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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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고 평범한 자기개발서일 것이라 생각해 관심 밖에 있던 책이다.
우연히 첫 장을 열었는데 앞에 김정운 박사가 쓴 추천글이 눈에 띄었다.
특유의 문체로 '이 책은 좋은 책이다'라며 소개하는 글을 보니 불현듯 읽고 싶어져서 단숨에 읽어냈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평범한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걸출한 심리학자의 이론을 풀어낸 책이었다.
그의 사상 전반에 걸쳐 '용기'라는 단어가 주요 키워드로 등장해서 제목을 이렇게 뽑은 모양이다.

특이하게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흉내 낸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한 청년이 철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청년이 계속 철학자에게 반박을 하면 철학자가 아들러의 사상을 전개하며 하나하나 일깨워가는 방식이다.
실제 인터뷰를 기록한 것은 아니고 아들러에 심취한 작가 둘이서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라 보면 되겠다.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심리학 하면 가장 먼저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된다.
프로이트식 심리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어릴 적 겪은 경험들이 현재를 구성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아들러는 이와는 정 반대의 논리를 전개한다.
즉, 과거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일 뿐이고 현재의 나는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사건 자체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내가 그 사건을 지금의 내 모습이 되게끔 선택해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얼핏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아들러의 경우 선택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는 고정값이지만 그 고정값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같은 집안 환경에서 자랐지만 삶의 궤적이 상당히 다른 형제자매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물론 반대 진영에서도 형제라 할지라도 부모에게 받는 관심도나 지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아들러 사상의 첫 출발점은 이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달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세계일 테지. - 중략 -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받고 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pg 12-13)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pg 37)

이 지점에서 '용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변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pg 63)

따라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인지 아들러의 심리학을 '개인심리학'이라 부른다.
개인심리학의 '개인'이 영어로는 'individual'인데 이 단어의 어원이 '나누어질 수 없다'라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즉 개인은 육체와 정신, 의식과 무의식 등으로 구분되지 않고 온전한 개체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관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때문에 모든 고민의 시작은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아들러는 단언한다. 
단순히 인간관계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내면의 고민들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건강에 대한 고민처럼 명백히 자신만을 위한 고민으로 보이는 것 역시 타인의 존재가 있기에 생겨난다.
진정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면 굳이 건강해지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건강해지고자 하는 것 역시 결국 타인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 혹은 노후에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등 타인과 관련된 여러 이유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아들러는 심지어 우리는 고독할 때에도 타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자네가 혼자라서가 아닐세. 
자네를 둘러싼 타인, 사회, 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 거지.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 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네. 
(pg 81)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 역시 온전한 개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헌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예를 들면, 아무리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하루에 몇 시간은 공부를 하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간섭이다.
하지만 자식이 공부를 할 의지를 보일 때 장소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상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믿고 있지.
물론 여기서 개입은 조종이나 다름없네. 
어린아이에게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부모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겠지.
본인은 선의로 그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결국은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의 일에 불쑥 끼어들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려고 하는 거지. 
(pg 230)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라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pg 236)
이렇게 때문에 아들러는 '행복이란 공헌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헌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수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초석이 바로 '변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 중략 - 
내가 말하는 자기수용이란 이런 거네. 
(pg 261)
아들러가 말한 것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짧게 표현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이 이 책 내용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는 나름 깊은 뜻과 논리 전개 과정이 있으므로 이 문장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pg 126)
아들러의 철학이 이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는 아무래도 프로이트의 심리학만큼 알려져 있지는 못했는데, 아들러가 기본적으로 저술활동보다는 소크라테스처럼 직접 대화하면서 일깨우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역시 역사에 오래 남는 건 저술활동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지점이다.)

프로이트의 심리학도 수박 겉핥는 정도밖에는 모르지만 이에 반하는 개념으로 보이는 아들러의 철학 역시 상당한 설득력과 매력이 있었다. 
특히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인식 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인생을 특정한 목표 지점이 있는 직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들러는 그 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했다.
즉 목표만을 쫓는 것이 아닌 점 하나하나,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고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도 누구에게나 다를 것이다.
행복을 외치는 책 역시 너무도 많고 이 책도 그중 하나지만 그중에서도 설득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을 지닌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영 땡기지 않는 제목을 가진 책이지만 아들러라는 걸출한 심리학자를 하나 더 알게 되어 기쁘다.
2권도 이미 수년 전에 나온 모양인데 이 역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서술 방식이 대화 형식이라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320여 페이지 정도로 얇은 느낌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리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책 속 청년이 의도적으로 계속 철학자에게 딴지를 거는 역할인데 그 깐족거림이 다소 거슬리긴 했다.
하지만 논지를 전개하기 위한 의도적인 깐족거림이니 나처럼 거슬리는 사람들은 철학자의 말에 더 집중하며 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이라 인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최근에 자주 듣는 노래가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 이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 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거든.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pg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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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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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의 신작을 보고서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을 집어 들었다.

