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사회학자에게 듣는 한국사회 불안을 이기는 법
조형근 지음 / 소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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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불평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기분 탓인지 요즘 더 체감이 되는 것 같다.

이 사회의 불평등을 외치는 책은 너무도 많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한참 이 문제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원인과 증상은 너무도 명확한데 해결책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요즘은 관심도 잘 가지지 않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키워드를 선정해 각각의 단어마다 불평등 정도를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그간 읽었던 책들과는 차별점이 있어 보여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도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실 해결책 제시는 매우 미미하다.

각각의 키워드마다 짧은 해결책들이 있기는 하지만 요약하면 서두에 등장하는 아래 문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 기초에는 모두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 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pg 6-7)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참신한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인지를 진단하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특히 올해 10월에 있었던 SPC 노동자 사망 사건 등 최근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들이 예시로 담겨 있어서 대한민국 불평등의 따끈따끈한(?) 현재 모습을 적나라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첫 키워드부터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단어를 익힐 수 있었다.

'불안정하다'라는 뜻의 '프리케어리어스(precarius)'와 '프롤레타리아트'가 합쳐진 단어로 최근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긱 워커를 비롯한 임시직, 파트타임 등의 비정규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어차피 임금 생활자들인 건 마찬가지인데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단어까지 필요해진 배경에는 오랜 시간 신자유주의를 통해 길들여진 노동자 계층 간의 불평등 심화가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계급이 안정적이고 특권적인 정규직 노동자, 늑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각종의 프레카리아트로 분열됐다고 간주한다.

트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의 정당들은 이미 기득권화됐고,

프레카리아트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g 24)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최저임금', '능력주의', '우파 포퓰리즘' 등의 키워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자 계층 내에서도 서로를 동일한 계층으로 인식하지 않는 현상이 이미 공고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참패를 한 원인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래의 문구는 미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빗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토대로 하던 사민주의 진보정당은 어느덧 고학력 엘리트의 지지에

바탕을 둔 중산층 정당으로 변모했다. - 중략 - 오히려 중산층답게 파업을 불편해하고,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보수성을 비난하곤 한다. 교육받지 못했다며 경멸하기조차 한다.

노동자들이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에 더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다. - 중략 -

(pg 296)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에서 이를 표심 얻기의 한 방법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서울-지방으로, 남-녀로, 노인-청년으로 나누어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분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포퓰리스트들은 불평등 사다리의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을 향해

불평등으로 이득을 얻는 권력자나 기득권층에 맞서 저항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손쉽게 눈에 띄는 이방인이나 소수자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부추긴다.

주류 사회의 하층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다.

(pg 316)

계층 간의 불평등 외에 경제 부분에서도 개미들을 죽이는 공매도와 각종 파생상품들, 차등 의결권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한국에 만연한 불평등을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준다.

물론 소득의 불평등과 관련된 키워드 외에도 젠더와 인종, 난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불평등의 거의 모든 형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과 관련된 부분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볍게 읽어 넘기기 어려운 문제였다.

32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분량에 27개의 키워드가 등장하니 모든 키워드를 심도 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각각의 키워드별 현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생각해 봄직한 문제들도 꽤 많이 던져주고 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서 불평등을 외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다소 편향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이쪽 성향이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저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불평등은 불평등의 사다리 위에 있는 자도 시달리게 만든다.

언제든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 개인을 강조한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풍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승자조차도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 중략 -

더 무너지기 전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pg 254)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불평등은 더 심화되기만 하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다.

모쪼록 대한민국이 보다 평등한 나라가 되는 그날까지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라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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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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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 블로그에 가장 많이 쓴 태그가 '히가시노 게이고'다.

재미있기도 하고 책이 쉬워서 만만하게 읽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이 작가가 된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으로 이 책을 꼽았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별 연관성 없어 보이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이를 추적하는 탐정(이 작품에서는 경찰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이 주변 인물들과 단서를 조합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풀어내야 할 주요 미스터리가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닌 '사건들의 연관성이 무엇이냐'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한 여고생이 임신 중절 수술을 받던 중 사망한 사건, 한 남학생이 도시락을 먹다 비소 중독으로 실려간 사건, 그리고 가정을 가진 한 남자가 실종되는(결국 사망한) 사건.

얼핏 보기에도 큰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사건들의 조합이지만 이 사건들의 주변에 한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이 범인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왜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그리고 도대체 이 세 사건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본 작품의 주요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총 36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 작품의 중반부까지도 사건을 해결해야 할 경찰이 이 사건들의 연관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세 사건의 관계를 잘 꼬아놨다.

