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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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 블로그에 가장 많이 쓴 태그가 '히가시노 게이고'다.

재미있기도 하고 책이 쉬워서 만만하게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이 작가가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으로 이 책을 꼽았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이를 추적하는 탐정(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이 주변 인물들과 단서를 조합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풀어내야 할 주요 미스터리가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닌 '사건들의 연관성이 무엇이냐'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한 여고생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사건, 한 남학생이 도시락을 먹다 비소 중독으로 실려간 사건, 그리고 가정을 가진 한 남자가 실종되는(결국 사망한) 사건.

얼핏 보기에도 큰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사건들의 조합이지만 이 사건들의 주변에 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이 범인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그리고 도대체 이 세 사건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본 작품의 주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총 36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 작품의 중반부까지도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경찰이 이 사건들의 연관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세 사건의 관계를 잘 꼬아놨다.

미유키의 죽음과 다카야스의 중독과 가메이의 실종이

정말 관련 없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관련이 있다면 각 사건이 다 다카야스와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뿐이다.

(pg 157)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유명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 하니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었다.

다만 최근에 비슷한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사건의 형태나 범인의 동기, 사건의 해결 방법 부분에서 참신함이 좀 덜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1970년대에 발표된 작품이니 시대적인 부분은 감안을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 부분은 다소 부실하다고 느꼈다.

특히나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매우 우연한 기회로 얻는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 우연이 아니었으면 범인을 기소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1970년대 급변하는 사회에서 발견되는 세대 간 인식 차이와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잘 녹아져 있다는 부분은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건 지금 젊은 세대가 '꼰대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 속 70년대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르키메데스가 살아 있던 시절에도 세대 차이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저자가 '청춘 추리소설' 분야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굳이 장르를 나눌 정도의 특징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올 정도로 경찰이 매우 힘없게(?)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실 금세 해결할 수 있음 직한 사건들임에도 사건의 해결이 꽤나 늦게 이루어진다.

(읽으면서 형사가 마동석이었으면 50페이지 안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라는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로 차분한 다카야스를 두들겨 패서

자백하게 만들 수 없는 현재의 경찰제도가 너무 한심했다.

(pg 234)

제목에 아르키메데스는 왜 등장하는지 궁금할 텐데, 이 부분은 사건이 모두 해결된 후에야 밝혀지는 스포일러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이라면 그 설명을 읽으면서 약간의 빡침을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역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아래와 같이 역자 후기에 밑밥을 깔아두긴 했지만 다 읽은 후의 찜찜함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다.

다만 그 설명을 읽고 우리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분명 개운치는 않으실 것이다.

그것 자체가 일본 사회가 갖는 한계라는 생각도 했다.

(pg 358, 역자 후기)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작가로서의 출발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굉장한 작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작가가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과 관계가 없는 서술이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딱히 인상적인 구절도 많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

덕분에 읽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독자의 추리력을 그다지 많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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