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건 내일 할래! 1 팡 그래픽노블
주쓰 지음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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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제 2학년이 된 우리 딸은 만화책을 정말 좋아한다.

맨날 만화책만 읽어서 이제 만화책은 좀 덜 권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책은 캐릭터가 너무 귀여워서 아이뿐 아니라 나도, 아내도 좋아할 것 같아 같이 읽어보게 되었다.

표지에 보이는 네 명의 친구들이 펼치는 다양한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림이 심플해서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각각의 캐릭터별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물론 MBTI까지 설정되어 있을 정도로 공들인 느낌이 난다.

특히 '옹심이'라는 친구는 전동 휠체어를 타는데 다른 친구들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약 2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에 총 15개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이 잔잔하면서도 건전해서 아이가 읽기에도 딱 좋았다.

아이들 만화라 해도 내용상 썩 좋지 못한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은 전혀 거슬리는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점이나 도서관, 영화관처럼 평소에 아이들도 자주 찾게 되는 곳에 가는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고, 뒷산에 올랐다가 자연인 아저씨를 만나 팥죽을 얻어먹는 등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도 있어서 아이들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영화관이나 미술관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같은 교육적인 부분도 잘 담아내서 권해준 부모 입장에서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딸아이도 책을 보자마자 정말 기뻐하며 배고픈 것도 잊고 책에 빠져드는 걸 보면 아이들 눈높이에도 잘 맞는 모양이다.

1권이라고 적힌 것을 보면 네 명의 개성 넘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올 모양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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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죄 - 나쁜 생각, 나쁜 명령. 그 지시는 따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 시리즈
이모령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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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목만 보고는 짧은 영상 매체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의식을 지적하는 사회과학 책인 것 같아 내가 읽을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타깃 독자가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놀라웠다.

요즘은 어른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이 온전히 자신의 사유인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추세인데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분량은 100페이지가 채 안 되어 그리 길지 않지만, 생각보다 글의 양이 많다.

삽화나 그림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만 된 부분의 비중이 커서 줄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최소 초등학교 고학년)는 되어야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에서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저자는 '유대인 학살'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를 인용한다.

그리고 그의 재판 과정을 지켜봤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 붙인 죄목이 바로 책 제목이기도 한 '생각하지 않는 죄'였다.

이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옳지 않은 행동이 강요될 때 이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과 명령에 굴복하는 '생각하지 않는 죄'는

단순한 도덕적 나태를 넘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 믿음, 공감, 연대감을 잃게 합니다.

이는 삶의 의욕을 무너뜨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사회적 고립을 초래합니다.

이것은, 결국 혐오와 폭력 같은 극단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pg 72)

인류가 지구의 지배적인 종이 된 원동력이 뛰어난 두뇌를 이용한 '사유'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를 현명하게 사용할 의무가 있다.

물론 말로만 적어두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화와 교육, 그리고 스스로의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성인이 되어도 어려운 일이다.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스스로가 늘 저렇게 살 수는 없었다는 걸 자각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조직에서의 순응을 위해 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그러면서 그것이 오히려 '사회생활을 잘 하는 법'으로 포장되고 있지 않은가.

사실 딸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책인데 생각보다 내용이 어려워서 내가 읽게 된 책이다.

어린이용으로 집필했다고는 하나, 다루고 있는 주제나 사용한 용어들을 보면 최소한 청소년용이라고 해야 맞지 않았을까 싶다.

쉽게 썼다고 해도 어린이들이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차이를 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얇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성인들도 읽으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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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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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벌써 네 권째 만나고 있는 작가의 책이다.

이번 책은 단편집으로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영생불사연구소'라는 작품인데 시작부터 상당히 재미있다.

파리 목숨의 대명사인 현대 소시민의 삶과 영생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재미나게 버무렸다.

저자가 SF 작품들을 잘 쓰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SF라기보다는 뭔가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준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법한 창립 기념행사라는 별 의미도 없는 행사를 준비하는 말단 직장인의 시각에서 전개되는데, 특히 행사 팸플릿의 단어 하나, 로고 위치 하나로 수많은 피드백을 거쳐야만 했던 말단 직원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웃픈' 현실 그 자체였다.