미유키의 죽음과 다카야스의 중독과 가메이의 실종이

정말 관련 없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관련이 있다면 각 사건이 다 다카야스와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뿐이다.

(pg 157)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유명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 하니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었다.

다만 최근에 비슷한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사건의 형태나 범인의 동기, 사건의 해결 방법 부분에서 참신함이 좀 덜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1970년대에 발표된 작품이니 시대적인 부분은 감안을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 부분은 다소 부실하다고 느꼈다.

특히나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매우 우연한 기회로 얻는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 우연이 아니었으면 범인을 기소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1970년대 급변하는 사회에서 발견되는 세대 간 인식 차이와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잘 녹아져 있다는 부분은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건 지금 젊은 세대가 '꼰대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작품 속 70년대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르키메데스가 살아 있던 시절에도 세대 차이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저자가 '청춘 추리소설' 분야를 확립했다는 평을 받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굳이 장르를 나눌 정도의 특징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올 정도로 경찰이 매우 힘없게(?)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사실 금세 해결할 수 있음 직한 사건들임에도 사건의 해결이 꽤나 늦게 이루어진다.

(읽으면서 형사가 마동석이었으면 50페이지 안에 작품을 끝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라는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로 차분한 다카야스를 두들겨 패서

자백하게 만들 수 없는 현재의 경찰제도가 너무 한심했다.

(pg 234)

제목에 아르키메데스는 왜 등장하는지 궁금할 텐데, 이 부분은 사건이 모두 해결된 후에야 밝혀지는 스포일러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이라면 그 설명을 읽으면서 약간의 빡침을 각오해야 한다.

다행히(?) 역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아래와 같이 역자 후기에 밑밥을 깔아두긴 했지만 다 읽은 후의 찜찜함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다.

다만 그 설명을 읽고 우리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분명 개운치는 않으실 것이다.

그것 자체가 일본 사회가 갖는 한계라는 생각도 했다.

(pg 358, 역자 후기)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작가로서의 출발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굉장한 작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작가가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건과 관계가 없는 서술이 거의 없다는 점, 그래서 딱히 인상적인 구절도 많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

덕분에 읽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독자의 추리력을 그다지 많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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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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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는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걸작들을 꽤나 읽고는 했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읽을 당시에는 너무 재밌어서 어른이 되면 범죄를 추적하는 탐정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소개할 이 책 역시 1932년에 지어진 무려 90년 전 추리소설로 어느 매체에서는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하나로 꼽는다고 할 정도로 추리소설계에서는 고전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물론 '전국 n대 짬뽕'처럼 누군가가 주관적으로 선정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작품은 한 중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 시체는 어느 가족의 아버지로 밝혀지고 자살로 일단 결론이 나지만, 그 집에서 독살 기도가 한차례 일어난 뒤 이어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실질적인 탐정 역할을 하는 드루리 레인이 투입되고 한 경감과 검사가 붙어 사건을 함께 해결해나가게 된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사실 이 소설의 느낌이 진짜 추리소설의 느낌일 텐데, 저자들이(저자가 사실 두 명이다.) 독자 스스로 범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단서를 하나하나 나열하듯이 잘 알려준다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이런 장르를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지금 작가들은 이런 접근법을 잘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은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도 범인을 찾기보다는 동기를 찾거나 트릭을 찾는 데 집중하는 반면, 이 작품은 옛날 추리소설답게 범인이 누구인지부터 차근차근 접근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오히려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사실 중반쯤 가면 대충 범인의 윤곽이 보인다.

하지만 약간 답답할 정도로 드루리 레인이 그 정체와 트릭을 늦게서야 알려주는데, 다 읽고 나면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가 있어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난 사실 초반부터 범인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때려 맞혔는데, 저자가 독자와의 공정한 게임을 중시하는 성향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 또한 저자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단순히 내가 이런 플롯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작가들이 이런 접근법으로 작품을 쓰지 않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 알고 있다.)

은퇴 후 소설에 푹 빠지신 아버지 덕분에 옛날 소설들을 꽤나 읽어보게 되고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인데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 지어진 이야기니 지금처럼 과학적인 수사 방식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탐정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사건에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져서 그런 모양이다.

최근 일본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올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을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한참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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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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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좋아한다면서 테드 창의 저작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워 도서관에서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읽게 된 책이다.

(한 영화 때문에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배우 오정세가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유쾌하진 않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SF 작가로 추앙받는데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렇게 불리는지 궁금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총 9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으로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상당한 몰입감을 자랑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가 왜 그만한 명성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9개의 이야기 모두가 각각 다른 주제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작품마다 느낌도 매우 달랐다.

