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알고리즘 - 왜 인공지능에도 윤리가 필요할까
카타리나 츠바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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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모든 그룹을 모든 면에서 공평하게 대우하는 해법은 없다. 이것은 디지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의 특수성이 아니다. 

각각의 집단이 어떤 행동을 서로 다른 비율로 할 때 모든 결정이 그러하며, 인간이 내리는 결정도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pg 238)



인공지능, 머신러닝, 빅데이터, 알고리즘...

아마 요새 가장 핫한 키워드들이 아닐까 싶다.

미래 직업으로 각광받는 분야이기도 하니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관심있는 주제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은 있지만 그런 개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몰랐었는데 

한 권으로 관련 키워드들을 공부할만한 책인 것 같아 접하게 되었다.  


생물학 전공의 자연과학자였다가 데이터가 주는 통계적 의사결정에 매료되어 데이터 과학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알고리즘의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현재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고, 이 인공지능에서 활용되는 알고리즘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판단 기준까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왜 인공지능에도 윤리가 필요한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총 330여 페이지로 살짝 두꺼운 감이 느껴지는 책인데 앞의 약 200페이지 정도까지는 핵심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인공지능 관련 핵심 용어들의 개념을 잘 모른다 할 지라도 인공지능에 윤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강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심개념들을 이해한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앞 부분을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전문가 입장에서 일반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이고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지만

태생이 문돌이인 내 입장에서는 그런 저자와 번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핵심 개념들을 온전히 이해했는지 여전히 의문이긴 하다. 


내가 이해한 바를 최선을 다해 정리하면, 고전적인 알고리즘은 수학공식으로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 

'이런 인풋을 이렇게 가공하여 이런 아웃풋을 도출하라.'라고 하는 매우 명확한 프로세스를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하지만 머신러닝을 통해 빅데이터라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인간이 쉽게 찾을 수 없는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도

알고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알고리즘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런 형태의 알고리즘은 '이런 엄청난 인풋이 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경향성을 분석하여 이번에는 무엇이 좋을지 추천해보라' 정도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알고리즘인 것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알고리즘은 설계자가 의도한 바를 100% 구현하는 것이므로 결과값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거의 없으며

알고리즘 설계가 옳다면 항상 최적의 결과값을 도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네비게이션에 현존하는 모든 도로의 데이터가 들어 있고, 현재 위치와 목적지 간의 최단거리 길을 찾도록 알고리즘이 짜여 

있다면 새로운 도로가 나지 않는 이상 이견의 여지가 없는 값이 도출된다.


하지만 머신러닝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값은 이런 형태의 결과값이 아니다. 

저자가 설명해준 바에 의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머신러닝 방식은 고전적인 알고리즘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휴리스틱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상품을 구매한 데이터가 입력된 알고리즘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그 사이트에 로그인 할 경우 30대 남자에게는 이런 구두가 잘 팔리므로 잘 팔리는 구두 순서대로 추천을 한 뒤 

구두와 매칭할만한 옷들을 추천해 주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 목록들 중 내가 어떤 것을 사거나 혹은 사지 않는다면 그 데이터가 또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데이터가 되고 

이것이 축적되면서 더욱 정교한 추천 목록을 작성하는 알고리즘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 이런 형태의 알고리즘이 도출하는 결과값이 '반드시 이걸 사게 될 껄!'이 아니라 '이걸 좋아할 확률이 높은거 같은데?' 정도의 

결과값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기대하는 결과값의 형태가 일단 다르고, 

고전적인 알고리즘에 비해 결과값의 도출 과정에 설계자가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많으며 

결과값 역시 인간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해당 알고리즘을 의사결정 전반에 확대해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경향성' 자체가 주는 신비로움 때문이다. 

가령 마트에서 기저귀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맥주도 함께 구매하는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마트 입장에서는 마케팅 포인트로 매출을 높일 좋은 기회가 된다. 

