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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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사에서 엘러리 퀸 전집을 순조롭게 출간하고 있네요. 다른 어떤 작가 선집보다 엘러리 퀸 선집이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로써 너무 즐겁게 엘러리 퀸 완역본을 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전집 세 번째 책인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엘러리가 개인적인 용무로 친구인 닥터 민첸을 찾은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그날 아침 수술 예정이었던 노부인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혼절해 계단에서 구르면서 쓸개가 파열되어 급하게 응급 수술을 받을 계획이었던 노부인은 철사로 목이 졸려있는 상태로 수술실로 실려 들어오고,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경악에 휩싸입니다. 준비실에서 수술을 준비하던 간호사는 수술을 할 예정이었던 닥터 재니가 준비실에 들어왔었다고 말하지만 닥터 재니는 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퀸 부자는 그 시간 닥터 재니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증언을 입수하지만 닥터 재니는 왜인지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상대방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합니다. 한편 노부인의 죽음과 관련된 이해관계를 조사하던 퀸 부자는 부인의 사망 당시 사건현장에 정신 나간 광신도인 노부인의 말동무 사라 풀러, 어마어마한 유산을 받게 되는 영애 훌다 도른, 영애의 약혼자이자 노부인의 변호사인 필립 모어하우스, 노부인의 방탕한 남동생 헨드릭 도른과 그에게 노부인의 유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공갈 협박꾼 빅 마이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밖에도 노부인의 죽음을 두고 크고 작은 이득이 얽혀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엉켜들면서 살인사건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렁 속으로 굴러들어갑니다.

 


 엘러리 퀸이 연역적 추리의 미학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주는지는 이미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와 이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퀸의 연역 추리가 더욱 빛을 발한다고 느꼈습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미스터리는 더욱 깊어만 가고, 각자 나름의 사정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비밀을 결코 밝히지 않으려 하는 와중에 엘러리 퀸은 정말 사소한 실마리로 범인의 정체를 파악합니다. 말려들어간 구두의 혀가죽이나 끊어진 구두끈, 구두끈을 잇기 위해 붙여놓은 듯한 반창고, 평온한 표정으로 살해당한 제 2의 피해자와 그 피해자 뒤에 캐비닛이 있었다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단서들로요. 엘러리 퀸의 추리는 논리적으로 나무랄 데 없지만 그가 제시하는 증거와 논리는 독자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기에 놀라움이 두 배가 됩니다. 차근차근 용의자를 범인 대상에서 제거하는 퀸의 논리를 듣다 보면 독자는 미처 신경쓰지 못한 아주 사소한 사실에서 추리의 꼬리를 잡는 엘러리에게 감탄하게 되는 거지요.

 


 더군다나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의 경우,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연역 추리에 집중하느라고 상대적으로 스토리상의 재미가 약한 데 비해 재미도 놓치지 않고 있어 더욱 즐겁습니다. 연역적 추리 기법은 고전 추리소설에서 계속 쓰여온 방법인데다 단서 하나하나를 모아서 추리의 결론으로 가는 과정을 밟기 때문에 사실 조금만 템포를 놓치면 전개가 굉장히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은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결말까지 쉴새없이 내달리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특별히 사건이 연달아 - 예를 들면 요코미조 세이시 수준으로요 -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야기 자체의 완급을 조절하는 엘러리 퀸의 능력이 탁월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요. 살인이나 납치, 방화 등의 자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져야만 소설 속의 서스펜스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몇몇 작가들에게 엘러리 퀸은 아주 좋은 반례가 되어줄 겁니다.

 


 간혹 연역추리가 법의학물 등의 귀납추리에 비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엘러리 퀸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연역 추리’란 무엇인지, 또한 연역 추리로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지 분명 느낄 수 있으실 거에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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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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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믿어. 아무도 죄 없는 사람을 사형에 처할 순 없어."
헤어질 때 내 눈꺼풀에 남은 것은 여전히 철망을 붙들고 있던 남편의 손가락이었다.
그것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에 던진 돌멩이가 퍼뜨린 잔물결처럼.
내가 돌을 던진 것이다.

