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순수이성비판 - 내가 진짜 아는 것은 무엇인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강지은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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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과는 달리 꽤나 많은 지식을 맛보게 해준다.

공교육을 충실하게 따라온 사람이라면 '칸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정언명령'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이라는 건 소개의 의미이고 관심 있으면 더 알아보라는 뜻이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도 잊게 마련이고 스스로 거기에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내용도 알 수 없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전하게 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라고 보면 되겠다.

고백을 하자면 책을 소개할 때 서두가 길면 보통 내가 이해한 내용에 자신이 없다는 뜻인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서양철학 교양서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평소 독서량도 적은 편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이 책은 '해설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한 바를 쥐어 짜내어 소개하고자 하나, 몹시 거칠고 편협한 글이 될 것이므로 칸트나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조사를 위해 본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빨리 다른 글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철학자와 철학서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역사적 맥락'이다.

특히 오래된 텍스트를 읽을 때에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데, 왜 이 철학자는 이런 책을 썼는지를 알아야 현대 시점에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칸트가 책을 집필할 당시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의 출발점은 언제나 '근원'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류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인간은 어떻게 이성이라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등등 누구도 답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한 번은 해보게 되는 질문들이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 특별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본질 그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인간 이성의 모든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pg 44)

칸트가 활동하던 때의 철학적 화두는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느냐'였다.

이 질문을 둘러싸고 영국 중심의 경험론과 대륙(유럽) 중심의 합리론이 치열하게 논리 싸움을 전개했다.

칸트는 이러한 논리 싸움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옳다고 주장하는 대신 각각을 이성적으로 파헤쳐 자신만의 독창적인 인식론을 전개하는데, 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칸트 자신은 물론 후대에서도 공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칸트는 대상과의 일치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주관이 아니라, 대상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구성하고 종합하는 활동적 주관을 설정한다.

이제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경험적 질료에 대해 우리의 주관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하는가이다.

(pg 89)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의 실체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 그 객체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 칸트의 핵심이다.

이후로는 칸트의 형이상학을 1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 안에 소개하려고 애를 쓰는 작가의 노력이 이어진다.

칸트가 제시한 초월 철학이 무엇인지, 우리가 세상을 선험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칸트가 제시한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12가지의 범주의 소개와 그때까지 있었던 담론들의 오류 추리에 이르기까지 짧은 분량 안에 많은 개념들이 소개된다.

그래서인지 다 읽은 후에도 내용을 소화해서 정리하기는 솔직히 벅차다는 느낌이다.

책이 두꺼우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분량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래서인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양자역학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가 관련 책들을 두 권, 세 권 읽어갈 때마다 이해되는 부분이 넓어졌던 것처럼 추후에 칸트에 대한 배경지식을 좀 더 쌓은 후에 읽으면 정리가 더 잘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길 바란다.)

야심 차게 도전했던 책이지만 기대만큼 잘 소화한 것 같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고전 작품들을 해설해 주는 책은 앞으로도 많이 나와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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