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기적 혹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기적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pg 228)



문돌이인 주제에 유독 역사쪽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하면 흔히 '지루하다'라는 편견을 가지기 쉬운데, '누가 몇 년도에 무슨 일을 해서 이렇게 되었다.'라는 식의

서술이 쭉 이어지는 역사책이라면 당연히 재미가 없을 법 하다.

하지만 이 책은 특정 시대를 시간 순서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고, 역사의 특정 순간마다 주목할만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접하게 되었다.


출간된지 꽤 오래된 책이라 하는데 책을 덮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일단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데 집사람이 책 제목을 보더니 '재미없지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완전히 틀린 질문이었다.


역사책인 주제에 재미가 있다.

그 재미의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독특한 서술 방식이었다.

대체로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당시의 시대상과 배경, 그리고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까지도 묘사해 두었다. 

이미 그 결과가 정해져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함에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쫄깃한 긴장을 느끼게 하는 작가의 마력 넘치는 문체가

일단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옳긴이의 글에서 작가가 인물 평전을 잘 쓰기 위한 전제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글을 쓰면서 무엇에 중점을 두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인물들을 제대로 묘사하려면 살아있는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 중략 -

 그러려면 역사가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는 현 상황에 대한 지식을 가진 심리학자이기도 해야 합니다." (pg 379)


게다가 도스토옙스키 파트는 마치 서사시처럼 구성되어 있고 톨스토이 부분은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의 심리를 예측해서 시나 희곡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상당히 몰입감 있게 잘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제목에 '광기'와 '우연'이 강조되어 있듯이 등장하는 총 14개의 스토리에는 인간의 광기와 운명의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흥미로운 역사들이

담겨 있다. 

생사가 오락가락 할 정도로 병을 앓는 와중에도 작곡을 놓지 않았던 헨델,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들여 기어이 영국과 미국 사이에 

해저 케이블을 연결하는 데에 성공한 사이러스 필드의 이야기에서는 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잘 엿볼 수 있었다. 


기적 혹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기적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pg 228)


또한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 진출해 사업을 벌이다 우연히 발견된 금으로 인해 결국 파멸을 맞고 마는 서터의 이야기나

별 볼일 없는 평범한 군인이었던 루제 드 릴이 술자리에서 어쩌다 제의 받아 프랑스 국가를 작곡하게 되는 이야기에서는 

역사에 있어서 우연히 이루어지는 사건들이 갖는 엄청난 파급력도 잘 느껴볼 수 있다. 


그러나 후회해봤자 잃어버린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에서나 역사에서나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그르친 것은 천 년을 들여도 되돌릴 수 없다. (pg 75)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역사 속 인물들이 한 행동 기저에 어떤 심리가 있었고 어떤 우연한 상황이 겹쳤기 때문인지,

역사적 사실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읽으면서 툭툭 등장하는 작가의 주옥같은 문장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가는 아직 권력을 거머쥐지 못했을 때는 늘 본능적으로 자신의 나쁜 행위를 지지해 줄 사상가를 찾는 법이다. 

목적이 달성되면 이 한심한 사상가를 밀쳐내면 그만이다. (pg 27)


평온한 시절에는 조심성, 복종, 노력, 신중함과 같은 시민적 미덕들이 큰 도움이 되지만 웅대한 운명의 순간이 오면 이런 미덕들은

불길 속에 맥없이 녹아내리고 만다.

웅대한 운명의 순간은 늘 천재만을 택해서 불멸의 형상을 부여하는 반면, 우유부단한 자를 경멸하며 밀쳐낸다. (pg 181)


1837년에 전보가 등장하면서 이제껏 분리된 삶을 살던 인류는 처음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세계사에서 중요한 해가 우리 교과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교과서 저자는 아직도 어떤 장군이나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인류가 함께 진정한 승리를 거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pg 225-226)


책이 살짝 두꺼운 감이 있지만 총 14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가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업 교재로 사용되는 책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의 책이면 수업 교재여도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역사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턴가 대학 입시가 끝나면 상위권 주요 대학 입학자들의 소득 분위에 대한 기사가 매년 뜨고 있다.

