지워버리고, 오직 그만이 '마오'였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그만큼이나 철저하고 광범위한 굴복을 이뤄내지 못했고, 그만큼 신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신은 다른 신에게 언제나 배타적이고 잔혹했으므로, 그가 종교에 대하여 취한 태도를 고려하면 그는 역시 신이었다.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신보다도 더 무자비한 것은, 그에게는 영원한 백성이 없었고, 신봉자들에게조차 신의 채찍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마오는 혁명의 아이콘이었고-특히나 68년의 좌파들에게는 더더욱. 우파에게는 현세에 도래한 마왕이었다. 어느 것이나, 마오가 전지전능하였다는 것은 좌우가 공히 인정한다. 단, 그것은 그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고, 유지 강화하는 데에 한해서였으며, 정책의 성공까지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정책이 자신의 신격화에 있었다면, 그것만큼은 분명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프랑크 디쾨터의 서술은 단순한 서술에 머물지 않는다. 독자는 어느 순간 수많은 기록과 증언의 바다-피바다 속을 헤엄친다. <인민>을 위한 혁명, <인민>이 이뤄낸 혁명이라고 믿었던 붉은색이, 사실은 혁명의 적-<지주>, <반동분자>, <부농>들, 그리고 <인민>들의 피로 물든 것이라는 것을 서구 세계는 너무 늦게 깨달았고, 중국의 인민들은 너무 빨리 깨달았다. 그 피를 쏟아 내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므로!



공산주의는 역사와 그 발전을 믿는다. 그러나 인간까지 믿지는 않는다. 수많은 제도, 이를 위한 할당량, 또 그것들을 위한 감시는 이 사상-체제가 철저히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산주의 혁명의 지도자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혁명마저도 믿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중국 대륙은 대약진 운동부터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그 잘못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나, 이미 이 당의 탄생과 성장 과정부터 결정적이고 불가역적인과오들이 존재했음을 기록으로 증명한다. 중국 공산당은 이미 혁명의 적들 뿐만 아니라 인민을 혁명의 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편, 혁명의 적으로 몰린 인민들, 혹은 중국 공산당이 그리도 찬탄해 마지않는 농민, 노동자들은 꽤 일찍부터, 그리고 꽤 대담하게도, 그리고 꽤 늦게까지 이 대륙에 존재했던 수많은 정권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무자비한 정권에 감히 맞붙어 싸우려 했던 것이다. 공개 처형과 능욕, 혹사와 추방이 일상화된 그 상황에서조차 말이다.



공산 혁명의 결과는, 어느 지역에서든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만 중국에서는 그것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뿐이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무서우리만치 날카로운 분석이 느껴진다. 보고와 증언-심지어 그 대부분은 내부 문건이었다! 본문보다도 더, 신념으로 가득찬 문서들이 대륙 내부의 범행을 폭로하는 데 이리도 신뢰할만한 자료가 될 수 있다니.



또 하나, 한국 전쟁-중화민국에서는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고 한다-은 유엔군과 싸운 전쟁이라기보단, 오히려 내부의 투쟁이었다. 그야말로 또 다른 전쟁이었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7장 <또 다른 전쟁>이 주목할 만하다.

안후이 성 서쪽의 한 곳에서 민중이 몇몇 지주들을 증오했고 그들을 죽여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지주들을 죽였다. 지주들이 죽자 민중은 희생자의 친척들이 복수할까 봐 두려워했고 그래서 앞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명단을 가져와서 그들까지 죽일 수 있다면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민중의 바람에 따랐고 그 사람들마저 죽였다. 그들이 죽고 나자 민중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수를 할 거라고 생각해서 또 다른 명단을 가져왔다. 우리는 계속 사람들을 죽였고 갈수록 불안을 느낀 민중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

p.127, 4장 <폭풍우> 中



중국 속담에 <가난한 사람은 부자에게 의지하고 부자는 하늘에 의지한다>고 했다. 이제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당에 의지하게 될 터였다.