왜 기저귀와 맥주가 그런 상관관계를 보여주는지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물론 어떤 검색어를 입력할 때 AI가 자동으로 연관 상품을 올려주는 것 정도는 우리 삶에 큰 부작용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뿐더러

때로는 편할 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기저귀를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맥주도 산다면 기저귀 옆에 맥주가 있으면 쇼핑이 더 편리할 것이다. 

(물론 그 AI가 활용하는 데이터들이 그 데이터를 생산한 자들의 동의를 얻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 AI를 도입한다거나 법정에서의 형량결정 등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결정도 

이런 인공지능에게 맡기고자 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고전적인 알고리즘처럼 '이 사람은 범죄자다'라는 결과값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 중 70%가 범죄자가 된다' 정도의 결과값을 주는 알고리즘을 믿고

이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다 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인간에 대해 인간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일까?

그것은 우선 컴퓨터가 인간은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그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현재 우리 스스로 인간의 판단력을 별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pg 8)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습하는 요소를 가진 인공지능은 늘 플랜B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학습하는 결정규칙은 늘 구체적인 트레이닝 데이터와 선택된 많은 변수들에 좌우되고, 

머신러닝의 대부분의 방법에서 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 (pg 203)



분명 기계가 인간보다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인간을 능가하는 면은 다음과 같다. 

1) 임의의 데이터에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는 점

2) 다양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는 점

3) 약한 상관관계도 통계 모델에 집어넣어 유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pg 206)


위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라면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것은 단순한 '참고자료'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특히 특정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채용과정, 형량 결정, 복지 수혜자 선별 등 개별 인간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결정이라면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한 챗봇이 혐오성 발언을 쏟아내다 운영이 중지되는 사례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어찌되었든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입력된 데이터' 안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즉 그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알고리즘을 통한 해결책도 고스란히 같은 문제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데이터의 수집에서부터 다양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봉착한다. 


이런 편향에서 어려운 것은 해석이다. 

부적합 평가를 받은 지원자들도 해당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이것이 부당한 차별일까? 

이 예에서는 기계가 데이터 안에서 차별을 발견했고, 차별을 계속 이어갔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전에(정당하건 부당하건) 차별이 있었다면, 

기계는 이 차별을 학습할 거라는 사실이다. (pg 224)


그러므로 데이터 확보가 이미 편향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인공지능을 통한 해결책 역시 편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편향성을 인지하여 이를 수정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주체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 


모든 그룹을 모든 면에서 공평하게 대우하는 해법은 없다. 

이것은 디지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의 특수성이 아니다. 

각각의 집단이 어떤 행동을 서로 다른 비율로 할 때 모든 결정이 그러하며, 

인간이 내리는 결정도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pg 238)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인류가 개발한 인공지능의 수준이 '극도로 약한 인공지능'에서 '매우 약한 인공지능' 정도로

개선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선진국들의 경쟁적인 투자로 더 강한 인공지능으로의 개발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는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대부분의 결정은 현재와 미래의 행동에 관계된다.

이 사람이 근무에 적합한 자질이 있을까? 대출금 상환을 할까? 테러리스트일까?

여기서는 100퍼센트 옳은 결정규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계의 결정은 늘 통계적 특성을 띨 수밖에 없다. -중략-

인간은 범행을 저지르거나 저지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70퍼센트의 절도나 폭행은 없다. 

그런 결과는 통계적 표현이다.  (pg 241)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인간들이 이 세상의 실험실에서는 비학문적으로 여기는 것을 기계에게는 허용하는가이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는 이 가설을 테스트해보지도 않고, 

곧바로 다른 상황을 판단하는 데 활용하도록 허락하고 있지 않은가. (pg 277)


강한 인공지능의 유용성이 리스크보다 더 높을 수 있을까?

인류가 삶의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질문을 찾아내지 못할 만큼 미련하지 않기에, 

강한 인공지능을 개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pg 296)


정리하자면 인공지능에도 윤리가 필요하므로 해당 부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들의 양성은 물론이고, 

인공지능 활용에 관련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개입도 분명 필요하다. 

(관련 인재들은 최근 한국 고등교육에서 열광적으로 요구되는 '융복합적인 인재'의 전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재 이상으로 강한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도 자문하고 있다. 

