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강명 지음 / 아작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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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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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책은 총 10개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소설집인데 이 중 4개의 작품이 보다 최근에 나온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라는 책에도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10개 중 4개면 중복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싶을 수 있겠지만 이 네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길이가 길어서 비중으로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물론 단어 하나하나 비교한 것은 아니나, 아무래도 최근 판본에 문장이라도 한 번 더 손봐서 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되도록이면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읽는 것이 좋아 보인다.

(중복작품: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당신은 뜨거운 별에, 아스타틴, 데이터 시대의 사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서평: https://blog.naver.com/rssun_books/22320287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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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순서가 뒤바뀐 탓에 중복되지 않는 다른 작품들을 읽은 소감만 남겨보려 한다.

책의 시작을 여는 '정시에 복용하십시오'는 마지막 작품인 '데이터 시대의 사랑'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두 작품 모두 발달된 과학기술이 남녀 간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상상해 본 작품이기 때문이다.

후자가 빅데이터를 통한 행동 예측이 주제라면, 전자는 호르몬 분비를 제어하는 약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둘 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성선택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흥미롭게 상상하고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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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은 표제작이기도 하고, 소재 자체도 굉장히 좋아하는 소재라 기대를 했었는데 길이가 10페이지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짧아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도 못한 채 끝이 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다.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알골' 등의 작품도 소재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지만 역시나 길이가 짧으니 충분한 서사를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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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은 책과 중복되지 않는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센서스 코무니스'라는 작품이었다.

개인의 뇌파를 측정해 순간적인 호불호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되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이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이런 소재를 저자 본인의 경험담인 것처럼 풀어내고 있어서 사실성을 더해준다.

실제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클릭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동하는 모든 정보를 누군가는 악착같이 수집하고 있고 누군가는 이런 정보를 이용한 광고로 우리의 행동을 조작하고 돈을 벌고 있다.

이 기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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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은 책과 중복되는 작품이 많아 금세 읽은 책이지만 저자의 단편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저자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 저자의 이름이 박힌 책들은 일단 집어 들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실망스러운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꽤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어서 빨리 과거의 작품들을 읽어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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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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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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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연작소설을 한 편 접하고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 들른 김에 저자의 다른 책을 들고 왔다.

이번 책은 단편집으로 총 다섯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 8개로 보이지만 처음 세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라서 총 다섯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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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시작되는 세 챕터에 담긴 이야기부터 상당히 재미있다.

어릴 때부터 동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숱하게 봐왔던 불 뿜는 용이 지키는 탑, 갇힌 공주, 그리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난 기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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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들과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신분을 제외한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용은 공주를 강제로 잡아가지 않았으며 공주는 스스로의 의지로 탑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기사는 공주가 아니라 팜므파탈인 왕비에게 반했고 그녀의 뜻에 따라 공주를 구하는 대신 죽이러 탑으로 떠난다.

우리가 알고 있을법한 클리셰들은 모두 비틀어 놓았고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의 설정은 유지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사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워낙 재밌기 때문에 이 작품만 읽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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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사막의 빛'에서는 옛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이종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융화하는 이야기를 판타지 요소를 섞어 담아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중동은 잔혹한 테러리트스들의 땅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인데, 저자는 실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곳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활력 넘치는 곳이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후반부까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어가다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작품이어서 읽고난 감상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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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기적이라는 게 있을까?" 이야기를 마친 후에 소녀가 물었다.

"너의 신과 나의 신과 저 상인들의 신은 모두 같은 신일까,

아니면 세상에는 나라와 부족의 수만큼 여러 신들이 있는걸까?"

(pg 158, '사막의 빛' 中)

표제작인 '여자들의 왕'과 이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는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성들도 육체적, 군사적인 강인함으로 권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정리하면 또 페미니즘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제목만 봐도 그럴 줄 알았다'라며 폄훼할 것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악역도 여성이고, 굳이 성별을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의 재미가 출중하며, 저자의 문장들이 특히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공정하다.

헛되고 헛되지 않고는 결국,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닌

전해 받는 사람이 결정할 몫이기 때문이다.

(pg 237,'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中)

마지막을 장식하는 '어두운 입맞춤'에서는 영화 박쥐의 '김옥빈'이 생각나는 한국식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이 현대의 한국이어서 그런지 이전까지의 작품이 현실성보다는 판타지성에 치우쳐져 있었다면, 이 작품은 뱀파이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임에도 마지막 엔딩이 주는 여운까지 상당히 재미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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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도 성공적이었던 만큼 계속해서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여행할 동기가 충분히 형성된 것 같다.

