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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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 중략 -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pg 51)




마이클 샌델이라는 반가운 이름이 다시 서점에 등장했다.

'정의'라는 키워드를 통해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만나온 그가 이번에는 '능력주의'에 관한 책을 펴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해에 읽은 대니얼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이라는 책과 일맥상통하는 주제여서 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역시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학력을 바탕으로 한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 중략 -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pg 51)


아메리칸 드림이란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상은 점점 더 계층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고소득자는 아이를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퍼붓고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진짜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않는 한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저자는 이런 능력주의가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라 지적한다.

능력주의의 수혜를 받고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명확히 나뉘며 이는 인종, 성별로 인한 차별과도 다르다는 것이다.


엘리트 계층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성취는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사회의 취약계층은 요즘 말로 하면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고, 

저소득층 스스로도 일면 그렇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이다. -중략-

승자에게 갈채하며 동시에 패자에게 조롱한다. 패자 스스로마저도 말이다. 

일자리가 없거나 적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나의 실패는 자업자득이다.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헤어나기 힘든 좌절감을 준다. (pg 53)


능력주의가 타고난 배경이나 성별, 인종과는 무관하게 공정함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나타난 데이터로 보면

태어난 배경, 특히 부모의 경제력이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S.K.Y 입학생 통계를 보면 해가 갈수록 고소득층 자녀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입학 전형 등으로 여러 장치들을 두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같은 대학 내에서도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는지를 두고 아이들끼리 차별한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같은 대학 내에서도 그러니 대학 서열이 확연히 나뉘는 우리 사회에서 다른 대학 출신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능력'이라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우연히 현재 사회에서 과도하게 인정해주고 있는 것일 따름이지 

그 능력의 유무가 현대 사회가 보여주는 현저한 임금 격차를 불러오는 타당한 이유라는 증거도 없다는 것도 보여준다.

일례로, 자산관리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사회적으로나 능력적으로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들의 소득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이를 순전히 능력에 따른 보상 차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현대 사회의 '임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능력'에 기반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능력주의는 다양한 측면에서 현대 사회에 악영향을 준다. 


첫째, 노골적인 불평등이 이어지고 사회적 이동성이 가로막힌 상황에서는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책임자이며, 

우리가 얻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라는 메시지가 사회적 연대를 약화하며, 세계화에 뒤쳐진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다.

두 번째, 대학 학위가 그럴 듯한 일자리를 얻고 품격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는 주장은 '학력주의 편견'을 조성하며, 

그로써 노동의 명예를 줄이고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위신을 떨어뜨린다. 

셋째,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은 고도의 교육을 받고 가치중립적인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때 가장 잘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은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일반 시민의 정치권력을 거세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pg 125-126)


저자는 책의 상당한 분량을 통해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는데 특히 아래의 대목이 흥미로웠다.


대졸 엘리트가 그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을 어떻게 낮춰 보는지를 넘어, 

이 연구보고서의 저자들은 몇 가지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 냈다. 

첫째, 그들은 교육 받은 엘리트가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보다 깨어 있어서 더 관용적이라는 익숙한 생각이 어긋남을 포착했다. 

그들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는 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에 비해 편견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엘리트는 그런 편견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는 반대할지 모르나,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pg 160)


즉, 교육 수준과 편견의 수준은 별 상관이 없고 각자 편견을 갖는 부분이 다를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진행한다면 굉장히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능력주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정치 측면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좋은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정치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아래의 대목은 눈 여겨 볼만 한 점이다. 


2000년대 미국과 서유럽에서 비대졸자 시민은 단지 업신여겨질 뿐이 아니다. 

선출 공직에 전혀 참여할 수가 없다. 미 의회에서는 하원의원 95퍼센트와 상원의원 100퍼센트가 대졸자다. -중략-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의회는 인종, 민족, 성별에 있어서는 더 다원화되었다. 