 

<변호 측 증인> 中, 고이즈미 기미코 作

 

 

 


 저번 주는 계속 책을 읽느라 리뷰를 한 개밖에 올리지 못했네요. 월요일에 리뷰를 이미 올린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외에 그리스 관 미스터리,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 관 미스터리는 곧 리뷰를 쓸 생각이고,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은 시리즈 전체를 읽은 뒤에야 리뷰 방향이 잡힐 것 같아 잠시 보류해놓은 상태구요…. 오늘 리뷰를 쓸 작품은 남은 한 권인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막 출시됐을 당시에 이 책을 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검찰 측 증인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에 굉장히 끌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인데다 검찰 측 증인을 굉장히 재밌게 봤었기 때문에 그 책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이 작품에 호기심이 생겼었거든요. 또한 그만큼 유명한 작품의 제목을 노렸다면 작품에 자신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미치오 슈스케 등을 비롯한 유수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아낌없이 추천을 한 작품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구요. 지루한 서론을 싫어하시는 분을 위해 모두 다 자르고 말하자면, 다행히도 변호 측 증인은 제가 예상했던 것 이상의 재미를 담은 책이었답니다.

 

 

 이류 카바레에서 스트립 댄서로 일하던 미미 로이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던 야시마 그룹의 외동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신랑의 아버지는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유일하게 와 준 하객이자 친구인 에다는 일족의 골칫덩이라고 부르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걱정하지요. 어쨌든 신랑의 아버지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자기 편이라곤 한 명도 없는 시댁에서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버지가 자신을 내쫓으려 한다면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폭언을 내뱉고, 하필 그날 밤 시아버지가 별채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상태로 발견되는데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살인이 일어나고, 소설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홀수 장과 현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짝수 장이 번갈아 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면서 독자들은 그녀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쫓습니다. 그녀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독자들은 범인의 정체에 대해 좀처럼 종잡을 수 없고,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하지만 대망의 11장이 펼쳐지면 독자들은 드러난 진상에 이전까지의 혼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 그대로 입을 떡 벌리고 경악하게 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진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이미 읽은 분이라면 다른 독자들이 받은 충격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추리하려고 하거나, 혹은 읽기 전에 이 소설에 대해 무언가를 더 알려고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단언컨대, 이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이 소설의 트릭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저도 우연찮게 그저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이 소설을 접했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노림수에 100% 걸려들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재미이기 때문에 저도 그 트릭 자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생각입니다 :) 다만, 앞으로 이 소설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이 소설을 좀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해요.

 

 

 먼저, 애거서 크리스티의 검찰 측 증인을 꼭 먼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걸작이고 재미도 있거니와, 변호 측 증인의 작가가 아마 그 소설을 이미 읽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검찰 측 증인을 읽었었기 때문에 두 소설간 진행 상의 유사한 점을 비교하다 보니 트릭에 더 옴짝달싹 못하고 걸려들었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로, 제목에서 말하는 변호 측 증인이 누구일지 계속 궁금해하며 읽어보시는 것이 즐거움을 두 배로 만들어드릴 겁니다. 꼭 지키지 않으셔도 물론 상관없지만, 제 경우 저 두 가지를 우연히도 만족시킨 덕분에 소설을 무척 재밌게 읽었으니 염두에 두시면 더욱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기대를 너무 높여드려 나중에 책을 읽을 때 실망하시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억지로 흠을 몇 가지 잡아보자면,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읽은 소설이기도 했고 또한 매우 놀라기도 했지만 했지만 완벽한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사소한 아쉬움으로는 짝수 장을 이끄는 변호사 캐릭터가 약한 것이 아쉬웠어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에 나오는 나이젤 변호사처럼 캐릭터성이 좀 더 강했다면 후반부의 진행이 일종의 법정물 성격을 띄면서 훨씬 더 흥미진진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소설에서 쓰인 트릭의 속성상 사전에 정보를 갖고 있던 독자들이나 혹은 중간에 눈치챈 독자들에겐 다소 심심한 소설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제가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품임은 확실합니다.

 

 

 검은숲에서는 몇몇 장르문학의 책 앞장에 성분 함량표라는 재미있는 그래프를 싣고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당 소설을 분석하는 짧은 표인데요, 평가라기보다는 작품의 특성을 나타내주는 도서의 ‘잔재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 측 증인의 앞장에 실은 성분 함량표를 보면 ‘고전의 반열’ 항목에 5점을 주고 있네요. 저는 나름 추리소설의 고전에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 작품이라면 확실히 고전의 이름을 달고 나와도 손색없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세요. 무조건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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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로 그린 초상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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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니 에이프릴일 뿐이다. 클래런스 문 컬렉션 에이전시의 소유주 대니 에이프릴이다.
그리고 꽤나 잘 살아가고 있다. 낮 동안에는 말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내 옆에 누워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죽음처럼 검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베일이 되어 얼굴 위에 덮여 있다.
그녀에겐 얼굴이 없다. 연기와도 같은 얼굴, 다가가 키스하려고 하면 흩어져 없어진다.