페미니즘의 정신은 물론이고 계급 간 갈등 같은 사회적 부조리까지 작품에 담아내면서도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서사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집필 활동도 왕성히 하고 있어 읽을 책들은 넘쳐나기에 당분간은 계속해서 저자의 책과 함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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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관의 살인 ㅣ 기암관의 살인 시리즈 1
다카노 유시 지음, 송현정 옮김 / 허밍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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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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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일본의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좀 읽고 있는데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그만큼 미스터리 추리 장르의 저변이 넓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 작품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작품의 설정이 특이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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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탐정 유희'라는 일종의 게임을 소개한다.

부자들이 실제 탐정이 되어보는 일종의 연극을 체험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면 미스터리 작가가 시나리오를 만들어 실제 살인이 일어나는 배경을 만들어주고, 그 고객이 탐정이 되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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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화자는 총 두 명으로,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명목에 혹해 가명을 부여받고 엑스트라로 참여하게 된 '사토'라는 청년과 탐정 유희 게임의 진행 실무 책임자이자 게임 내 집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고엔마'라는 남성이다.

사토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났던 일용직 청년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고 했다가 영영 사라지자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결국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고엔마는 중년 남성으로 고연봉을 받는 일자리를 가졌지만 상사와 작가의 갑질을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도 게임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극한 직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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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범하게도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이 진짜 살인이 수반되는 게임이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게다가 첫 살인이 일어난 직후 '범인'이 의도치 않게 같이 죽어버리면서 준비된 시나리오가 꼬이는 부분까지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후로 큰 구멍이 난 시나리오를 작위적인 설정까지 동원한 임시방편으로 때워가자 사토 역시 이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곧 자신이 이 게임에 휘말려 죽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알아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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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초중반까지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남는 궁금증은 이것이다.

독자들이 찾아내야 할 감춰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토는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간략히만 소개하자면, 이 게임에 숨겨진 고객의 정체와 사토가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기대한 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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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자가 준비한 반전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첫 번째 반전인 클라이언트의 정체와 그의 동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아주 짜임새가 좋은 반전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사토의 마지막 행보 역시 그가 보여준 행보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어서 반전이라고 느껴지긴 하나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은 아니었다.

두 반전 모두 빌드업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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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에 등장인물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중간중간 사건들이 분산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어제부터 조금 피곤한 일과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충분했다.

굉장한 수작이라 하긴 어렵지만 9월을 앞둔 시점에도 푹푹 찌는 날씨에 시원한 실내에서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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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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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저자의 산문집을 읽고서 다시금 그의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사실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가서 그동안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봐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그의 모든 저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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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고 이 책 역시 무서운 속도로 완독하게 되었다.

하단부터는 스포가 일부 있을 수 있으며, 제목과는 달리 특정한 사상을 담은 댓글을 무지성으로 달아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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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지라 등장인물들 역시 이름이 없다.

ID로 추측되는 별명 같은 것들로 불리며 소위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3인이 어마어마한 거부가 의뢰하는 사상 공작에 투입된다는 내용으로, 이름을 가진 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기자와 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이철수'라는 실명이라 믿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자뿐이다.

그들이 처음 벌인 일은 한 시사 영화에 대대적인 안티 활동을 벌여 그 영화가 화제에 오르지 못하게 아예 묻어버리는 작업이었다.

이 일이 성공하자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가 뭐?" 찻탓캇이 물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 같다고."

(pg 51)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본 물주는 점점 보수를 올려 뭔가 더 거시적인(?!) 일을 해 나가도록 유도한다.

여기에는 20-30대 진보 커뮤니티를 해체하는 것부터 빨갱이 물이 들기 전에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등이 포함된다.

저자가 이 주제로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취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사량이 굉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특히 커뮤니티 박살 내기 부분은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들락거린 경험이 있다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이 정도의 묘사는 집요한 사전 조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터넷 싸움은 정력과 멘탈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정력 많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그리고 멘탈도 정말 강해요. 왜냐하면 멘탈이 없거든요.

저희랑 댓글로 논쟁을 벌이는 건 쇳덩이로 된 로봇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쪽이 진 쪽 따귀를 때리는 게임을 하는 거나 비슷한 겁니다.

가위바위보는 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저희는 절대 지지 않아요.

(pg 82)

그들이 하는 일이 다분히 지저분한 일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동기부여하는 과정도 꽤나 지저분하다.

특히나 남성들이 뒤로 무언가 일을 꾸미고자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매매다.

더욱이 그들이 전형적인 키보드 워리어 출신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루트로는 이성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이러한 당근이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한다.

술자리에서 술 외적인 것에 돈 쓰는 것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사람으로서 쉽게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읽기에 자극적인 재미를 주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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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돈과 인정을 쫓던 이들이 씹다 버린 껌 취급 당하게 되는 결말 역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까지 적들을 나락으로 보냈지만 이런 작업에 끝이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과정 중에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체하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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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현실 세계에서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모두 묘사된 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펼치는 공작이 반드시 극우가 극좌를 음해하기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좌우 가릴 것 없이 펼쳐지는 이러한 공작이 이제는 정치의 기본 행동 양식이 된 지 오래며 경제분야 역시 뒤질세라 가세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고유의 질서와 법칙을 지닌 생태계다.

