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의 발달은 점차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지식 격차를 만들어낸다.

지식 격차가 커지면 지식이 소수 엘리트들에게 독점되고 일반 대중은 모른다는 이유로 과학 발전에 방해가 되거나 무분별한 과학 기술 개발을 제대로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세상에서 과학 지식을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는 교양서적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일반 대중들에게 뇌과학이 지금까지 어떤 성과들을 쌓아왔고, 이것이 세상과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

'뇌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두께도 본문만 35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아서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최근에 읽은 과학 교양서 중 가장 쉽고 재밌었다.

일단 다루는 주제 자체가 방대하지 않고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하고 있지도 않아서 읽기가 좋았다.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나

모든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로 완성된다.

책은 어릴 적 뇌에 문제가 있어 뇌의 절반을 적출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단연코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뇌를 절반이나 들어내고도 정상적인 삶이 가능했을까?

놀랍게도 본인이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잘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선천적으로 뇌의 반쪽만 가지고 태어난 아이 역시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 부모도 아이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큰 불편함 없이 생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저자는 우리의 뇌가 정해진 기능을 단순하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뇌는 외부 자극이 어떻게,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반응해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책의 원제인 'Livewired', 즉 스스로 배선을 깔듯이 뇌에 도달하는 자극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 뇌가 그 기능을 만들어 가는 것을 뜻한다.

​

예를 들어, 어느 시점에 사고로 시각을 잃는다면 그때까지 뇌에서 시각을 관장하던 부분을 다른 감각들이 차지해 다른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용도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강하게 발현된다.

그래서 선천적인 시각장애인 중 청각이나 촉각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예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또한 특정 기관과 인지하는 감각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시각 정보를 청각 정보로 변환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마치 박쥐가 주변을 인식하듯 소리를 통해 주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vOICe'라는 앱인데 무료로 다운 가능해서 호기심에 받아봤는데 시각이 멀쩡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저 기괴한 기계음이 들릴 뿐이다.

하지만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눈을 가리고 이 앱을 통해 '보는' 연습을 충분히 하면 눈을 감고도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보는 것처럼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를 활용해 일상생활 중에는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은 촉각을 활용해 부족한 감각을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

즉, 뇌에게는 외부 자극이 접수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어느 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또한 굳이 우리 신체 기관을 통해서 접수된 자극이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기계 장치로 인간에게는 없었던 감각을 추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책에 등장하는 예시로는 자석을 이식해 자기장을 느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기계의 작동 여부를 굳이 켜보거나 검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나침반을 이식한 사람은 마치 철새가 작년에 왔던 곳을 정확히 찾아가듯 지도가 없어도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

무게 1.4킬로그램의 뇌는 소리를 직접 듣거나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지 않는다.

뇌는 어둡고 조용한 지하 묘지 같은 두개골 안에 갇혀 있다.

뇌가 보는것은 다양한 데이터케이블을 통해 계속 들어오는 전기화학 신호뿐이다.

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도 그것뿐이다.

(pg 83)

이 부분이 굉장히 신기한데, 우리에게 없는 감각을 인지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후각이 없는 사람에게 지하철 옆자리에서 맡은 '델리만쥬 냄새'를 설명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직접 맡아보지 않는 이상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각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변환해 뇌에 전기자극으로 인식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도 그 냄새가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

물론 이러한 일이 기술만 있다고 해서 만능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연습과 의지가 필요하다.

나이 역시 중요한 변수로 어리면 어릴수록 뇌가 새로운 배선을 까는 것이 용이해진다.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므로, 자신이 어떤 일에 헌신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길을 따라가게 되고 나머지 길은 모두 '영원히 가지 않는 길'로 남는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용구로

이 책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

(pg 275-276)

책은 우리의 뇌가 어떻게 '학습'이라는 것을 하고 '기억'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부분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지만 요점은 우리의 경험이 마치 젖은 종이를 한 겹 한 겹 쌓아가듯 뇌에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면 기존의 정보와 통합되는 과정에서 학습과 기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영화 매트릭스처럼 비행기 운전법을 뇌에 직접 업로드해 학습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뇌는 각자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학습하기 때문에(사람마다 기존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표준적인 업로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

하지만 우리가 뇌를 연구함으로써 얻은 지식들을 다른 기계들에 적용할 수 있다면, 즉 뇌가 신체의 일부가 제거되었을 때 스스로를 새로운 몸에 맞게 조정하듯이 기계도 자신의 일부가 파손되었을 때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작동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자원으로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자연은 늑대의 뇌에 고정된 프로그램을 심는 것이 의미 없는 일임을 안다.

신체 형태는 바뀐다. 환경도 바뀐다. 능력과 행동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바뀐다.