작가의 책은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것이 잘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몰입감을 보여준다.

숙취가 살짝 남아 있는 주말 아침에 책을 들었는데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에 다 읽고 말았다.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소개해야 작품에 대한 감상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자잘한 범죄가 쌓여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삶을 마감하려 하는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러다 한 노파를 만나게 되는데, 노파는 자신은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끔찍하게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대신 해달라며 전 재산을 맡긴다.

청년은 그 돈으로 신분을 세탁해 새 삶을 살게 된다.

15년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그 노파의 이름으로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그는 억지로 해야 하는 살인을 피하면서 협박범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런 협박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 변화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죽은 사람이 돌아올리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협박의 내용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진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하지만 살해의 순간을 앞두고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망설인다.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마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전 신분일 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부터 시작해 작은 단서들을 모아 협박범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추격을 시작한다.

추리소설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협박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구조이다.

때문에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이런 반전이!' 정도의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협박범의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여러 인물들이 범죄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데 그중에서도 범죄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이 특히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죄인들이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저지른 짓을 얼마나 참회하고 사는지도 희생자와 그 가족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내가 만약 피해자의 유족이라면 나 역시 처벌의 수위에 절망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력범이 낮은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가 나오면 댓글에는 이제는 자력구제가 답이라는 자조적인 댓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는 물론 형량이 높으면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평생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후회하며 사는 것을 더 원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런 감정이 극단에 치달을 경우 사람이 어떤 심리에 몰리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억울할지언정 가해자를 직접 제거하여 복수를 마친다고 해서 마음의 짐이 모두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복수를 해도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어.

오히려 모든 감정이 뽑혀버린 것처럼 내 마음속은 텅 비었어."

(pg 369)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을 두 번째 읽고 나니 '역시 작가의 명성이 그냥 형성된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380페이지 정도로 그리 얇지 않은 책인데 읽으면서 지루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던 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테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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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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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가 그리 아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요즘 '핫한' 책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언론에서도 꽤 자주 소개가 되고 있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

이 책을 소개하려면 당연하게도 우선 가짜 노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함한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노동'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 중략 -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

(pg 94)

구체적인 실생활 예를 들자면, 누구도 진지하게 읽지 않는 보고서를 만드는 일, 사용되지 않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 실천의지가 없는 브레인스토밍, 의사결정이 일어나지 않는 회의 등등이 모두 가짜 노동이다.

여기에 인터넷 쇼핑, SNS 탐색, 커뮤니티 들락거리기 등 스스로가 근무 시간에 일 외에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도 포함시킬 수 있다.

더 슬프게는 일이 끝났지만 눈치가 보여 퇴근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일이 없다고 하면 추가 업무를 줄까 두려워 무언가 바쁘게 하는 척하는 시간도 가짜 노동에 포함된다.

자신이 그냥 회사원이라면, 특히나 일터가 '사무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위의 일들은 한 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노동을 무대 앞 노동과 무대 뒤 노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쉽게 버스 회사를 예로 들면 버스를 직접 운전하는 운전사는 무대 앞 노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버스 회사는 운전사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으므로 필수적인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버스 회사의 회계, 인사, 홍보 등 유지 관리를 위한 인력들은 무대 뒤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이 한 1주일쯤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회사가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저자들은 이런 무대 뒤 노동에서 가짜 노동이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대 뒤 노동 역시 자주 계량화되어 시간당 보수가 주어진다.

오늘날까지도 무대 앞 노동의 절차를 모방하기 때문이다. -중략 -

컨설턴트는 뭔가 하는 척하며 쉽게 3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운전사는 버스를 운전하는 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둘 다 특정량의 시간을 투입하고 보수를 받는다.

