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너 다클리 필립 K. 딕 걸작선 13
필립 K.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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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단편집을 읽은 후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장편 중 하나를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이 음차라 무슨 의미인지 한 번에 잘 와닿지 않는데 '어두침침한 스캐너'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무언가를 통해 특정 대상을 관찰할 때, 아무리 해상도가 좋은 기계를 쓰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려 노력한다 하더라도 본질과는 다른 무언가를 관찰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제목이다.

저자가 생전에 약물 중독으로 상당한 고생을 했는데 이 책은 그런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반-마약 소설이다.

주인공은 마약을 제조, 유통하는 거대 조직을 쫓기 위해 스스로 마약 중독자 행세를 하는 잠입 수사관이다.

설정상 공식 석상에서는 특수한 수트를 입어 외부에 자신의 외모와 목소리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며 이름도 '프레드'라는 가명을 쓴다.

그리고 수사를 위한 나머지 시간에는 '밥 아크터'라는 이름의 약물 중독자 행세를 하며 다른 중독자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다.

중독자 행세를 하려면, 또 진짜 유통망에 접근하려면 자신도 마약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지라 신중하고 더디게 수사를 진행하던 중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던 차에 그가 속한 조직에서도 그의 집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며 그의 집에 스캐너를 설치하게 된다.

즉 자기가 스스로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중생활과 약물의 영향이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수사를 하는 프레드와 약물 중독자인 아크터의 인격이 나누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 본인이 약물 중독으로 고생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중독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언어 습관이나 행동들이 얼마나 기괴하게 변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습을 감춰주는 수트나 홀로그램으로 재생되는 스캐너 등이 등장하긴 하나, SF적인 느낌보다는 마약이 지배한 세상을 그려내는 것에 더 치중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인간이 주변 환경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자아라는 것이 필요한데 마약은 이 자아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역시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을 기억 못 하는 것에서 시작해 종국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서서히 잊어간다.

숨은 쉬고 배설은 하지만 '살아 있다고'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 있는 스토리인지라 결말은 언급하지 않겠으나,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라는 점은 알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죽은 사람에게는 미래랄 것이 거의 없다고, 마이크는 생각했다.

보통은 그저 과거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아크터-프레드-브루스에게는 과거조차 남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로지 현재뿐이다.

(pg 427)

저자는 한번 마약으로 뇌가 망가지면 다음 기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강조한다.

물론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몰래 술이나 음식에 탄 것을 모르고 섭취하는 등)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범죄의 희생양이 된 케이스도 있을 수 있을 테지만, 어떻게든 약물을 경험하게 되었다면 그 즉시 멈추고 치료 방법을 찾아야만 자신을, 자아를 지켜낼 수 있다.

"묵직한 것은 세상에 오로지 삶뿐이니." 배리스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단 하나뿐인 묵직한 여정이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덤에 이르는 여정.

모든 인간과 생명이 겪을 수밖에 없는 여정."

(pg 166)

도파민에 절여진 뇌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 행복감을 지속하려면 더욱 많은 약물이 필요해지고 결국 뇌도 파괴되고 만다.

망가진 뇌는 행복을 감지해야 할 주체인 자아를 지워버린다.

대한민국 역시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닐지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는 지금, 1977년에 출간된 이 책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행복 끝에 얻어지는 것은 텅 빈 자아와 타버린 뇌 뿐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렇겠지만 스토리 자체의 재미도 충분한 작품이므로 더워지는 날씨에 시원한 실내에서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소설을 찾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6년에 이미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주연이 무려 키아누 리브스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영화로도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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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양철북 청소년문학 7
줄리아 월튼 지음, 이민희 옮김 / 양철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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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천안문 이야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은 제목을 가졌지만 핑크빛 가득한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성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참 재미난 것이 한쪽에서는 카디 비 같은 가수들이 자신의 성기를 자랑하는 노래로 큰 인기를 누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10대들의 성 관련 이야기를 '쉬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것이다.(하기야 카디 비 본인도 자식에게는 자기 노래를 들려주지 않는다고는 하더라만은)

그런 모순 넘치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통통 튀는 10대 여성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되겠다.

주인공은 피비라는 여학생으로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제2의 아이덴티티가 있는데, 바로 성 관련 지식들을 전달하는 한 블로그의 운영자라는 것이다.

