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양철북 청소년문학 7
줄리아 월튼 지음, 이민희 옮김 / 양철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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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천안문 이야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은 제목을 가졌지만 핑크빛 가득한 표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성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참 재미난 것이 한쪽에서는 카디 비 같은 가수들이 자신의 성기를 자랑하는 노래로 큰 인기를 누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10대들의 성 관련 이야기를 '쉬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는 것이다.(하기야 카디 비 본인도 자식에게는 자기 노래를 들려주지 않는다고는 하더라만은)

그런 모순 넘치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통통 튀는 10대 여성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되겠다.

주인공은 피비라는 여학생으로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하며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제2의 아이덴티티가 있는데, 바로 성 관련 지식들을 전달하는 한 블로그의 운영자라는 것이다.

사는 곳이 보수적인 동네인지라 익명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실수로 인해 글 쓴 위치가 노출되어 피비가 사는 동네에 그 블로그 운영자가 산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를 시장 후보자이자 극렬 보수주의자인 리디아 브룩허스트라는 여성이 알게 되면서 둘의 갈등이 시작된다.

리디아는 시장 후보이면서 동네의 유력 인사로서 불순한 사상을 전파하는 블로거에게 신상을 드러내라며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한다.

일개 학생 신분일 뿐인 피비가 이에 맞서 10대들에게도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하며, 자신은 의료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는 명분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 주요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에 피비가 좋아하는, 또 피비를 좋아하게 되는 동료 남자아이들과의 파릇파릇한(?) 사랑 이야기가 더해져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들을 제법 많이 던져준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에게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야기여서 흥미로웠다.

어차피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 오히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본다.

비단 성 관련 지식뿐 아니라 정치, 노동, 젠더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균형 있는 정보를 충분히 주는 것이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들을 접하면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는 것보다 사회에는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이 정보가 불편한 건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말하기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우리 할머니가 가끔은 실렌시오 인코모도,

다시 말해 '불편한 침묵'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

그리고 그저 지켜보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몰라.

때때로 불편한 침묵이 우리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pg 161-162)

요즘 나온 작품답게 PC(정치적 올바름)적으로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시각이 많이 담겨 있고 인종적으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호르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라틴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듯이) 전형적인 백인계 미국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다분히 성, 인종차별적인 정치 메시지를 던지는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향한 분노 어린 시선이 작품 속에 많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뜬금없는 PC 요소들을 욱여넣어 스토리 전개가 어색해지거나 교조적으로 느껴질만한 부분이 없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주요 인물들이 10대라는 것이 번역을 통해서도 잘 느껴지는데,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나라 10대 학생들이 할법한 말들로 제법 현지화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였다.

이게 과하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 자막을 보는 것처럼 어색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스토리의 전개는 예상한 바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만큼 전개가 매끄러웠고, 10대들이 궁금해할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하는 연인들이 '꽁냥'거리는 모습을 읽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즐겁게 읽은 것 같다.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재미의 측면은 충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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