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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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달은 점차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지식 격차를 만들어낸다.

지식 격차가 커지면 지식이 소수 엘리트들에게 독점되고 일반 대중은 모른다는 이유로 과학 발전에 방해가 되거나 무분별한 과학 기술 개발을 제대로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세상에서 과학 지식을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는 교양서적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일반 대중들에게 뇌과학이 지금까지 어떤 성과들을 쌓아왔고, 이것이 세상과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뇌과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두께도 본문만 35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아서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최근에 읽은 과학 교양서 중 가장 쉽고 재밌었다.

일단 다루는 주제 자체가 방대하지 않고 전문적인 용어를 남발하고 있지도 않아서 읽기가 좋았다.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나

모든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로 완성된다.

책은 어릴 적 뇌에 문제가 있어 뇌의 절반을 적출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단연코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뇌를 절반이나 들어내고도 정상적인 삶이 가능했을까?

놀랍게도 본인이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잘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선천적으로 뇌의 반쪽만 가지고 태어난 아이 역시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 부모도 아이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큰 불편함 없이 생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우리의 뇌가 정해진 기능을 단순하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뇌는 외부 자극이 어떻게,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반응해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책의 원제인 'Livewired', 즉 스스로 배선을 깔듯이 뇌에 도달하는 자극의 종류와 강도에 따라 뇌가 그 기능을 만들어 가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점에 사고로 시각을 잃는다면 그때까지 뇌에서 시각을 관장하던 부분을 다른 감각들이 차지해 다른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용도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강하게 발현된다.

그래서 선천적인 시각장애인 중 청각이나 촉각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예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특정 기관과 인지하는 감각이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시각 정보를 청각 정보로 변환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마치 박쥐가 주변을 인식하듯 소리를 통해 주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vOICe'라는 앱인데 무료로 다운 가능해서 호기심에 받아봤는데 시각이 멀쩡한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저 기괴한 기계음이 들릴 뿐이다.

하지만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눈을 가리고 이 앱을 통해 '보는' 연습을 충분히 하면 눈을 감고도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보는 것처럼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를 활용해 일상생활 중에는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은 촉각을 활용해 부족한 감각을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즉, 뇌에게는 외부 자극이 접수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어느 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또한 굳이 우리 신체 기관을 통해서 접수된 자극이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기계 장치로 인간에게는 없었던 감각을 추가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책에 등장하는 예시로는 자석을 이식해 자기장을 느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기계의 작동 여부를 굳이 켜보거나 검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한 나침반을 이식한 사람은 마치 철새가 작년에 왔던 곳을 정확히 찾아가듯 지도가 없어도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무게 1.4킬로그램의 뇌는 소리를 직접 듣거나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지 않는다.

뇌는 어둡고 조용한 지하 묘지 같은 두개골 안에 갇혀 있다.

뇌가 보는것은 다양한 데이터케이블을 통해 계속 들어오는 전기화학 신호뿐이다.

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도 그것뿐이다.

(pg 83)

이 부분이 굉장히 신기한데, 우리에게 없는 감각을 인지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후각이 없는 사람에게 지하철 옆자리에서 맡은 '델리만쥬 냄새'를 설명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직접 맡아보지 않는 이상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각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변환해 뇌에 전기자극으로 인식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도 그 냄새가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이 기술만 있다고 해서 만능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연습과 의지가 필요하다.

나이 역시 중요한 변수로 어리면 어릴수록 뇌가 새로운 배선을 까는 것이 용이해진다.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므로, 자신이 어떤 일에 헌신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길을 따라가게 되고 나머지 길은 모두 '영원히 가지 않는 길'로 남는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용구로

이 책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

(pg 275-276)

책은 우리의 뇌가 어떻게 '학습'이라는 것을 하고 '기억'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부분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지만 요점은 우리의 경험이 마치 젖은 종이를 한 겹 한 겹 쌓아가듯 뇌에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면 기존의 정보와 통합되는 과정에서 학습과 기억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영화 매트릭스처럼 비행기 운전법을 뇌에 직접 업로드해 학습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우리의 뇌는 각자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학습하기 때문에(사람마다 기존 경험이 다 다르기 때문에) 표준적인 업로드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뇌를 연구함으로써 얻은 지식들을 다른 기계들에 적용할 수 있다면, 즉 뇌가 신체의 일부가 제거되었을 때 스스로를 새로운 몸에 맞게 조정하듯이 기계도 자신의 일부가 파손되었을 때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작동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자원으로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자연은 늑대의 뇌에 고정된 프로그램을 심는 것이 의미 없는 일임을 안다.

신체 형태는 바뀐다. 환경도 바뀐다. 능력과 행동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바뀐다.

미리 정해진 회로를 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그때그때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굴정보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pg 331)

여하간 최근에 읽은 책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즐겁게 읽은 책 같다.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집에 개인용 컴퓨터가 있는 집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컴퓨터를 한 사람마다 한 대씩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술 발전도 있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애써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나 발전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분야도 많다.

뇌과학 역시 그런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타고난 신체보다 더 성능이 좋고 내구성도 좋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생물공학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후손들이

우리를 연구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느린 발전과정에서 벗어나

우리 몸의 미래를 처음으로 직접 조종하기 시작한 때로 간주될 것이다.

(pg 197)

하지만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이 된 원동력이 바로 뇌에 있는 만큼 뇌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이 책에서 본 사례들만 하더라도 인류가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해감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기대가 된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읽는 동안 집사람에게 재밌는 내용을 설명해 주고 그랬는데 집사람은 (-_-) 이런 표정만 짓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있을 수는 없겠구나 싶지만 여하간 과학을 다룬 서적 중 보기 드물게 재미와 정보 면에서 고루 우수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사람됨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든 것,

즉 주변 환경, 경험, 친구, 적, 문화, 신념, 시대 등으로부터 나온다. - 중략 -

사실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을 분리할 길은 없다.

외부세계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념, 신조, 포부는 모두 속속들이 그렇게 형성된다.- 중략 -

생후배선 덕분에 우리는 각자 세계가 된다.

(pg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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