그러나 학력과 출신계층에서는 훨씬 일원화되었다. -중략-

미국 노동자의 약 절반은 육체노동, 서비스직,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선출 전 그런 직업을 갖고 있던 연방의회 의원은 2퍼센트에 못 미친다. -중략-

영국 전체를 통틀어 70퍼센트는 비대졸자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12퍼센트만 그렇다. 

하원의원 열 중 아홉이 대졸자이며 넷 중 하나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를 나왔다. (pg 162)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 체계에서 전체 인구 구성과는 아주 동떨어진 일부 집단이 

통치를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인종, 성별은 다원화 되었지만 학력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오히려 일원화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기준이 경제적 계층 차이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현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103명이 SKY출신이라는 뉴스를 찾을 수 있었다.

(출처: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137/clips/491)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데 실제 SKY에 입학하는 학생 비율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비율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라를 통치하는데 당연히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여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친히 반박도 해주고 있다. 


빵빵한 학력을 갖춘 고학력 리더들이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더 합리적인 정치 담론을 이루지 않겠는가?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 연방의회와 유럽 국회들에서 오가고 있는 정치 담론을 슬쩍만 들어 봐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중략-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따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pg 164-165)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우리나라 정치는 너무 좌, 우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당에 180석을 몰아주고도 나라가 변하지 않는 이유를 이 능력주의 기반의 엘리트 정치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놈들이나 그 놈들이나 잘 사는 엘리트 출신들임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일반 사람들의 삶을 잘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들을 정치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히 아니다. 

그저 그들이 대표해야 할 비율에 비해 과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했을까?

'엘리트 세습'에서도 대입 전형과 관련한 여러 해결책이 제시되었던 것처럼 저자도 특이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그 중에는 일정 정도의 기준만 통과했다면 차라리 제비뽑기로 대입을 결정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포함되어 있다.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해 소수점 몇 자리까지 극한의 경쟁을 통해 순위를 정하지 말고, 

일정 기준 이상이면 차라리 운에 맡기는 것이 공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양성 확보도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수민족이거나 장애인이면 2표를 주는 방식 등으로 보완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아이비리그 등 소위 명문대의 프리미엄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대입자 스스로도 자신이 그 대학을 다니는 것이 온전한 자신의 노력이 아닌 일정 부분 운에 기반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되는 것이 대학이 경제력 세습을 위한 기구가 아닌 교육 기관으로서 존재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부 입학 역시 차라리 판매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기부 입학은 당사자 역시 부모가 말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기부 입학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체계이지만, 

판매 방식이라면 누구나 해당 학생이 돈으로 학교를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저자의 표현대로 '과도하게 뻐기는' 현상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에서 녹을 먹는 입장에서 보면, 현실 가능성을 떠나 이런 논의가 시작이라도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모습은 미국과 다르지만 우리 사회 역시 능력주의가 사회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점점 더 능력주의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대입에서의 정시 확대 요구이다. 

수능 역시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전 계층에서 이를 지지한다는 것은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것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능력주의에 대한 폐해는 다른 매체에서도 종종 봐왔던 터라 아주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현대 사회가 능력주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논의들이 나온다는 것이 반갑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대학이 있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주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관련 논의들이 더 진전되어 보다 매력적인 대안들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이클 샌델의 책이 인기 있는 이유기도 하지만 현학적인 표현 없이 어렵지 않게 쓰여져 있어서 이전에 읽었던 '엘리트 세습'과 비교하면 

훨씬 쉽게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이전의 '정의' 열품에 이어 '능력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대중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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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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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깊은 구절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pg 90)



5월 한 달, 이직한 보람도 없이 주말이고 평일이고 정신없이 보낸 나에게 간만에 소설 한 권 읽을 여유를 주기로 했다.

배송이 이상하게 늦어져서 토요일에 받았는데 주말에 받은 김에 아이는 유튜브 키즈에게 맡기고 모처럼 책 속에 빠져 들었다. 

별 기대없이 그냥 잘 팔린다길래 선택한 책인데 다행히(?) 몰입도가 상당해서 손에서 놓을 수 없이 읽어 나갔다.