그 유용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미치는 부작용이 너무 클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 과학자로서 밝힌 주장이기에 읽는 입장에서는 매우 의외라고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관련 개념들을 이해하다 보니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이나 

막연한 기대감이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반대로 인류를 지배하거나 하는 미래가 생각보다도

아직 많이 멀었다는 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도 조금씩 동의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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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교
이동륜 지음 / 씨큐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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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깊은 구절

1은 참 좋은 숫자다. 1은 자신을 몇 번 곱해도, 즉 몇 제곱을 해도 자신이 되는 자존심 높은, 변하지 않는 숫자다.

루트를 씌워도 변화시킬 수 없다. 참 많이 나랑 닮았다. 나는 늘 1이었고, 1이어야만 한다. (pg 161)



책과의 만남도 사람과의 만남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책을 받아보기 전 이런 저런 기대를 갖게 마련인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데 20편 이상의 단편이 실려 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짧은 서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작가도 신인이라 이름에서 주는 기대감이 적었다. 


그런데 첫 작품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교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처음 두 작품인 '인간교'와 '황야의 5인'이 기가 막히다. 

둘 다 인간성을 갈구하는 로봇이 주제인데 단편이어서 작가가 둘 간의 연관성을 전제해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아이로봇'처럼 옴니버스식으로 쭉 이어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다. 

그 이후에도 '판단, 혹은 심판'이나 '바꿔줘' 같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주제인 작품들이 종종 나오니 

작가의 로봇에 관한 작품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다음 책으로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이 되고, 로봇처럼 사세요." (pg 54)


'인간교'도 60페이지 정도의 짧은 길이지만 위 문장까지의 진행이 정말 재밌었다. 

'황야의 5인'까지 두 작품만 합쳐도 약 90페이지 정도인데 총 270여 페이지 정도 되는 전체 분량에 비하면 

작가가 다른 작품에 비해 이 두 작품에 힘을 빡 실은 느낌이 분명히 난다. 


읽으면서 마치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로봇'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같은 책들이 떠올랐다.

작가의 상상력은 그 두 책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만의 특색이 있다면 미래 사회를 그리면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당히 디스토피아스러운 미래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책 표지도 어둡지만 안에 담긴 이야기나 삽화들도 대체로 어두워서 어두운 이야기 좋아하는(나같은) 사람들은 상당히 좋아할 것 같다. 

계속해서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을 발표해준다면 나름 덕후들이 생겨날 것 같은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의 '러브, 데스+로봇'이나 옛날 '애니매트릭스'처럼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도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들이 많았다. 


'SF단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긴 하지만 꼭 SF스러운 주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1부는 '미래', 2부는 '현실'이라는 부제로 단편들이 묶여 있는데, 

1부는 확실히 SF 느낌이 강하고 2부는 현실 사회 비판 쪽에 가까운 내용이 많았다. 

1부가 약간 어두운 맛이라면 2부는 매우 어두운 맛이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는 사회와 무섭도록 닮아있다.

나는 잠시 반역을 꿈꿨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pg 229)


'빌려줘'와 같이 소년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작품도 있고 '노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등 섬짓한 살인사건이 주제인 작품도 있다.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문장에 힘을 주고 있지는 않아서 특정 구절이 인상깊게 남는다거나 하는 건 많지 않았다. 

작품 길이들도 앞의 두 작품과 2부의 'numbers'를 제외하면 4페이지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각 작품들에서 보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하고 내용도 상당히 충격적인 것들이어서 분량에 비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짧은 서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작가가 가진 상상력을 좀 더 긴 호흡으로 풀어주는 작품들이 후속으로 나와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각각의 이야기들이 짧은 만큼 출퇴근 길이나 육아 중에도 틈틈히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작가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후속작품이 나오면 또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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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치지 않는 삶 - 웨인 다이어의 노자 다시 읽기
웨인 W. 다이어 지음, 신종윤 옮김, 구본형 / 나무생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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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현실 속에서 '시작'은 종종 고통스러운 '끝'의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 나타나곤 한다.