사람들은 살인에 동참할 때 비로소 당과 영원한 결속을 다지게 될 터였다.

p.129, 4장 <폭풍우> 中

<부패한 형의 시신은 개울가에 걸린 썩은 나무 같았다. 둘째 형과 어머니가 물속으로 들어가서 꺼내려 하자 시신이 힘없이 분해되었다. 우리는 뼈를 수거해서 물에 잘 씻은 다음 가져갔던 상자에 담았다.>

p.157, 5장 <대공포 시대> 中

많은 사람이 그들의 배(舟)에서 끌려 나와 고된 노동을 하도록 보내졌다. 마침내 혁명이 땅에서 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p.165, 5장 <대공포 시대> 中

그들은 혁명의 희생양이었다. 공산당을 제쳐 놓고 잘못된 편을 선택한 사람들이 어떤 운명들을 맞게 되는지 상기시키는 본보기로 평생을 계급 투쟁의 전장 속에서 살아야 했다.



누구도 자신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안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측 불가능한 본질이야말로 공포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었다.

p.168, 5장 <대공포 시대> 中

후난 성 출신의 농부 저우창우의 말에 따르면 <국민당 시절에는 징집 기간에 산으로 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산에 들어가 숨으면 간첩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빠져 나갈 방법이 정말 전혀 없다.>

p.227, 7장 <또 다른 전쟁> 中

로버트 루와 가장 친했던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그래서 무척 상처를 받았지만 이내 나와 친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위협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나처럼 자본주의에 물든 죄인에게 증오와 경멸을 느낄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p.264, 8장 <숙청> 中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침묵할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과 충성심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후스(胡適)-

p.290, 9장 <사상 개조> 中

1년 뒤 열린 정치 협상 회의에서 저우언라이가 솔직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라고 부추기자 제의를 받아들인 량수밍이 농촌의 빈곤화를 개탄했다. 도시 노동자들이 <천국의 아홉 번째 수준으로 살고 있다면 농민들은 지옥의 아홉 번째 수준으로 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p.291, 9장 <사상 개조> 中

<매질을 당한 뒤에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뿐더러 마음 한구석에서 고통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상 개조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문을 당하면 돌아갈 곳이 아무데도 없다. 사상 개조는 그 사람의가장 심오하고 깊은 내면에 영향을 끼치고 정체성 자체를 공격한다.>-로버트 포드-

p.382, 12장 <노동 수용소> 中

<그들은 민족주의자들 앞에서는 애국심을,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 앞에서는 헌신을, 억압받는 사람들 앞에서는 복수심을 과시한다.> 요약하자면 공산주의는 모든 사람의 비위를 다 맞추려 들었다.

p.396, 13장 <사회주의의 그늘> 中

현장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수많은 추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그들에게 자신이 역사적 대전환기를 살고 있으며 자신보다 훨씬 크고 훌륭한 무언가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신기록을 달성한 노동자나 적군의 총탄을 몸으로 막아 낸 군인 등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되도록 부추겨졌다. 선전 기관은 본보기로 제시된 수많은 영웅적인 노동자와 농부, 군인 등을 끊임없이 미화했다.

p. 399, 13장 <사회주의의 그늘> 中

중국은 하나의 극장이었다. 심지어 무대 밖에서도 사람들은 강제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농부들은 곡식을 더 많이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조차 팡파르를 울리며 열정적으로 웃어야 했다. 상점 주인들은 재산을 국가에게 넘기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환한 얼굴로 자발적으로 협조해야 했다. 아시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미소는 언제나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곤혹스러움을 표현하거나 고통이나 분노를 감출 때도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괜히 꾸물거렸다가 비난을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를 국가에 의존했다 .그리고 해방 이래로 무수히 많은 시간의 학습 모임을 통해 당의 방침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고 올바른 대답을 내놓고, 동조하는 척하는 방법을 배운 터였다 .일반인들은 어쩌면 위대한 영웅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상당수가 훌륭한 배우였다.

p.401, 13장 <사회주의의 그늘> 中

겉치레용 건축물에 막대한 돈이 투입되면서 일반인을 위한 주택 사업이 외면당했다. 베이징 대학의 학생 기숙사나 시안의 인민 맨션처럼 보여 줄 목적으로 지어진 전시용 숙소의 경우는 물론 예외였다. 기본적인 위생 기준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공장과 깃구사가 마구 뒤섞여 지어졌다. 지역 주민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걸핏하면 쫓겨난다> 라며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

p.404, 13장 <사회주의의 그늘> 中

1956년에는 수년 전 해방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부는 국민을 존중하기는커녕 대차 대조표상의 단순한 숫자로, 위대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어야 할 자원으로 여겼다. 농민은 집산화라는 명목 아래 토지와 농기구와 가축을 잃었다. 어느 때보다 많은 곡식을 국가에 넘겨야 했으며 아침이면 그들을 부르는 나팔소리에 달려 나가서 지방 간부들에게 지시를 받아야 했다. 도시의 공장과 상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ㅈ어부에서 선전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 아니라 채무 노동자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유례없이 오랜 시간을 일하고 하나의 생산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강요되었으며 그럼에도 소득은 계속 줄어들었다. 공산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우토피아 건설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p.419, <사회주의의 그늘> 中

