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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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저자의 산문집을 읽고서 다시금 그의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

사실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가서 그동안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봐도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최근에 그의 모든 저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작품도 읽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고 이 책 역시 무서운 속도로 완독하게 되었다.

하단부터는 스포가 일부 있을 수 있으며, 제목과는 달리 특정한 사상을 담은 댓글을 무지성으로 달아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지라 등장인물들 역시 이름이 없다.

ID로 추측되는 별명 같은 것들로 불리며 소위 온라인 바이럴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3인이 어마어마한 거부가 의뢰하는 사상 공작에 투입된다는 내용으로, 이름을 가진 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기자와 이들에게 일을 시키는 '이철수'라는 실명이라 믿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자뿐이다.

그들이 처음 벌인 일은 한 시사 영화에 대대적인 안티 활동을 벌여 그 영화가 화제에 오르지 못하게 아예 묻어버리는 작업이었다.

이 일이 성공하자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가 뭐?" 찻탓캇이 물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 같다고."

(pg 51)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본 물주는 점점 보수를 올려 뭔가 더 거시적인(?!) 일을 해 나가도록 유도한다.

여기에는 20-30대 진보 커뮤니티를 해체하는 것부터 빨갱이 물이 들기 전에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등이 포함된다.

저자가 이 주제로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취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사량이 굉장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특히 커뮤니티 박살 내기 부분은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들락거린 경험이 있다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이 정도의 묘사는 집요한 사전 조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터넷 싸움은 정력과 멘탈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정력 많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그리고 멘탈도 정말 강해요. 왜냐하면 멘탈이 없거든요.

저희랑 댓글로 논쟁을 벌이는 건 쇳덩이로 된 로봇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쪽이 진 쪽 따귀를 때리는 게임을 하는 거나 비슷한 겁니다.

가위바위보는 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저희는 절대 지지 않아요.

(pg 82)

그들이 하는 일이 다분히 지저분한 일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동기부여하는 과정도 꽤나 지저분하다.

특히나 남성들이 뒤로 무언가 일을 꾸미고자 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성매매다.

더욱이 그들이 전형적인 키보드 워리어 출신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루트로는 이성 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이러한 당근이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한다.

술자리에서 술 외적인 것에 돈 쓰는 것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사람으로서 쉽게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읽기에 자극적인 재미를 주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다.

결국엔 돈과 인정을 쫓던 이들이 씹다 버린 껌 취급 당하게 되는 결말 역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마지막까지 적들을 나락으로 보냈지만 이런 작업에 끝이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과정 중에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체하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현실 세계에서의 키보드 워리어들이 모두 묘사된 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펼치는 공작이 반드시 극우가 극좌를 음해하기 위해서만 일방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좌우 가릴 것 없이 펼쳐지는 이러한 공작이 이제는 정치의 기본 행동 양식이 된 지 오래며 경제분야 역시 뒤질세라 가세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고유의 질서와 법칙을 지닌 생태계다.

그 세계들은 태어나고 성장하며, 진화하고 죽는다.

어떤 것들은 아름답고 어떤 것들은 위대하다.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도 잘 버틴다.

그러나 모든 세계에는, 그 자신만의 약점이 있다.

(pg 95)

읽는 과정은 매우 즐거웠지만 읽고 난 감상은 꽤 복잡하다.

이러한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과연 나는 이러한 세력에게 얼마나 휘둘리고 있었나?

심지어는 자신이 흔들려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런 세력이 우리 사회의 중요 의사결정을 좌우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떠오르는 모든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회 현상이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허구이며 읽다 보면 '에이 설마 진짜 이럴까'하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작품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현실과 꽤나 닮아 있을 것만 같다.

저자의 사회를 보는 통찰이 잘 담긴 작품이었던 것 같아 저자를 잘 알든 처음 접하든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할 수 있을만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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