현재의 실망스러운 일 너머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알면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pg 121)



'노자의 도덕경을 서양인의 눈으로 해석한 책'이라는 책 소개가 마음에 들어 접하게 된 책이다.

물론 도덕경을 동양인의 눈으로 해석한 책도 본 적이 없지만 노장 사상을 쉽게 풀어 쓴 책들은 종종 접해왔었다.

무위자연으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은 다른 사상에 비해 규율이 적고 사회 제도에 대한 사색 보다는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되는 사상이라는 것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이 책은 노자 사상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도덕경의 원문을 먼저 소개하고 저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덧붙인 책이다.

도덕경이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책의 두께도 총 560여페이지로 두툼한 편이어서 쉽게 뚝딱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들어가는 말에서 작가는 하루에 도덕경을 한 장씩만 읽고 내용을 이해한 뒤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가진 후

느낀 바를 종합해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장마다 마무리로 '지금, 도를 행하라'라는 문구 아래에 독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조언을 곁들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려운 내용만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볍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다음 식사 때는 먹는 양을 조절해보자.

우선 음식을 조금 먹은 후에 아직도 배가 고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중략-

만약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기서 식사를 끝내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도덕경> 9장의 마지막 문장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일을 다 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pg 82)

(물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도덕경의 내용을 간단하게 축약할 자신은 없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도를 따르라'라는 문장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도()는 무엇인가?

나는 '자연의 법칙이자 세상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라고 이해했다.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어서 오히려 잘 인식되지 않는 것. 


책을 보면 영어로도 도를 'The Way'라고 쓰는 것 같은데, 어쨌든 삶이 지나온 곳, 나아가야 할 곳 모두 '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겨나는 것도, 죽어 사라지는 것도 모두 '도'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도'라는 것은 우주 자체일 뿐이며 영속적인 것이므로 우리네 짧은 삶은 그저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마치 태양이 매일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시작'은 종종 고통스러운 '끝'의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 나타나곤 한다.

현재의 실망스러운 일 너머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알면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pg 121)


이 '도'라는 개념이 한 단어가 가지기에는 너무 큰 뜻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경 역시 한 번 읽어서는 전부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으므로 그릇의 쓸모가 생겨난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으므로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있음의 유용함은 없음에 달려 있다. (pg 90)


결국 우리가 주장하는 선함과 악함, 좋음과 싫음, 아름다움과 추함 등 모든 구분들은 인간이 작위로 부여한 것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것이다. 

무슨 얘긴지도 알겠고 멋진 말이긴 한데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작가가 서술한 바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라.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외부의 압력이 없다면, 나만의 고유한 본성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본성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가운데 하루를 살아라. (pg 104)


문장 자체는 쉽지만 결국 자신을 탐구하는 진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도덕경의 내용들을 삶에 적용한다면 개개인의 행복감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서의 노자 사상은 확실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노자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는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지배자'이다. 

그 말에 따르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지배계층이 상당히 바람직한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서른 중반이지만 아직 도덕경의 내용은 생경한 것이 더 많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나 자신이 '인간이라면', '바람직한 사회라면' 응당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는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다. 

애초에 그런 가치라는 것이 자연히 존재할 리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와 사회가 진화해온 결과물이라면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이지만 한번쯤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동양인들이 배우는 서양사상의 양 대비 서양인들이 배우는 동양사상의 양은 턱없이 낮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동서양의 좋은 철학 사유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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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돋보기 : 공룡이 궁금해 똑똑한 책꽂이 21
카밀라 드 라 베도예 지음, 도노그 오말리 그림, 장혜진 옮김 / 키다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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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좀 주춤한가 싶더니 다시 확진자가 천명에 육박하자 집사람이 아예 아이 어린이집을 끊어 버렸다.

오는 3월에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는 하는데 3월은 아직 멀었고..

집에서 아이랑 놀아주는 부모의 고민은 깊어진다.

물론 유투브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맨날 TV만 보여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다보니 아이가 좋아할만한 책이나 장난감이 절실해지게 마련이다. 