 

<연기로 그린 초상> 中, 빌 S. 밸린저 作

 

 


 오늘 감상을 쓸 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꼽으라면 망설임없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빌 S. 밸린저의 연기로 그린 초상이에요.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수금 대행 업체를 인수하게 된 대니 에이프릴은 10년 전의 자료를 정리하다 어떤 여인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대니는 이 여인의 행적을 집요하게 쫓기 시작하고, 소설은 장을 바꾸어 크래시의 시점에서 그녀의 삶을 서술합니다. 독자들은 이내 이 아름다운 여인 크래시는 대니가 막연하게 그리던 그런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와 그녀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두려움 섞인 기대를 갖고 종장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지요.

 

 

 먼저 여러 추리소설에서 자주 사용하는 교차서술 기법에 대해 딱히 호오를 따지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교차서술은 그야말로 소설의 서스펜스를 높이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은 한 챕터 내에서 ‘대니’ 장과 ‘크래시’ 장이 번갈아 서술되면서 그녀가 남긴 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대니와 그녀가 남긴 그 자취가 실제로 그녀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맹목적이고 한편으로 어리석기까지 한 대니의 캐릭터와 목적을 위해 자신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크래시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킬 뿐만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텐션을 높이는 데 아주 주효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번의 만남, 그리고 사진 한 장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된 대니와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미모와 매력을 망설임없이 사용하는 팜므파탈 크래시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독자들은 점점 긴장하며 그 끝을 향해 가게 돼요. 놀랍게도 그들이 만나기 전까지 숨막히는 추격적이나 살인, 방화와 같은 자극적인 요소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그들이 서로의 정체를 숨기고 마주한 순간, 독자들은 이 짧고도 불같은 사랑이 결국엔 파국을 맞을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결과와 함께 말이죠.

 

 

 화차의 쿄코처럼 그녀가 언젠가는 죗값을 치르게 되리라는 암시도 없이, 소설은 완전히 닫힌 결말로 그녀가 또 다른 ‘신분 상승’을 이루어냈음을 시사합니다. 만일 그녀가 그간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죄없는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고, 가련한 대니를 이용한 것에 대한 댓가를 치루게 되길 바란 독자라면 실망했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소설을 읽으며 대니의 말처럼 사진 한 장으로 그녀의 매력에 홀려버린 그가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녀 앞에 대니 에이프릴 본인으로 나설 수 없었기에 결국 그 엉뚱한 누명도 쓰지 않게 된 아이러니가 이 추리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녀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혹은 아예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미스터리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테지요. 불쌍한 대니의 맹목적인 사랑이 그가 평생 그릴 ‘연기로 그린 초상’을,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빌 S. 밸린저는 이와 손톱, 기나긴 순간에서도 교차서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놀라운 서스펜스를 만들어낸 작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와 손톱이라는 작품 역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밸린저가 이끄는 서스펜스의 세계로 들어가보시길 권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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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완전판) - 0시를 향하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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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에이지의 수많은 작가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몇몇을 꼽자면 아서 코난 도일, S.S. 밴 다인을 포함한 몇 명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애를 담아 사랑하는 작가를 한 명 꼽자면 단연 이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죠. 오늘 리뷰할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입니다.

 


 이혼한 부부인 오드리와 네빌은 우연히 네빌의 아주머니인 트레실리안 부인의 집에서 동시에 휴가를 보내게 됩니다. 네빌의 현 부인인 케이가 오드리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네빌은 케이와 오드리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오드리는 무언가 겁에 질린 듯한 상태에서 셋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릅니다. 와중에 저택에 초대받았던 늙은 범죄 전문가인 트레비스가 무언가를 암시하듯이 오래된 범죄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는 어쩐 일인지 호텔로 돌아가던 길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아요. 모두가 예상치 못한 사고에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트레실리안 부인 역시 네빌과 언성을 높여 싸운 뒤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네빌이 살인자로 지목당하지만 어쩐지 사건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그 수가 많고 나온 시대가 백수십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다양한 매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되고 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물론이고, 그 외 많은 작품들이 재미에 충실할 뿐 아니라 다양하고 참신한 구성적 장치를 이용하고 있지요. 이 0시를 향하여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충격적인 반전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 전반에 깔리는 범인의 음습한 악의와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한 교묘한 트릭을 보여줌으로서 훌륭한 추리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모든 정황이 하나의 지점을 향해 가는 거야.
 그리고 정해진 시각이 되었을 때 정점으로 치닫는 거지.
 0시라고 해 두세. 그렇지, 모든 것이 0시를 향해 모여드는 거야……

 <0시를 향하여> P.13

 

 

 


 무엇보다도 제가 이 소설을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로 꼽는 이유는,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드러난 저 대사 때문입니다. 추리소설의 전개에서 그 정점 - 그것이 어떤 종류의 흉악 범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건, 아니면 범인을 밝혀내거나 재판에서 그 죄의 무게가 매겨지는 순간이라도 - 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 어떤 한 가지라도 결핍되었더라면 피해갈 수 있었던 이 결정적인 순간은 마치 모든 요소들이 그 결과를 알고 차근히 모여든 것처럼 ‘0시를 향하여’ 다가왔기 때문에 발생한 거죠. 소설 속에서 트래비스의 대사로 표현되는 저 ‘0시’는 추리소설의 정점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말입니다. 단지 이 소설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모든 추리소설을 말이죠.

