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작가의 신작을 보고서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을 집어 들었다.

작가의 책은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것이 잘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몰입감을 보여준다.

숙취가 살짝 남아 있는 주말 아침에 책을 들었는데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에 다 읽고 말았다.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소개해야 작품에 대한 감상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자잘한 범죄가 쌓여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삶을 마감하려 하는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러다 한 노파를 만나게 되는데, 노파는 자신은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끔찍하게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대신 해달라며 전 재산을 맡긴다.

청년은 그 돈으로 신분을 세탁해 새 삶을 살게 된다.

15년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그 노파의 이름으로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그는 억지로 해야 하는 살인을 피하면서 협박범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런 협박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 변화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죽은 사람이 돌아올리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협박의 내용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진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하지만 살해의 순간을 앞두고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망설인다.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마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전 신분일 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부터 시작해 작은 단서들을 모아 협박범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추격을 시작한다.

추리소설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협박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구조이다.

때문에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이런 반전이!' 정도의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협박범의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여러 인물들이 범죄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데 그중에서도 범죄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이 특히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죄인들이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저지른 짓을 얼마나 참회하고 사는지도 희생자와 그 가족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내가 만약 피해자의 유족이라면 나 역시 처벌의 수위에 절망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력범이 낮은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가 나오면 댓글에는 이제는 자력구제가 답이라는 자조적인 댓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는 물론 형량이 높으면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평생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후회하며 사는 것을 더 원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런 감정이 극단에 치달을 경우 사람이 어떤 심리에 몰리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억울할지언정 가해자를 직접 제거하여 복수를 마친다고 해서 마음의 짐이 모두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복수를 해도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어.

오히려 모든 감정이 뽑혀버린 것처럼 내 마음속은 텅 비었어."

(pg 369)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을 두 번째 읽고 나니 '역시 작가의 명성이 그냥 형성된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380페이지 정도로 그리 얇지 않은 책인데 읽으면서 지루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던 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테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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