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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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대사를 외울 정도로 봤음에도 혼자 술 마실 때 볼 게 없다 싶으면 또 보는 그 영화의 원작이 담긴 단편집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SF, 특히 장편보다는 단편으로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 그런 작가의 단편이 20작품이나 실려 있어서 단편집이지만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자랑한다.

하지만 20가지의 이야기에서 각기 다른 상상력이 펼쳐지므로 살짝 무겁다는 점만 제외하면 읽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소감은 수록작들이 상당히 괜찮아서 작가의 명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작가가 1982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품들이 최소한 40년 전 작품이라는 의미인데 그럼에도 수록된 작품들이 2023년에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재미의 바탕은 기발한 상상력에 있었다.

냉전 시대를 살다 간 작가답게 작품의 배경으로 미-소 냉전의 연장과 그로 인한 핵전쟁 등 인류가 초래한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러면서도 작품의 소재나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작품마다 조금씩 달랐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간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진화의 산물로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가 등장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전쟁이나 기후 변화 등 우리 스스로 우리의 세계를 끝장낸다면 어떻게 될까?' 등등 SF의 단골 주제이면서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이는 우리가 자초한 바요. 우리가 전쟁을 일으켰고 지구를 변화시켰소.

파괴한 것이 아니라 변화시킨 거요. 너무도 달라서 스스로도 살아갈 수 없을 만큼."

(pg 401, 단기 체류자의 행성 中)

"우리는 우리 진화 방향의 최종 산물인 겁니다. 공룡처럼요.

지성을 극한까지 추구한 겁니다. 어쩌면 너무 멀리까지 추구한 걸지도 모르죠.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인지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해서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pg 462, 황금 사나이 中)

고문실이나 절멸 수용소는 설득이 먹히지 않았을 때나 필요한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설득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공포로 다스리는 경찰국가는 전체주의의 기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에나 등장했다.

과거의 전체주의는 완벽하지 않았다.

관료 체제는 실제로 삶의 모든 측면에 간섭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소통의 방식 자체가 진보했다.

진정으로 성공적인 전체주의 국가가 바로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pg 700, 얀씨의 허울 中)

책 후미에 작가 노트가 수록되어 작품들이 처음 출간된 시기와 더불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소회도 엿볼 수 있었다.

작가가 집필하면서 어떤 고민들을 했었는지, 출간 당시에 편집자 및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었었는지도 언급되어 있어서 작품을 막 읽고 난 스스로의 감상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두 번째 변종'이라는 작품의 작가 노트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려고 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언급되어 있다.

"내 본질적인 주제, 즉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으로 보이는(인간인 척하는) 것 뿐인가?'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직시해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총체적으로도 확신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을 때까지, 내 생각에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중략 -

그리고 해답을 얻는 일은 정말로 힘들다."

(pg 778)

표제작을 비롯해 이미 영화로 제작된 작품들이 꽤 많은데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제외하면 작품의 흐름은 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도 시대가 갖는 한계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설정들도 꽤 보여서 스토리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것은 아무래도 매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기인데 영상 통화를 하러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거나 로봇들이 활개를 치는데 AI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직업들에 인간들이 종사하는 것 등이다.

당시의 일반 대중과 현대의 일반 대중이 경험하는 과학 기술의 간극은 너무도 클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부분에 세부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고자 했던 질문들에 집중한다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단편집을 접했으니 장편을 읽어볼 차례인 것 같다.

이미 그의 장편 대표작 중 하나가 책장에 꽂혀 있어 안심이 된다.

국내에 발간된 작품도 많아서 앞으로 작가의 책 서평을 꽤 자주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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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2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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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6권으로 구성된 '사일로 연대기'라는 시리즈 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다.

직관적으로는 무슨 뜻인가 싶은 단어인데, 친숙한 의류 소재를 뜻하는 그 울이라고 보면 된다.