 


 이 소설 역시 0시를 향해 달려나갑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갖춘 미덕 한 가지는 소설을 읽으며 대부분의 독자가 생각한 곳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0시가 등장한다는 점이지요.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할 순 없지만 사건은 독자들이 예상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독자들은 그 때서야 소설 전반에 깔리는 살인자의 그림자와 그 악의, 그리고 교묘한 트릭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크리스티 여사의 소설에서 전반적으로 범행 동기나 범죄자의 심리가 단순하게 그려졌던 반면 이 소설의 범인은 그 때 당시 알려지지도 않았던 사이코패스라는 개념과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보여 그 부분 역시 흥미롭습니다.

 


 상당히 유명하고 고전적인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치밀한 트릭이나 독자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범인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반전을 숨겨놓는 현대 미스터리에 익숙해지신 분들이라면 다소 심심하실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0시를 향하여에는 결코 최근의 미스터리/스릴러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전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장르 전반을 꿰뚫는 이해와 클래식한 전개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추천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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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형사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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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지막’이라는 말은 어쩐지 안타깝고 쓸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한 시대의 종말, 그리고 교체를 바라보아야 하는 지난 세대의 아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그야말로 지나간 세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형사가 있습니다. 피터 다이아몬드, 경찰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학위나 받고 졸업한 친구들과는 달리 발로 뛰며 잔뼈가 굵은 진짜 수사관이지요. 오늘 리뷰를 쓸 책은 그가 등장하는 첫 번째 시리즈인 피터 러브시의 마지막 형사입니다.


 영국의 아름다운 마을 바스, 호수에서 벌거벗은 채로 사망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체에는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도 남아있지 않고, 며칠간 수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체는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공개수사 끝에 결국 사체의 신원은 TV 드라마에 나오던 여배우라는 것이 밝혀지고, 피터 다이아몬드는 수사를 통해 남편과 여배우 사이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으며 부부 각자에게 내연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내는데요.


 소설은 시간적 배경이 1980년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클래식한 갈등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방탕한 부인이 피살되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음이 밝혀지지요. 남편에게는 비록 젊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착실한 - 즉 아내와는 정반대인 - 내연녀가 있으며, 남편과 내연녀는 둘 모두 아내를 살해할 동기를 갖고 있습니다. 즉 포와로의 말처럼 ‘아내가 죽었을 땐 남편을, 남편이 죽었을 땐 아내를 의심하라’는 대전제의 조건을 아주 충분히 갖춘 셈입니다.


 처음에 소설은 그 대전제를 따라 흘러가는 듯 보입니다. 말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극구부인하면서도 남편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경찰은 수사 끝에 다나 디드릭슨을 찾아내지만 그녀는 경찰이 찾아가자마자 도망을 치지요. 결국 남편이 진술한 것보다 아내와 다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사건은 다나의 범행으로 결론이 지어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찰을 그만 둔 피터 다이아몬드는 어쩐지 사건이 미심쩍고, 이 사건에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숨겨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해요.


 소설은 이때부터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피터 다이아몬드의 시점에서 쫓기 시작합니다. 플롯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피터 러브시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 때부터지요. 소설 전반에 걸쳐서 뿌려졌던 진짜 단서들이 일시에 취합되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차근히 풀리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과학수사로 그 출처를 밝힐 수 있는 섬유 한 올, 모래 한 알과 같은 단서가 아닙니다. 피살자의 성격과 내연관계에 대한 비밀, 그리고 중요한 증거가 실종되고 이내 발견된 이유와 같은 사건 전반에 걸친 미스터리들이 풀리는 거지요. 이러한 과정을 동해 피터 러브시는 이러한 증거들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진짜 형사, 마지막 형사인 피터 다이아몬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느낀 바로는 이런 무대를 꾸미는 것 역시 플롯의 제왕인 피터 러브시여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애거서 크리스티를 능가한다고 홍보하던 어떤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아주 개인적으로 오히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더욱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클래식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탄탄한 플롯을 자랑하는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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