이렇게 둘 중 한쪽은 속이기가 휠씬 쉽다.

(pg 100)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들이 무대 뒤 노동을 하등 쓸모없는 기능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 필요성에 비해 너무도 큰 조직, 너무도 큰 자원, 너무도 긴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무대 뒤 노동의 경우 시간당으로 임금을 책정할 근거 자체가 없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서론이 다소 길었지만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가짜 노동을 제거함으로써 노동 시간 단축을 이루자.

지금 인류가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2000년대가 되면 주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15시간은 커녕 52시간도 부족하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가짜 노동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업무 담당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쓸모없는 일을 한다거나 의미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한다.

또한 관리자들도 자신의 팀이 한가한 탓에 감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 노동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재량 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심지어 실질적인 일에서 점점 멀어지면서도 노동의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주로 실내에 틀어박혀 앉아서 일하는, 더욱더 추상적이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일을 하느라 결국 더 바빠졌다.

(pg 65)

이는 모두 상호 이득 추구의 문제가 된다.

직원이 자기 일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입 다물면,

상사는 허위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고,

나에게 소중한 '큰 팀의 리더' 직책을 부여해주는 존재들을

굳이 잉여로 만들 필요가 없음을 자축할 수 있게 된다.

(pg 131)

사회문화적인 변화도 한 원인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지위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도가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가 주 120시간을 일한다며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도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하는데 앰버 허드는 언제 만날 수 있었던 걸까)

부러운 인물의 가치를 획득하고 흉내 내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상,

새로운 상류층의 바쁜 삶은 점차 성공과 진보의 동의어가 되었다.

지난 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바쁘다고 말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조너선 거셔니의 표현에 의하면, 진짜 할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그것이 '명예의 새로운 징표'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pg 150)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가짜 노동을 제거해야 하는 것일까?

조직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이유는 가짜 노동 때문에 진짜 노동에 할애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가짜 노동에 장시간 몰두할 경우 개인의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의미 없는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롭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짜 노동은 제거하기가 참 어렵다.

가짜 노동이 생겨난 계기 자체는 좋은 의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가짜 노동에 달려있기도 하기 때문에 급진적으로 뭔가를 변화시켜서 바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고,

가짜 노동은 포장 재료 가운데 하나다.

좋은 의도와 합리적 사고의 결과이기에 가짜 노동을 근절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pg 166)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던 터라 뭔가 속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의 기본 기능, 즉 무대 앞 노동은 당연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하는 일은 저자들이 대표적인 무대 뒤 노동으로 꼽은 평가 기능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국가가 대학을 평가할 때 다른 대학들보다 우리가 더 낫다는 것을 강조해 정부 지원금을 더 타기 위한 일이다.

모든 대학은 법령에 의해 2년에 한 번씩 자체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우리나라에 과연 재학 중 자기 학교의 자체 평가 보고서를 다운 받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학생 때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평가가 끝나면 그 누구도 보지 않는 보고서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완성한다.

만일 그것이 재정 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한 보고서라면 더욱 많은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사업에 선정되지 않기라도 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하수구에 버려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가 기능이 대학의 핵심 기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생명줄이 걸려있기 때문에 평가 결과에 총장이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대학들은 이제 평가 지표에 맞추어 교육과 연구 제도를 바꾼다.

이처럼 가짜 노동이 대학에서도 본연의 기능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가짜 노동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만큼 사회 전반에 퍼져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의 관념 속에 이미 자리 잡힌 개념이기 때문에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름 개인들을 위한 해결책도 일반 노동자 버전, 관리자 버전으로 제시해두고 있고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해결책까지 모두 정리하기에는 저자들에게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서 궁금한 사람은 책을 직접 찾아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만 제목만으로 유추할 때 다분히 좌파스러운 해결책이 실려있을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서술에서도 저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아 특히 좋았다.

공동저자인데 한 명은 우파, 한 명은 좌파라고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노동 시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형성된 것을 어느 한 쪽의 책임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지난 30년간, 우파는 실업을 개인이 자초한 고난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해왔다.

하지만 좌파에게는 일의 본성이 바뀌었음에도 정규직의 권리를 떠들어온 책임이

더 있을 것이다.

(pg 374)

책의 분류가 인문학으로 되어 있는 것이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학 책이라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들이 많은 대중이 읽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필했다는 것이 읽으면서 계속 느껴질 정도로 문장이 쉽고 소개되는 사회적, 인문학적 개념들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저자들의 바람처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기업이나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용이 줄어든다!)