다 읽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울이라는 소재가 작품 내용 전반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울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SF 소설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포를 당하면 재미가 매우 반감될 것 같은 작품인지라 최대한 주의하며 작성하려 했으나, 작품의 배경이나 감상을 소개하려면 부득이 내용 이야기를 곁들이게 될 것 같으므로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일단 이 작품은 세계관이 아주 매력적이었다는 언급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표면의 환경이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사일로'라고 하는 총 144층에 이르는 긴 원통형 모양의 지하 시설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그것도 잠시 대피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수백 년 이상을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지하 시설을 벗어나지 않아도 인류가 절멸하지 않도록 심층부에는 자원 채취 및 전기 생산을 위한 기계 설비들이, 중간에는 농업 및 인류 재생산(출산 시설 및 보육원) 관련 시설들이, 상층부로 가면 통신과 보안을 담당하는 IT 부서와 시청, 보안관 등 행정 인력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층부에서는 외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밖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이 카메라가 오염 물질로 더러워지면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이를 닦게 하는 이른바 '청소형'을 실시하고, 청소가 끝나면 외부에서 숨져 그 시신이 풍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의 시야에 남아 남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소재로 활용된다.

주변의 세상은 계층화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보였다.

상층부는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기는 생과일주스를 당연하게 여기며,

흐려져가는 풍경을 걱정했다.

그 아래에 살면서 정원에서 일하거나 가축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흙과 나뭇잎과 비료로 이루어진 자기들만의 세계 주위를 돌았다.

그들에게 바깥 풍경이란 청소가 이루어질 때까지 무시해도 좋은, 지엽적인 무엇이었다.

그리고 심층부, 기계 공장과 화학 연구소, 끌어 올리는 석유와 삐걱거리는 장치들,

기름때 묻은 손톱과 힘든 일의 땀 냄새로 이루어진 실무적인 세상이 있었다.

(1권, pg 156)

특이하게도 본 1-2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줄리엣은 1권 중반 이후에나 등장한다.

줄리엣이 작품을 이끌어가기 전 두 챕터는 홀스턴과 잔스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단순히 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한 인물들 치고는 매력이 상당하다.

이 두 인물이 퇴장하게 되는 부분까지가 1권의 중반 정도에 해당되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독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연 사일로 밖은 정말 위험한가?

그리고 남겨진 인류는 정말 그들뿐인가?

1권에서는 이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면서 끝이 나는데, 이 부분 역시 반전이라면 반전있게 제시됨으로써 바로 2권을 들추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좁은 지하 공간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저 바깥,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은 왜 여기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있는 걸까?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저 멀리에서 무너져가는 높은 사일로들을 지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1권, pg 189)

줄리엣은 이 폐쇄적인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욕구는 그 작은 균열을 통해서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진실에 대한 추구야말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욕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생을, 아니 조상 대대로 속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하던 터부가 속삭임으로 이동했다.

금지된 생각들이 혀끝에서 태어나서 허공을 헤엄쳐 다녔다.

(2권, pg 81)

시리즈물이니 당연히 후속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본 작품만 놓고 볼 때 어떻게 끝나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스포 없이 기술하자면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완결성 있게 결말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충분했다.

마치 재밌는 마블 영화의 한 편을 본 것처럼 당연히 이어지겠구나 싶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남은 모든 책과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도

읽을 사람이 없고 갈라진 구름 사이로 올려다볼 사람이 없으면 무의하다고 말하리라.

(2권, pg 336)

출판사의 책 소개에 보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괴물 같은 작품'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의 몰입도가 상당했다.

읽을 책들이 쌓이고 있는 중인데도 이 시리즈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빨리 사게 될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2권짜리 프리퀄이 하나, 시퀄이 하나 해서 총 6권으로 구성되는 모양이다.

이미 미드로도 제작되었다고 하고 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조만간 미드도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충분히 덕질(?)할 수 있는 좋은 SF 작품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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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1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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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6권으로 구성된 '사일로 연대기'라는 시리즈 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다.

직관적으로는 무슨 뜻인가 싶은 단어인데, 친숙한 의류 소재를 뜻하는 그 울이라고 보면 된다.

다 읽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울이라는 소재가 작품 내용 전반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울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SF 소설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포를 당하면 재미가 매우 반감될 것 같은 작품인지라 최대한 주의하며 작성하려 했으나, 작품의 배경이나 감상을 소개하려면 부득이 내용 이야기를 곁들이게 될 것 같으므로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일단 이 작품은 세계관이 아주 매력적이었다는 언급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표면의 환경이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사일로'라고 하는 총 144층에 이르는 긴 원통형 모양의 지하 시설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그것도 잠시 대피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수백 년 이상을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지하 시설을 벗어나지 않아도 인류가 절멸하지 않도록 심층부에는 자원 채취 및 전기 생산을 위한 기계 설비들이, 중간에는 농업 및 인류 재생산(출산 시설 및 보육원) 관련 시설들이, 상층부로 가면 통신과 보안을 담당하는 IT 부서와 시청, 보안관 등 행정 인력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층부에서는 외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밖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이 카메라가 오염 물질로 더러워지면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이를 닦게 하는 이른바 '청소형'을 실시하고, 청소가 끝나면 외부에서 숨져 그 시신이 풍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의 시야에 남아 남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소재로 활용된다.