사실 '영생'이라는 키워드가 이 작품의 반전 요소이기는 하나, 제목에 버젓이 있기도 하고 그 사실을 알고 봐도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대로 썼다.

표제작이자 무려 '필립 K. 딕 상' 후보작으로 유명한 '너의 유토피아'가 이어진다.

인공지능과 태양열 충전 기능이 탑재된 자동차가 폐허가 된 지표면 위에서 다른 안드로이드를 뒷좌석에 싣고 생존을 위한 사투를 이어가는 내용이다.

일단 작품의 시각이 일반적인 안드로이드가 아닌 자율주행 자동차라는 점이 재미있는데, 이렇게 인공지능이 탑재된 사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보다 더 인상 깊었는데, 'One More Kiss, Dear'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의 화자는 무려 인공지능이 탑재된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가 바라본 인간의 노화와 죽음, 그리고 인공지능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시각 차이를 짧은 단편 안에서 충분하게 경험할 수 있다.

동물과 식물, 자연 현상에 관한 질문에도 90퍼센트 이상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 중략 -

"인간 스스로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One More Kiss, Dear' 中)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녀를 만나다'였다.

저자의 사회적 시각과 동조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이 작품이 누구를 추모하기 위해 쓰였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읽었는데도 읽으면서 그 인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신의 성별 지향과 직업적 소명이라는 별개의 개념이 충돌하면서 잃지 않아도 될 생명을 잃었다.

저자는 '변희수 하사'에 대한 추모 위에 자본의 이름으로 죽어가야 했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까지 한 작품 안에 모두 담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도 비숙련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가 뜨거운 쇳물 속에서 끔찍하게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기계는 사람을 죽였다. - 중략 -

그리고 사람들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기계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그렇게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끔찍하게 죽이는 걸 그저 보고만 있었다.

아니 그저 보고만 있는 건 아니고 사람값과 기곗값을 계산해서 이득을 따지고 앉아 있었다.

('그녀를 만나다' 中)

결코 잊지 않는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삶의 엉뚱한 순간들 속으로 과거의 상실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받아들이면서

그래도 잊지 않고 세상을 이렇게 만든 빌어먹을 새끼들이 골로 가는 꼬라지를

보고야 말겠다고 나는 살았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나도 나아갈 것이다.

('그녀를 만나다' 中)

그 밖에도 가정 폭력 희생자의 안타까운 성장사를 SF 배경 위에 녹여낸 'Maria, Gratia Plena', 인간이 지구에 가한 폭력에 대항해 식물과의 결합이라는 진화를 이뤄낸 신인류 이야기인 '씨앗' 같은 작품들 역시 사회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사회 비판적 시각이 들어있다고 해서(흔히 하는 말로 PC가 좀 묻었다고 해서) 문학의 본질적 가치 중 하나인 '재미'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여행의 끝', 외계인 배우자와의 공생을 그린 '아주 보통의 결혼' 등의 작품들은 사회 비판적 시각보다는 SF 적인 느낌을 더 많이 주기 때문에 SF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수록 작품 대부분에서 상실과 애도의 감정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아직은 쌀쌀한 요즘 날씨에 읽기 딱 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러니까 상실하면 애도해야 하고, 상실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서는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상실된 사람들을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그리고 행동으로 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런 상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작가의 말' 中)

한 작가의 책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작가에 대한 기대도 계속해서 수정되기 마련이다.

비교적 가벼운 작품으로 저자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이후에 읽은 작품들이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무거운 느낌의 작품들이 더 취향에 잘 맞는 것 같다.

저자의 대표적인 장편들을 아직 접하지 못했으니 이제 장편으로 눈을 돌려볼까 한다.

여하간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발표할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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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이기원 디스토피아 트릴로지
이기원 지음 / 마인드마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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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뉴소울시티'라는 100년 후의 서울을 배경으로 불평등이 극에 달한 독창적인 미래 사회를 그려냈던 '쥐독'이라는 작품의 후속편이다.

