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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치지 않는 삶 - 웨인 다이어의 노자 다시 읽기
웨인 W. 다이어 지음, 신종윤 옮김, 구본형 / 나무생각 / 2021년 1월
평점 :
인상깊은 구절
현실 속에서 '시작'은 종종 고통스러운 '끝'의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 나타나곤 한다.
현재의 실망스러운 일 너머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알면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pg 121)
'노자의 도덕경을 서양인의 눈으로 해석한 책'이라는 책 소개가 마음에 들어 접하게 된 책이다.
물론 도덕경을 동양인의 눈으로 해석한 책도 본 적이 없지만 노장 사상을 쉽게 풀어 쓴 책들은 종종 접해왔었다.
무위자연으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은 다른 사상에 비해 규율이 적고 사회 제도에 대한 사색 보다는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가
주가 되는 사상이라는 것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이 책은 노자 사상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도덕경의 원문을 먼저 소개하고 저자가 나름대로 해석한 것을 덧붙인 책이다.
도덕경이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책의 두께도 총 560여페이지로 두툼한 편이어서 쉽게 뚝딱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들어가는 말에서 작가는 하루에 도덕경을 한 장씩만 읽고 내용을 이해한 뒤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가진 후
느낀 바를 종합해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장마다 마무리로 '지금, 도를 행하라'라는 문구 아래에 독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조언을 곁들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려운 내용만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볍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다음 식사 때는 먹는 양을 조절해보자.
우선 음식을 조금 먹은 후에 아직도 배가 고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중략-
만약 더 이상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기서 식사를 끝내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도덕경> 9장의 마지막 문장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일을 다 하였으면 물러나는 것이 바로 하늘의 길이다." (pg 82)
(물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도덕경의 내용을 간단하게 축약할 자신은 없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도를 따르라'라는 문장 하나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도(道)는 무엇인가?
나는 '자연의 법칙이자 세상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라고 이해했다.
마치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어서 오히려 잘 인식되지 않는 것.
책을 보면 영어로도 도를 'The Way'라고 쓰는 것 같은데, 어쨌든 삶이 지나온 곳, 나아가야 할 곳 모두 '도'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겨나는 것도, 죽어 사라지는 것도 모두 '도'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도'라는 것은 우주 자체일 뿐이며 영속적인 것이므로 우리네 짧은 삶은 그저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마치 태양이 매일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시작'은 종종 고통스러운 '끝'의 모습으로 위장을 해서 나타나곤 한다.
현재의 실망스러운 일 너머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것을 알면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pg 121)
이 '도'라는 개념이 한 단어가 가지기에는 너무 큰 뜻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경 역시 한 번 읽어서는 전부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으므로 그릇의 쓸모가 생겨난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으므로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있음의 유용함은 없음에 달려 있다. (pg 90)
결국 우리가 주장하는 선함과 악함, 좋음과 싫음, 아름다움과 추함 등 모든 구분들은 인간이 작위로 부여한 것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것이다.
무슨 얘긴지도 알겠고 멋진 말이긴 한데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작가가 서술한 바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라.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외부의 압력이 없다면, 나만의 고유한 본성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본성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가운데 하루를 살아라. (pg 104)
문장 자체는 쉽지만 결국 자신을 탐구하는 진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해한 도덕경의 내용들을 삶에 적용한다면 개개인의 행복감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서의 노자 사상은 확실히 낯선 느낌이 들었다.
노자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는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지배자'이다.
그 말에 따르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지배계층이 상당히 바람직한 것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서른 중반이지만 아직 도덕경의 내용은 생경한 것이 더 많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나 자신이 '인간이라면', '바람직한 사회라면' 응당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는 그런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다.
애초에 그런 가치라는 것이 자연히 존재할 리 없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와 사회가 진화해온 결과물이라면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껍고 어려운 책이지만 한번쯤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동양인들이 배우는 서양사상의 양 대비 서양인들이 배우는 동양사상의 양은 턱없이 낮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동서양의 좋은 철학 사유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