작품의 주인공인 윤재는 머릿 속 아몬드만한 사이즈의 편도체에 이상이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다.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등 아무런 느낌 없이 그냥 사건들이 일어나면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만 있다. 

어릴 적 윤재의 병을 알게 된 엄마와 외할머니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사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뜻밖의 사건으로 엄마와 외할머니를 잃은 윤재는 학교에서 '곤이'라는 문제아를 만난다.

어릴 적 부모를 잃어버려 범죄의 길로 접어든 곤이는 자신의 가족이 눈 앞에서 죽어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들이 소설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줄거리로 정리하면 별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작가의 문장력 덕분인지 이상하게(?) 재미가 있다. 

260여 페이지 정도로 길이도 길지 않은 덕분에 배송 온 당일에 다 읽은 몇 안되는 책이 되었다. 

집사람이 뭔 내용이길래 벌써 다 봤냐고 묻길래 대충 스토리를 전달했더니 '그게 재밌다고?'라는 반응이었다. 

나도 스토리를 통해서는 그 이상 설명을 못하겠어서 일단 좋았던 점을 추려보려 한다. 


일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묘사가 생각보다 현실감 있었다.

감정이 없으니 모든 현상을 무미건조한 느낌으로 볼 것 같은데 그 무미건조함 속에 뭔가 울림이 있는 느낌이랄까. 


늘 한 가지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에는 좀 위배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g 74-75)


등장인물이 많지는 않은데 각기 명확한 특징들이 있어서 좋았다.

불운하게 태어났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윤재와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나쁜 사람들 손에서 자라난 곤이의 차이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중략-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pg 171-172)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가 '내 자식이 이래도 나는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은 캐릭터로 윤재와 곤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결국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이 '영어덜트'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고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지만, 

상기의 이유 때문에 어린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한번쯤 읽어봄직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를 조금 더 확대해보자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지도 사람의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낙인이 찍히고 나면 그 낙인을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인터넷을 보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지만, 

진짜 그렇다면 교육도, 종교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설일 뿐이지만 이 책에는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내용 상 감상에 담지 못했지만 가슴에 남았던 구절들을 옮겨둔다.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pg 132)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g 245)


여담이지만 읽으면서 영상물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가 영화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책 읽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영상물로 보면 상상의 여지가 사라지는 것 같긴 할테니 내심 이해가 간다. 

당장 수중에 들어올 돈 보다 그런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작가라고 하니 뭔가 더 마음에 드는 기분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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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자본주의 시대 - 권력의 새로운 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쟁
쇼샤나 주보프 지음, 김보영 옮김, 노동욱 감수 / 문학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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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더 이상 가치 실현의 주체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구글이 판매하는 '제품'도 아니다. 

우리는 구글의 예측 공장을 위해 원재료를 추출당하고 몰수당하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구글이 만들어 파는 제품이며, 그 제품은 우리가 아닌 구글의 실질적 고객에게 판매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pg 143-144)




최근에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관련 책들을 몇 권 접하면서 나날이 진화하는 기술이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는데 이런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짚어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구글이라는 거대 AI기업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가고 있는지를 A부터 Z까지 상세히 설명해준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기반 기업들도 '감시 자본주의' 영역에서 제법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래도 구글에 비빌 정도는 아니라서 그런지 책에 등장하는 사례의 90% 정도가 구글 사례인 것 같다. 


감시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행동잉여'라고 부르는 개인정보의 축적이다.

작게는 우리가 인터넷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한 단어, 쇼핑한 내역, 방문한 사이트와 누적 시간 등이 있는데, 

IoT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점차 그런 정보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현재는 많이 보급된 스마트 워치만 하더라도 내가 어디를 가는지, 얼마나 자주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가서 얼마나 체류하는지 등등

내 동선에 관한 모든 것을 데이터화 할 수 있다. 


감시 자본주의가 부상하기 이전에는 이런 행동잉여들이 주로 사용자들의 편의성 개선에만 활용되었으나, 

이 데이터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이런 데이터를 가공해 나온 '예측 상품'들이 구글을 비롯한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얼핏 단순해보이는 그림이지만 이 그림이 완성되게 된 경과와 각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핵심이다. 

