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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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 인간에겐 종교-자연 현상이나 신, 부처 등을 부정하는 것이 별난 일이었다면

지금 인간에겐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별난 일이라

지금 인간에겐 종교란 과학, 바로 그것이었다.

과학은 믿어야만 하는 종교가 되었고, 그 종교의 극단에는 공상과학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과학은 인간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지고,

그 속의 인간들은 인간성을 간직하기 위해, 또는 잃어버려 발버둥치며

오히려 인간성을 더더욱 자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SF 소설을 읽는 이유일지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혹은 이미 떠나 온 곳,

어쩌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감정의 물성>: 그나마 가장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 그럼에도 SF인 것은, 감정을 지배한다는 건 그만큼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감정을 그저 소비만 할 뿐, 결코 생산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리를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하는 이마저도 진정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감정에 휩싸인 한 줌이 되기보단, 한 줌의 감정을 손에라도 거머 쥐고 싶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래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우리가 다다르지 못한, 혹은 이미 떠나 온 그곳으로.

 

<공생 가설>: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언가. 남은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손에 남겨진 감촉인가, 아니면 그 감촉의 기억일 뿐일까. 혹,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면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기에 슬픈 것.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결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단, 인간 세상은 이미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거운 곳이 되었다. 우리는 우주로, 바다로 나아간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들의 슬픔을 위하여, 우리는 남는다.

 

<스펙트럼>: 생명, 역사의 순환. 우리는 언제나 태고로부터 태어나, 지금 죽는다. 그리고 우리를 이어, 누군가가 다시 태고로부터 우리를 살아 간다.

 

<관내분실>: 기억이란, 기억하는 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고, 유지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우린 영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방》을 떠올린다. 연금 500파운드도, 방 한 칸도 갖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유품함 한 꾸러미 속에 갇힌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에 관하여. 한편으로는, 딱하리만치 왕성한 디지털 번식욕을 지닌 현세 인류에겐 결코 주어질 수 없는, 슬픈 가능성.

 

※SF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데서 바로 시작된다.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하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추모, 그 최초의 추모 행위를, 성년식, 그 최초의 성년식을 우리는 의미도 양상도 여전히 알 수 없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그저 현재 속에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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