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문제가 가득한 레스토랑
유키 신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일본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 장르의 작가 풀이 워낙 넓어서 처음 접하는 작가도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저자 소개에 '선배 작가들이 절대 쓸 수 없는 트릭'을 쓰는 작가라 소개되어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다 읽은 후 생각해 보면 선배 작가들이 '세대 차이 때문에' 쓸 수 없는 트릭을 쓰는 작가라 소개하는 편이 사실에 더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탐정 역할을 하는 자의 직업이 애초부터 탐정이거나 경찰, 변호사, 과학자와 같이 범죄 사실을 접하기 쉬운 특정한 직업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 속 탐정은 그저 배달 전문 음식점의 주인일 뿐이고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한 활동도 배달 기사에게 외주를 주는 긱(Gig) 경제 형태로 운영된다.

이 독특한 설정 덕분에 사건의 발단부터 해결까지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입소문을 들은 누군가가 '그' 메뉴를 주문하면, 배달 기사가 현장에 파견되어 1차 조사를 수행한다.

조사 내용을 전해 들은 '셰프'가 적절한 추가 조사를 숙제로 내고, 며칠 뒤 사건의 진상이 담긴 솔루션 메뉴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처음 책 소개를 읽었을 때에는 음식점에 은퇴한 탐정이 있고, 경찰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은밀하게 의뢰하는 방식의 옴니버스식 작품이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랬다면 매우 식상한 작품이 될 뻔했다.)

심지어는 범인이 모두 검거되어 법적으로는 사건이 종료된 케이스도 많은데, 그저 사건의 관계자들이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이유나 동기와 같은 것들을 '알고' 싶다는 순수한(?) 욕구 그 자체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알고 싶다. - 중략 -

만사 제쳐 놓고 '알고 싶은' 것이다.

호기심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숭고하고 위험한 욕구가 틀림없다.

(pg 385)

또한 사건의 해결을 담당하는 셰프 역시 법조인이 아니므로 그가 밝혀낸 진상이 곧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 역시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사건의 진실은 그저 'A가 B를 특이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은 A가 왜 일면식도 없는 B를 굳이 찾아가서 그러한 방식으로 살해했어야만 했는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스포 방지를 위해 지어낸 사건으로 작품과는 관계가 없다.)

셰프는 이런 궁금증으로 인한 허기를 그의 가설로써 채워준다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진실' 따위는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어.

이 '가게'에서 제공하는 건 어디까지나 고객이 원하는 '맛',

요컨대 '해석'에 지나지 않아."

(pg 398)

중반까지는 제각기 다른 사건들을 다루는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가면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인물들이 모이게 되고 비밀에 싸여 있는 '셰프'의 진면모가 밝혀지는 구조라서 나름의 완결성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진짜 중요한 '정체' 같은 것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서 시리즈물로 나올 수도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배경 설정이 상당히 참신하며 현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짧게 다룬다는 형식의 제한으로 추리 자체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특정 사건은 읽다 보면 셰프의 해석이 나오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전말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후반부까지 흥미를 이어가기에는 충분했고,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상당해서 다 읽은 후의 소감도 좋았다.

저자가 젊은 편이라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들을 발표해 주리라 기대되는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쉬운 곤충책 - 가장 쉬운 곤충 안내서, 최신 개정판
한영식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미취학 시절의 기억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집에 있던 전집이다.

어린이용으로 생물의 생태와 모습이 큰 그림과 함께 설명된 책이었다.

밖에 나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그 전집을 정말 외울 정도로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까지 기억나는 생물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어릴 적 읽었던 그 전집이 생각났다.

물론 그 때의 책보다 퀄리티가 훨씬 좋지만, 곤충들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선명한 사진들과 간단하지만 꼭 알아야 할 정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책은 보통 아이에게 선물해 주려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만큼은 나도 보고 싶었다.

제목에 충실하게 박물관이나 아마존쯤 가야 볼까 말까 한 곤충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만나볼 수 있는 곤충 위주로 700종이 넘게 소개되어 있다.

책 초반에는 곤충이란 종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머리-가슴-배의 구조와 3쌍의 다리 같은 특징들 말이다.

