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김훈 작가의 책은 유독 멀게 느껴진다.
과거에 두 번이나 그의 저작을 읽으려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두 번 다 완독에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끝까지 읽어지지 않았다.
이번 책이 그의 저작을 읽는 세 번째 시도였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다 읽은 그의 첫 작품이 되었다.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느낌은 '독특하다'는 것이었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라고 하는데, 상상 속의 동물들과 마법이 난무하는 서양식 판타지가 아닌 야생과 무속신앙이 결합된 굉장히 동양적인 느낌을 주는 판타지였다.
마치 신화나 전설, 설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제목처럼 '말'이라는 동물이 인간만큼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책 서두에 등장인물 소개가 있는데, 여기에 말 소개가 따로 있을 정도다.
작품의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인간의 전쟁 속에 피어난 두 말의 러브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응?)
당혹스럽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이 문장만큼 이 작품의 줄거리를 더 잘 요약할 자신이 없다.
작품은 '나하'라는 강을 사이에 둔 '초'와 '단'이라는 두 원시 국가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나라는 유목 민족으로 왕조차도 천막에서 지내며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어 국경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민족이었고 단나라는 농경민족으로 거대한 성을 쌓고 글을 숭배하며 나라의 경계를 긋는 민족이었다.
초가 보는 단의 인간들은 땅에 속박되어 돌을 쌓고 글을 숭배하며 자연을 거스르는 종족이었고 단이 보는 초는 그저 들개와 다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힘으로 빼앗는 종족일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나라에 전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초의 왕이 타던 말인 '토하'와 단 군독의 말이었던 '야백'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연히 서로를 만나게 되지만 짧은 만남 끝에 긴 이별을 겪는다.
그러면서 독자는 인간의 시각은 물론 말의 시각으로도 전쟁의 참상과 두 나라의 쇠락을 지켜보게 된다.
책 뒤표지에 보면 '문명과 야만의 뒤엉킴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다.
묘사된 바로는 초와 단이 모두 야만에 가깝기 때문에 무엇을 두고 문명이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야만의 끝인 전쟁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가게 되는 말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한 경험을 가져다 주었다.
(글을 쓴다는 점 때문에 단이 얼핏 문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단이 보여주는 풍습도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야만임에 틀림없다.)
두 나라의 불꽃같았던 전쟁의 끝은 서로의 파멸을 가져왔고, 전쟁의 중심에 있던 두 말은 어느 피난민의 짐짝을 나르다 버려진 짐짝처럼 쓰러져간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명쾌하게 와닿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전쟁이라는 야만성의 최후가 어떤 모습인지를 말의 시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와 단이 전쟁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그냥 서로 내버려 뒀으면 각자 번영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시대가 변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로 서로를 죽고 죽여왔다는 사실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필히 같은 뿌리를 가졌을 인간은 고작 강 하나를 두고 살았다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죽고 죽이는 반면, 말은 생전 처음 보는 이종의 말일지라도 금세 짝지어 살아가는 모습에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과 말, 더 나아가 인간과 가축의 관계에서 보이는 인간 특유의 이기성 역시 잘 드러나있다.
인간은 더 좋은 말, 더 우수한 말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그렇게 말은 인간의 잣대로 좋은 말, 나쁜 말로 구분된다.
좋은 말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애지중지 키워지지만 결국 전장에 투입되기 위함일 뿐이고, 나쁜 말은 잡일로 부려먹다 결국 식량으로 치환된다.
어차피 인간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희생될 뿐이라는 점에서 좋은 말, 나쁜 말의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말에게는 등 위에 올라간 것이 인간이든 짐짝이든 자유의 구속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