한번은 한 여성이 네 명의 수척한 어린아이와 함께 몸에 팻말을 매달고 국무원 정문으로 다가갔다. 팻말에는 <굶주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던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글이었다. 또 다른 경우에서는 한 남자가 백주 대낮에 초롱불을 켜고 마오쩌둥과의 접선을 요구하며 중난하이에 있는 공산당 당사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공산당이 대지를 뒤덮는 어둠의 대리인이라는 뜻이었다.

p.429, 14장 <독초> 中





※<페스트>(알베르 카뮈)에 이어 열린책들의 서평을 쓰게 되었는데, 그다지 별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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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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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페스트>를 읽던 시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도시에서 머뭇거리던 시절의 일이었다. 추가 확진자가 당분간 나타나지 않던 시절이었고,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고 모일 것을 주문했다. 다섯 명이 카페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웅얼웅얼하는, 다소 기괴한 분위기로 모임은 진행되었다. 문득, 미래에 인류가 전염병의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살아가야만 한다면, 미래의 모임들은 이렇게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팬더믹 시대의 책읽기를 하고 있었다.

 

페스트를 듣고, 볼 수 있던 오랑의 시민들과는 달리, 이 도시에선 코로나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여전히, 의사와 간호사의 일처럼 느껴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갇혀 있다. 우리를 막아서는 건, 도시의 감염 규모가 아닌, 감염의 가능성이다. 봉쇄되지 않아도 은 도시의 곳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은 채로, 늘어가는 피해자-확진, 자가격리, 사망의 규모에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마치 오랑 시민들이 신음 소리에 무감각해지듯 말이다. 마스크의 부족과 혈액의 부족도 걱정이나,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무감각이라는 이 경향이다.

 

생각보다 페스트가 크게 와 닿은 작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핑계겠지만,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절멸에 가까운 위기를 묘사한 <페스트>라 할지라도, 아니 그 어떤 문학도 실제의 가벼운 재난보다는 훨씬 가볍기 때문일까. 재난문학인 <일본침몰>이 어느 현()의 경미한 지진을 넘어설 수 있다곤 생각하기 어렵다.

 

작품과 현실의 안팎을 드나들며 가 보자. 작품 속 소문의 전파는 사람들 사이가 고립되어 있다는 것(고립성),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연결성)을 보여 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보통신 기술의 수준으로 인하여, 소문은 이미 그 고립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연결성만 극대화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부(神父)는 필요없다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리외는 말했다. 과연, 사람들은 성 로크를 찾았으나, 그 성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성 로크가 데리고 다녔다던 개는, 페스트의 등장과 동시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페스트는 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임을, 어쩌면 신이란 무력하다는 것을 이후의 파늘루 신부와 수많은 시민들의 행적으로 카뮈는 역설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무고한 자를 가리지 않는데, 재난이라고 마찬가지겠는가. 신의 징벌이든, 축복이든, 신이 없든, 이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차피 공평하지 않았다.

 

재난에는 승리가 없으며, 그것은 그냥 지나갈 뿐. 그야말로, 페스트는 끊임없는 패배일 뿐이다. 페스트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페스트를 이겨냈다고 승리가 아니며, 질병과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이 시대에는 성 로크같은 영웅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전통적인 영웅상은 사람들이 제 할 일을 하도록 이끌기보단 그저 자신을 응원하도록 만드는 이들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불행을 거부하는 것은 박애주의자와 이기주의자의 공통점일 뿐, 둘을 다르게 하는 것은, 행복을 함께 누릴 이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신문기자 랑베르야말로 이를 나타내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내를 파리에 두고 온 이방인(카뮈의 명작 중에 <이방인>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이고, 도시와 자신의 운명은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를 바꿔 놓은 말은,“사람은 다 그래요. 기회를 주기만 하면 되죠.”라는 말. 최규석의 <송곳>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왔는데, 카뮈의 영향이었을려나. 이 말에 랑베르는 도시와 운명을 함께 하고자 마음먹는다. 오히려 성 로크같은 인물이 있다면, 타루일 것이다.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고, 그 죽음이 모두에게 닥쳐올 때 그가 보였던 행동. 모두가 영웅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며, 영웅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영웅은 그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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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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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간에겐 종교-자연 현상이나 신, 부처 등을 부정하는 것이 별난 일이었다면

지금 인간에겐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별난 일이라

지금 인간에겐 종교란 과학, 바로 그것이었다.