기사의 핵심은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학업 성과와 직결된다는 내용이다. 

가장 최근에 뜬 기사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올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3곳 대학 신입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1%가 고소득 가구의 자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용 출처 : 한겨레 2020-10-12일자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65412.html)


여기에서 말하는 고소득 가구란 국가장학금 지급 시 고려하는 소득분위 중 9-10분위를 의미하는데, 

이 표에 따르면 월 소득 약 1천만원 이상인 가구를 의미한다. 

맞벌이 부부라면 각각이 연봉 6천만원 이상, 외벌이라면 최소 1억 2천 이상의 연봉을 받아야 달성할 수 있는 소득분위라고 보면 된다. 

(즉, 연봉 1억짜리 외벌이 집안이라 하더라도 저 기준에서는 고소득 가구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학생들이 모이는 S.K.Y 3개 대학만 조사해도 위와 같은 수치가 나온다고 한다. 

혹자는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학생부 종합전형을 꼽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다. 

실제로 학종은 쪽집게 과외를 통해 수능에서 따라갈 수 없는 격차를 보일 수 있었던 고소득층 자녀와 

일반 학생들이 경쟁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능으로만 선발하던 시절에도 부모 소득에 따른 성적 격차가 매우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계속 수능을 통한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정답은 바로 '공정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 때문이다.

실제로 수능 역시 사교육에 큰 비용을 투입할 수 있는 집안의 아이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수'라는 객관적인 지표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을 잘 지적한 책이 나왔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늘 비교하고 싶어하는 대상인 미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서 소득 불평등 심화, 

특히 중산층 해체라는 큰 변화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를 '능력주의'라는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과거에 토지 기반, 핏줄 기반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노동과 소득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류층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부유할 수 있었고 수탈의 대상인 노동계층은 생존에 필요한 소득 정도만 지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사회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지와 핏줄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타인의 노동력을 온전히 수탈하는 존재였던 상류층은 고급 지식과 스킬로 무장한 '노동하는 엘리트'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막대한 소득을 올린 이들은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들이 다시 엘리트로서 기능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신분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능력주의가 대두되면서 엘리트들의 성과가 온전히 개인의 성취로 포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획득한 학위나 각종 자격들은 돈으로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해서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바로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부자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피해는 누가 보는가?

특이하게도 저자는 전 계층이 모두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최빈층은 소득이 올라갈 기회가 점점 더 없어지는 셈이므로 피해를 보는 것이 당연하게 예상된다.

중산층 역시 마찬가지다. 


엘리트의 막대한 교육 투자는 성과를 낳는다.

현재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의 학업 격차는 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소송의 판결을 내린 1954년의 흑백 학생 간 

격차보다 더 크다. (중략)

교육 불평등은 부유층과 저소득층을 갈라놓을 뿐 아니라 갈수록 부유층과 중산층 사이에도 장벽을 만드는 추세다.

예를 들어 현재 부유층 어린이와 중산층 어린이의 학업 성과 격차는 

중산층 어린이와 저소득층 어린이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다. (pg 82-83)


결국 '능력주의'가 주장했던 능력에 따른 계층 상승의 기회라는 것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평균 소득은 계속해서 오르지만 이것이 상위 1%이하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소득 증가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크다.


당연히 평균소득의 상승으로 인해 중산층도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과거보다 잘 사는 것이 당연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절대적인 수준에서의 경제적 환경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 비해 계층간 이동이 과연 증가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산층의 상위 계층으로의 유입은 더 어려워지고 빈곤층으로의 전락은 더 쉬워지고 있다. 


모든 경제부문을 통틀어 혁신 때문에 중산층 직종이 소수의 폼 나는 직종과 대다수 암울한 직종에 밀려나고 있다. (중략)

1975년 이후 상위 1%의 소득이 3배 증가하는 동안 중위 실질 소득은 고작 10분의 1 정도 늘어났으며 

2000년 이후 중위 소득은 사실상 정체된 상태다. (pg 79)


남들이 사는 부유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기보다 내가 사는 가난한 사회의 중심에 서야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략) 

능력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시대에 뒤처질 뿐 아니라 퇴행하는 것이며, 성장보다는 유지에 전력하고 

인정사정없이 뒤떨어지는 생활방식에 빠져 있는 것이다. (pg 87-88)


여기에서 말하는 '폼 나는' 직종이란 주로 금융, 의료, 법조, 정보기술 쪽에서 일하는 엘리트들로서 연봉 10억대 정도를 예시로 들고 있다. 

