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었지만 홀로 설 수 있다면
도연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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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무아는 문자 그대로 보면 '내가 없다'지만, '나를 있게 한 뭔가가 있다'를 아는 것이다. 

나 혼자 세상에 태어나 나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무언가가 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 무언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의식이다. 

그걸 인식하고 인정하게 될 때 에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나밖에 모르는 에고라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모두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탈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pg 73-74)




기독교 재단 소속 대학에서 7년이나 녹을 받아 먹고 살았던 주제에 이상하게 난 종교인들에 대한 태생적인 반감(?)이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에게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아득히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기대되는데

그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많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종교인이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직업적인 의무이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최근에 있었던 한 유명 스님의 재산 문제를 둘러싼 이슈를 보아도 사람들이 실망한 포인트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빤쓰 목사의 재산을 두고는 실망하지 않는다. 애초에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흔히 하는 입바른 소리들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삶의 방향성이 어떻고 저떻고를 떠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사실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을 읽고 컨트롤하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해와 분노, 슬픔과 우울함 등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때로는 다 때려 치우고 산 속에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어찌 마음처럼 쉽겠는가. 

그러니 중년이 되면 괜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여하간 위와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의 반응도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난 애초에 감정의 디폴트값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옆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줘야 하는 사람인 반면, 

우리 집사람은 평소에 감정에 대해 속으로 많이 묻고 인정하려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 인정의 의미는 '아. 내가 지금 많이 속상하고, 화가나서 이런 마음이 들었구나!'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책도 저자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하고 자신이 경험한 명상법을 공유하기 위해 쓴 책이다. 

카이스트라는 굴지의 명문대를 떠나 어린 나이에 출가했다는 것이 세간에는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출가의 계기가 거창한 목적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자신에게는 출가였을 뿐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자신이 선택한 길이 항상 옳은 길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그 존재의 권위와 가르침에 익숙해지고 어느새 종속되어 버렸다. 그건 문제였다.

확실한 미래와 구원, 깨달음이 보장된 것 같은 환상을 일으켰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삶에 내가 없었다. -중략- 방황을 멈추기 위해 정한 계율과 사람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pg 47)


저자 역시도 출가 후 이런 저런 고민들과 사색을 통해 지금의 길을 걷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명상하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명상이 곧 자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수련법이 있을테지만 그 중의 하나가 명상이며 별다른 준비물이나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젊은 세대여서 그런가 새로운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를 행복이라는 길로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게임을 조사해 본 바 있다. -중략-

스마트폰 게임 중에 '포켓몬 고'라는 게임도 주목할 만하다. -중략-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긴 어렵다. 

게임 제작에서도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몸과 정신 모두 활성화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다. (pg 202)



명상을 가르쳐 주는 매체는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단순히 글을 통해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과 이해한 것을 직접 실천해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자신의 감정에 30년 이상 휘둘리고 지배당하며 살아왔던 나 자신이 스스로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아는 문자 그대로 보면 '내가 없다'지만, '나를 있게 한 뭔가가 있다'를 아는 것이다. 

나 혼자 세상에 태어나 나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무언가가 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 무언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의식이다. 

그걸 인식하고 인정하게 될 때 에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나밖에 모르는 에고라는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pg 73-74)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은 당연하기 때문에 잘 잊고 산다.

그래서 항상 집사람은 입버릇처럼 작은 것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집사람을 함토스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진리를 조용하게 알려주는 책이었다.


팬데믹 시대.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줄여야만 하는 요즘이지만 그러니 더욱이 자신에게 집중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집에 갇혀 있다고 답답해하기 보다는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틈을 활용해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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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당신을 닮았다 - 나를 몰라서 사랑을 헤매는 어른을 위한 정신과의사의 따뜻한 관계 심리학
전미경 지음 / 더퀘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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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너에게 의미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g 13)



제목이 아주 '갬성 돋아 버리는' 책을 만났다.

