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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1~2 세트 - 전2권 ㅣ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하지만 이미 그 길을 걷고자 결정했으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결정에 대한 책임도 따르는거야.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한 책임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질 수 있어. (2권 pg 132)
만화책을 그리 즐겨읽는 편은 아닌데 간만에 숨 쉴 틈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을 만났다.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 완료된 것이 단행본으로 발간된 것이라고 하는데
감질나게 한 편 한 편 기다리면서 보는 성미가 아닌지라 한번에 완결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무작위적으로 묶인 만화가 아닌 하나의 완료된 서사를 가진 작품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스토리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단순한데, 데이빗이라는 말하는 돼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똑같이 사유하고 말하고 느끼는 돼지.
더 쉽게 표현하면 돼지의 몸에 담겨 태어난 인간의 영혼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왠지 느낌이 올 것이다.
그 느낌이 맞다.
이 작품의 공식적인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이다.
이 질문 자체만으로 어렵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질문들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정신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역으로 보편적인 인간보다 정신적 활동이 현저히 떨어지는 지체 장애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인가?
인간과 닮지 않은 외모가 문제라면 팔 다리 없이 머리만 존재하는 사람은 인간으로 보기 어려운가?
혹은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전두엽 없이 짐승의 뇌를 갖고 태어난 사람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아마도 읽는 사람마다 위의 질문에 각기 다른 대답들을 하게 될 것이다.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총 400여 페이지로 만화인 것까지 감안하면 분량은 매우 짧은 편이다.
그만큼 전체적인 흐름에 불필요해 보이는 에피소드가 없어서 좋았다.
마음 먹고 읽으면 30분이면 볼 분량이지만 막상 접해보면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한 컷 한 컷 허투로 쓰지 않고 그 속에 자신의 메시지를 넣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덕분에 서평에 포함시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장면도 분량에 비해 정말 많았다.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함부로 사진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 가장 좋았던,
그리고 스토리 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초반 장면 하나를 골라 보았다.
(1권 pg 51)
자기의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는 필시 인간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충돌하는 인식의 벽이 느껴진다.
무언가 완전한 인간이라 인정하기엔 묘하게 거부감이 드는 느낌. (읽는 이가 이런 감정을 느끼도록 작가가 많은 장치를 해 두었다.)
그만큼 우리는 껍데기를 무시할 수 없는 추상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읽으면서 언젠가 AI가 인간의 수준으로 고등화되면 비슷한 문제제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로봇이야 얼마든지 인간의 외형으로 만들 수 있을테니 돼지의 모습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논란이 될 것이다.
역시나 이런 궁금증도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이 작품 이후에 두 작품이 더 나온다고 하고 그 중 하나는 SF 소재라고 한다.
아직 이후의 작품들은 접해보지 않았는데 이 역시도 책으로 엮여져 나오면 한번에 쭉 볼 수 있도록 궁금하지만 조금 참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