그 중에서도 하드 SF를 추구하는 작가의 매력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마지막에 수록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양자 역학을 활용해 원자 하나를 특정 방향으로 튕겨내면 그 순간부터 우주가 분할되어 다중우주가 형성되고 그 다중우주의 자신과 일정기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마치 오래 전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TV인생극장(개그맨 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로 유명했던)처럼 그 전까지 모든 것이 동일했는데 세상이 분기되고 나면 이후의 선택에 따라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다중우주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세상을 이해하는 게 더 쉬워지니까.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도 해요. 비난받을 누군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중에서

표제작인 '숨'도 상상력 측면에서는 위 작품과 비슷한 충격을 안겨줬다.

보통 SF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기계 인간)들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냈다는 설정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가 자신의 근원을 탐색하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인간인가 아닌가를 탐구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직 안드로이드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뇌를 직접 관찰해 안드로이드의 뇌 작동 방식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과학자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그 안드로이드의 연구 결과 자신들의 문명은 먼 미래에 필연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자신의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에 있을지도 모를 생명체(예를 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 탄소 기반의 생명체인 독자들처럼)에게 남기는 기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주에 인간 이외의 지적인 생명체가 있다는 상상력을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각으로 표현한 그야말로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이 밖으로 나온 인간이었다.

확장된 뇌의 한가운데에, 해체된 조그만 몸이 위치해 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형태로 내 몸을 배치해놓고, 나는 나 자신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숨' 중에서

책의 처음을 여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마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 배경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시간 여행 이야기이다.

이 작품만 보면 SF라기보다는 판타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살짝 드는데, 책 후미에 실린 작가의 창작 노트를 보면 여기서 등장하는 타임머신이 상대성 이론에 위배되지 않고 상상할 수 있는 형태의 타임머신이라 한다.

하드 SF를 추구하는 작가답게 분위기는 판타지스럽지만 그 배경에는 철저한 과학적 사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우연도 의도도 태피스트리의 앞뒤 면에 불과합니다.

둘 중 하나를 마음에 들어할 수는 있지만,

한쪽이 진짜이고 반대쪽은 가짜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중에서

그 밖에도 인간의 모든 기억을 동영상 로그로 남겨 재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상상해 보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디지털 반려동물로 탄생한 AI를 돌보는 사회를 그려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미래를 예측하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계가 발명된 후 결정론이 지배하는 인류 사회를 그려낸 '우리가 해야 할 일' 등 하나하나 길게 소개해도 부족할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중에서

이 세계에서 이십 년 동안 살며 습득한 상식을 가르치고 싶다면,

그 일에 이십 년을 들여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발견적 논리를 그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조합할 방도는 없다.

경험은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가와 작품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책.

작가의 전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역시 단편집이라고 하니 부담 없이 읽어봐야겠다.

출판사에서는 최근에 작품을 접했던 '그렉 이건'과 마치 라이벌인 것처럼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두 작가의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테드 창의 작품이 읽기에 더 쉬운 느낌이었다.

SF라는 장르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탁월한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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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닌자 좋은 습관 기르기 2
요시무라 아키코 지음, 고향옥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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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신체 분비물에 대한 관심은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고 시대를 불문하고 늘 존재하던 현상이기도 하다.

소싯적 김영만 선생님이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코딱지'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보면 각종 신체 분비물을 주제로 한 유아용 책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런 책들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이 책은 분비물 중에서도 '코딱지'에 주목하고 있다.

양친이 모두 비염 환자인 탓에 자연스럽게(?) 아이도 비염 환자로 자라고 있어서 코에 손이 자주 가고 코를 세게 풀다 보면 코피도 종종 나게 된다.

그런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동화를 통해 코의 중요성도 배우고 코를 주의해서 다루는 버릇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고른 책이다.

배송이 오자마자 스스로 펴서 훑어보기 시작한다.

역시 '코딱지'라는 단어에 이목이 확 집중되는 모양이다.



제목처럼 코를 파는 아이 앞에 코딱지 닌자가 나타나 아이를 작게 만드는 도술을 부린 뒤 함께 콧속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코딱지 닌자와 함께 코딱지나 콧물의 생성과정은 물론이고 이들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재미나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 끝에 코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평소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도 유아 수준에 맞게 잘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그림도 굉장히 귀엽고 글씨도 그리 많지 않아서 5-6세 정도의 미취학 아동이라면 몇 번 읽어주면 혼자서도 금방 읽을 수 있을 수준이다.

신체 분비물 관련 동화는 재미와 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잘 잡아야 하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에서 균형을 잘 잡은 것 같아 아이도 좋아하고 같이 읽는 부모 입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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