(초반부에 나오지만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면 책 내용이 잘 정리되는 그림이다.)

 

(pg 147)


이제 구글은 구글에서 검색하는 사람들이 높은 확률로 '원할 것 같은' 상품들을 먼저 골라서 보여주고 

그 결과 얼마나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지를 추적한 후 다음에는 더 개선된 예측 상품 목록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개선(지속적인 매출 신장)을 위해서 감시 자본주의 주체들은 더 많은 데이터, 더 정확한 예측력을 갖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을 비롯한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이 IoT와 AI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측 상품의 고도화가 계속되면 결국에는 개별 소비자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의 행동 그 자체를 '직접 통제'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전략- 행동잉여를 감시 자산으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 구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이 자산은 감시 수익을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감시 자본이 될 결정적 원재료다. -중략-

예전에 존재했던 기업과 사용자 사이의 호혜 관계가 이제는 우리의 행동잉여를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해 수집하는 

파생 프로젝트에 종속된다. 우리는 더 이상 가치 실현의 주체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구글이 판매하는 '제품'도 아니다. 

우리는 구글의 예측 공장을 위해 원재료를 추출당하고 몰수당하는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행동에 대한 예측이 구글이 만들어 파는 제품이며, 그 제품은 우리가 아닌 구글의 실질적 고객에게 판매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pg 143-144)


예측의 절박성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명령은 '알고 실행하는' 물질적 존재를 현실 세계 구석구석까지 퍼뜨릴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장치는 예측의 절박성이 물질적으로 구현된 존재며, 확실성을 높이라는 경제적 압력에 의해 활성화되는 새로운 종류의

권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초기의 이상과 감시 자본주의의 경제성 요청이라는 두 개의 힘이 수렴된다. 

이 수렴은 디지털 인프라의 탈바꿈, 

즉 우리가 사물을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사물이 우리를 소유한다는 개념으로의 변화를 예고한다. (pg 283)


여기서 감시 자본주의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이 발생한다.

바로 저자가 '호혜성의 파괴'라고 명명한 현상인데, 감시 자본주의 기업에게 일반 대중들은 '고객'이 아니다.

우리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 1원 한 장 쓰지 않는다.

구글의 고객은 구글이 우리의 정보를 캐서 만들어 낸 예측 상품을 구입하는 '다른 자본들'이다.

즉, 구글은 태생적으로 일반 대중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인 자본주의와는 달리 감시 자본주의 기업은 채용과 급여를 통한 사회 부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수익 대비 인력 채용 규모는 정말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부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도 감시 자본주의의 특징이 된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전 산업사회의 '봉건적' 유형으로 되돌아갔다는 점, 

그러나 우리 민중은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맹의 농부도, 농노나 노예도 아니다. -중략- 

우리는 우리 자신이 존엄성과 유능한 삶을 살 기회를 가져야 마땅한 존재임을 안다.

일단 나온 후에는 다시 튜브에 넣을 수 없는 치약처럼, 한 번 해방된 우리의 자아는 다시 가둘 수 없다. 

마치 폭파음이 퍼져 나가듯, 불평등한 현실과 체감 사이의 이 지독한 충돌로부터 나온 고통과 분노는 

잔향을 남기며 우리 시대를 규정한다. (pg 78-79)



혹자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행동잉여는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를 영리하게 수집하여 

수익성 있게 활용하는 것은 그 기업이 행한 혁신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행동잉여의 취합 과정에서 개별 사용자들의 동의 절차가 전혀 없다는 것과 

행동잉여의 종류와 수집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이트 하나를 가입하려 해도 길고 이해하기 어려운 약관을 읽어야 하는데, 

심지어 다 읽었다고 쳐도 약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동의는 쉽고 비동의는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놓고 개인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사용을 제한해버리는 

이러한 비대칭적 권한은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이 더욱 더 많은 개인정보를 눈치 보지 않고 수집할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태동이 인간을 노동력으로 만들었다면,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을 원재료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떻게 기록되고 이용되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행동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그들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할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우리의 권한을 모두 넘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이를 모르고 있었을까?