언어 순화가 된 것인지,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태'라는 단어가 '탈바꿈'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다.

그래서 '불완전탈바꿈'이라는 단어가 눈에 익지는 않지만, 그 뜻은 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나 싶다.

(pg 147)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곤충 위주로 소개하기에 적합하게 곤충들을 계절별로 구분해 수록하고 있다.

그래서 겨울에 만나는 곤충은 다른 계절보다 양이 적지만,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 곤충들이 이렇게 많았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곤충은 도시화가 심할수록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물이기도 하지만, 먹이사슬 최하단부터 최상단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곤충에 관심을 갖고 곤충을 좋아하게 된다면 곤충을 보호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글씨가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이 더 중요한 책이라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에 이르기까지 두루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어서 포유류, 조류, 어류 등 다양한 종으로 계속 시리즈처럼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과 영혼 워프 시리즈 1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구입

인터넷 서점의 스팸 문자를 언젠가부터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우는데, 며칠 전 도착한 문자 속에 찍힌 저자의 이름 네 글자는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결재 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바쁜 주간임에도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술자리와 숙취 속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단편으로 유명한 저자답게 이번 책 역시 단편집으로 총 아홉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통 단편집의 경우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만을 소개하는데, 이 책은 정말 한 작품도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첫 포문을 여는 작품부터 인상적이다.

'크리스털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작품 속에서는 크리스털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상의 생명체가 그 기원부터 고등한 지능을 갖게 될 때까지 진화시키려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즉, 지구와 비슷한 행성 하나를 시뮬레이션 해 진화 속도를 매우 빠르게 돌리면서 그가 그들의 신이라는 점을 인식 시킨다면, 그들이 인류의 지성을 뛰어넘게 되는 순간이 올 때 현재 인류가 가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탄생시킨 생명이 인간을 닮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고, 결국 우리 자신이 풀어야 할 문제를 AI와 같은 또 다른 존재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인류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었다.

굉장히 하드한 SF 작품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짧지만 굉장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달에서 홀로 살아남아 지구로 떠나야 하는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거대한 슬링샷이라 할 수 있는 '스카이훅'이라는 장치가 중요하게 소개된다.

서사 자체가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스카이훅이라는 소재는 다른 SF 작품에서도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어지는 '너 혼자서?'라는 작품에는 일론 머스크의 숙원 사업 중 하나인 '뉴럴링크' 개념이 등장한다.

뉴럴링크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100% 공유할 수 있는 네쌍둥이의 이야기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경험의 축적일 텐데, 엄연히 다른 개체들이 기억을 공유한다고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까지 같을 수는 없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보통 하드한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귀여운 고양이가 등장하는 '꿈 공장'이라는 작품은 그중에서도 특히 돋보인다.

고양이에게 칩을 심어 뇌파를 조종함으로써 고양이의 본성을 제어하는 기술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고양이가 진짜 고양이로 살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한 IT 학생의 반란 이야기다.

반려동물이라는 친근한 소재로 꽤나 하드한 상상력을 펼쳐내고 있는 작품이기에 이 책에서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였다.

이 책은 물론 저자가 쓴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시니컬한 작품이라 생각했던 '크라이시스 액터스'도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는다.

기후 위기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진짜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 지역에 급파되어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로, 가짜 뉴스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정보 버블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운지를 제대로 꼬집어내고 있다.

중후반에 수록된 '미토콘드리아 이브'에서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기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성별, 종교 간 갈등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어 '내가 행복한 이유'에 수록되었던 '루미너스'라는 작품의 후속적인 '암흑 정수', 비슷한 사상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기묘한 세상에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방랑자의 궤도'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표제작인 '잠과 영혼'이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잠이라는 개념이 동물에게나 존재한다며 인간이 잠들면 의식이 끊어져 영혼이 죽은 것과 같으므로 바로 묻어버리는(!) 성격 급한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잠들었다 무덤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후미에 수록된 저자의 말에서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몸 역시 매 순간 같은 정보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불완전한 시스템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간단하게라도 줄거리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어차피 저자의 작품에 대한 감상은 그저 '놀랍고 재미있다'로 압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워프 시리즈를 믿고 읽는 시리즈라 인식하게 된 시작점도 결국 '그렉 이건'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었다.

