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2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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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6권으로 구성된 '사일로 연대기'라는 시리즈 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다.

직관적으로는 무슨 뜻인가 싶은 단어인데, 친숙한 의류 소재를 뜻하는 그 울이라고 보면 된다.

다 읽은 지금 생각해 보면 울이라는 소재가 작품 내용 전반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울이라는 제목으로 쓰인 SF 소설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포를 당하면 재미가 매우 반감될 것 같은 작품인지라 최대한 주의하며 작성하려 했으나, 작품의 배경이나 감상을 소개하려면 부득이 내용 이야기를 곁들이게 될 것 같으므로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일단 이 작품은 세계관이 아주 매력적이었다는 언급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표면의 환경이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사일로'라고 하는 총 144층에 이르는 긴 원통형 모양의 지하 시설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그것도 잠시 대피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수백 년 이상을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지하 시설을 벗어나지 않아도 인류가 절멸하지 않도록 심층부에는 자원 채취 및 전기 생산을 위한 기계 설비들이, 중간에는 농업 및 인류 재생산(출산 시설 및 보육원) 관련 시설들이, 상층부로 가면 통신과 보안을 담당하는 IT 부서와 시청, 보안관 등 행정 인력들이 자리하고 있다.

상층부에서는 외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밖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이 카메라가 오염 물질로 더러워지면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이를 닦게 하는 이른바 '청소형'을 실시하고, 청소가 끝나면 외부에서 숨져 그 시신이 풍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의 시야에 남아 남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소재로 활용된다.

주변의 세상은 계층화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보였다.

상층부는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기는 생과일주스를 당연하게 여기며,

흐려져가는 풍경을 걱정했다.

그 아래에 살면서 정원에서 일하거나 가축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은

흙과 나뭇잎과 비료로 이루어진 자기들만의 세계 주위를 돌았다.

그들에게 바깥 풍경이란 청소가 이루어질 때까지 무시해도 좋은, 지엽적인 무엇이었다.

그리고 심층부, 기계 공장과 화학 연구소, 끌어 올리는 석유와 삐걱거리는 장치들,

기름때 묻은 손톱과 힘든 일의 땀 냄새로 이루어진 실무적인 세상이 있었다.

(1권, pg 156)

특이하게도 본 1-2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줄리엣은 1권 중반 이후에나 등장한다.

줄리엣이 작품을 이끌어가기 전 두 챕터는 홀스턴과 잔스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단순히 세계관을 이해시키기 위한 인물들 치고는 매력이 상당하다.

이 두 인물이 퇴장하게 되는 부분까지가 1권의 중반 정도에 해당되고, 여기까지 읽었다면 독자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연 사일로 밖은 정말 위험한가?

그리고 남겨진 인류는 정말 그들뿐인가?

1권에서는 이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면서 끝이 나는데, 이 부분 역시 반전이라면 반전있게 제시됨으로써 바로 2권을 들추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좁은 지하 공간에서 사는 그들의 삶이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저 바깥, 저 언덕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들은 왜 여기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있는 걸까?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저 멀리에서 무너져가는 높은 사일로들을 지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1권, pg 189)

줄리엣은 이 폐쇄적인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욕구는 그 작은 균열을 통해서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진실에 대한 추구야말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욕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생을, 아니 조상 대대로 속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하던 터부가 속삭임으로 이동했다.

금지된 생각들이 혀끝에서 태어나서 허공을 헤엄쳐 다녔다.

(2권, pg 81)

시리즈물이니 당연히 후속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본 작품만 놓고 볼 때 어떻게 끝나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스포 없이 기술하자면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완결성 있게 결말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충분했다.

마치 재밌는 마블 영화의 한 편을 본 것처럼 당연히 이어지겠구나 싶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남은 모든 책과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도

읽을 사람이 없고 갈라진 구름 사이로 올려다볼 사람이 없으면 무의하다고 말하리라.

(2권, pg 336)

출판사의 책 소개에 보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괴물 같은 작품'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의 몰입도가 상당했다.

읽을 책들이 쌓이고 있는 중인데도 이 시리즈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빨리 사게 될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2권짜리 프리퀄이 하나, 시퀄이 하나 해서 총 6권으로 구성되는 모양이다.

이미 미드로도 제작되었다고 하고 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조만간 미드도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충분히 덕질(?)할 수 있는 좋은 SF 작품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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