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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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땅한 셜록 홈즈 완역본조차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우리 나라 장르소설계도 북유럽 추리소설이 들어올 정도로 파이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북유럽 장르문학으로 저도 한번 소개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있고,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시리즈 역시 북유럽 추리소설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지요.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작품은 현재 북유럽 문학의 총아라고 불리는 요 네스뵈의 소설, 스노우맨입니다.

 

 첫 눈이 내리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한 아이의 어머니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남은 것은 어딘지 모르게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눈사람, 그리고 그 목에 둘러진 아이 어머니의 목도리뿐이지요. 오슬로 경찰청의 반장이자 언론이 주목하는 스타 경찰관인 해리 훌레는 노르웨이의 동거 및 기혼여성의 실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 사건 역시 연속된 실종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수사에 나섭니다. 한편 솔리회위다의 숲에서 또다시 비슷한 유형의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눈사람의 몸통 위에서 여성의 사체 일부가 발견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북유럽 장르문학에 대해서 받았던 인상은 서늘하면서도 묵직하다는 것이었는데요, 영미 스릴러가 숨쉴 새 없이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것에 비해 북유럽의 스릴러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묵직한 호흡을 보여주지 않나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북유럽 추리소설의 속성만을 갖췄다기보다는 미국과 북유럽 스릴러의 장점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빠른 속도로 연달아 발생하는 사건을 그리며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합니다. 몇십년 전의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오가며 사건에 관련된 복선을 던지고, 주인공인 해리 훌레가 노르웨이 전역을 아우르며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종횡무진하지요. 독자들은 사건의 진행을 따라잡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의 뒤를 쫓아야만 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미 스릴러의 리듬감에 북유럽의 불친절한 서늘함을 갖춘 소설이라고 할까요.

 

 스노우맨은 참으로 다양한 매력을 자랑합니다. 민첩하고 마른 몸에 수사를 위해서는 무슨 일도 마다않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여자에게 순정적인 사랑을 바치는 해리 훌레의 캐릭터가 그러하고, 풍부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소설을 읽으며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눈사람이라는 소재가 소설 속에서 참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작가는 긴장감있는 전개를 위해 눈사람이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단순히 실종과 살인의 잔혹함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에요. 친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 인간이 갖는 두려움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구성적 장치로서 눈사람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가정의 붕괴나 해체를 ‘녹을 수밖에 없는’ 눈사람의 운명과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눈사람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불완전한 범인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녹고 부서질 눈사람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범인을 의미하는 것은 소설 초반부터 알 수 있었지만, 범인을 찾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육체적 결함 역시 눈사람과 닮아 있다는 건 요 네스뵈가 의도한 메타포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왜 요 네스뵈에게 ‘북유럽의 할런 코벤’ 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알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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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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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는 쇼코의 이력서를 꺼내 변호사에게 내밀었다.
“이 사진 속 사람이 세키네 쇼코 씨 맞죠?”
미조구치 변호사가 이력서를 내려다보았다. 혼마가 열까지 헤아릴동안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시간의 길이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맞았음을 실감했다.

 

설마,
단기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아닙니다.”
변호사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고,
그것이 순식간에 더러운 것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력서를 혼마 쪽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닙니다. 만난 적도 없어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화차> 中, 미야베 미유키 作

 