발매 예정 목록에 저자의 이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책을 덮어도 매우 안심이 된다.

발매 텀이 긴 시리즈지만, 덕분에 많은 저자와 작품을 만나고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미월드 도와줘! 초등 신문 3 : 절대 읽지 마, 신문 - 인물편 요미월드 도와줘! 초등 신문 3
김지균 지음, 이정수 그림, 요미월드 원작 / 서울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도 벌써 세 번째 만나는 시리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권해주게 되는데, 부모 입장에서 좀 읽었으면 싶은 책이 아이 취향에도 맞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는 벌써 세 권째 아이에게 선물하고 있으니 그 두 가지 요건을 잘 충족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표지에 히틀러와 스티브 잡스, 김연아가 동시에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번 3권의 콘셉트는 '인물'이다.

1권과 2권이 여러 주제들을 무작위적으로 다루고 있었다면 이번 3권에서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과학과 스포츠 등으로 나누어 아이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인물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물론 '위인'이 아닌 '인물'이기에 꼭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표지에서도 등장한 히틀러는 물론이고 오사마 빈 라덴이나 학살자 폴 포트까지 인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인물들도 다루고 있다.

또한 BTS나 샘 올트먼, 페이커 이상혁처럼 최근에 활약한 인물들도 있어서 아이들이 먼 과거의 인물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인물이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꽤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도 좋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나 만화와 줄글이 적절하게 잘 합쳐진 형식이라 생각한다.

학습만화에 익숙한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책을 접하면 만화부터 읽게 마련이다.

우리 딸도 그래서 '또 글은 안 읽고 만화만 보는구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줄글 부분도 꽤나 잘 읽는다.

만화 부분의 길이가 두 쪽 분량이라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일단 만화를 통해 흥미를 끌면 뒤에 있는 줄글을 통해 정보를 더 얻고 싶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책을 잘 읽었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퀴즈까지 있어서 책 좋아하는 아이들의 '아는 척' 욕구를 제대로 자극해 줄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집은 이런 책이 오면 한동안 아이의 '내가 퀴즈 내 볼게'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시리즈들은 신간 소식이 나오면 부모로서 욕심이 난다.

내용이 꽤 많은 편이라 아이가 좋아한다면 오래도록 잘 읽을 책이므로 아이들 독서 습관을 잡아주고 싶을 때 선택지로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선물

모든 선물은 기분이 좋지만 특히 책 선물은 유독 기분이 좋다.

상대의 취향에 맞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받은 사람이 읽지 않을 리스크도 꽤 커서 선물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 받은 책이 내 취향에 잘 맞을 때의 기쁨도 굉장히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는 점부터 언급하고 싶다.

저자의 이력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굉장히 특색 있다.

공장 노동자로 살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올렸던 것이 인기를 끌자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시작이 인터넷이라서 그런지 작품들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

300페이지 중반으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무려 24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사가 너무 짧은 이야기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일단 작품들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나름의 완결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읽고서 '이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들이 장르도 다르고 그 소재도 제각기 다 다르다는 점도 장점이다.

표제작이자 포문을 여는 작품인 '회색 인간'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간단히 요약하면 기이하게 끌려간 인류가 고된 노동 속에서도 예술을 꽃피운다는 이야기인데 그 결말이 상당히 인상 깊다.

사실 먹고사는 데에 예술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시대가 된 지금, 경제 활동을 모두 AI가 도맡아 하는 세상이 오면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는 곧 예술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생성형 AI라는 단어조차도 없을 시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도착한 지점이 현재에 예상할 수 있는 인류 미래와 유사하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저 기발한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수록작 중에는 이 작품처럼 고립된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를 상상한 작품들이 꽤 많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다 다 같이 멸망하는 결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애를 발휘하며 살아남는 결말도 모두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둘 다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를 제거할 수 있는 잔인함도,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나누고 상대와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지혜도 모두 인간이 가진 본성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아직 페이지가 남아 있을 때 도서관을 들러 저자의 다른 책들을 빌려왔다.

창작열이 상당한 저자답게 이미 나온 책들이 꽤 많아서 당분간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여유롭게 탐험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