문제는 능력주의의 추구로 인해 엘리트간의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엘리트 계층은 온전한 수혜자여야 할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능력주의의 문제점이다. 


과거의 지주들과는 달리 현재의 엘리트는 누구보다도 과도한 업무량과 막대한 책임감을 떠안고 있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금전적인 보상은 매우 큰 것이지만 실상은 번 돈을 쓰면서 쉴 여유시간조차도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게다가 엘리트들이 사회 혁신의 고도화를 이룩하면 할수록 중산층의 직업은 더욱 더 사라져가므로

엘리트의 자녀들 역시 실패하면 중산층의 직업으로 살아가기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엘리트의 자녀들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더욱 문제는 그런 삶이 마치 성공한 삶인양 포장되고 그러한 경제적 대가가 따르지 않은 삶은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는

사회적 분위기에 있으며 이는 '공정함'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부모의 경제력이 우수한 학업 성적과 명문대 입학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과연 '정당한 결과인가'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것도, 우수한 사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사 외모도 경쟁력이고 실력이라며 성형수술이 권장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문제점은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지만 역시나 사회문제라는 것은 해결책이 너무도 어렵다.

저자도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주고는 있지만 미국과의 현실 차이 때문일지 나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서 녹을 먹고 있는 입장이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입학정원의 상당 부분을 차상위계층에게 할당하는 제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기회균등전형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그 비율이 아주 적은 편인데다, 이 전형을 둘러싼 잡음이 굉장히 많다.

심지어는 이 전형으로 온 학생들을 '기균충'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가난한게 벼슬이냐는 글이 에브리타임에 올라온다.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검색해보라.)

이 전형의 비중을 늘린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찬성하지만 글쎄...대학들이 엘리트 주의의 선봉장인 언론의 공격을 이겨내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길게 쓴 감이 없진 않지만, 책 자체가 500여 페이지로 두꺼운 편이고 내용도 마냥 쉬운 것이 아니어서 정리하기가 다소 까다로웠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이 온전히 일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 분석 측면에서는 대체로 수긍이 가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은 부모의 노동소득을 교육에 투자하여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이 노동소득 증가폭을 아득히 상회하는 불로소득의 상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드래곤도 훌륭한 대학, 대학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재드래곤과 같은 교육을 받은 일반인이 삼성 회장이 될 수는 없듯이

엘리트들의 교육 세습 역시 자신들의 재산 세습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같은 것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내 자식이라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뛰어나기 때문에' 물려주는 것이라고 포장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당장에 각 국가별로 자수성가한 부자의 비율을 조사한 인터넷 자료들만 보아도 우리와 미국은 그 격차가 상당한데, 

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교육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있다면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까지 고학력자들이 많을 수가 없다. 

박사 학위를 들고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사람들도 많은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교육세습이 지금처럼 큰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주요 요인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저자가 제시한 방안 중 우수 명문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등의 주장도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당장에 의사 수가 모자란다고 정원을 늘리려고 했을 때 의사협회가 했던 반응만 보아도 얼마나 말도 안되는 주장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정도 하면 엘리트들도 이 정도는 양보하겠지' 정도의 생각은 엘리트 개개인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엘리트 '집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들이 획득한 특권을 조금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인식 자체는 매우 의미가 있었다.

능력주의라는 것이 공정함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능력주의의 최고 수혜자인 엘리트들 역시 

능력주의가 자신의 삶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편이 자살했다 - 상처를 품고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곽경희 지음 / 센시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상깊은 구절

가족의 자살은 슬프고 아픈 일이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떠안은 고통과 슬픔을 말로 표현하고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점점 가벼워지고 마침내 떠나보낼 수 있다. (pg 95-96)


여러모로 2019년과 2020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될 해가 될 것 같다.

