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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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때가 되었다. 행동을 개시하여 니콜라에게 내 참모습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중략…)

 

물론 나는 어디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 타격을 주어야 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편집된 죽음> 中, 장 자크 피슈테르 作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 즉 복수는 차갑게 식혀야 더 맛있는 요리와 같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한 지적인 미스터리, 장 자크 피슈테르의 편집된 죽음입니다.

 

 주인공인 에드워드 램은 35년지기 친구인 니콜라 파브리가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받는 자리에 함께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평생을 지배한 매혹적인 악마, 니콜라의 성공을 저주하고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거지요. 하지만 그 복수의 씨앗은 니콜라가 공쿠르상을 수상하던 그 날 잉태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씨앗은 에드워드 자신도 모르게 수십년 전부터 그의 가슴 속에 자그마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씨앗이 꿈틀꿈틀 싹을 틔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악마적이며 또한 천재적인 음모의 덫을요.

 

 추리소설에 우아하다는 말은 참으로 독특한 묘사가 되겠지만,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묘사는 우아하다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평생을 니콜라의 그늘에 가려 음지에서 살아온 에드워드가 수십년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연인 역시 니콜라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마음먹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지요. 평생을 연인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살았지만 그녀의 죽음이 자신이 아닌 니콜라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에드워드는 말 그대로 ‘영혼이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복수를 결심하며 결코 냉정을 잃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떤 복수를 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그에게 복수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섬찟하면서도 고아한 여운을 남기지요. 게다가 그가 결심한 복수의 방법은 복수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한 권의 책, 그것도 찾아볼 수도 없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한 권의 책, 그것도 책의 존재 자체가 복수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됨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만은 에드워드의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지요. 이로써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복수가 완성됩니다.

 

 소설이 복수에 대해 그리는 소설이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니콜라가 일평생 에드워드의 인생에 그늘을 드리워 왔고 또한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로 그려진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누명을 쓰고 가련한 결말을 맞는 것에 거북한 분들도 분명 계실테구요.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래서 이 소설이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생을 억눌려 살아왔던 에드워드가 니콜라의 소설을 계기로 악마적인 음모를 꾸미고 그 복수의 완성으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 권선징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설이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뻔한 테마를 벗어나 새롭고 색다른 결말을 그리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진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편집된 죽음은 살인이나 납치, 타임리밋과 같은 자극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서스펜스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몇몇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절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반례가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무조건 지금 당장 집어들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시리라고 장담하는, 몇 안되는 소설이에요. 꼭 읽으시고 이 지적이고 우아한 미스터리가 주는 충족감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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