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대사를 외울 정도로 봤음에도 혼자 술 마실 때 볼 게 없다 싶으면 또 보는 그 영화의 원작이 담긴 단편집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SF, 특히 장편보다는 단편으로 굉장히 유명한 작가인데 그런 작가의 단편이 20작품이나 실려 있어서 단편집이지만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자랑한다.
하지만 20가지의 이야기에서 각기 다른 상상력이 펼쳐지므로 살짝 무겁다는 점만 제외하면 읽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소감은 수록작들이 상당히 괜찮아서 작가의 명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작가가 1982년에 사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품들이 최소한 40년 전 작품이라는 의미인데 그럼에도 수록된 작품들이 2023년에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재미의 바탕은 기발한 상상력에 있었다.
냉전 시대를 살다 간 작가답게 작품의 배경으로 미-소 냉전의 연장과 그로 인한 핵전쟁 등 인류가 초래한 아포칼립스 이후의 세계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러면서도 작품의 소재나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작품마다 조금씩 달랐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간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진화의 산물로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가 등장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전쟁이나 기후 변화 등 우리 스스로 우리의 세계를 끝장낸다면 어떻게 될까?' 등등 SF의 단골 주제이면서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