작년에 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녀석이 만 나이로 서른이 되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동생이 죽었지만 슬퍼할 수 없었다.
그래봐야 형은 기타친족일 뿐인데 직계비속인 자식을 잃은 부모님 앞에서 나까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직장과 일이 있었다.
신기하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덤덤한 내 모습에 놀라며 어줍잖은 위로들을 건냈다.

하지만 나라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나보다.
아니,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걸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제목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책 소개를 읽자마자 이 책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배송이 오늘 왔고, 애가 잠든 저녁 9시부터 읽기 시작해 벌써 다 읽고 서평을 남기고 있다.

이 책은 장황하게 소개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 자살한 사람이 있다면 그냥 무조건 꼭 보라고 권해주고 싶을 뿐이다. 
특히나 자살한 사람이 자신과 가까웠던 사람일수록, 그리고 그 시점이 조금 지난 사람일수록 더 추천하고 싶다.

저자는 네 아이를 둔 엄마로서 배우자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상처를 많이 극복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용기도 생겼다.
따라서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건이 주는 충격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난 상태라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 정도는 생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사건을 막 경험한 직후에는 이런 책도 별 위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오히려 시간이 좀 지난 뒤가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소개는 이것으로 끝이다.
주변 사람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인이 있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라.
나도 분위기를 보아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될 때 부모님께 추천해줄 생각이다.


이 이후로는 자신의 상처를 책이라는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가감없이 드러낸 저자의 용기에 감동해 나의 이야기를 좀 쓰려고 한다.
내 이야기 속에 이 책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구절들을 인용해두었다.
가까운 극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털어놓았던, 그것도 술 기운을 빌려 횡설수설 했던 이야기들이다.
내 개인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후의 글은 별 재미가 없을 것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건 지난 해 여름이었다.
자신의 차에서 번개탄을 피웠고 이를 경찰이 발견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자신을 포함 우리 가족 누구와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낯선 포항의 어느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

오랜시간 준비한 흔적이 보였고, 남긴 유서의 내용도 심플했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만이 간략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적혀있을 뿐이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녀석이 살던 부산 근처의 한 절에서 제사를 올린 후 재를 뿌렸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 녀석인지라 우리도 따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묘도 아무런 표시도 없이, 남은 것 하나 없게 다 태워 뿌렸다.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은 계속 많았고 처자식과 함께 사는 삶도 변함이 없었다.

연말 즈음이 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반복되는 일상이 점점 견딜 수 없어졌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나'와 '이렇게 열심히 살아 뭐하나' 라는 양 극단의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자식을 제외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루틴을 차지하는 직장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운이 좋게도 이전 직장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다.
직장 근처로 이사도 했다. 
셋이 살기에는 비좁았던 투룸 빌라에서 오래되긴 했지만 깨끗하게 수리된 아파트로 옮겼다.
새로 바뀐 일상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진짜 내 삶이 맞는지 가끔 의심스럽기도 하다.
부모님도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가끔 딸아이와 놀다 우시는가 하면 왁자지껄하게 한잔 기울이는 와중에도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일쑤였다.

살아 있는 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중략-
혹여라도 남편이 죽은 것을 아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나를 본다면 "남편이 죽었는데도 저 여자는 잘만 돌아다니네"라며
수군댈 것 같았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저 여자는 남편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먹을 걸 사러 나왔어?"라며 욕을 할 것만 같았다. (pg 91-92) 

위에 적힌 저 감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언젠가 술에 취해 집사람에게 하소연을 했을 때 집사람이 자신도 어릴 적 아버지(장인어른)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힘들었다며,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거라며 위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병으로 가족을 잃는 것과 자살로 잃는 것은 같은 사망이라 할지라도 느낌이 매우 다르다.
일단 전자는 뭔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 
아무리 내가 교통신호를 잘 지켜도 일방적으로 달려드는 차를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 내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로 인한 죽음은 좀 다르다.