주변의 세상은 계층화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보였다.

상층부는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기는 생과일주스를 당연하게 여기며,

흐려져가는 풍경을 걱정했다.

그 아래에 살면서 정원에서 일하거나 가축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흙과 나뭇잎과 비료로 이루어진 자기들만의 세계 주위를 돌았다.

그들에게 바깥 풍경이란 청소가 이루어질 때까지 무시해도 좋은, 지엽적인 무엇이었다.

그리고 심층부, 기계 공장과 화학 연구소, 끌어 올리는 석유와 삐걱거리는 장치들,

기름때 묻은 손톱과 힘든 일의 땀 냄새로 이루어진 실무적인 세상이 있었다.

(1권, pg 156)

특이하게도 본 1-2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줄리엣은 1권 중반 이후에나 등장한다.

줄리엣이 작품을 이끌어가기 전 두 챕터는 홀스턴과 잔스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단순히 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한 인물들 치고는 매력이 상당하다.

이 두 인물이 퇴장하게 되는 부분까지가 1권의 중반 정도에 해당되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독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연 사일로 밖은 정말 위험한가?

그리고 남겨진 인류는 정말 그들뿐인가?

1권에서는 이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면서 끝이 나는데, 이 부분 역시 반전이라면 반전있게 제시됨으로써 바로 2권을 들추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좁은 지하 공간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저 바깥,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은 왜 여기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있는 걸까?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저 멀리에서 무너져가는 높은 사일로들을 지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1권, pg 189)

줄리엣은 이 폐쇄적인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욕구는 그 작은 균열을 통해서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진실에 대한 추구야말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욕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생을, 아니 조상 대대로 속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하던 터부가 속삭임으로 이동했다.

금지된 생각들이 혀끝에서 태어나서 허공을 헤엄쳐 다녔다.

(2권, pg 81)

시리즈물이니 당연히 후속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본 작품만 놓고 볼 때 어떻게 끝나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스포 없이 기술하자면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완결성 있게 결말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충분했다.

마치 재밌는 마블 영화의 한 편을 본 것처럼 당연히 이어지겠구나 싶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남은 모든 책과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도

읽을 사람이 없고 갈라진 구름 사이로 올려다볼 사람이 없으면 무의하다고 말하리라.

(2권, pg 336)

출판사의 책 소개에 보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괴물 같은 작품'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의 몰입도가 상당했다.

읽을 책들이 쌓이고 있는 중인데도 이 시리즈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빨리 사게 될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2권짜리 프리퀄이 하나, 시퀄이 하나 해서 총 6권으로 구성되는 모양이다.

이미 미드로도 제작되었다고 하고 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조만간 미드도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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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내 옆에 앉아! 푸른 동시놀이터 105
연필시 동인 엮음, 권현진 그림 / 푸른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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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림이 많은 책은 혼자서도 제법 잘 읽는 편이라 책 보는 시간이 꽤 많은데 생각해 보니 운문 쪽은 거의 읽어준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아이와 함께 동시를 읽어보고 싶어 접하게 되었다.



파스텔 톤의 따뜻해 보이는 표지가 예쁘다.

나온 지 20년이 넘은 책이라 하는데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요즘 아이들이 보기에도 예쁜 디자인으로 새롭게 리뉴얼이 되었다.

책 안쪽에도 삽화가 꽤 많아서 아이들이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글은 읽을 때 쓴 사람의 의도를 생각해야 되지만 시는 그 중요성이 더 큰 것 같다.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그대로 풀어쓴 산문과는 달리 운문에서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숨겨진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기보다는 구절을 곱씹고 생각하며 읽어야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하기에 산문보다 길이는 짧아도 난이도는 더 어려운 읽기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아래의 시에서 까치가 햇살을 입에 물었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햇살은 입에 물 수 있는 객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창한 어느 날 나무 위에서 반갑게 지저귀는 까치를 떠올린다면 해당 구절이 무슨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부모가 읽어주면서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본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pg 21)

90여 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시라는 특성상 굉장히 많은 시가 실려 있는 편이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통독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400여 편이 넘는 서평을 써왔지만 시집을 읽고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아이 덕분에 시집을 읽고 감상을 남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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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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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는 학자지만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이 인기를 끌 시기가 마침 정신적으로 지금의 나를 형성하게 한 20대 시절이었다.