이런 시국에 공룡을 너무나 좋아하는 딸을 위해 준비한 책이다. 

특이하게 책 표지부터 돋보기가 그려져 있다. 

저 돋보기 모양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가림막 뒤에 있는 공룡 뼈들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뼈 그림 위에 돋보기 모양으로 구멍이 뚤린 작은 종이를 덧댄 단순한 구조이지만 아이디어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딸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2-3번을 내리 읽었다.




돋보기 옆에는 공룡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쓰여 있다. 

도감류처럼 개별 공룡 하나하나에 대한 소개 보다는 공룡을 크게 육식, 초식, 바다 공룡, 하늘 공룡 등으로 대분류하고

각각의 특징과 대표적인 공룡들을 간략하게 기술하는 정도로 텍스트의 비중이 그리 많지는 않다. 

부모가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아이와 함께 보기에 딱 적정한 수준이었다.  

그림도 어린 아이가 보기에 무섭지 않으면서 각 공룡의 디테일한 특징들을 놓치지 않고 잘 살려주었다.
 


문체도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적혀 있어서 읽어주기가 편하다. 

각각의 대분류마다 숨겨진 화석을 돋보기로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무슨 공룡인지 맞춰보는 재미도 있으니 아이가 책 한 권으로 

오랜 시간 흥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돋보기 아래에 숨겨진 공룡화석이 무슨 공룡인지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 처음에 좀 당황했었는데 뒤에 나오는 공룡들 그림을 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는 공룡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래서 어린 아이를 키우면 부모도 공룡 박사가 된다.)


코로나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이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덩달아 길어지고 있다.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도 집에서 쉽게 제공해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재미와 교육적인 효과도 있는 양질의 컨텐츠들을 찾게 마련이다.

책을 읽어줌으로써 부모와 상호작용하는 시간도 가지고 책에 그려진 돋보기를 통해 아이 스스로 능동적인 독서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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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행히 부부입니다 - 너무 밉지도 좋지도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명로진 지음 / 아침의정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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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둘이 딱 맞아서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맞지 않아도 맞춰 가며 사는 것. 

이게 진짜 좋은 부부관계의 열쇠가 아닌가 싶다. (pg 220)



새해 처음 주문한 책인데 제목이 하필 이래서 집사람에게 약간 민망했다.

집사람에게 불만이 있는 건 전혀 아니고(?!) 순전히 저자가 좋아서 구매한 책이다. 

지난 저서인 '전지적 불평등 시점'을 읽고 단숨에 팬이 되어 버려서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에 빨리 받아보게 되었다.


이전작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부부'라는 다소 가벼운, 하지만 보다 연륜이 좀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전작에서는 실제적인 사례와 인문학 고전 속 지식의 조화를 통한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문학 고전 보다는 저자와 주변 사람들의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등장하는 사례들의 수위가 생각보다 쎄서 읽는 내내 '진짜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다가도 

역시 내 안에는 내가 모르는 유교 선비가 숨어 있었던게 맞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부부사이라는 것이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니 누군가의 사례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이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사례를 읽더라도 누군가는 '내 배우자도 그럴지 모르니 감시를 강화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내 배우자는 그렇지 않을테니 난 사람 잘 만났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 역시 어떤 것들은 굉장히 흔하게 발생하는 경우고 어떤 것들은 너무도 특수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례들을 통해 부부가 보편적으로 지켜가야 할 서로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일텐데

저자가 사례 이후에 들려주는 이런 저런 충고들이 이런 면에서 제법 가슴에 와닿았다. 


남자의 영혼에는 아이가 산다. -중략-

그러니 때로 아내가 엄마가 되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와 같은 비율과 중량으로 남자가 아내의 아빠가 되어 주어야 한다.

여자의 영혼에도 아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그 영혼 깊은 곳에서 홀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보듬어 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pg 20)


결혼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육아 이야기도 꽤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 부부도 둘 다 워낙에 무난한 성격이라 그런가 지금까지도 크게 다퉈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처음 태어나고 1년이 채 안되었을 때는 언성이 높아진 적이 몇 번 있었다. 