그들은 무언가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마음으로 그 길을 갔는지 모르지만 남은 가족은 평생 그들의 죽음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이는 그들이 자살로써 내던져버린 그 짐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무겁다.
그 짐을 내려놓으려면 결국 먼저 간 그와 같은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pg 95)

나도 그랬다.
녀석에 비하면 참 순탄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부모님 말씀 적당히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해서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다.
나름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나름 예쁜 딸 아이를 낳았다.
아주 잘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운동은 결과가 좋지 못했고, 억지로 들어간 대학도 결국 스스로 그만두고 말았다.
중학생 즈음부터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고등학교 때에는 자살 시도도 한 차례 있었다.
우울증 병력이 있으면 군대도 면제였지만 취업에 불리하다며 박박 우겨서 현역으로 다녀왔다. 
자기 먹고 살 건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큰 소리를 쳤지만 들어가는 곳마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우울증 증상도 '이 새끼 진짜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빠졌다가도 금새 웃으며 한잔 기울일 때면 '이제 괜찮은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진짜로 가 버렸다.
나에게 생활비가 모자란다며 60만원만 꿔달라는 것이 마지막 부탁이었다.
다음 달에 꼭 주겠다는 말에 무심하게 이체만 해주고 만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러니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나도 차라리 망했어야 했나. 
나도 뭔가 실패해서 같이 좌절을 겪었어야 했나.
비트코인이라도 해서 빚이라도 왕창 졌으면 이 자식이 좀 덜 힘들었을까.
나도 동생에게 애 분유값이 모자라니 30만원만 꿔달라고 해봤으면 어땠을까.

물론 바보같은 생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걸 막기가 쉽지가 않다.

나는 생각을 달리 함으로써 그 짐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들의 죽음에 우리는 먼지 하나 보탠 게 없다.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라 온전히 피해자이다. 
게다가 이때까지 느꼈던 고통으로도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
그러니 나는 그 짐을 얼마든지 내려놓아도 된다. (pg 95)

흔히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틀린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도 있지만 돌이킬 수 있는 과거도 있다.
남편이 떠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지만, 
그의 죽음을 해석하는 나의 그릇된 생각은 다시 돌이켜 좋은 생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과거이다. (pg 139)


지금은 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살아있는 소나무 옆에 죽은 소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아래와 같이 썼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해 MSG가 좀 쳐진 느낌이긴 하지만 꽤나 인상적이어서 원문 그대로 옮긴다. 

(pg 124)

맥락은 다르지만 동생을 뿌린 절의 스님이 부모님과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확한 말의 토씨 하나하나는 생각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메시지였다.
'먼저 간 자식이지만 부모 가슴에 못 박은 불효자인 것만이 아니라 먼저 감으로써 우리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된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으니 우리의 스승이 된 것이기도 하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때도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위에 인용한 저자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여하간 책을 보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게 되었다.
동생이 죽은 것을 계기로 이직할 생각을 했고 아내와 아이가 좀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이 간 후 아버지가 상속받으신 동생 집이 내 이사 날짜와 비슷하게 처분이 되었고 그 돈을 내가 이사할 때 빌릴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요즘도 가끔 술 마시면 우울해하는 나에게 동생이 보고 털어 버리라고 보내준 모양이다. 

그래서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의 결론을 내자면, 이 책이 나에게 왜 도움이 되었는가를 밝혀야 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나의 깊은 절망과 뼛속까지 사무친, 소화되지 않은 설움을 토하고 싶었는데 그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말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픔과 괴로움은 아예 꺼내지도 못한다.
그저 적당히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입에서 길고 지루한 잔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만 한다. (pg 229)

진짜 위 문구는 자살 유가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마 부모님도 비슷한 경험이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도 슬프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동생의 죽음이 내 삶과는 무관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사람들의 값싼 동정이나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덤덤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눈물이 나면 울고 원망하고 싶으면 욕도 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사실 동생은 법적으로 기타친족에 해당한다.
배우자를 잃고 네 명의 자녀를 홀로 키워야 하는 저자에 비하면 내 상실은 매우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 힘든 타인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해서 내 힘듦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의 위로가 없어서 더 좋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상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고 우울이 자신을 삼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자신의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자살로 가족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요즘들어 많이 느낀다. 
심지어 지금 직장에서는 누가 형제관계를 물으면 외동이라고 한다.
한번은 '전혀 외동같지 않네요'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외동이 된지 얼마 안됐거든요'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어서 더 캐묻지는 않았지만 대화가 어색해지기엔 충분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땐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맞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눈치없이 묻는다면 이제는 그냥 덤덤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게 흉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내가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도 WAR 1
안철주 지음 / 봄봄스토리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만에 만화책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독도를 두고 일본과 발생한 가상의 분쟁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표지만 봐도 국뽕 냄새가 그득한데, 국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굉장히 궁금했다. 