저자가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기업들의 치밀한 전략과 로비, 그리고 우연(!)이 가져다 준 기회가 있었다. 

기업들의 전략과 로비야 대충 예상이 되었던 내용이지만 '911테러'라는 정말 우연한 사건이 가져다 준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미국의 자존심을 짖밟은 그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어느 정도 침해되더라도 

일정 부분 국가에서 위험 요소를 감시하는 것이 좋다'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개인들의 신상을 파해칠 역량이 부족했는데 이 기회를 구글이 놓치지 않았다.

이미 개인정보 축적에 큰 역량을 보유하고 있던 구글은 미 정부에 손을 내밀어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그 대가로 구글은 더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을 받은 셈이 된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는 법 체계는 나날이 발전하는 신기술을 활용한 개인정보 수집 확장 시도를 제대로 견제할 수 없었고, 

이 때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구글은 작은 IT벤쳐기업에서 감시 자본주의의 수장이자 IT고질라로 변화했다. 

괴물처럼 사람들의 정보를 빨아들여 엄청난 수익을 얻으며 이 수익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투자자들은 구글이 인프라 규모와 과학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구글을 따라잡는 업체가 나오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본다.

구글은 "자체 클라우드에 탑재한 자체 제작 칩을 통해 자사의 알고리즘을 실행하며" 자체 데이터로 "이 알고리즘을 훈련시키는", 

이른바 '풀스택 AI회사'로 알려져 있다. 

구글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한다. 

기계학습에서 지능은 훈련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양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pg 265)


영국에서는 대학교 행정가들이 이미 데이터 과학 분야의 '잃어버린 세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테크 기업들의 막대한 연봉이 너무 많은 전문 인력을 끌어감에 따라 

대학에 남아 차세대 후학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진짜 문제는 이 사람들이 사회 전체에 분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적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pg 266)



이 책은 구글을 선두로 한 감시 자본주의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주는 책이다.

하지만 감시 자본주의라는 것 자체가 형성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기반 또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 체계 속으로 이미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구글이 보라고 한 것들을 보고 

구글이 사라고 하는 것들을 사며 구글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누군가가 구매한 책과 영화, 노래를 모두 알게 되고, 당신이 낯선 도시에 가게 되면 페이스북의 예측 모델이 적당한 술집으로 

안내해주고, 그 술집에 가면 바텐더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을 준비해놓을 것이라던 마크 저커버그의 자랑을 기억해보라. -중략-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2010년에 이렇게 말했다.

"사용자가 자신과 친구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할수록 구글 검색의 질이 개선된다. 타이핑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pg 668-669)


에릭 슈미트가 저런 섬뜩한 말을 뱉은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쉽게도 이 책은 감시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한 역사와 현상의 분석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작가가 마지막에 나름대로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현실 분석에 비하면 맥이 좀 빠질 수 있다.

감시 자본주의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시민권의 회복을 통한 저항이 중요하다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디까지나 사회학자의 눈으로 현재 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한 책이니 이 책을 통해서는 '감시 자본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공부한 뒤 계속해서 나오게 될 후속 논의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책 제목을 보더니 집사람이 '딱 자기 책이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내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가 읽기도 전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게 했었지만 제목부터가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읽고서 뭔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질 법도 한데, 사실 읽은 뒤 허탈함과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 책이다. 


책에 짧게 소개된 사례 중에 재직중인 직원들 중 이직할 사람을 미리 파악해서 경영진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도 이미

나왔는데 상당한 정확성을 자랑한다고 한다. (작년에 이직한 1인으로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심지어 구글처럼 거대한 기업도 아니었는데 이 정도의 예측이 가능한 시대.

무심코 찍어 올리던 아이의 인스타 사진마저 어떤 정보로 변환되어 어떻게 돌아올지 두려워진다. 