과학은 믿어야만 하는 종교가 되었고, 그 종교의 극단에는 공상과학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과학은 인간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지고,

그 속의 인간들은 인간성을 간직하기 위해, 또는 잃어버려 발버둥치며

오히려 인간성을 더더욱 자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SF 소설을 읽는 이유일지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혹은 이미 떠나 온 곳,

어쩌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감정의 물성>: 그나마 가장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 그럼에도 SF인 것은, 감정을 지배한다는 건 그만큼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감정을 그저 소비만 할 뿐, 결코 생산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이마저도 진정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감정에 휩싸인 한 줌이 되기보단, 한 줌의 감정을 손에라도 거머 쥐고 싶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래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혹은 이미 떠나 온 그곳으로.

 

<공생 가설>: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언가. 남은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손에 남겨진 감촉인가, 아니면 그 감촉의 기억일 뿐일까. 혹,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면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기에 슬픈 것.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결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단, 인간 세상은 이미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곳이 되었다. 우리는 우주로, 바다로 나아간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들의 슬픔을 위하여, 우리는 남는다.

 

<스펙트럼>: 생명, 역사의 순환. 우리는 언제나 태고로부터 태어나, 지금 죽는다. 그리고 우리를 이어, 누군가가 다시 태고로부터 우리를 살아 간다.

 

<관내분실>: 기억이란, 기억하는 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고, 유지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우린 영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방》을 떠올린다. 연금 500파운드도, 방 한 칸도 갖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유품함 한 꾸러미 속에 갇힌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에 관하여. 한편으로는, 딱하리만치 왕성한 디지털 번식욕을 지닌 현세 인류에겐 결코 주어질 수 없는, 슬픈 가능성.

 

※SF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데서 바로 시작된다.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하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추모, 그 최초의 추모 행위를, 성년식, 그 최초의 성년식을 우리는 의미도 양상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그저 현재 속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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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 고흐의 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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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2005)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p.24.-


생의 전반에 고흐는 집요할 만큼 테오에게 돈을 보내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절박함이 고흐를 저 유명한 초상화 속의 모습처럼 더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의 후반, 고흐는 테오에게 돈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는,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그 동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써 버린 돈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예감했던 것일까.


고흐는 그 돈을 무엇에 썼던가. 그는 특히나 유화에 집착했다. 그에겐 유화야말로 그가 바라 본 세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완벽한 재료였다. 유화를 놔 두고 수채화를 택한다는 길을 그는 결코 생각해내지 못했다.


재료비를 아끼며 작품활동을 했다면 그는 더 배고프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건강, 삶, 그 모든 것을 희생시켜 유화를 그려 냈다.


진정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을 표현하는 것, 이를 위해 자기 자신마저도 희생할 수 있으며, 여기서 무엇 하나 더할 수 없는 것. 그 때문에 도저히 대체할 수가 없는 그런 것이야말로 예술이 아닐까.


최선을 다했으므로, 거기에는 이제 더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고흐는 비록 빈곤했음에도, 아니 오히려 빈곤했으므로 유화를 그렸다. 유화야말로 그가 가장 진심으로 원했던 재료였다. 배고픔을 팔아 물감을 사고, 마지막 가난마저 긁어내고 붓칠을 했다.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늦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p.191-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고흐는 점점 더 밝은 색채를 열망했다. 상류 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 밝은 색채가 상징하는 별, 죽음과 영원의 세계로 고흐는 점점 더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난 뒤, 화가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희미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고흐처럼 좀처럼 인정받지 못했던 자의 초조함은 더했을 것이다. 그런 고흐는 별의 세계에서도 화가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도 화가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온갖 상념들이 가득 담긴 그림이 바로 <별이 반짝이는 밤>이었던 것. 고흐가 머무는 그 별은 지금 어디 쯤 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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