(스포일러성 문구들은 흐리게 처리하였다.)


표지도 그렇고 그림체도 그렇고 뭔가 요즘 만화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어릴 적 사우나 휴게실이나 이발소(미용실 아니고)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봤던 느낌의 만화책이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94년에 처음 '대국'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던 것이 최근에 다시 개정되어 나온 것이었다. 

94년이면 2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니 다소 예전 감성이라는 걸 염두해 두고 보기 시작했다.

총 15권이지만 각 권이 약간 얇은 느낌이고 내용 전개가 늘어짐 없이 시원시원해서 금새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내용도 심플하다.


배경은 90년대 말로 한국과 북한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이동하는 등 완전한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독도 근처에서 한일이 협력해 유전을 하나 개발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석유 대박이 터진다.

마침 추석 연휴여서 그 곳에 상주 중인 한국인 기술자가 1명 뿐이었던 것을 노린 일본은 기술자를 살해하고 석유를 독차지하려 한다. 

그 시도를 대한민국 해군 장교이자 정의로운 우리의 주인공이 막고자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년이 넘은 작품인지라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오글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체도 낯선 느낌이고 대사도 약간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정도 대사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항마력이 필요하다.)

 

(8권 pg 102)


또한 인물들의 설정도 특별한 반전 없이 악역은 일관적으로 악역이고 선역은 너무도 완벽하게 선역이어서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속된말로 '통수치는' 재미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고구마' 같은 전개가 없고 시원시원하게 내용이 쭉쭉 전개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만큼은 요즘 세대들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이 고위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 이런 사람들이 아닌

하급 장교(주인공은 대위였다가 소령으로 진급한다.)와 그를 따르는 군인들, 기업가, 기자, 그리고 시위로 들고 일어나는 다수의 시민 등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타올라라 국뽕이여!)

 

(9권 pg 81)


작품에서도 각 권 서두에서 임진왜란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임진왜란 역시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리더십도 중요했지만

평범한 농민들이 주도한 의병 역시 큰 활약을 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큰 장면들이었다. 


또한 만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는 지금 봐도 멋진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을 위해 합심하는 남북의 노력이 멋지게 잘 그려져서 통일 한국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정부 들어서 북한과의 관계가 좀 개선되는 것 같다가도 최근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역시나'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들을 이 작품을 통해 미리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옛날 작품이어서 아쉬운 점들도 많다.

특히나 작품의 결말은 비교적 최근까지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나라에서 상상하기엔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국을 이유로 총구가 일본을 겨냥했을 뿐이지 군 통수권자 몰래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고위 장교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그렇게 정의로운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분쟁의 원인이 '석유'라는 점도 요즘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겠다. 

천연자원 없이 경제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사람을 갈아 넣어왔던 근현대사 때문인지 '우리도 석유로 꿀 빠는 나라가 되고 싶다'라는 

열망이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나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인데 여성만 존대말을 쓴다거나, 기업 총수가 계열사 사장에게 자신의 딸을 마치 하사품처럼 만나보라고 권유하는 등 

요즘 사회상에서는 제법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도 종종 눈에 띄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개정판을 낸 만큼 편집 과정에서 폰트 교체와 오탈자 검수가 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폰트가 옛날 만화책 폰트여서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데다 예전에 있었던 오타도 그대로 실려있는 것 같아 작품의 빛을 좀 가리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독도 문제가 이 책이 처음 발간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하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아베가 물러나고 정권을 잡은 스가라는 인물이 과거에 독도 문제를 자주 거론했던 인물이라는 점도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괜히 일본이 혼자 자꾸 물고 늘어지는 것 뿐이지만 그런 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건

일본이 아직 이 나라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의미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외적인 부분이지만,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 사회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함에 있어서 이 책에서처럼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부분 비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 불매 운동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게다가 석유 같은 지하자원 없이도 IT기술과 문화 컨텐츠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야가 많아졌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이론적으로 가장 좋은 결말이란 물론 양국이 서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협력해 가는 것일테지만 

아직까지 그 길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가 굴복할 때까지 힘의 논리로만 승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국뽕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나지만 그런 나에게도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주는 좋은 작품이었다. 