미리 정해진 회로를 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그때그때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굴정보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pg 331)

여하간 최근에 읽은 책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즐겁게 읽은 책 같다.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집에 개인용 컴퓨터가 있는 집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컴퓨터를 한 사람마다 한 대씩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술 발전도 있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애써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나 발전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분야도 많다.

뇌과학 역시 그런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

우리는 타고난 신체보다 더 성능이 좋고 내구성도 좋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생물공학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후손들이

우리를 연구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느린 발전과정에서 벗어나

우리 몸의 미래를 처음으로 직접 조종하기 시작한 때로 간주될 것이다.

(pg 197)

​

하지만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이 된 원동력이 바로 뇌에 있는 만큼 뇌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이 책에서 본 사례들만 하더라도 인류가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해감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기대가 된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읽는 동안 집사람에게 재밌는 내용을 설명해 주고 그랬는데 집사람은 (-_-) 이런 표정만 짓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있을 수는 없겠구나 싶지만 여하간 과학을 다룬 서적 중 보기 드물게 재미와 정보 면에서 고루 우수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사람됨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든 것,

즉 주변 환경, 경험, 친구, 적, 문화, 신념, 시대 등으로부터 나온다. - 중략 -

사실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을 분리할 길은 없다.

외부세계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념, 신조, 포부는 모두 속속들이 그렇게 형성된다.- 중략 -

생후배선 덕분에 우리는 각자 세계가 된다.

(pg 3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가 그를 죽였다 ㅣ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을 책이 떨어지면 또 집어 드는 또가시노 게이고의 책.

이전에 읽었던 '악의'와 마찬가지로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다.

​

이 작품만의 특징이라면 일단 누군가 죽고 시작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살인사건이 초반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죽을지는 뻔히 보여서 '언제 죽으려고 이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죽게 된다.

희생자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추리의 수준은 그의 여타 작품들보다 높았다.

​

총 세 명의 용의자가 등장하고 작품이 이 세 명의 시각에서 진행되는데, 특이하게도 세 명의 용의자가 모두 '자신이 죽였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내가 죽인 것과 다를 바 없다'라는 생각이지만, 어쨌든 그 와중에도 진짜 죽게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셋 모두 죽일 동기도 충분히 있었던 상황이라 셋 중 누가 범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서술을 배제하는 저자의 특징이 이 책에도 잘 드러나 있어서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지만 다 읽고 나면 약간의 빡침이 올라온다.

소설이 끝나도 범인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가 교이치로가 '범인은 당신입니다'라고 누군가를 지적하는데 그 손가락이 누구를 향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소설이 끝나버린다.

저자가 필요한 정보는 모두 주었으니 진짜 범인은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보길 바라는 작품인 것이다.

​

물론 범인이 누구인지 대충 때려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떻게 그 사람이 죽일 수 있었는지는 나름 추리를 좀 해야 한다.

나온 지 좀 된 작품이기 때문에 나무위키에 치면 자세한 진상을 알 수 있으나 직접 범인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검색 없이 스스로 추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곧바로 찾아봤다.)

​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봐도 봐도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이 책 역시 재미는 있었지만 같은 작가의 책을 계속 읽으니 문체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올해 가장 많이 읽은 작가인데 내년에는 좀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훈 작가의 책은 유독 멀게 느껴진다.

과거에 두 번이나 그의 저작을 읽으려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두 번 다 완독에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끝까지 읽어지지 않았다.

이번 책이 그의 저작을 읽는 세 번째 시도였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다 읽은 그의 첫 작품이 되었다.

​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라고 하는데, 상상 속의 동물들과 마법이 난무하는 서양식 판타지가 아닌 야생과 무속신앙이 결합된 굉장히 동양적인 느낌을 주는 판타지였다.

마치 신화나 전설, 설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

제목처럼 '말'이라는 동물이 인간만큼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책 서두에 등장인물 소개가 있는데, 여기에 말 소개가 따로 있을 정도다.

작품의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인간의 전쟁 속에 피어난 두 말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응?)

당혹스럽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 문장만큼 이 작품의 줄거리를 더 잘 요약할 자신이 없다.

​

작품은 '나하'라는 강을 사이에 둔 '초'와 '단'이라는 두 원시 국가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나라는 유목 민족으로 왕조차도 천막에서 지내며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어 국경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민족이었고 단나라는 농경민족으로 거대한 성을 쌓고 글을 숭배하며 나라의 경계를 긋는 민족이었다.

초가 보는 단의 인간들은 땅에 속박되어 돌을 쌓고 글을 숭배하며 자연을 거스르는 종족이었고 단이 보는 초는 그저 들개와 다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힘으로 빼앗는 종족일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나라에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초의 왕이 타던 말인 '토하'와 단 군독의 말이었던 '야백'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연히 서로를 만나게 되지만 짧은 만남 끝에 긴 이별을 겪는다.