직장인이라면, 특히 자신이 무대 뒤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면 필히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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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6 세트 - 전6권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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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나긴 듄의 여정이 모두 끝났다.

재미 삼아 1-6권 세트의 페이지 수를 찾아봤더니 무려 4,304페이지에 달한다.

대충 일반적인 300페이지 짜리 책으로 묶여 나왔으면 대략 15권 정도 되는 분량이라 보면 되니 과연 듀니버스라는 별칭이 부끄럽지 않은 분량이라 할 수 있겠다.

(옛날에 발간된 버전은 총 18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들고 읽기엔 이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두꺼운 데다 하드커버여서 한 권의 무게도 꽤 무거운 편이라(대충 권당 1kg 정도 된다;;) 가방에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없어 더 오래 걸린 느낌이다.

게다가 간지 한 장, 그림 한 장 없이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책이기에 영 읽기에 물리적으로 좋은 편은 아니었던 듄 시리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작품의 매력적인 세계관 덕분일 것이다.

4권까지 무려 3천 년이 넘는 레토의 독재가 끝나고 인류는 기근기를 거쳐 다시금 우주 전역으로 자원과 생존지를 찾아 떠나는 대이동 시기를 맞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란지라는 희귀 자원이 갖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멜란지의 대체품을 찾아낸 '명예의 어머니들'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게 되고 틀래이렉스인들이 멜란지를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내면서 멜란지의 독점적 생산지였던 듄의 지위도 점차 낮아진다.

하지만 베네 게세리트 교단의 유지를 위해서는 멜란지가 필수적이기에 교단에서는 어떻게든 멜란지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멜란지는 수많은 손을 가진 괴물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멜란지를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하십니까?"

"멜란지가 없으면 베네 게세리트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 중략 -

"하지만 폭군도, 무앗딥도 없었을 겁니다.

스파이스는 한 손으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면서,

나머지 수많은 손들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갑니다."

(5권 pg 258)

5-6권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교단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고 대모 오드레이드와 이들이 최고의 군사 책략가로 부르는 테그 마일즈, 그리고 몇 천년 째 골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던컨 아이다호와 그가 만나게 되는 명예의 어머니 무르벨라, 그리고 모레벌레와 소통이 가능한 시이나의 이야기다.

본래 듄이었던 아라키스는 명예의 어머니들에 의해 멸망하고, 시이나와 함께 탈출한 모레벌레들이 참사회 행성을 새로운 듄으로 서서히 바꿔가게 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명예의 어머니와 베네 게세리트 간의 치열한 싸움이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주요 인물 중 오드레이드와 테그 마일즈는 역시나 아트레이데스의 후손이다.

하지만 폴 무앗딥과 폭군을 겪으면서 교단이 예지력의 활용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예지력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지력에 의존하는 인류는 고정된 미래를 갖기 때문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창의적인 행보가 인류 생존의 중요한 요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승리자들이 자손을 낳았어. 우린 그들의 후손이야.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커다란 도덕적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지.

우리 조상들이 했던 일 중에는 심지어 야만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것들이 있어."

(pg 6권 574-575)

저자의 사망으로 본 6권으로 완결되어 미완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6권까지 그래도 이야기가 완료되는 느낌이 들고 이후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처럼 두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잘 정리된 느낌이다.

마지막 부분에 흑막이 또 있었다는 떡밥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족 정도로 넘겨도 좋을 것이다.

이후의 부분을 저자의 아들이 이어서 집필했다는데 그 부분은 워낙 평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세트 구성에서도 빠져 있어 원문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면 접하기도 힘드니 이쯤에서 듄의 세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미 영화로 제작되고 있는 작품이지만 솔직히 2권 내용까지나 만들어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모두 영상화하면 스타워즈처럼 호흡이 엄청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한 감독이 일정한 배우들과 함께 일관성 있는 시리즈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작품의 특성상 감독이나 배우가 중간에 바뀌면 세계관 표현 자체가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일 것이다.

(제이슨 모모아는 작품 속 시간으로 거의 5천 년에 걸쳐 등장해야 한다.)

중간중간 다른 책들을 읽어서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는 데 꽤 오래 걸린 작품이 되었다.