 가장 좋아하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를 꼽으라면 누가 생각나세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미스터리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 서술트릭의 대가 오리하라 이치 등 수없이 많은 이름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 일본 미스터리, 특히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죠. 바로 오늘 소개할 화차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적 문제를 담은 미스터리를 훌륭하게 써 내는 일본 중견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물론 판타지나 에도물도 많이 쓰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미미여사의 진가는 사회파 미스터리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 화차의 재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습니다. 기존의 번역본에서 누락된 원고지 500장 분량의 원고를 보충하여 재출간하는 화차는, 이유에 버금가는 미미여사의 대표작으로서 다시금 한국 독자들에게 사회파 미스터리의 여왕인 미야베 미유키의 위상을 보여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혼마 슌스케는 현장에서 강도를 제압하다가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휴직중인 경찰입니다. 재활에 애쓰며 복귀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혼마에게 어느 날 아내의 사촌조카인 구리사카 가즈야가 찾아오는데요, 그는 혼마에게 갑자기 사라져버린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가즈야가 밝힌 그녀의 실종 경위는 참으로 기묘합니다. 결혼 준비를 위해 그녀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신청했다가 그녀가 개인파산을 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감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던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으레 있는 실종사건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한 혼마는 그녀가 개인파산을 신청했다던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곳으로 개인파산을 신청하러 온 세키네 쇼코와 가즈야가 찾고 있는 세키네 쇼코가 다른 사람이었던 겁니다.

 

 이후 이야기의 초점은 ‘그녀는 왜 사라졌는가?’에서 ‘그녀는 누구인가?’로 급격히 옮겨갑니다. 혼마는 가즈야가 찾아달라고 부탁한 그녀의 뒤를 쫓는 한편, 그녀가 사칭한 진짜 세키네 쇼코의 인생을 되짚어가요. 소설은 그녀가 왜 세키네 쿄코를 사칭했는지, 어떻게 사칭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진정한 그녀는 누구인지 추적하며 미스터리적 요소를 부각시킵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가 늘 그렇듯이, 그녀의 글은 다른 작가들이라면 문장 하나로 날려버렸을 법한 사소한 일도 차근히 설명하고 얼핏 보기에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건도 일일이 짚고 넘어가므로 그녀의 뒤를 쫓는 혼마의 행보는 숨가쁜 서스펜스완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은 떨어지지 않고, 그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야만 했던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녀가 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해 가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자 했는지, 왜 하필 세키네 쇼코를 선택했는지 깨닫게 되지요.

 

 또한 이야기는 진짜 세키네 쇼코의 인생을 따라가며 당시 일본에 만연했던 신용구매와 대출 문제를 짚어냅니다. 당시 일본의 신용구매 및 대출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커다란 사회적 문제였지요. 신용구매 및 대출, 개인파산 등과 같은 문제가 그저 어떤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할 독자들을 미리 예상한 것인지 미야베 미유키는 그것은 단지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도적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변호사와 혼마의 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장면 중 하나였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독자들은 왜 살고자 발버둥치는 그녀의 모습이 가련하면서도 섬뜩한 여운을 남기는 것인지 차츰 이해하게 됩니다. 또다른 자신으로 선택한 세키네 쇼코를 파멸로 몰아넣고 그저 안온한 삶을 위해 달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어쩌면 그녀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넣은 그 회사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뒤집어쓰는 게 자기네 회사만 아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그 회사들처럼, 그녀가 이전의 ‘빚’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말입니다. 그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의도한 아이러니였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그 곳으로 떨어진 것은 자의도 아니거니와 사회가 책임을 어느 정도 지고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그것을 헤쳐나오는 방법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선택은 그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미야베 미유키의 솜씨를 보고싶으시다면 이유와 함께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소설이라는 평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참으로 미야베 미유키스러운 소설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녀의 팬이시라면, 혹은 그녀의 팬이 아니시더라도 사회파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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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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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희를 절대로 용서 못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그렇게 못하겠으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속죄를 하라고.
그것도 안 하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거야.
난 너희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권력이 있어.
내가 기필코 너희들을 에미리보다 더 처참하게 만들어 놓을 거야.
에미리의 부모인 나한테만은 그럴 권리가 있어.”
 
<속죄> 中, 미나토 가나에 作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라고 담담하게 고백하던 여교사를 기억하시나요? 뛰어난 플롯과 이야기,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로 인기를 끌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인상깊게 보셨다면, 그녀의 다른 소설보다 꼭 이 소설을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오늘 리뷰를 쓸 소설인,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입니다.

