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던 터라 뭔가 속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의 기본 기능, 즉 무대 앞 노동은 당연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하는 일은 저자들이 대표적인 무대 뒤 노동으로 꼽은 평가 기능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국가가 대학을 평가할 때 다른 대학들보다 우리가 더 낫다는 것을 강조해 정부 지원금을 더 타기 위한 일이다.
모든 대학은 법령에 의해 2년에 한 번씩 자체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우리나라에 과연 재학 중 자기 학교의 자체 평가 보고서를 다운 받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난 학생 때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평가가 끝나면 그 누구도 보지 않는 보고서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완성한다.
만일 그것이 재정 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한 보고서라면 더욱 많은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사업에 선정되지 않기라도 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하수구에 버려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가 기능이 대학의 핵심 기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생명줄이 걸려있기 때문에 평가 결과에 총장이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대학들은 이제 평가 지표에 맞추어 교육과 연구 제도를 바꾼다.
이처럼 가짜 노동이 대학에서도 본연의 기능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가짜 노동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만큼 사회 전반에 퍼져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의 관념 속에 이미 자리 잡힌 개념이기 때문에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름 개인들을 위한 해결책도 일반 노동자 버전, 관리자 버전으로 제시해두고 있고 사회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해결책까지 모두 정리하기에는 저자들에게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아서 궁금한 사람은 책을 직접 찾아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만 제목만으로 유추할 때 다분히 좌파스러운 해결책이 실려있을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서술에서도 저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아 특히 좋았다.
공동저자인데 한 명은 우파, 한 명은 좌파라고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다.
사실 노동 시장이 지금의 모습으로 형성된 것을 어느 한 쪽의 책임으로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