사실 별 일도 아니었는데 그냥 서로 피곤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고 다행히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잘 지나간 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이 좋은 부부였던 우리도 다툴만큼 아이를 키워보니 결혼도 큰 일이지만 육아는 너무도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 나이대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딩크로 사는 것을 선호한다는데 육아의 고충을 주변 지인이나 SNS 등을 

통해 많이 접해본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나 돌봄노동을 해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장 큰 고민이다. 


아이를 낳았다고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자. -중략-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봐주면 믿을 수 있고 좋지만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제일 심각한 건, 내 아기가 내 아기가 아니고 부모의 아기가 된다는 거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소리가 지겹지 않나? '내가 너희 애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소리까지 듣고 싶은가? (pg 50-51)


집사람이 임신 전부터 일을 그만 둔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부부에게 해당되진 않지만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여자가 일을 그만 두고 애나 보라는 꼰대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느냐 하면 절대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되려 책 전반적으로 꽤나 페미니즘 시각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니 여성 독자라면 공감가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해결책은 책을 통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돌봄노동 지원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개차반인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언급하고 싶다. 

맞벌이 부부면 어린이집 대기도 상위권에 들어갈 수 있고 돌봄 시간도 긴 편이어서 곧 죽어도 국공립 보내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어지간하면 다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둘이 벌어도 벌이가 크지 않다면 둘 중 한 명의 소득은 돌봄노동에 투입되는 비용 빼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을 거라는건 사실이다. 


육아라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고 괴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가족이란 전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누가 더 기여하고 덜 기여할 수는 있지만 기여도가 0인 경우는 없다.

하다못해 젊은 부부 옆에 가만히 누워 있는 백일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도 제 역할이 있다.

그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부부는 힘을 얻는다. 

새근새근 잠자는 아가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젊은 아빠, 엄마는 낮에 있었던 힘든 일을 잊고 내일 다시 일할 기운을 얻는다. (pg 69)


자식이 생기니 왜 자식을 낳는지, 부부에게 자식이 왜 필요한지는 이제 조금 알겠다. 

나도 지금은 결혼 후 자식을 갖지 않는 부부들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쪼들리는 것 아니라면 한 명 정도는 가지라고 권하는 편이다. 


문제는 자식이 부부와 함께 사는 시간이 대략 20년 전후일텐데 부부가 같이 사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는 것이다. 

자식 보며 사는 삶이 끝났을 때도 부부가 서로를 보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도 물론 지금 생각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만 그 순간이 적어도 15년이나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때 내 자신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또 내 배우자가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런 충고를 남겼다. 


둘이 딱 맞아서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맞지 않아도 맞춰 가며 사는 것. 

이게 진짜 좋은 부부관계의 열쇠가 아닌가 싶다. (pg 220)


나는 불행한 동거보다는 행복한 별거를 종용한다.

혐오로 가득한 결혼생활을 하느니 자기애에 기반한 이혼 생활을 제시한다.

자기애가 먼저이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내도 자식도 사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행복해지고 싶은가?(결혼하고도?) 그렇다면 우선 당신 자신을 돌보라. 

나머진 모두 나머지다. (pg 263)


책이라는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부부 이야기를 담아 내서 그런가 저자의 아내에 대한 찬양과 미안함을 표현한 구절이 꽤 많다. 

책 분량이 긴 편이 아닌데도 그런 부분이 꽤 길게 느껴졌던 걸 보면 그 부분을 넣어야 했던 저자의 심정에도 

모종의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전작처럼 재밌는 문체와 생생한 사례들 덕분에 읽는 시간이 즐거운 책이었다. 

주제가 부부사이인만큼 인문학적 소양으로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시도도 별로 없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만하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은 직후에는 결혼생활을 좀 해본 중년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그 때면 이미 늦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 같아서 젊은 부부들에게도 한 번쯤 권해봄직하겠다. 

단 하나 아쉬움이라면 전체적으로 분량이 좀 짧은 것 같아서 각각의 사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좀 더 들어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그 덕에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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