사는 곳이 보수적인 동네인지라 익명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실수로 인해 글 쓴 위치가 노출되어 피비가 사는 동네에 그 블로그 운영자가 산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를 시장 후보자이자 극렬 보수주의자인 리디아 브룩허스트라는 여성이 알게 되면서 둘의 갈등이 시작된다.

리디아는 시장 후보이면서 동네의 유력 인사로서 불순한 사상을 전파하는 블로거에게 신상을 드러내라며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일개 학생 신분일 뿐인 피비가 이에 맞서 10대들에게도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하며, 자신은 의료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는 명분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 주요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에 피비가 좋아하는, 또 피비를 좋아하게 되는 동료 남자아이들과의 파릇파릇한(?) 사랑 이야기가 더해져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제법 많이 던져준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야기여서 흥미로웠다.

어차피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 오히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본다.

비단 성 관련 지식뿐 아니라 정치, 노동, 젠더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균형 있는 정보를 충분히 주는 것이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들을 접하면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보다 사회에는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이 정보가 불편한 건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말하기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우리 할머니가 가끔은 실렌시오 인코모도,

다시 말해 '불편한 침묵'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

그리고 그저 지켜보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몰라.

때때로 불편한 침묵이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pg 161-162)

요즘 나온 작품답게 PC(정치적 올바름)적으로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시각이 많이 담겨 있고 인종적으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호르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라틴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듯이) 전형적인 백인계 미국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다분히 성, 인종차별적인 정치 메시지를 던지는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향한 분노 어린 시선이 작품 속에 많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뜬금없는 PC 요소들을 욱여넣어 스토리 전개가 어색해지거나 교조적으로 느껴질만한 부분이 없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주요 인물들이 10대라는 것이 번역을 통해서도 잘 느껴지는데,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나라 10대 학생들이 할법한 말들로 제법 현지화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였다.

이게 과하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 자막을 보는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스토리의 전개는 예상한 바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만큼 전개가 매끄러웠고, 10대들이 궁금해할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하는 연인들이 '꽁냥'거리는 모습을 읽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즐겁게 읽은 것 같다.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재미의 측면은 충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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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50만부 발매기념 리커버 에디션) - 분노조절장애시대에 더 필요해진 감정 조절 육아법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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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내가 그리 '욱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욱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살갑게 해주던 아비가 갑자기 화를 내면 아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읽지 않아도 대충 무슨 내용일지 예상이 되는지라 읽어볼 생각도 않았던 책인데 아이 앞에서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면이 욱하는 측면인 것 같아 반성하는 의미로 읽어보게 되었다.

욱은 상대에 대한 제압의 의미가 있다.

상대를 감정적으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상대를 장악하고 굴복시키려고 했는데, 안 되었을 때 욱한다.

(pg 39)

사례 위주로 짤막한 글들이 이어져 있는 형태이지만 메시지는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욱하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결핍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가 치미는 것에 아이의 언행은 작은 트리거가 될 뿐이지 절대로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덜 낸다.

육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화가 많고 짜증이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화가 나고 욱한다면, 아이를 잡을 것이 아니라

나의 육아 방식에 이상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아이 탓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pg 107)

물론 그 원인을 찾았다고 해서 부모에게 사과를 받으러 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 심리의 원인을 알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더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스무 번 중에 열아홉 번은 친절한 엄마인데 한 번은 광분한다면,

차라리 그 열아홉 번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이 아이한테는 훨씬 더 이롭다.

열아홉 번 애쓴 것이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를 쓰는 것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pg 41)

유튜브로 '금쪽이' 같은 콘텐츠들을 자주 봤다면 그리 신선하다 싶은 내용은 없었다.

다만 심리적인 것들이 대체로 그렇듯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안되는 측면이 더 클 것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그래도 이 책을 읽으려는 부모는 변화에 대한 의지라도 있는 사람들일 테니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자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측면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러길 바라고)

워낙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기 때문에 사례 중 적어도 한 두개 정도는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것들이 나올 테니 그 사례에 자신을 이입해 보면 생각보다 얻을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글로 정리하고 읽어 보면 너무 당연한 말들 같지만 육아를 해 본 사람이라면 가슴에 와닿는 것들이 있을 구절들도 꽤 많았다.