블로그라는 공간에 책 읽은 흔적을 남긴 것이 이제 200권 가까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감성적인 제목이 아닐까 싶다.

연애 관련 책이라는 것도,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는 것도 그리 흥미가 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제목이 끌렸다. 

더 솔직하게는 제목을 읽는데 집사람 생각이 났다. 

서글서글한 우리 집사람은 생각해보면 그 사랑도 서글서글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하간 정신과 의사가 여러 상담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연애할 때의 마음가짐'에 관한 책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쯤 만남을 시작할 때의 설레임도 느껴보고 시간이 지나 이별도 해보고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 또 다른 경험을 이어가는 등 '연애'라는 이름으로 겪게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다. 

그 과정들마다 작가가 상담을 하면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짧은 길이의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책 자체가 두꺼운 편도 아닌데다 정신과 의사인 작가가 실제로 내담자에게 이야기하듯 상냥한 문체로 쓰여 있고

각 주제별 길이도 길지 않아서 출퇴근 길에 잠깐잠깐 보기에도 좋을 책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감성이 충전되는 멋진 문구들과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있어서 읽기에 지루함이 없다. 


책이 목표로 하는 독자층은 미혼 여성인 것으로 보이지만, 나처럼 남성이거나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이어감에 있어서 참고하면 좋을만한 충고들이 많아서

일반적인 인간관계론으로 읽기에도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물론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주라고 한다면 단연 미혼 여성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연애라는 과정의 전반을 짧게 다루고 있는 책이어서 한 문장으로 '이렇게 하면 연애 잘 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아래 문단이었던 것 같다. 


즉 내가 나의 연인의 감정 기복, 관계의 변화, 더 나아가 연인의 유무에 좌우되는 존재는 아니며 

나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연애 관계에서 나의 행복은 내 연인이 어떤 사람인가, 연인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가보다 

내가 연인을 대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더 달려 있습니다. (pg 289)


좋은 상대를 만나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의 호감을 사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습관을 맞춰보기도 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연애 관계도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득과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최근에 이슈가 된 한 연예인의 사례를 봐도 부모 자식간, 형제지간의 관계 역시 일방적이어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하물며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닌 연애 관계는 오죽 하겠는가. 


내 연애가 나의 여러 세계를 점점 축소시키는지 혹은 내가 연인에게 그의 세계를 좁히라고 요구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만약 그렇다면 당장은 둘만의 세상에서 행복에 젖을 수는 있지만 분명히 그 약발이 다할 날이 오게 됩니다. 

더 이상 둘만 노는 것이 재미있지 않는 그날이요. (pg 144)


그렇다고 해서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늘 손익계산을 해보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해서 베푸는 행위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라면 상대방 역시 나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받고자 하는 베품과 꼭 같은 방향과 강도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상대방의 삶에 나의 삶이 섞이며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손해와 이득이 계산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사람 저 사람과 연애만을 하면서 나의 것을 하나도 손해보지 않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이 기뻐하고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다시 기뻐하는 그런 세계를 경험해보신다면, 

그게 얼마나 큰 인생의 축복인지 아실 겁니다. (pg 115)


연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사실상 '케바케'다. 

때문에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로 적용할 수 있는 충고라는 것의 실용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타인이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어떻게 이를 이겨냈는지를 알면

자신의 케이스에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가 다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중략-

하늘양의 질문에 산뜻하게 저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다시 이번 같은 사랑은 못 하실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랑을 하실 거에요."라고요. (pg 181)



사족이지만 책이 배송왔을 때 집사람이 다소 의아하게 보더니 꿋꿋하게 읽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잘 읽는다고 신기해 했다.

평소 즐겨 읽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도 있었고 얻은 것도 있었던 느낌이다.

