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구
윤재호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이 책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작품이다.

보통 책을 읽은 후 악평을 남길 것 같으면 글 자체를 쓰지 않는 것을 선호하지만 작품이 미완으로 끝났고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라 하니 다음에는 보다 좋은 작품이 탄생했으면 하는 마음에 한 글자라도 남겨보려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느낌은 기시감이었다.

작품의 배경 설정에 어디선가 많이 본 것들을 섞어놓은 느낌이 강했다.

지표면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 그 행성에 있는 막강한 토착 생물과 희소한 자원, 지하에 굴을 파고 숨어서 활동하는 반란군은 누가 보더라도 '듄'의 설정에서 따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명확한 신분 계급 사회와 이로 인한 차별, 지배 계층은 높은 곳에 있는 화려한 도시에 살고 아래에 있는 하층민들은 그곳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노동으로 부려지며 언젠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동경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 어쩌다 가끔 제비뽑기나 격투 대회를 통해 그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설정은 '알리타'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아예 창의적인 새로운 배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기에 설정 자체가 다른 작품과 비슷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개에 있어서도 예측 가능성이 높다면 이는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싸우면서 "쳇! 정말 약해 빠졌군." 따위의 대사를 내뱉는 적들은 지나친 식상함을 불러왔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인간의 모습을 한 지배계층이 사실 인간을 먹이로 삼아 영생을 꾀하는 다른 외계 종족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작품의 분위기도 꽤 달라지고 몰입도도 좋아졌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해성이 싸움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데 이 부분이 마치 옛날 소년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름 재미있었다.

SF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마법사도 나오고 외계 생물체도 마치 판타지에 나올법한 괴물의 형태여서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다.

"우린 자유롭지 못한 이 세상을 다시 바로 잡으려는 거예요.

스스로 결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나요? 생각해 봐요.

당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 말이에요."

(pg 179)

자라온 배경과 삶의 궤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유'라는 가치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는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매력적이었다.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인데 책을 덮은 뒤에는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느낌이 들게 끝이 난다.

이제 모든 인물들이 시작점에 선 듯하고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자는 더 큰 야망을 품고 있다.

배경이나 심정 묘사가 거의 없고 사건 위주의 서술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후속편이 나올 예정이라 하니 후속작에서는 이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펼쳐지리라 생각한다.

작가가 본래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영상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안고 집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이 작품이 영상화의 기회를 만날 것 같다는 기대는 들지 않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대사 부분은 꼭 전문 작가의 손을 거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요즘 책 답지 않게 오타나 비문이 꽤 많은 편이므로 다음 판본이 나온다면 오탈자 검수를 보다 꼼꼼하게 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제사의 사랑
이순원 지음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는 추리소설을 만났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인 '박제사'가 등장하는 것부터 신선하다.

작품의 주인공인 박인수는 두 자녀를 둔 남성으로 한 동물연구소에서 동물 사체를 박제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평소와는 달리 새벽에 집에 가게 되었는데 아내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했고 두 줄이 떴다는 걸 알게 된다.

정관 수술을 받은 본인의 아이일 리 없어 아내를 다그쳤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돌연 자살해버린다.

대체 어떤 사내이길래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그 남자의 비밀을 지키려 했을까를 절박하게 알고 싶었던 박인수는 아내의 핸드폰에 남겨진 문자를 토대로 나름의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평생에 없었던 한 경주마의 박제 의뢰를 받는데, 그 말을 너무도 아꼈던 말의 주인이 자신이 조각을 한 경험이 있으니 박제를 돕고 싶다며 박인수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박인수가 아내의 죽음에 담긴 비밀을 밝혀내면서 평생의 걸작이 될 말 박제를 만드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수인...

당신과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나는 꼭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 오늘의 일을 돌려줄 것이다.