저자가 방송에서도 수차례 강조했듯이 육아는 긴 과정이다.

부모는 지금 당장 아이가 바뀌기를 기대하지만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도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상이 있을 것이고 부모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통제와 억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욱'들이 아이와 부모의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효율성'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효율성만 강조하면 과정을 놓치기 쉽다.

어떻게 처리했든, 과정이 어떠했든, 빨리빨리 끝내서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과정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중략-

좋은 능력도 결국 좋은 그릇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g 312)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늘 후회하게 마련이다.

횟수가 많이 줄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톡 화를 낼 때가 있다.

이런 반성들이 쌓여 가는 과정이 옛날 어른들이 말하던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읽는 과정도 즐거웠고 내용도 좋았지만 결국은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다르게 육아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사람이 얼마나 바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표지에 오은영 박사가 활짝 웃으며 노려보고 있기 때문에(밑에 야구 배트 합성이 없어서 다소 이상하지만) 이 책을 눈에 잘 띄는 곳에 꽂아둔 뒤 욱할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면 진정하기에 도움이 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힘으로 눌렀을 때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한번 아이를 체벌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것도

이런 쾌감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 중략 -

이런 쾌감에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정을 강하게 표현해야 할 것만 같다.

바로 욱에 중독되는 것이다.

(pg 281-282)

책에 워낙 극단적인 사례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 정도면 심한 것도 아니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표출하는 화의 수준이 다르듯 아이마다 수용하는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소극적으로 화를 냈다 하더라도 아이가 느끼기에는 굉장한 충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쪼록 육아의 긴 과정에서 자신의 언행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한 부모들에게, 그리고 되도록이면 꼭 부부가 함께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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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순수이성비판 - 내가 진짜 아는 것은 무엇인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강지은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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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과는 달리 꽤나 많은 지식을 맛보게 해준다.

공교육을 충실하게 따라온 사람이라면 '칸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정언명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이라는 건 소개의 의미이고 관심 있으면 더 알아보라는 뜻이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도 잊게 마련이고 스스로 거기에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내용도 알 수 없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전하게 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라고 보면 되겠다.

고백을 하자면 책을 소개할 때 서두가 길면 보통 내가 이해한 내용에 자신이 없다는 뜻인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서양철학 교양서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평소 독서량도 적은 편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이 책은 '해설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한 바를 쥐어 짜내어 소개하고자 하나, 몹시 거칠고 편협한 글이 될 것이므로 칸트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조사를 위해 본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빨리 다른 글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철학자와 철학서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역사적 맥락'이다.

특히 오래된 텍스트를 읽을 때에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데, 왜 이 철학자는 이런 책을 썼는지를 알아야 현대 시점에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칸트가 책을 집필할 당시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의 출발점은 언제나 '근원'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류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인간은 어떻게 이성이라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등등 누구도 답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한 번은 해보게 되는 질문들이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 특별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본질 그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인간 이성의 모든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pg 44)

칸트가 활동하던 때의 철학적 화두는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느냐'였다.

이 질문을 둘러싸고 영국 중심의 경험론과 대륙(유럽) 중심의 합리론이 치열하게 논리 싸움을 전개했다.

칸트는 이러한 논리 싸움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하는 대신 각각을 이성적으로 파헤쳐 자신만의 독창적인 인식론을 전개하는데,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칸트 자신은 물론 후대에서도 공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칸트는 대상과의 일치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주관이 아니라, 대상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구성하고 종합하는 활동적 주관을 설정한다.

이제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경험적 질료에 대해 우리의 주관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하는가이다.

(pg 89)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의 실체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 그 객체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 칸트의 핵심이다.

이후로는 칸트의 형이상학을 1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 안에 소개하려고 애를 쓰는 작가의 노력이 이어진다.

칸트가 제시한 초월 철학이 무엇인지, 우리가 세상을 선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칸트가 제시한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12가지의 범주의 소개와 그때까지 있었던 담론들의 오류 추리에 이르기까지 짧은 분량 안에 많은 개념들이 소개된다.

그래서인지 다 읽은 후에도 내용을 소화해서 정리하기는 솔직히 벅차다는 느낌이다.