예전에 연애할 때 이랬었지 싶은 부분들도 꽤 있어서 나름 추억 여행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아래처럼 카톡 프사로 해두면 갬성 충전 끝나버릴 것 같은 문구들이 많아서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점수 좀 따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pg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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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찬이 텅빈이 ㅣ 철학하는 아이 18
크리스티나 벨레모 지음, 리우나 비라르디 그림, 엄혜숙 옮김 / 이마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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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동화책을 만났다.

'철학하는 아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리즈인 것 같은데 단순한 권선징악 스토리에서 벗어나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흔하게 접하는 

세계명작동화나 전래동화에 비해 차별점이 있어 보였다.


일단 흑백으로 그려진 일러스트가 눈에 띈다.

색채는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일러스트에 아주 절제된 문장들이 배치되어 있다. 

글의 분량은 동화에 걸맞게 많지 않지만 그 내용은 동화라기엔 상당히 심오하고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도 묘한 감동을 주었다.

페이지 수가 많지 않아서 배송 오자마자 선 채로 읽었는데 읽고 나서 잠시 멍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절제된 문장과 그림 만으로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 놀라웠다. 


꽉찬이와 텅빈이라는 정 반대되는 존재가 서로를 만난다. 

너무도 꽉차서 조금의 공간도 없었던 존재와 너무도 비어서 조금의 내용도 없었던 존재가 서로를 인식한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르니 상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각자 서로에게 동화되려는 시도를 해 보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싶었던 서로는 자신의 일부를 떼어 상대에게 선물한다.

각자는 상대의 일부 때문에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낀다. 

그렇게 꽉찬이와 텅빈이는 자신의 일부를 상대에게 맡기고 자신도 상대의 일부를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일차적으로는 새로운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자신과는 다른 타인과 어떻게 가까워 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겠다.

상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어리석기도 한 짓이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또한 바람직한 관계란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유지한 채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자가 일정 부분 자신의 일부를 양보하고 상대의 것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지속 가능한 관계의 출발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꽉찬이와 텅빈이가 '나'라는 자아를 형성하는 서로 다른 자아의 이미지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누구나 열심히 모든 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자아와 편히 쉬면서 최대한 비우고 살아가고자 하는 자아가 내면에서 충돌한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꽉찬이와 텅빈이가 어딘가에서 합의한 지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글씨가 많지 않아서 어린 아이에게 읽어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나 아무래도 내용이 좀 곱씹어야 하는 내용이다보니

초등학교 정도는 입학한 후 아이와 함께 같이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 책을 시리즈로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왠지 시리즈로 사서 아이와 부모가 

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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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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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통장을 각자 관리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부부라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결혼이란 무엇일까?

부모 대리 맞선을 시작한 후, 지카코가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된 문제다.

'둘 다 각자의 개성이나 인생의 목표를 양보하지 않고,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아마 이쯤 되겠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pg 326)



가키야 미우라는 작가의 책을 세 번째 만났다.

처음 접한 작품은 정말 좋았고 두 번째 작품은 적잖이 실망스러웠어서 이번에 읽게 된 이 책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역시나 소재 자체를 참 잘뽑는다 싶은데, 이번에는 결혼하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결혼 시장에 뛰어드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이전 작품인'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도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이슈를 던지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해당 이슈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의 결혼률 저하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듯 싶다. 


28세라는 요즘 기준으로는 아직 한창 때인 딸을 둔 중년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친구의 자식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는 커녕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던 참에 중국에서 결혼 적령기의 자식을 가진 

부모들끼리 대신 맞선을 보는 행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검색해 보니 그런 자리가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참가를 결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단 소재 자체가 주는 궁금증이 컸다. 

자식들이 결혼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서로의 조건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것. 

상투 트는 시절도 아닌데 배우자를 부모가 골라준다는 것이 얼핏 매우 황당한 일 같지만, 

대학생 수강신청도 부모가 해준다는 요즘 세태를 보고 있자면 일면 수요가 있을 법도 하다. 