그러면서 독자는 인간의 시각은 물론 말의 시각으로도 전쟁의 참상과 두 나라의 쇠락을 지켜보게 된다.

​

책 뒤표지에 보면 '문명과 야만의 뒤엉킴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다.

묘사된 바로는 초와 단이 모두 야만에 가깝기 때문에 무엇을 두고 문명이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야만의 끝인 전쟁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가게 되는 말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한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글을 쓴다는 점 때문에 단이 얼핏 문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단이 보여주는 풍습도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야만임에 틀림없다.)

​

두 나라의 불꽃같았던 전쟁의 끝은 서로의 파멸을 가져왔고, 전쟁의 중심에 있던 두 말은 어느 피난민의 짐짝을 나르다 버려진 짐짝처럼 쓰러져간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명쾌하게 와닿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전쟁이라는 야만성의 최후가 어떤 모습인지를 말의 시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와 단이 전쟁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그냥 서로 내버려 뒀으면 각자 번영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시대가 변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로 서로를 죽고 죽여왔다는 사실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필히 같은 뿌리를 가졌을 인간은 고작 강 하나를 두고 살았다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죽고 죽이는 반면, 말은 생전 처음 보는 이종의 말일지라도 금세 짝지어 살아가는 모습에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

인간과 말, 더 나아가 인간과 가축의 관계에서 보이는 인간 특유의 이기성 역시 잘 드러나있다.

인간은 더 좋은 말, 더 우수한 말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그렇게 말은 인간의 잣대로 좋은 말, 나쁜 말로 구분된다.

좋은 말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애지중지 키워지지만 결국 전장에 투입되기 위함일 뿐이고, 나쁜 말은 잡일로 부려먹다 결국 식량으로 치환된다.

어차피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희생될 뿐이라는 점에서 좋은 말, 나쁜 말의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말에게는 등 위에 올라간 것이 인간이든 짐짝이든 자유의 구속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말이 적에게 갔다면 크게 쓰이겠구나."

"말은 본래 충효가 없사옵고, 등에 올라탄 자가 주인이옵니다."

칭왕은 술 한 모금을 깊이 마셨다.

"그것이 말의 충이다."

(pg 211)

​

내용 외적인 감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후각적인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자연의 흐름과 그 속의 동물, 아직은 원시적인 인류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각종 자연물들의 냄새는 물론 인간과 말의 배설물과 분비물 냄새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많다는 점이 특징적으로 느껴졌다.

(싸기는 왜 이렇게 많이 싸고 교미는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건지)

​

대중적인 인기는 물론 평론의 반응도 좋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지만 문학적인 감수성이 조금 부족한 나에게는 역시 조금 힘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진짜 말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묘사들과 오랜 구전 설화를 전해 듣는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 덕분에 읽는 과정은 꽤나 즐거웠다.

어쨌든 이렇게 김훈 작가의 책을 하나 소화했으니 다른 작품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사회학자에게 듣는 한국사회 불안을 이기는 법
조형근 지음 / 소동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불평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기분 탓인지 요즘 더 체감이 되는 것 같다.

이 사회의 불평등을 외치는 책은 너무도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한참 이 문제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원인과 증상은 너무도 명확한데 해결책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요즘은 관심도 잘 가지지 않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키워드를 선정해 각각의 단어마다 불평등 정도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그간 읽었던 책들과는 차별점이 있어 보여서 읽어보게 되었다.

​

이 책도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실 해결책 제시는 매우 미미하다.

각각의 키워드마다 짧은 해결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서두에 등장하는 아래 문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 기초에는 모두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 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pg 6-7)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참신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진단하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특히 올해 10월에 있었던 SPC 노동자 사망 사건 등 최근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들이 예시로 담겨 있어서 대한민국 불평등의 따끈따끈한(?)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

첫 키워드부터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단어를 익힐 수 있었다.

'불안정하다'라는 뜻의 '프리케어리어스(precarius)'와 '프롤레타리아트'가 합쳐진 단어로 최근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긱 워커를 비롯한 임시직, 파트타임 등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어차피 임금 생활자들인 건 마찬가지인데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단어까지 필요해진 배경에는 오랜 시간 신자유주의를 통해 길들여진 노동자 계층 간의 불평등 심화가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계급이 안정적이고 특권적인 정규직 노동자, 늑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각종의 프레카리아트로 분열됐다고 간주한다.