(pg 17)

굳이 생물학적인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남성에게 있어서 자신의 배우자가 타인의 아이를 밴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박인수는 그 결과 배우자의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할 길도 없어 오히려 아버지인 자신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분노에 찬 박인수는 아내가 남긴 흔적을 뒤쫓지만 그 흔적에서 오히려 아내의 힘들었던 삶의 모습들을 찾아내면서 생전에 아내의 상처를 더 보듬어주지 못했던 박인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아내를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다.

배신의 분노와 안타까움과 연민이 함께 남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불쌍하다가도 분노가 치밀고, 용서 못 할 배신감이 치밀다가도

다시 한없이 불쌍해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옆에 있으면 어깨라도 붙잡고 펑펑 울고 싶을 만큼 마음이 여리고 아픈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단호한 부분이 있었다.

(pg 71)

독특한 점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건 해결 못지않게 말 박제를 만드는 일도 꽤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처음 가죽을 벗길 때부터 최종 도색에 이르기까지 박제의 전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만드는 것이라는 게 잘 느껴졌다.

아내의 죽음을 밝혀내고자 했던 조사로 점차 아내의 삶을 알게 되었듯, 말의 죽음을 기리려던 말 박제는 말이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아내게 되었다.

작품 뒤 해설에서도 아내의 삶과 말 박제가 동일한 선상에서 다뤄지고 있음을 짚어주고 있다.

말을 박제하려면 살아 있을 때 말의 모습을 정확히 알아야만 한다.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의 진상에 접근하는 일은

아내의 지난 시간을 되짚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pg 308-309, 작품 해설 중)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리얼리티를 잘 살리고 있어서 형사도 아닌 박인수가 미스터리를 직접 해결하는 전개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경찰의 수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나름 반전도 있는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도입에서 분노감에 휩싸여 복수를 다짐했던 박인수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야 모든 전말을 알게 되지만 그때 이미 복수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허망해진 가슴을 안고 다시 박제사의 삶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박인수의 마음에 가을이 빈 들판처럼 유독 허망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였다.

(pg 299)

추리소설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피비린내 나는 살인 현장이나 냉철한 탐정 같은 캐릭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읽는 동안 굉장히 잔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날씨와 환경적인 묘사도 풍부하고 박인수의 내면 묘사도 심경 변화에 충실하게 잘 서술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읽은 후 여운도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일본 느낌 물씬 풍기는 천편일률적인 추리소설들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면 한국 특유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본 작품이 꽤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을 보고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한 분이 떠올랐다.

그 분은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있으면 이를 영상 하나로 압축해서 알려주는 유튜브를 시청한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게 원작을 본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나? 그렇게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러한 영상 시청 습관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영상 콘텐츠를 볼 때 위에서 소개한 압축 유튜브 영상 뿐 아니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회차를 스킵 하는 것, 1.5배속이나 2배속 등 빠른 속도로 재생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목적을 가진 행위라고 보고 있다.

시간을 활용함에 있어서도 가성비를 찾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가속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OTT 서비스의 확대 보급이다.

어느 OTT 서비스든 여가 대부분을 콘텐츠 시청에 쏟아부어도 보고 싶은 영상을 다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내가 본 콘텐츠의 개수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많이 보면 볼수록 콘텐츠당 단가가 싸지는 '구독' 형태의 상품은 사람들에게 온전한 속도로 콘텐츠에 집중할수록 손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는 동시에 상품을 받으면서,

대가를 치르고 무언가 얻은 기분을 실감한다.

그만큼 상품을 가치있게 여기고 낭비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월정액 자동이체로 한 달 이용권을 구입할 때는 돈을 지불한다는 감각이 떨어진다. 그러니 영상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pg 62)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콘텐츠를 접하는 태도가 우리가 과거에 말하던 '감상'의 형태와는 다른, '소비'와 가까운 형태라는 점을 지적한다.