한국에도 있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내가 찾은 바로는 국내에는 아직 없는 모양이다. (내가 못찾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에는 실제로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69622&plink=ORI&cooper=NAVER)

얼마나 활성화 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뉴스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일정 정도의 수요가 있긴 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자식이 얼마나 못났으면 배우자감도 부모가 골라줘야 하나 싶은 선입견이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나이도 잊고 살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 세대가 미리 선 상대방을 구하러 다니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국의 문화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소재 자체는 동양 문화권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닌 집안 대 집안이 만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이 소재 자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 주체가 당사자이건 부모이건 간에 맞선이라는 형식은 언제나 그렇듯 조건에서 시작한다. 

기업에서의 채용 과정처럼 서류로 상대를 먼저 판단한다. 

저 사람이 내 자식과 소위 '끕'이 맞는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서로의 서류전형을 통과한 자들에게는 만남의 기회가 부여되지만 그 만남 역시 상대가 나와 맞을지, 부모들은 얼마나 자식에게 

관여하는지, 집안의 재력은 어떠한지 등등 계속해서 상대와 나를 저울질해야 하는 복잡하고 첨예한 자리다. 

그 치열한 눈치 싸움에서의 패배는 자식은 물론 부모의 자존감에도 상처를 입힌다. 


연애는 나이도 돈도 사는 곳도 가족관계도 모두 뛰어넘는다.

이런 세세한 것은 안중에도 없게 만든다. 

주변에서 반대하든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하든 방해물을 모두 물리치고 두 사람의 세계로 나아간다. 

냉철함이 결여된 병적인 상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좀처럼 결혼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pg 188-189)


그 때 문득 구글맵에서 본, 절인가 신사인가 싶게 녹음으로 둘러싸여 있던 저택이 떠올랐다.

그게 몇 번째 맞선이었더라.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립학교를 다닌 사람이었다.

그 위성사진을 보며 남편은 질투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남자는 누구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동물인가 생각하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같은 사람이었다. (pg 298)


저자는 딸의 결혼 조건을 따지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자식을 둔 한 엄마의 심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 시장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류 전형 통과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는 너무도 귀한 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매력적인 결혼 상대자는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며 안심한다. 


매력적인 외모에 훌륭한 커리어와 집안을 가진 사람은 그런 사람들끼리 이어지게 된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바보온달 스토리도 현실적으로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듯, 친구나 친척들 모두 비슷하게 살아왔다.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다른 계층과는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그렇게 격차는 굳어지고 점점 더 벌어지는 게 아닐까. (pg 293)


그러면서 천천히 자신의 딸이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결혼 생활을 하면 좋을지를 찾아가게 된다. 


통장을 각자 관리하고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부부라도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결혼이란 무엇일까?

부모 대리 맞선을 시작한 후, 지카코가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된 문제다.

'둘 다 각자의 개성이나 인생의 목표를 양보하지 않고, 부부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아마 이쯤 되겠지만,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pg 326)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책이 세 번째인데 앞서 읽은 두 작품과는 비슷한 듯 좀 다른 느낌의 작품이었다.

이전에 경험한 책들이 결말 부분에서 다소 힘이 빠지거나 이해가 잘 안되는 마무리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끝까지 매끄럽게 호흡이 이어지는 느낌이었고 결말도 이해되는 수준에서 잘 마무리된 것 같다. 


저자 특유의 가볍지만 인상적인 문장들도 많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는 신속한 내용 전개도 좋았다. 

인물명이나 지명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원래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였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번역 상태도 훌륭했다.  

이전 작품들처럼 페미니즘에 입각한 표현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지만 일반론적인 내용이고 개연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읽기에도 편안했다. 


다만 이 작품은 전에 접한 작품들처럼 작가의 문제의식이 명확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책을 덮으면서 작가가 '이 사회의 이런 부분이 문제다'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구나 하는 것이 확 느껴졌었다. 


반면 이 작품은 그래서 조건을 따지는 결혼이 나쁘다는 것인지, 어떤 결혼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인지,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관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일부러 놓아 둔 느낌이다.  