트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의 정당들은 이미 기득권화됐고,

프레카리아트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g 24)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최저임금', '능력주의', '우파 포퓰리즘' 등의 키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자 계층 내에서도 서로를 동일한 계층으로 인식하지 않는 현상이 이미 공고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참패를 한 원인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래의 문구는 미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빗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토대로 하던 사민주의 진보정당은 어느덧 고학력 엘리트의 지지에

바탕을 둔 중산층 정당으로 변모했다. - 중략 - 오히려 중산층답게 파업을 불편해하고,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보수성을 비난하곤 한다. 교육받지 못했다며 경멸하기조차 한다.

노동자들이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에 더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다. - 중략 -

(pg 296)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를 표심 얻기의 한 방법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서울-지방으로, 남-녀로, 노인-청년으로 나누어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분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불평등 사다리의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을 향해

불평등으로 이득을 얻는 권력자나 기득권층에 맞서 저항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손쉽게 눈에 띄는 이방인이나 소수자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부추긴다.

주류 사회의 하층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다.

(pg 316)

​

계층 간의 불평등 외에 경제 부분에서도 개미들을 죽이는 공매도와 각종 파생상품들, 차등 의결권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한국에 만연한 불평등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물론 소득의 불평등과 관련된 키워드 외에도 젠더와 인종, 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불평등의 거의 모든 형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과 관련된 부분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볍게 읽어 넘기기 어려운 문제였다.

​

32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분량에 27개의 키워드가 등장하니 모든 키워드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각각의 키워드별 현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생각해 봄직한 문제들도 꽤 많이 던져주고 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서 불평등을 외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다소 편향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이쪽 성향이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저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하지만 불평등은 불평등의 사다리 위에 있는 자도 시달리게 만든다.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 개인을 강조한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풍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승자조차도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 중략 -

더 무너지기 전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pg 254)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불평등은 더 심화되기만 하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모쪼록 대한민국이 보다 평등한 나라가 되는 그날까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라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 블로그에 가장 많이 쓴 태그가 '히가시노 게이고'다.

재미있기도 하고 책이 쉬워서 만만하게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이 작가가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으로 이 책을 꼽았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이를 추적하는 탐정(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이 주변 인물들과 단서를 조합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

특이한 점이라면 풀어내야 할 주요 미스터리가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닌 '사건들의 연관성이 무엇이냐'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한 여고생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사건, 한 남학생이 도시락을 먹다 비소 중독으로 실려간 사건, 그리고 가정을 가진 한 남자가 실종되는(결국 사망한) 사건.

얼핏 보기에도 큰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사건들의 조합이지만 이 사건들의 주변에 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이 범인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그리고 도대체 이 세 사건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본 작품의 주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

총 36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 작품의 중반부까지도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경찰이 이 사건들의 연관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세 사건의 관계를 잘 꼬아놨다.

미유키의 죽음과 다카야스의 중독과 가메이의 실종이

정말 관련 없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관련이 있다면 각 사건이 다 다카야스와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뿐이다.

(pg 157)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유명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 하니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었다.

다만 최근에 비슷한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사건의 형태나 범인의 동기, 사건의 해결 방법 부분에서 참신함이 좀 덜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1970년대에 발표된 작품이니 시대적인 부분은 감안을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 부분은 다소 부실하다고 느꼈다.

특히나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매우 우연한 기회로 얻는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 우연이 아니었으면 범인을 기소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

하지만 1970년대 급변하는 사회에서 발견되는 세대 간 인식 차이와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잘 녹아져 있다는 부분은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건 지금 젊은 세대가 '꼰대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 속 70년대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르키메데스가 살아 있던 시절에도 세대 차이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저자가 '청춘 추리소설' 분야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굳이 장르를 나눌 정도의 특징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올 정도로 경찰이 매우 힘없게(?)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실 금세 해결할 수 있음 직한 사건들임에도 사건의 해결이 꽤나 늦게 이루어진다.

(읽으면서 형사가 마동석이었으면 50페이지 안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라는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로 차분한 다카야스를 두들겨 패서

자백하게 만들 수 없는 현재의 경찰제도가 너무 한심했다.

(pg 234)

​

제목에 아르키메데스는 왜 등장하는지 궁금할 텐데, 이 부분은 사건이 모두 해결된 후에야 밝혀지는 스포일러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이라면 그 설명을 읽으면서 약간의 빡침을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역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아래와 같이 역자 후기에 밑밥을 깔아두긴 했지만 다 읽은 후의 찜찜함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다.

다만 그 설명을 읽고 우리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분명 개운치는 않으실 것이다.

그것 자체가 일본 사회가 갖는 한계라는 생각도 했다.

(pg 358, 역자 후기)

​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작가로서의 출발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굉장한 작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작가가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과 관계가 없는 서술이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딱히 인상적인 구절도 많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

덕분에 읽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독자의 추리력을 그다지 많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