 

 공기가 깨끗한 어느 산골 마을, 추석을 얼마 안 남긴 어느 날 도쿄에서 전학 온 에미리가 낯선 사람에게 살해당합니다. 목격자는 함께 놀던 동네 아이들. 범인은 환기구 조사원이라는 핑계를 대고 에미리만을 불러내 처참하게 살해한 뒤 사라져버리고,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아무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진전되지 못하고, 결국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 듯 하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에미리의 어머니는 넷을 불러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너희를 에미리보다 비참하게 만들어버리겠다며 저주를 퍼붓는데요. 에미리의 유괴와 살해, 그리고 그 사건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던 어머니의 저주…. 이 사건들이 아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는 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그것을 고백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소설은 네 명의 아이들, 그리고 에미리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담은 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챕터는 그 사건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과 사건의 진상을 차근히 풀어내지요. 처참하게 살해된 친구를 목격한 것, 그리고 딸을 잃은 어머니의 피맺힌 저주는 아이들의 인생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바꿔 놓았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네 개의 챕터에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는지를 알수 있어요. 소심하지만 착한 사에는 평생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고, 마키는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속죄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평생을 에미리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죄책감을 갖고 있던 아키코와 잘못된 인생관을 갖게 된 유카 역시 그 사건에서 놓여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다섯 번째 챕터로 이야기가 옮겨가면 에미리의 어머니, 아사코는 오히려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던 것도 잊었다고 무책임하게 말합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모진 소리를 했다고 그것에 언제까지나 얽매여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하고 이기적이지요. 자신이라면 그런 일에 집착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그녀는, 속죄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진정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에미리 이전에 이 모든 비극이 자신으로부터 잉태되었음에도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아사코의 고백이자 사실상의 종장인 ‘속죄’에서 우리는 결국 제목이 의미하는 속죄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아사코가 자신의 말로 인생이 어그러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빈다고 느꼈다면 책의 제목은 명백히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뻔뻔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은 독자에게 혼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죠. ‘속죄’란 아사코가 아이들에게 무책임하게 퍼부었던, 그래서 아이들이 평생을 얽매인 그 속죄인가. 혹은 아사코가 아이들에게 비는 속죄인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의 인생을 처참히 망쳐놓은 아사코가 결국 딸의 목숨을 그 댓가로 치루게 되는 것이 속죄인가를 말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읽으시고 다양한 감상을 느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속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속죄라는 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 경우 이 책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아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계속 생각하게되었던 소설이었어요.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심과 이기심이 다섯 어린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으니까요. 다소 고백과 비슷한 느낌이 있어 아쉽긴 했지만 한번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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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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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눈 속에 잠들어 있고,
진실은 영원히 얼어붙어 있다.

 

<추상오단장> 中, 요네자와 호노부 作

 


 ‘리들 스토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들어보는 낯선 용어인 분들도 있을 겁니다. 리들 스토리란 이야기의 결말이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하거나 모호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고 결말을 쓰지 않은 소설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가 있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상오단장입니다.

 

 큰아버지의 고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돕고 있던 요시미츠는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쓴 소설은 리들 스토리였으며 그 숨겨진 결말을 자신이 찾은 것 같으니 요시미츠에게 그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를 찾아달라는 겁니다. 두둑한 보수에 흔쾌히 일을 시작한 요시미츠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내는 과정에서 작가인 키타자토 산고가 젊은 시절 ‘앤트워프의 총성’이라는 자살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이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그저 소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예상하셨다시피 다섯 가지의 이야기는 키타자토 산고가 젊은 시절 연루된 ‘앤트워프의 총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산고의 아내 토마코는 목을 매어 자살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현장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증언합니다. 산고는 아내의 사망과 관련한 진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일본의 황색 언론은 온갖 억측으로 점철된 기사를 내보내며 의혹을 제기하지요. 산고는 자신이 총으로 아내를 위협하여 죽게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에 분노를 표하지만 결국 입을 다뭅니다.