책이 두꺼우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분량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래서인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양자역학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가 관련 책들을 두 권, 세 권 읽어갈 때마다 이해되는 부분이 넓어졌던 것처럼 추후에 칸트에 대한 배경지식을 좀 더 쌓은 후에 읽으면 정리가 더 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길 바란다.)

야심 차게 도전했던 책이지만 기대만큼 잘 소화한 것 같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고전 작품들을 해설해 주는 책은 앞으로도 많이 나와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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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완역본) 세계교양전집 2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현숙 옮김 / 올리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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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유론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도 160년이 넘었다.

그동안 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를 꽤나 많이 누리고 살게 되었지만 세계지도에서 조금만 더 위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아직도 이 세상에는 정부를 욕할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미 학창 시절 주입된 지식들로 이 책에서 저자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고, 혹 저자나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개념들의 대부분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다.

즉 '나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등등 우리가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함께 떠오를 많은 내용들이 언급된다.

그래서 마치 이 책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었는데 정작 요약된 내용이 아닌 원본으로는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김에 읽어보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들어가는 글 첫 페이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다. - 중략 -

이 책은 그보다는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가 한 개인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관한 것이다.

(pg 9)

이 책에서는 '시민의 자유', '사회적 자유'에 관한 자유 중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유로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꼽는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문제의식이 바로 민주 사회에서도 종종 관찰할 수 있는 다수의 소수 의견 묵살, 때로는 박해로까지 이어지는 소수 의견에 대한 배척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무리 헛소리에 불과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숙고하고 토론을 이어가는 것이 다수 의견에도 명백히 유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꽤 오랜 분량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그 논증의 결말은 아래와 같이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인류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을 정당하게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기 보호'가 필요한 경우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문명사회에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하게 권력이 행사될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안 된다.

(pg 23)

물론 이 책이 100년 이상 지난 책이기 때문에 지금 사람 눈에는 다소 거슬릴만한 문구들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문구들이다.

미개한 사람들을 다스릴 때 독재가 정당한 통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목적이 미개한 사람들을 개화하는 데 있으며,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하여

그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말이다.

자유는 원칙적으로 인류가 자유로우며 평등한 토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할 수 있게 된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pg 24-25)

'미개'와 '개화'라는 단어가 특히 거슬릴 테고 더욱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독재의 칼 아래 숨죽여 사는 대중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편견이 숨어 있는 문장이 읽기에 편할 리 없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자유가 있어야 독재가 끝나는 것인지, 독재가 끝나야 자유가 발붙일 자리가 생기는지는 역사를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해방 후 반강제로 주입된 정치 체계가 아니었다면 우리 스스로 민주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독재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들 중 일부는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피지배충의 동의하에 유지되고 있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아래와 같이 지적했듯이 자유를 포기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 책의 논리 구조상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요구할 수는 없다.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더는 자유가 아니다.

(pg 175)

200페이지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책이지만 진도가 쭉쭉 나가는 느낌은 잘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상당한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난 근현대사의 기적적인 일들이 떠오를 것이고 아직 정치적 자유가 불안정한 곳에서는 160년 전 한 학자가 제시한 이론을 아직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곳에서는 이 책을 읽을 자유도 없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의 정수가 우리의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읽으면서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아래의 구절까지도 체화한 우리 국민들은 타인들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손을 절제하는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스스로 소멸할 국가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삶을 부여받은 존재가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 가능성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면,

그 존재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인구 과잉의 나라, 또는 인구 과잉의 조짐이 보이는 나라에서

최소한의 수 이상의 아이를 출산한다면 아이들끼리 벌이는 경쟁으로

노동에 따른 보상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죄를 짓는 일이 된다.

(pg 184)

물론 이 책은 개인과 국가 간의 자유에 대해 말할 뿐이고 우리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주장하는 자유(기업에게 편리한 자유)는 이 책이 다루는 부분은 아니다.

나 역시 국가가 정치와 경제에 있어 일정 부분 통제력을 가지는 편이 이롭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조직을 묘사한 아래의 글은 공감대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자기들끼리 뭉치기 좋아하는 관료 조직은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대게 고정된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나태한 일상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pg 192)

많은 대학들에서 필독서로 지정할 만큼 그 내용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책이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에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오히려 나이가 좀 들어 읽으니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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