자식의 배우자를 골라주는 부모도, 그걸 수용하는 자식도 그렇게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꼽자면 지금도 며느리나 사위감을 볼 때 상당히 구시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정도였다. 


남자와 여자, 인생은 그런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고 헌법에 적혀 있지만, 

이성으로부터의 인기에 대해서 만큼은 통하지 않는 말 같다. (pg 339)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서는 남일 같아서 그런지 그저 재미있는 스토리로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미혼인 사람들이 읽으면 속이 답답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짝을 만날 수도 있을테고 이런 저런 상처만 받다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혼도 선택의 영역이니 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까지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다만 이솝우화 중 여우의 신 포도 이야기처럼 몇 번의 실패 때문에 '남자는 다 그래', '여자는 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미래의 기회도 스스로 차단하는 짓만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비문학에 비해 문학 작품을 즐겨보지 않는 편이라 한 작가의 책을 세 권 이상 보는 것도 흔치 않은데,

소재의 발굴이나 줄거리를 풀어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재미가 보장되는 편인지라 계속 접하게 되는 것 같다.

확실히 작가가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소설 속 화자도 중년 여성일 경우 몰입도가 크게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는 무슨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줄 지 기대가 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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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1~2 세트 - 전2권 ㅣ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하지만 이미 그 길을 걷고자 결정했으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결정에 대한 책임도 따르는거야.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질 수 있어. (2권 pg 132)



만화책을 그리 즐겨읽는 편은 아닌데 간만에 숨 쉴 틈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을 만났다.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 완료된 것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이라고 하는데

감질나게 한 편 한 편 기다리면서 보는 성미가 아닌지라 한번에 완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무작위적으로 묶인 만화가 아닌 하나의 완료된 서사를 가진 작품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스토리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단순한데, 데이빗이라는 말하는 돼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똑같이 사유하고 말하고 느끼는 돼지.

더 쉽게 표현하면 돼지의 몸에 담겨 태어난 인간의 영혼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왠지 느낌이 올 것이다.

그 느낌이 맞다.


이 작품의 공식적인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이다. 

이 질문 자체만으로 어렵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질문들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정신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역으로 보편적인 인간보다 정신적 활동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체 장애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인가?


인간과 닮지 않은 외모가 문제라면 팔 다리 없이 머리만 존재하는 사람은 인간으로 보기 어려운가?

혹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전두엽 없이 짐승의 뇌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아마도 읽는 사람마다 위의 질문에 각기 다른 대답들을 하게 될 것이다.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총 400여 페이지로 만화인 것까지 감안하면 분량은 매우 짧은 편이다.

그만큼 전체적인 흐름에 불필요해 보이는 에피소드가 없어서 좋았다. 

마음 먹고 읽으면 30분이면 볼 분량이지만 막상 접해보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한 컷 한 컷 허투로 쓰지 않고 그 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넣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덕분에 서평에 포함시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장면도 분량에 비해 정말 많았다.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함부로 사진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그리고 스토리 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초반 장면 하나를 골라 보았다. 


(1권 pg 51)


자기의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는 필시 인간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충돌하는 인식의 벽이 느껴진다.

무언가 완전한 인간이라 인정하기엔 묘하게 거부감이 드는 느낌. (읽는 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작가가 많은 장치를 해 두었다.)

그만큼 우리는 껍데기를 무시할 수 없는 추상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읽으면서 언젠가 AI가 인간의 수준으로 고등화되면 비슷한 문제제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로봇이야 얼마든지 인간의 외형으로 만들 수 있을테니 돼지의 모습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논란이 될 것이다. 

역시나 이런 궁금증도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이 작품 이후에 두 작품이 더 나온다고 하고 그 중 하나는 SF 소재라고 한다. 

아직 이후의 작품들은 접해보지 않았는데 이 역시도 책으로 엮여져 나오면 한번에 쭉 볼 수 있도록 궁금하지만 조금 참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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