덕분에 그의 초기 저술들을 꽤 읽었던 기억도 나고 그 유명한 '국방부 불온서적'에 선정되기 전에 군대에서 그의 저작을 읽었던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읽고 나서 다음 휴가 때 집으로 반출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압수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하간 그의 이름은 어느새 40을 앞둔 나의 20대 시절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고, 유튜브를 보다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별 고민 없이 결제하게 되었다.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측면에서 그의 사상들은 이미 나온 책들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발간된 책들에서 주장했던 내용들을 식재료라는 아주 일상적인 주제들로 구분해 다시 풀어낸 것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미 그의 저작 대부분을 읽었다면 그리 신선할 것은 없는 내용이지만, 읽기에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책이라 그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장하준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첫 시작의 문을 여는 '마늘'이라는 식재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한국인을 정의할 단 한 가지의 식재료를 꼽으라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이 식재료를 통해 그는 경제학이 우리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역설한다.

경제학에는 많은 분파가 있고 각 분파마다 인간의 특성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주류 정치에 어떤 경제학 이론이 반영되는가가 바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의미다.

경제학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 중략 -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pg 33)

기존의 저작들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온 '사다리 걷어차기'에 관한 이야기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책이 나온 지 2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유 무역'이란 단어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 영화가 지금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스크린쿼터라는 제도도 영화 산업을 보호하던 나라라는 것을 떠올려봄직한 대목이다.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인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재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 시장 경제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 중략 -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테크놀로지, 국제 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 개인의 노력보다 -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의 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 경영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pg 140)

어떨 때는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기도 한다. 더 학술적인 용어를 동원하자면

'관념의 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학계, 국제 언론, 정책 싱크 탱크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 스스로 자유 무역이 자국에 좋은 것이라 생각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 중략 - 힘은 보복이 두려워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것이 자기 이익에 만한다고 믿도록 만들기도 한다.

(pg 174)

기존 책들에서는 그리 강조되지 않았었던 편견에 대한 부분도 이번 책에서는 언급이 되고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코코넛'을 제배하는 지역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가 열대 지방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편견이었다.

언젠가 일하던 조직의 기관장을 모시고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그분도 대낮에 길에 누워 쉬는 사람들을 보고는 '저러니 경제 개발이 안되지' 하며 혀를 차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날씨에 냉방 시설도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 열심히 일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인 것 아닌가.(물론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사람이 죽어나가도 '하지만 생산성은 높았죠?'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은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이민 온 사람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이민을 왔다고 갑자기 없던 기술이 생기거나

건강이 급격히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설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pg 89)

높은 비율로 여성들이 담당하게 되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편견의 하나라 할 수 있다.

GDP에 무급 돌봄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데,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설명한다.

즉 여성 둘이 서로의 아이를 상대에게 돌보게 한 뒤 그 대가로 서로에게 같은 금액을 지불할 경우, 서로의 금전적인 이익이나 아이 한 명을 돌본다는 노동 투입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이 활동은 생산 활동으로 GDP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주로 여성이 담당해왔다고 여겨지는 돌봄 활동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혹여 급여가 지급된다 하더라도 돌봄 노동 종사자들의 임금이 낮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편견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레시피'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여기서 음식 이야기는 그저 운을 떼는 용도일 뿐이고 본문은 경제학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단순히 가벼운 소재에서 시작할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도 기존의 저작들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재미도 있는 편이다.(이때의 재미에는 '유머'로서의 재미도 포함된다.)

음식처럼 경제학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편식하지 말고 여러 시각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는 충고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오랜만에 저자의 책을 읽었는데 역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저자의 주장이 사회적으로도 꽤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의 반향은 없는 것 같다.

주류경제학의 파워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봐야 무슨 변화가 있겠냐는 체념이 지배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때가 벌써 20년 전인데 정치권에서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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