그 세계들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죽는다.

어떤 것들은 아름답고 어떤 것들은 위대하다.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도 잘 버틴다.

그러나 모든 세계에는, 그 자신만의 약점이 있다.

(pg 95)

읽는 과정은 매우 즐거웠지만 읽고 난 감상은 꽤 복잡하다.

이러한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과연 나는 이러한 세력에게 얼마나 휘둘리고 있었나?

심지어는 자신이 흔들려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런 세력이 우리 사회의 중요 의사결정을 좌우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떠오르는 모든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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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회 현상이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허구이며 읽다 보면 '에이 설마 진짜 이럴까'하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작품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현실과 꽤나 닮아 있을 것만 같다.

저자의 사회를 보는 통찰이 잘 담긴 작품이었던 것 같아 저자를 잘 알든 처음 접하든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할 수 있을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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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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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제목에 표지에는 문어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각 챕터의 이름마저 수산물 종류인 독특한 SF 작품이다.

수산물 형태를 한 외계인 정도가 등장하겠거니 하고 부담 없이 집어 든 책이었지만 뜻밖에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허구와 현실이 합쳐져 꽤 강한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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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여느 SF 작품들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바로 몇 년 전부터 시행된 강사법으로 해고 위기에 몰린 강사 노조의 투쟁이다.

교원도, 책임 있는 위치에 올라간 것도 아니지만 벌써 10년 넘게 대학에서 녹을 먹는 입장에서, 게다가 '기획'이라는 부서명을 이직하고서도 떼지 못하는 자로서 이런 부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문어 형태를 한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점 외에는 무조건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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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의 천직이었다.

학생은 선생이 없어도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학생이다.

그러나 선생은 학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강단을 사랑했고 교육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였다.

그러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학교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사라져줄 수는 없었다.

(pg 18-19)

그 밖에도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과 일본의 원전 오염수 무단 방류, (내 고향이기도 한) 구미의 비정규직 무더기 해고(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아사히글래스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인 듯하다.) 등 실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옮겨두고 있다.

여기에 강사 노조 시절 저자 본인과 위원장이었던 남편의 개인적인 스토리까지 얹어져 있고, 이를 해양생물 모양의 외계인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 놓은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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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활동을 통해 만난 부부는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와 지속적인 접촉을 하게 되고, 이를 추적하는 혹은 경계하는 듯한 검은 양복의 무리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다.

양복 입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끌고 간다고 오해했지만 사실 그 이유가 외계인 접촉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대게' 편에서 등장하는 대게 모양의 외계 생명체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해저 건설 노동자였고,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그의 처지에 화자와 남편이 공감하게 되면서 그들은 투쟁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니까 싸워야죠."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중얼거렸다.

"싸워서 못 하게 해야죠."

"그렇지만 어떻게요? 게는 집게발이 전부인데 이걸 다 어떻게 막아요?"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pg 66)

후미에 저자의 말에서 저자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듯이 본래 하나의 스토리로 엮을 의도로 집필된 작품이 아니다.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도 솔직히 서사가 탄탄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사실 주요 내용을 간추리면 '바다를 터전으로 진화한 외계의 지성 생명체가 지구에 협력 차 왔다가 우리가 지구를 오염시키는 모습에 실망하여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이 전부다.

심지어 한 어린이의 동화 같은 체험을 보여주는 '개복치' 편은 굳이 읽지 않아도 전체 서사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다. (물론 상당히 재미있기 때문에 그냥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서사가 저자의 쫀쫀한 문장들에 힘입어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마법으로 변한다.

"어째서요? 돌고래는 착한 동물 아니었어요?"

"착하거나 나쁜 동물 같은 건 없습니다." 검은 정장 사람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냥 동물입니다."

(pg 172)

​

해양생물을 닮은 외계인이라는 조금은 유치한 소재도 저자의 체험과 진짜 우리 사회의 사건들이 결합되자 독특한 생명력을 발하며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기존 SF 작품들처럼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실존적인 위협을 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종을 착취하고 환경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은 외계인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떠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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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 생물종을 위해 인류가 멸종해야 한다 해도 남편만은 살아남기를 원한다.

가능하면 나도 같이 살아남으면 더 좋다. 나도 결국은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pg 208)

25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분량에 대화도 많아서 읽는 부담이 적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탁월한 재미가 있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소재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작품이지 않을까.

저자의 작품 중 이 작품보다 더 유명한 작품들이 꽤 많아서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그리고 응급실에서 기다리면서,

나는 하늘과 바다가 뒤집히던 순간 온몸을 통과하던 파동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세상이 맥박 치고 우주가 진동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물속을 질주하던 빛나는 존재들은 서로에게 외쳤다. - 저항하라.

(pg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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