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것은 그 눈 속에 잠들어 있고,
진실은 영원히 얼어붙어 있다.

 

<추상오단장> 中, 요네자와 호노부 作

 


 ‘리들 스토리’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들어보는 낯선 용어인 분들도 있을 겁니다. 리들 스토리란 이야기의 결말이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하거나 모호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고 결말을 쓰지 않은 소설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가 있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상오단장입니다.

 

 큰아버지의 고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돕고 있던 요시미츠는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설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쓴 소설은 리들 스토리였으며 그 숨겨진 결말을 자신이 찾은 것 같으니 요시미츠에게 그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를 찾아달라는 겁니다. 두둑한 보수에 흔쾌히 일을 시작한 요시미츠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찾아내는 과정에서 작가인 키타자토 산고가 젊은 시절 ‘앤트워프의 총성’이라는 자살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이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그저 소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예상하셨다시피 다섯 가지의 이야기는 키타자토 산고가 젊은 시절 연루된 ‘앤트워프의 총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 산고의 아내 토마코는 목을 매어 자살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현장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증언합니다. 산고는 아내의 사망과 관련한 진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일본의 황색 언론은 온갖 억측으로 점철된 기사를 내보내며 의혹을 제기하지요. 산고는 자신이 총으로 아내를 위협하여 죽게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기사에 분노를 표하지만 결국 입을 다뭅니다.

 

 독자들은 의아해집니다. 그가 친구에게 말했듯이 황색 언론의 주장이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면 자신을 위해서, 무엇보다 앞으로 커갈 딸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말도 안되는 소문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할 법도 한데 산고는 그 모든 것을 피해 잠적해버렸으니까요. 사건에 관계된 진실이 무엇이길래 산고는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걸까요.

 

 소설을 찾기 위해 산고의 지인들을 찾아 만나기도 하고, 관련된 기사도 찾아 읽어보면서 요시미츠는 숨겨진 진실에 점점 다가서게 됩니다. 다섯 가지의 이야기는 당시 황색 언론이 토마코의 죽음에 대해 제기한 의문들과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진실에 대한 일종의 고백이었으며, 딸인 카나코가 이 소설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유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게 되지요. 또한 끝내 산고가 숨기려고 했던 진실 역시도요.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입장은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 수만큼 존재하고, 사건에 대한 시각은 보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는 각기 다른 결말을 갖고 있지만 요시미츠가 지적했듯이 이야기는 다른 결말과 맞아떨어져 전혀 다른 것을 의도할 수 있습니다. 산고가 고의적으로 바꿔놓은 결말은 소설 내에서는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의 사건에 대해 수 없이 많은 의견이 존재하고 그 의견이 진실과는 관계없는 거짓을 담을 수 있음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산고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입 다물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 댄 소문들처럼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 전체는 물론이고 소설 속에 담긴 다섯 가지의 리들 스토리 역시 각자 훌륭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한 권에 담겨있는 산해진미 같은 느낌이랄까요. 수 가지의 미스터리와 함께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을 놓치지 마세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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