그렇다고 러다이트 운동처럼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이익이 기술 발달의 동기가 되고 그렇게 개발된 기술의 수혜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어디까지 희생되어야 하는지, 또한 그런 희생 자체가 정당한지, 

이를 통해 얻어진 사회 전체적인 이익이 희생된 자유와 프라이버시 총합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우수한 것인지 등등

아직까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질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문제는 감시 자본주의 주체들이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피한 채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서만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우리 일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시점에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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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학 - 엉뚱하지만 쓸모 많은 생활 밀착형 화학의 세계
조지 자이던 지음, 김민경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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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뉴스에서 나오는 의심이 제대로 된 생각이고 뉴스가 모든 과학 논문을 완전하고 충실하게 보도할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 하나가 반드시 근본적인 진실의 증거는 아니다.

증거가 축적되는 데는 수년이 걸리며 합의가 되려면 더 오래 걸린다.

한 마디로, 벽돌은 다리가 아니다. (pg 316)



최근에 갑자기 과학 관련 책들이 땡겨서 막 읽게 되었었는데 그 중 화학은 없었던 것 같아 읽게 된 책이다.

화학이야말로 내가 이과 진학을 포기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기에 만남이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익살스럽게 보이는 표지와 친근한 제목이 왠지 문돌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책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처음부터 단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바로 '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진짜 빨리 죽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공'이란 무엇인지, '식품'이란 무엇인지를 화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실상 '가공식품'이라는 것이 누구나 납득할만하게 정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화학적으로 보면 가공식품을 먹으나 일반적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으나 영양상으로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스팸에 공장 김치를 올려 밥 한 그릇 먹으나 집에서 엄마가 담근 김치로 끓인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을 먹으나 

사실 영양상으론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든 예시는 아니고 내가 이해한 바 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의 종류가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가공식품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상 '화학물질'은 자연상태의 모든 식물과 동물, 각종 음식 재료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조합한 것 만으로는

위험사유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어떤 화학 물질이 다른 화학 물질을 만나 위험한 물질이 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음식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모든 화학 물질들(책에서는 썬크림을 예로 든다.)이 다른 화학물질을 만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데 이 가능성을 모두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과학자들이 제한적으로 연구해내는 결과들도 사실상 아주 한정적인 조건하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결과라고 말한다.


화학물질들과 인간의 몸이 연관된 거의 모든 중요한 질문들(초가공식품이 암을 일으킬까? 커피는 우리를 오래 살게 해줄까?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암을 예방할까?)에 대한 답은 "그럴 수도"와 "아닐 수도"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흡연처럼 연구 결과가 드물게 우리의 얼굴을 강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외선 차단제처럼 대부분의 연구 결과들은 대단하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다. (pg 225)


그래서 결론이 뭘까?

가공식품을 먹으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저자는 커피를 예로 들며 아래와 같은 자료를 보여준다. 



(pg 210) 


결국 커피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 반, 나쁘다는 연구가 반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즉 음식에 관한 연구, 특히 영양역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발표되는 결과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진리'에 근접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학자로서 과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 범하기 쉬운 오류 유형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양한 오류 유형 중 저자가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P-해킹이라 불리는 유형이다.

쉽게 요약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통계를 돌려보는 것인데, 

저자는 영양역학 분야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 위의 커피 사례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지금도 이 분야에서 저명한 두 과학자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아직도 결론이 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고, 각자 자신을 지지해주는 과학자들이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영양역학에서 "이 설문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보다 더 논쟁이 되는 부분은 없을 것이다.

윌렛과 회사들은 "관찰 연구, 동물 실험, 중간 수준의 단점이 있는 통제 실험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증거를 고려한 후에

베이컨이 둔부암을 일으킨다고 합리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와 같은 공중보건 선언을 할 수 있을 만큼 설문조사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오아니디스와 회사들은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그렇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양쪽의 입장차는 엄청 크다. (pg 302)


저자는 이 중 후자가 더 설득력 있다고 보고 있다. 

