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사회학자에게 듣는 한국사회 불안을 이기는 법
조형근 지음 / 소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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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불평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기분 탓인지 요즘 더 체감이 되는 것 같다.

이 사회의 불평등을 외치는 책은 너무도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한참 이 문제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원인과 증상은 너무도 명확한데 해결책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요즘은 관심도 잘 가지지 않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키워드를 선정해 각각의 단어마다 불평등 정도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그간 읽었던 책들과는 차별점이 있어 보여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도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실 해결책 제시는 매우 미미하다.

각각의 키워드마다 짧은 해결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서두에 등장하는 아래 문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 기초에는 모두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 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pg 6-7)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참신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진단하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특히 올해 10월에 있었던 SPC 노동자 사망 사건 등 최근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들이 예시로 담겨 있어서 대한민국 불평등의 따끈따끈한(?)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첫 키워드부터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단어를 익힐 수 있었다.

'불안정하다'라는 뜻의 '프리케어리어스(precarius)'와 '프롤레타리아트'가 합쳐진 단어로 최근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긱 워커를 비롯한 임시직, 파트타임 등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어차피 임금 생활자들인 건 마찬가지인데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단어까지 필요해진 배경에는 오랜 시간 신자유주의를 통해 길들여진 노동자 계층 간의 불평등 심화가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계급이 안정적이고 특권적인 정규직 노동자, 늑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각종의 프레카리아트로 분열됐다고 간주한다.

트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의 정당들은 이미 기득권화됐고,

프레카리아트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g 24)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최저임금', '능력주의', '우파 포퓰리즘' 등의 키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자 계층 내에서도 서로를 동일한 계층으로 인식하지 않는 현상이 이미 공고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참패를 한 원인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래의 문구는 미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빗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토대로 하던 사민주의 진보정당은 어느덧 고학력 엘리트의 지지에

바탕을 둔 중산층 정당으로 변모했다. - 중략 - 오히려 중산층답게 파업을 불편해하고,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보수성을 비난하곤 한다. 교육받지 못했다며 경멸하기조차 한다.

노동자들이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에 더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다. - 중략 -

(pg 296)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를 표심 얻기의 한 방법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서울-지방으로, 남-녀로, 노인-청년으로 나누어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분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불평등 사다리의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을 향해

불평등으로 이득을 얻는 권력자나 기득권층에 맞서 저항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손쉽게 눈에 띄는 이방인이나 소수자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부추긴다.

주류 사회의 하층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다.

(pg 316)

계층 간의 불평등 외에 경제 부분에서도 개미들을 죽이는 공매도와 각종 파생상품들, 차등 의결권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한국에 만연한 불평등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물론 소득의 불평등과 관련된 키워드 외에도 젠더와 인종, 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불평등의 거의 모든 형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과 관련된 부분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볍게 읽어 넘기기 어려운 문제였다.

32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분량에 27개의 키워드가 등장하니 모든 키워드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각각의 키워드별 현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생각해 봄직한 문제들도 꽤 많이 던져주고 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서 불평등을 외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다소 편향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이쪽 성향이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저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평등은 불평등의 사다리 위에 있는 자도 시달리게 만든다.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 개인을 강조한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풍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승자조차도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 중략 -

더 무너지기 전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pg 254)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불평등은 더 심화되기만 하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모쪼록 대한민국이 보다 평등한 나라가 되는 그날까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라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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