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완역본) 세계교양전집 2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현숙 옮김 / 올리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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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도 160년이 넘었다.

그동안 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를 꽤나 많이 누리고 살게 되었지만 세계지도에서 조금만 더 위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아직도 이 세상에는 정부를 욕할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미 학창 시절 주입된 지식들로 이 책에서 저자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고, 혹 저자나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개념들의 대부분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다.

즉 '나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등등 우리가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함께 떠오를 많은 내용들이 언급된다.

그래서 마치 이 책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었는데 정작 요약된 내용이 아닌 원본으로는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김에 읽어보게 되었다.

친절하게도 들어가는 글 첫 페이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다. - 중략 -

이 책은 그보다는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가 한 개인을 상대로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관한 것이다.

(pg 9)

이 책에서는 '시민의 자유', '사회적 자유'에 관한 자유 중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중요한 자유로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꼽는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문제의식이 바로 민주 사회에서도 종종 관찰할 수 있는 다수의 소수 의견 묵살, 때로는 박해로까지 이어지는 소수 의견에 대한 배척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무리 헛소리에 불과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숙고하고 토론을 이어가는 것이 다수 의견에도 명백히 유용한 것이라는 견해를 꽤 오랜 분량에 걸쳐 논증하고 있다.

그 논증의 결말은 아래와 같이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인류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을 정당하게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기 보호'가 필요한 경우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문명사회에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하게 권력이 행사될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안 된다.

(pg 23)

물론 이 책이 100년 이상 지난 책이기 때문에 지금 사람 눈에는 다소 거슬릴만한 문구들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문구들이다.

미개한 사람들을 다스릴 때 독재가 정당한 통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목적이 미개한 사람들을 개화하는 데 있으며,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하여

그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말이다.

자유는 원칙적으로 인류가 자유로우며 평등한 토론을 통해

진보를 이룩할 수 있게 된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pg 24-25)

'미개'와 '개화'라는 단어가 특히 거슬릴 테고 더욱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독재의 칼 아래 숨죽여 사는 대중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편견이 숨어 있는 문장이 읽기에 편할 리 없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자유가 있어야 독재가 끝나는 것인지, 독재가 끝나야 자유가 발붙일 자리가 생기는지는 역사를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해방 후 반강제로 주입된 정치 체계가 아니었다면 우리 스스로 민주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독재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들 중 일부는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피지배충의 동의하에 유지되고 있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아래와 같이 지적했듯이 자유를 포기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 책의 논리 구조상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요구할 수는 없다.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더는 자유가 아니다.

(pg 175)

200페이지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책이지만 진도가 쭉쭉 나가는 느낌은 잘 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상당한 자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난 근현대사의 기적적인 일들이 떠오를 것이고 아직 정치적 자유가 불안정한 곳에서는 160년 전 한 학자가 제시한 이론을 아직도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곳에서는 이 책을 읽을 자유도 없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의 정수가 우리의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읽으면서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아래의 구절까지도 체화한 우리 국민들은 타인들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손을 절제하는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스스로 소멸할 국가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삶을 부여받은 존재가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 가능성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면,

그 존재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인구 과잉의 나라, 또는 인구 과잉의 조짐이 보이는 나라에서

최소한의 수 이상의 아이를 출산한다면 아이들끼리 벌이는 경쟁으로

노동에 따른 보상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에 의존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죄를 짓는 일이 된다.

(pg 184)

물론 이 책은 개인과 국가 간의 자유에 대해 말할 뿐이고 우리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주장하는 자유(기업에게 편리한 자유)는 이 책이 다루는 부분은 아니다.

나 역시 국가가 정치와 경제에 있어 일정 부분 통제력을 가지는 편이 이롭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조직을 묘사한 아래의 글은 공감대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자기들끼리 뭉치기 좋아하는 관료 조직은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대게 고정된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나태한 일상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pg 192)

많은 대학들에서 필독서로 지정할 만큼 그 내용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책이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에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오히려 나이가 좀 들어 읽으니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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