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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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라는 단어가 그리 아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요즘 '핫한' 책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언론에서도 꽤 자주 소개가 되고 있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

이 책을 소개하려면 당연하게도 우선 가짜 노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함한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노동'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 중략 -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

(pg 94)

구체적인 실생활 예를 들자면, 누구도 진지하게 읽지 않는 보고서를 만드는 일, 사용되지 않을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 실천의지가 없는 브레인스토밍, 의사결정이 일어나지 않는 회의 등등이 모두 가짜 노동이다.

여기에 인터넷 쇼핑, SNS 탐색, 커뮤니티 들락거리기 등 스스로가 근무 시간에 일 외에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도 포함시킬 수 있다.

더 슬프게는 일이 끝났지만 눈치가 보여 퇴근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일이 없다고 하면 추가 업무를 줄까 두려워 무언가 바쁘게 하는 척하는 시간도 가짜 노동에 포함된다.

자신이 그냥 회사원이라면, 특히나 일터가 '사무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위의 일들은 한 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노동을 무대 앞 노동과 무대 뒤 노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쉽게 버스 회사를 예로 들면 버스를 직접 운전하는 운전사는 무대 앞 노동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버스 회사는 운전사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으므로 필수적인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버스 회사의 회계, 인사, 홍보 등 유지 관리를 위한 인력들은 무대 뒤 노동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이 한 1주일쯤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회사가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저자들은 이런 무대 뒤 노동에서 가짜 노동이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대 뒤 노동 역시 자주 계량화되어 시간당 보수가 주어진다.

오늘날까지도 무대 앞 노동의 절차를 모방하기 때문이다. -중략 -

컨설턴트는 뭔가 하는 척하며 쉽게 3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운전사는 버스를 운전하는 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둘 다 특정량의 시간을 투입하고 보수를 받는다.

이렇게 둘 중 한쪽은 속이기가 휠씬 쉽다.

(pg 100)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들이 무대 뒤 노동을 하등 쓸모없는 기능으로 간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 필요성에 비해 너무도 큰 조직, 너무도 큰 자원, 너무도 긴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무대 뒤 노동의 경우 시간당으로 임금을 책정할 근거 자체가 없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서론이 다소 길었지만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가짜 노동을 제거함으로써 노동 시간 단축을 이루자.

지금 인류가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다.

1930년대만 하더라도 2000년대가 되면 주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15시간은 커녕 52시간도 부족하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가짜 노동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업무 담당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쓸모없는 일을 한다거나 의미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한다.

또한 관리자들도 자신의 팀이 한가한 탓에 감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가짜 노동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탄생 이래 노동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재량 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심지어 실질적인 일에서 점점 멀어지면서도 노동의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주로 실내에 틀어박혀 앉아서 일하는, 더욱더 추상적이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일을 하느라 결국 더 바빠졌다.

(pg 65)

이는 모두 상호 이득 추구의 문제가 된다.

직원이 자기 일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입 다물면,

상사는 허위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고,

나에게 소중한 '큰 팀의 리더' 직책을 부여해주는 존재들을

굳이 잉여로 만들 필요가 없음을 자축할 수 있게 된다.

(pg 131)

사회문화적인 변화도 한 원인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지위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도가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가 주 120시간을 일한다며 자랑스럽게 떠드는 것도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하는데 앰버 허드는 언제 만날 수 있었던 걸까)

부러운 인물의 가치를 획득하고 흉내 내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상,

새로운 상류층의 바쁜 삶은 점차 성공과 진보의 동의어가 되었다.

지난 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바쁘다고 말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조너선 거셔니의 표현에 의하면, 진짜 할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그것이 '명예의 새로운 징표'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pg 150)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가짜 노동을 제거해야 하는 것일까?

조직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이유는 가짜 노동 때문에 진짜 노동에 할애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가짜 노동에 장시간 몰두할 경우 개인의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의미 없는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유롭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짜 노동은 제거하기가 참 어렵다.

가짜 노동이 생겨난 계기 자체는 좋은 의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가짜 노동에 달려있기도 하기 때문에 급진적으로 뭔가를 변화시켜서 바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고,

가짜 노동은 포장 재료 가운데 하나다.

좋은 의도와 합리적 사고의 결과이기에 가짜 노동을 근절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pg 166)

개인적으로는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던 터라 뭔가 속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의 기본 기능, 즉 무대 앞 노동은 당연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하는 일은 저자들이 대표적인 무대 뒤 노동으로 꼽은 평가 기능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국가가 대학을 평가할 때 다른 대학들보다 우리가 더 낫다는 것을 강조해 정부 지원금을 더 타기 위한 일이다.

모든 대학은 법령에 의해 2년에 한 번씩 자체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우리나라에 과연 재학 중 자기 학교의 자체 평가 보고서를 다운 받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학생 때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평가가 끝나면 그 누구도 보지 않는 보고서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완성한다.

만일 그것이 재정 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한 보고서라면 더욱 많은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사업에 선정되지 않기라도 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하수구에 버려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가 기능이 대학의 핵심 기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생명줄이 걸려있기 때문에 평가 결과에 총장이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대학들은 이제 평가 지표에 맞추어 교육과 연구 제도를 바꾼다.

이처럼 가짜 노동이 대학에서도 본연의 기능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가짜 노동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만큼 사회 전반에 퍼져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의 관념 속에 이미 자리 잡힌 개념이기 때문에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름 개인들을 위한 해결책도 일반 노동자 버전, 관리자 버전으로 제시해두고 있고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해결책까지 모두 정리하기에는 저자들에게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서 궁금한 사람은 책을 직접 찾아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만 제목만으로 유추할 때 다분히 좌파스러운 해결책이 실려있을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서술에서도 저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아 특히 좋았다.

공동저자인데 한 명은 우파, 한 명은 좌파라고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노동 시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형성된 것을 어느 한 쪽의 책임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지난 30년간, 우파는 실업을 개인이 자초한 고난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해왔다.

하지만 좌파에게는 일의 본성이 바뀌었음에도 정규직의 권리를 떠들어온 책임이

더 있을 것이다.

(pg 374)

책의 분류가 인문학으로 되어 있는 것이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학 책이라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들이 많은 대중이 읽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필했다는 것이 읽으면서 계속 느껴질 정도로 문장이 쉽고 소개되는 사회적, 인문학적 개념들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저자들의 바람처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기업이나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비용이 줄어든다!)

직장인이라면, 특히 자신이 무대 뒤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면 필히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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