 

 독자들은 의아해집니다. 그가 친구에게 말했듯이 황색 언론의 주장이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면 자신을 위해서, 무엇보다 앞으로 커갈 딸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말도 안되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할 법도 한데 산고는 그 모든 것을 피해 잠적해버렸으니까요. 사건에 관계된 진실이 무엇이길래 산고는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걸까요.

 

 소설을 찾기 위해 산고의 지인들을 찾아 만나기도 하고, 관련된 기사도 찾아 읽어보면서 요시미츠는 숨겨진 진실에 점점 다가서게 됩니다. 다섯 가지의 이야기는 당시 황색 언론이 토마코의 죽음에 대해 제기한 의문들과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진실에 대한 일종의 고백이었으며, 딸인 카나코가 이 소설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유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게 되지요. 또한 끝내 산고가 숨기려고 했던 진실 역시도요.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입장은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 수만큼 존재하고, 사건에 대한 시각은 보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는 각기 다른 결말을 갖고 있지만 요시미츠가 지적했듯이 이야기는 다른 결말과 맞아떨어져 전혀 다른 것을 의도할 수 있습니다. 산고가 고의적으로 바꿔놓은 결말은 소설 내에서는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의 사건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의견이 존재하고 그 의견이 진실과는 관계없는 거짓을 담을 수 있음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산고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입 다물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 댄 소문들처럼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 전체는 물론이고 소설 속에 담긴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 역시 각자 훌륭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한 권에 담겨있는 산해진미 같은 느낌이랄까요. 수 가지의 미스터리와 함께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놓치지 마세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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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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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가 되었다. 행동을 개시하여 니콜라에게 내 참모습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중략…)

 

물론 나는 어디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타격을 주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편집된 죽음> 中, 장 자크 피슈테르 作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 즉 복수는 차갑게 식혀야 더 맛있는 요리와 같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한 지적인 미스터리, 장 자크 피슈테르의 편집된 죽음입니다.

 

 주인공인 에드워드 램은 35년지기 친구인 니콜라 파브리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받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평생을 지배한 매혹적인 악마, 니콜라의 성공을 저주하고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거지요. 하지만 그 복수의 씨앗은 니콜라가 공쿠르상을 수상하던 그 날 잉태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씨앗은 에드워드 자신도 모르게 수십년 전부터 그의 가슴 속에 자그마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씨앗이 꿈틀꿈틀 싹을 틔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악마적이며 또한 천재적인 음모의 덫을요.

 

 추리소설에 우아하다는 말은 참으로 독특한 묘사가 되겠지만,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묘사는 우아하다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평생을 니콜라의 그늘에 가려 음지에서 살아온 에드워드가 수십년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연인 역시 니콜라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마음먹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지요. 평생을 연인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살았지만 그녀의 죽음이 자신이 아닌 니콜라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에드워드는 말 그대로 ‘영혼이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복수를 결심하며 결코 냉정을 잃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떤 복수를 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그에게 복수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섬찟하면서도 고아한 여운을 남기지요. 게다가 그가 결심한 복수의 방법은 복수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한 권의 책, 그것도 찾아볼 수도 없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한 권의 책, 그것도 책의 존재 자체가 복수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됨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만은 에드워드의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지요. 이로써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복수가 완성됩니다.

 

 소설이 복수에 대해 그리는 소설이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니콜라가 일평생 에드워드의 인생에 그늘을 드리워 왔고 또한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로 그려진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누명을 쓰고 가련한 결말을 맞는 것에 거북한 분들도 분명 계실테구요.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생을 억눌려 살아왔던 에드워드가 니콜라의 소설을 계기로 악마적인 음모를 꾸미고 그 복수의 완성으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권선징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설이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뻔한 테마를 벗어나 새롭고 색다른 결말을 그리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진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편집된 죽음은 살인이나 납치, 타임리밋과 같은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서스펜스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몇몇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절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반례가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무조건 지금 당장 집어들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시리라고 장담하는, 몇 안되는 소설이에요. 꼭 읽으시고 이 지적이고 우아한 미스터리가 주는 충족감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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