감상은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반면, 소비는 무언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부가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작품 자체를 즐기기 위해 시청한다기보다는 지금 유행하는 작품을 몰라서 대화에 낄 수 없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부하듯이, 숙제하듯이 보는 행동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술 - 감상 - 감상 모드

오락 - 소비 - 정보 수집 모드

(pg 58)

물론 이러한 소비 행태를 통해 자신이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발견하게 되면 다시 보거나 반복해서 보면 그만이다.

실제로 콘텐츠를 빠르게 보는 사람들의 경우 좋아하는 콘텐츠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경향도 함께 관찰된다고 한다. (이 역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봐도 비용이 증가하지 않는 OTT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 해당 콘텐츠 제작자가 의도한 바를 온전히 느끼는 것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다.

대사가 없는 부분을 스킵하면 대사가 없는 와중에 표현되었던 표정 연기나 감정 연기는 모두 건너뛰는 셈이다.

때로는 말보다 표정이, 행동 하나가,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 사물 하나가 가지는 의미가 있을텐데 이런 것들을 모두 건너뛰고 결말과 줄거리만 알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아래 구절의 '완'은 '완급 조절'의 '완'이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완(緩)'을 시청자가 마음대로 바꿔 보는 것이

바로 빨리 감기, 건너뛰기다.

여기서 각본가의 의도는 무시당한다.

(pg 69)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쉬운' 컨텐츠만 찾게 되는 경향도 함께 증가한다.

대사를 통해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 속 대사가 최근 30년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상업 작품이라면 다양한 이해력을 가진 관객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누구의 기분도 해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제작자의 배려가 필수라는 의미에서 '소수에 대한 존중',

'다양성에 대한 관용'을 포함하는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예의나 규범으로 여겨진다.

정보 이해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베리어 프리,

즉 '모두에게 친절한 작품'이야말로 '좋은 작품'이다.

(pg 98-99)

SNS의 발달로 작품 속 불편함을 콘텐츠 제작자에게 다이렉트로 피드백 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 심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 제작자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도 깊게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은 충분히 파고 들며 즐길 수 있는 깊이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놀랍게도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 없으니 앞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이 자신의 콘텐츠가 스킵되거나 빨리 재생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본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작품의 공급자 측(영화 제작사 등)이 주도해서 진행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중략 -영화관에서 상영할 뿐 아니라 텔레비전 방영권, 영상 배급권 등을 판매하는 편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영상 배급사 뿐만 아니라 제작사이기도 한 넷플릭스나 아마존 혹은 TV 방송국이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추가한 것도

역시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이다. 왜 그랬을까?

상당한 수의 관객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pg 220)

저자의 표현을 빌면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고 공급자가 이를 수익의 원천으로 인지하고 있다면 콘텐츠 제작자들 역시 따라가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처음 카세트 테이프가 나왔을 때 라이브 음악이 아닌 음악은 통조림 음악이라며 무시당했던 것이나, 처음 TV가 나왔을 때 극장의 큰 화면과 비교할 수 없는 저열한 화질과 음질로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하겠냐는 비아냥을 들었다는 것을 그 예시로 들고 있다.

실로 놀라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4장까지는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각하고 있어서 저자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5장인 결말에서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고 이 형태가 우리의 콘텐츠 이용 습관의 미래 모습이라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결말을 읽고 나니 나 역시 이러한 행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안 좋게 생각했던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됐든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콘텐츠를 접하는데 이를 '감상'하든 '소비'하든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요즘 긴 글을 소화하지 못하는 문해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영상의 이해도도 점차 낮아지는 것이 과연 인류에게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꼰대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책 자체는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며 설문이나 인터뷰 인용이 많아 금세 읽을 수 있다.

(K-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일본 저자의 책이지만 국내 드라마 사례도 엄청 많이 등장해 반가운 느낌도 들었다.)