꼭 영양역학 뿐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논문으로 발표되었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닌

그저 진리로 가는 다리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벽돌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의심이 제대로 된 생각이고 뉴스가 모든 과학 논문을 완전하고 충실하게 보도할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 하나가 반드시 근본적인 진실의 증거는 아니다.

증거가 축적되는 데는 수년이 걸리며 합의가 되려면 더 오래 걸린다.

한 마디로, 벽돌은 다리가 아니다. (pg 316)


그러니 위에 나온 커피 기사 사례처럼 이런 정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피하라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가공식품 자체의 유해성은 담배처럼 극단적으로 나쁘다고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충분한 열량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결국 최선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고 생각되는 책이었다.

재미와는 사실 좀 동떨어진 화학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려다보니 저자 나름대로는 유머와 위트를 많이 섞으려 한 것 같은데,

사례들이 미국 문화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웃을 수 있는 맥락들은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 

원문 자체가 번역하기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번역가가 원문을 너무 살린 것 같은 부분도 조금 아쉬웠다.

조금만 더 국어 사용자에게 친숙하게 재량을 충분히 가져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정보 측면에서 중심을 잘 잡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뼛속부터 문돌이이자 이과 진학을 화학 때문에 포기한 내가 이 책 내용을 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쏟아내지 않고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편집 방식도 돋보였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독자에게 퀴즈를 내며 과감하게 정답 내용을 다음 장으로 넘기는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들 대부분이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배운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 고전 실험들, 세상을 바꾼 이론들이다.

마치 요리를 배우는데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를 따르시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다르게 말하면 여러분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pg 227)


총 35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꺼운 느낌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도 많고 위와 같은 편집도 많아서 양이 버거운 책은 아니었다.

화학이라는 좀 두려운 주제를 가지고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한 즐거운 고찰을 하고 싶은 독자라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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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펼치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
샤를로트 길랑 지음, 올리버 애버릴 그림, 김지연 옮김 / 런치박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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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의 흥미가 자랄수록 부모의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진다.

특히 궁금해 하는 것이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딸아이가 요즘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말고도 다른 행성이 있다거나 지구 안에서도 다른 문화권, 다른 나라의 존재가

신기한지 계속 관련 책들을 읽어달라고 하는 중인데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 접하게 된 책이다. 


굳이 코시국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아이를 대동하고 해외를 나간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때문에 책이나 영상물의 힘을 빌리게 되는데 이 책은 '병풍책'이라는 재밌는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와 함께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접혀 있을 때에는 평범한 책처럼 생겼지만 열어서 한쪽 끝을 쭉 펼치면 2.5미터나 되는 길이에 세계 각지의 소개가 화려한 색채의

그림과 함께 간략한 텍스트로 소개가 되어 있다. 

물론 책상에 앉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보는 것도 가능한 형식으로 접혀 있긴 하지만, 

바닥에 쭉 펼쳐 놓고 한 눈에 들어오는 화려한 색감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아이가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하는데 그림 안에 텍스트가 많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관심 있어 하는 부분만

읽어주기에 편했다.

그림도 단순하게 평면적인 그림이 아니라 강조된 부분은 살짝 튀어나와 있어서 큰 그림이지만 가독성이 좋았다.

아이가 여러 부분을 흥미 있어 해서 한 번 펼치면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책 읽어 주는 것이 좋은 애비 코스프레에는 가장 좋은 것 같다.)


다 펼쳤을 경우 앞면은 문화유적이나 유명 랜드마크 위주고 뒷면은 자연환경과 대표적인 동물 그림 위주로 되어 있다. 

단순한 나라 별 나열이 아니라 앞, 뒤 컨셉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의 흥미가 오래 유지되는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작가가 유럽인인 것 같은데 대한민국의 표현 분량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 정도였다. 

나날이 높아져 가는 국뽕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그저 작은 나라에 그치고 있는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웠지만 앞으로 발간될 책들에서는 더 자세한 소개가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굉장히 많은 나라들이 짧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집에 지구본이나 세계 지도가 있다면 읽는 효과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이제 막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시기인데 좋은 책을 만나서 기쁜 마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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