다만 원작의 오리지널리티가 조금 변하되더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수정되어 다시 개정판을 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3가지 새 이야기
가와카미 가즈토.미카미 가쓰라.가와시마 다카요시 지음, 서수지 옮김, 마쓰다 유카 만화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그런데 최근 딱따구리의 뇌도 충격을 받으면 손상을 입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딱따구리의 뇌에는 타우 단백질이라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물질이 다른 새보다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는 뇌 손상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록키'같은 타고난 승부사인 모양이다. 



뼛속까지 문돌이인 난 자연과학쪽 책은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다독하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독서를 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순전히 글을 읽는 '즐거움' 때문인지라 

뭔가 재미가 없을 것만 같은 자연과학쪽 책은 손이 잘 가지 않게 된다. 

'과학'이라는 단어에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자연과학 서적도 재밌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 바로 '가와카미 가즈토' 작가의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이라는 책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조류학자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힘을 빡 주고 쓴 책도 아니고 그저 일반 대중들에게 조류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유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 작가가 새로운 책을 발간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새 이야기를 즐겁고 유쾌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네 컷 만화를 곁들여 진입장벽이 한층 더 낮아진 느낌이 들었다. 


재미난 새 이야기가 83가지나 담겨 있는데, 페이지 구성이 좌측에는 네 컷 만화가, 우측에는 해당 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 이야기가 모두 만화 1페이지, 설명 1페이지로 짧게 담겨 있어서 초등학생 이상만 되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출퇴근 길에 잠깐잠깐씩 보기에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난 침대 근처에 두고 잠들기 전에 3-4개씩 짧게 읽었다.)


등장하는 새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TV에 자주 등장하는 새들이 주로 담겨 있어서 친근한 느낌이 든다.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유별난 방향으로 진화했거나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새들이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면, 딱따구리는 특유의 따다다다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속도로 나무를 쪼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작은 체구로 나무에 구멍이 날 정도로 들이 받으면 머리는 멀쩡할까가 궁금했다. 

연구에 따르면 딱따구리는 뇌가 두개골에 가득 차는 구조로 진화해서 머리를 빠르게 흔들어도 뇌에 손상이 덜 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재미난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딱따구리의 뇌도 충격을 받으면 손상을 입는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딱따구리의 뇌에는 타우 단백질이라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물질이 다른 새보다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계속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는 뇌 손상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록키'같은 타고난 승부사인 모양이다. (pg 39)


그런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사람도 머리를 자주 부딪히면 알츠하이머가 올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역시 박치기 많이 하면 머리 돌 된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말 중에 나쁜 머리를 놀리는 말로 '새 대가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생각보다 똑똑한 새들도 많았다.

특히 똑똑한 것으로 알려진 까마귀는 스스로 재미를 위한 놀이를 찾아서 한다거나 소독을 위해 개미와 연기를 이용하는 등 

도구 활용 능력도 대단했다.

심지어는 불을 활용해 사냥을 하느라 산불을 내는 독수리, 매와 같은 새들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주고 그 벌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다는데 그 때 독수리가 불도 같이 훔쳐간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쉽게 읽히는 책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다만 서술 부분이 워낙 짧아서 그런가 내가 좋아했던 작가 특유의 빛나는 유머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만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읽었던 책에 비해 재밌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화 그린 사람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화 파트보다 글 파트가 더 재미있었다.) 


오히려 이 책이 새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더 좋았다는 느낌이다.

읽고 난 후 다양한 새들의 특이한 생태가 기억에 잘 남았다. 

그림이 있어서 새의 외형과 행동이 직접적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조류는 꼭 애완동물이 아니어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공부한다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작가의 또 다른 책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의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13709248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