호흡이 긴 편이지만 특이하게도 책의 절반부가 지나가면 몰입도가 확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1-6권 모두에서 경험한 느낌이다.)

책의 초반에는 주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그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반에 조금 지겹더라도 참고 읽다 보면 어느새 듄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분류상 SF 소설이기는 하지만 분량 자체가 길고 저자가 창조한 세세한 용어들이 많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등장인물들의 내면 대화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는 점 때문에 진입장벽이 분명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이런 세계관 설정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덕후 성향이 짙은) 사람이라면 분명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듄 1, 2권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273974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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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죽음 - 신화로 읽는 죽음의 기원
권태효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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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판타지 소설 같은 제목을 가졌지만, '신화로 읽는 죽음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가진 인문학 책이다.

다 읽고 나니 부제가 책을 잘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의 반대 개념인 '죽음'은 오랜 세월 인류에게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같은 개념이었다.

모든 생물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지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렇기에 인류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역시 다른 생물에 비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가?

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인류 중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봤거나 죽음에서 다시 돌아온 적이 없으므로 위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질문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질문이기 때문에 고대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신화 속에서 죽음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정리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처음에는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이 자주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잘 모르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 신화에서부터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전 세계에 걸친 소수민족의 신화까지 방대한 범위의 신화를 소개하여 신선함을 더해준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렇게나 방대한 지역의 신화를 소개하는데 그 내용이 생각보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신화라는 것 또한 상상력의 산물이니만큼 사람들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는 나름의 보편성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지리적으로 떨어진 각각의 문화들이 오랜 세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비슷해져 간 결과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그 수많은 죽음기원신화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흐름이 발견된다.

1. 인간은 본래 영생을 누렸었지만 인간 스스로 죽음을 원하게 되는 경우

애초에 신은 인간에게 죽음을 내려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인구 수 때문에 인간 사회가 점차 포화에 이르자 인간 스스로가 죽음을 원하게 된다는 신화들이 있다.

2. 인간의 영생을 전하러 가는 메신저(주로 특정 동물들이 담당한다.)의 실수나 고의로 신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어 죽음이 생겨나게 된 경우

이 경우에도 애초에 신은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하려 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것이 좌절되었다는 내용이다.

죽음의 순서에 노소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러한 신화들에서 파생되어 전해진다.

재미있는 점은 지리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들도 보편성을 띤다는 점이다.

죽음 관련 신화에 등장하는 뱀은 허물을 벗으면서 영생을 누리는(필멸하게 되는 인간과 대척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토끼는 대체로 신의 말을 잘 못 전달하여 신이나 인간에게 미움을 사 늘 사냥당할 운명에 처하게 되는 동물로 그려진다.

또한 거의 모든 신화에서 신은 애초에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하려 했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하려 했던 신의 이름이나 모습은 신화마다 각기 다르지만 모두 비슷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한 기울고 다시 차오르는 모습 때문에 영생을 의미하는 달()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신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등장한다는 점 역시 재미있는 점이다.

죽음기원신화들을 보면 신은 인간에게 우호적이며,

인간이 신을 원망하지 않도록 많은 장치를 해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중략 -

비록 죽음을 내리긴 했지만 인간을 배려하는 신이 항상 곁에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라고 이들 신화는 말한다.

원하지 않는 죽음을 받아든 인간에게 신의 세심한 배려는

인간을 달래기 위한 신화적 장치인 셈이다.

(pg 48-49)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신화들이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죽음은 미지의 세계이고 굉장히 높은 확률로 인류가 영원히 알지 못하는 부분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왔고, 나름대로 죽음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승 가는 길이 나타나고 죽음 인도신이 신화에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길이 어떤지는 막연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먼지, 그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기에

사람들은 그저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 세계를 그려보고

또 종교에 기대어 죽음의 세계를 이해하며 위안을 삼으려고 할 따름이다.

(pg 226)

책의 제목이나 표지가 진지한 느낌이어서 책을 펴기 전에는 책의 재미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서술이 쉽고 친절하며 중간중간 사진 자료도 꽤 많기 때문에 읽는데 지루함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에게 친숙한 신화는 오히려 적게 소개하고 사람들이 잘 모를만한 문화권의 신화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꽤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면하고 살아가는 '죽음'이라는 것을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떻게 설명하고자 했었는지 그 궤적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양 삼아 읽어봄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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