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왕 - 정보라 소설집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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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여

저자의 연작소설을 한 편 접하고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 들른 김에 저자의 다른 책을 들고 왔다.

이번 책은 단편집으로 총 다섯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 8개로 보이지만 처음 세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라서 총 다섯 개다.

표제작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시작되는 세 챕터에 담긴 이야기부터 상당히 재미있다.

어릴 때부터 동화나 애니메이션으로 숱하게 봐왔던 불 뿜는 용이 지키는 탑, 갇힌 공주, 그리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난 기사의 이야기다.

옛날이야기들과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의 신분을 제외한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용은 공주를 강제로 잡아가지 않았으며 공주는 스스로의 의지로 탑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기사는 공주가 아니라 팜므파탈인 왕비에게 반했고 그녀의 뜻에 따라 공주를 구하는 대신 죽이러 탑으로 떠난다.

우리가 알고 있을법한 클리셰들은 모두 비틀어 놓았고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 검과 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의 설정은 유지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서사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워낙 재밌기 때문에 이 작품만 읽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어지는 '사막의 빛'에서는 옛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이종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면서 융화하는 이야기를 판타지 요소를 섞어 담아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중동은 잔혹한 테러리트스들의 땅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인데, 저자는 실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곳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활력 넘치는 곳이라는 것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후반부까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이어가다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작품이어서 읽고난 감상이 좋았다.

"정말로 기적이라는 게 있을까?" 이야기를 마친 후에 소녀가 물었다.

"너의 신과 나의 신과 저 상인들의 신은 모두 같은 신일까,

아니면 세상에는 나라와 부족의 수만큼 여러 신들이 있는걸까?"

(pg 158, '사막의 빛' 中)

표제작인 '여자들의 왕'과 이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는 권력의 중심에 위치한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성들도 육체적, 군사적인 강인함으로 권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정리하면 또 페미니즘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제목만 봐도 그럴 줄 알았다'라며 폄훼할 것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악역도 여성이고, 굳이 성별을 따지지 않더라도 서사 자체의 재미가 출중하며, 저자의 문장들이 특히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시간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공정하다.

헛되고 헛되지 않고는 결국,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아닌

전해 받는 사람이 결정할 몫이기 때문이다.

(pg 237,'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中)

마지막을 장식하는 '어두운 입맞춤'에서는 영화 박쥐의 '김옥빈'이 생각나는 한국식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이 현대의 한국이어서 그런지 이전까지의 작품이 현실성보다는 판타지성에 치우쳐져 있었다면, 이 작품은 뱀파이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임에도 마지막 엔딩이 주는 여운까지 상당히 재미나게 읽었다.

이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도 성공적이었던 만큼 계속해서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여행할 동기가 충분히 형성된 것 같다.

페미니즘의 정신은 물론이고 계급 간 갈등 같은 사회적 부조리까지 작품에 담아내면서도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서사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집필 활동도 왕성히 하고 있어 읽을 책들은 넘쳐나기에 당분간은 계속해서 저자의 책과 함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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