이 책 역시 저자가 제시한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을 한다면 사실 마지막 5장만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가 여기까지도 이해해 줄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사기와 반창고 - 어린이를 위한 의학 지식 사전
메이커 보르더만 지음, 벤저민 르로이 그림, 정신재 옮김, 김지은 감수 / 산수야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에게 병원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어릴 때에는 딱히 아프지 않더라도 예방주사 때문에 자주 가게 되니 자연스럽게 병원을 무서워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플 때 병원을 찾아야 덜 아플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이 병원이라는 곳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증상들에 대한 소개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를 어린이 눈 높이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이들이 흔히 경험하는 감기나 타박상 같은 신체적인 질환들 외에도 우울증이나 불면증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어린이들도 정신질환에 꽤 많이 노출된다고 하니 단순히 몸이 아프지 않은 것뿐 아니라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질병'이라고 보긴 좀 어렵지만 알레르기나 코피, 야뇨, 잦은 방귀 등 병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설명해두고 있어서 단순한 질병의 나열이 아닌 아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신체적인 불편함을 종합적으로 잘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식구들 전체가 봄이면 늘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이 책에서 알레르기에 대해 쉽게 소개해 주고 있어서 아이와 함께 읽으며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었다.

6살인 우리 딸에게는 다소 글이 많아 보이긴 하나, 그림이 많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부분만 읽어주기가 좋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라 보면 되겠다.

(그림과 글 양은 아래의 샘플을 참조하면 될 것 같다.)



(pg 148-149)

각 질환마다 대체로 1-2페이지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삽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에 어떤 질환을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인 혈우병 관련 그림이 재미있었다.

양쪽 귀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끔찍하지 않고 익살스럽게 그림으로 잘 표현해 두었다.

전반적으로 흡족한 책이었다.

글자가 어린이용 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다 싶지만 담긴 정보가 알차고 많아서 그리 거슬리지는 않았다.

병원을 무서워하거나 주사 맞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아이라면 함께 읽어보면서 병원에 가지 않을 경우 내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월 13일의 불꽃 - 청년 전태일의 꿈 근현대사 100년 동화
윤자명 지음, 김규택 그림 / 풀빛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하종강 교수의 강의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의 의무교육 제도 속에는 노동 교육이 전무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나도 학창 시절에는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대학에서 관련 학회 생활을 하느라 관심을 가졌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노동문제에 대한 별다른 의식 없이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를 위한 노동 동화가,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가 나왔다는 말에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던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책 발매일도 이 날짜에 맞춘 모양이다.

작품의 화자는 김순옥이라는 가상의 13세 여자 어린이다.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이름이 '순옥'이라 한다.)

그 시절 그리 잘 살지 못하는 시골집의 여자아이가 다 그랬듯, 최소한의 의무교육이 끝난 뒤 부모에 떠밀려 동네 언니를 따라 평화시장의 '시다'로 일하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거기서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 운동을 시작하던 전태일 오빠를 만난다는 이야기다.

작품은 남아선호사상이 아직 위세를 떨치던 시대, 오빠는 학업을 이어가는데 자신은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부터 생업에 시달려야 하는 부조리함에서 출발한다.

13세의 어린 몸으로 닭장 같은 공장에서 겪어내는 그 시절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처우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전태일 열사가 겪어야만 했던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무수한 장애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 동료 노동자들의 응원과 협력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어린이용 책이니 분신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장면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의 시각에서 본 당시의 끔찍한 상황은 충분하게 전해진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노동 조건은 상당히 개선되었고 지금은 주 4일 근무 제도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미 만들어진 주 52시간 근무제를 폐지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다른 사회문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노동 문제 역시 한 걸음 진보하기는 어렵지만 두 걸음 후퇴하기는 쉽다.

자본의 힘은 언제나 노동 인권에 반하는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노동자 신분으로 살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 인권 문제에 대한 시각을 갖추고 자본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이 개인적으로도 너무 반갑게 느껴지고, 많은 학생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보통 다 읽은 책은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폐기하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잘 소장하고 있다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줄 생각이다.

물론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성인이라면 읽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테지만 다 읽고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전태일 평전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대신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