특이하게도 후속편이지만 시간의 흐름은 전작보다 50여 년 정도 앞선 프리퀄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소울시티'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절멸한 상황에서 10대 대기업들의 연합체인 '전국기업인연합'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게 된 도시국가다.

전작과 배경이 동일하기 때문에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즉각적으로 작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에 간략하게 그간의 역사가 소개되고, 등장인물 역시 '쥐독'에서 마인드 업로딩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지도자 '류신'을 제외하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전작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번 작품의 소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AI 판사다.

모든 증거와 정황을 분석하여 정확한 판결을 내리는 '저스티스-44'라는 AI가 '뉴소울시티'의 범죄율을 극적으로 낮추자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AI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AI가 완벽에 가깝게 통제한다고 해도 인간의 행동과 의지는 일정 수준의 변수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므로 사건사고가 아예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그러한 변수들로 인해 벌어진 사건 사고를 조사하여 AI 판사에게 기록을 넘겨주는 '픽서'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이다.

그는 어느 날 한 교통사고를 조사하는데, 무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AI 판사가 단순한 사고로 처리하는 모습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의구심을 따라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던 중 이상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서 AI 판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그뿐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의기투합하여 AI 판사가 가진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우린 도구군요. 그렇지만 인간을 정의롭게 하는 도구란 없어요.

인간 스스로가 정의로워져야 하죠. 어떠한 도구든 결국 탐욕의 대상이 되니까요.

인간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잖아요. 불도, 칼도, 화약도, 비행기도, 핵도.

(pg 311)

여기까지만 소개하면 대충 스토리가 짐작될 것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AI 판사의 판단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가 꽤나 괜찮은 반전을 만들어놨고, 그 반전이 마지막까지 가야 밝혀지는 구조라서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전작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전작에서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던 전개상의 이상한 부분이라던가 너무 일이 쉽게 잘 풀리는 것 같은 느낌도 이번 작품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소재 자체가 이미 많은 SF 작품들에서 다뤄진 AI여서 중반까지의 전개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단점으로 남을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결말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 결말이 곧 쥐독의 세계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서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공을 들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초반을 읽다 보면 '쥐독'보다 과거의 시점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묘하게 더 발전된 느낌을 받는데, 이 이유도 후반부에 가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과 '쥐독' 사이의 시점을 다룬 책이 마지막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 작품을 읽고 나면 '쥐독'의 사회가 왜 그런 모습이어야 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이하게 시간 흐름상 3-1-2 순서로 책이 발간되는데, 그런 순서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발간될 작품에서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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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사라졌다
미야노 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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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특정한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른바 '루프물'은 SF나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시도되는 소재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기에 가끔 삶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전형적인 루프물로, 어느 날 갑자기 하루가 반복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루프에 빠지게 되는 시기가 마치 전염병처럼 각기 달라서 루퍼가 한 명 발생하면 그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전염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작품 내내 알려주지 않고, 또 그 이유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으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작가의 안내에 따라 상상의 세계로 떠나면 된다.

작품은 총 다섯 명의 중심인물들이 루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배경은 일본이 셋, 캐나다 하나,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 하나로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 작품도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인지 첫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어린 딸이 강간 후 살해된 한 엄마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미성년자여서 얼마 되지 않는 형을 살고 나온 후 교통사고로 한 병원에 입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던 그녀는 공교롭게도 복수에 성공한 바로 그날부터 루프에 빠져버린다.

아무리 죽여도 다음 날이면 다시 되살아나기에 그녀는 매일매일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를 죽이러 간다.

이렇게 충격적인 첫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루프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학교에 피신하는 여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모든 증거가 다음 날이면 사라지기에 사회는 대혼란에 빠진다.

특히 아직 루프에 걸려들지 않은 여성은 성폭행을 당해도 다음날이면 기억도, 증거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에 범죄의 타깃이 되고 만다.

인간의 기억 외에는 모든 게 초기화되는 세계.

실제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다음 날이면 자유로운 몸이 되는 세계.

인간의 짐승 같은 본능이 풀려나 본성을 드러낸 신세계.

비명이 거리를 뒤덮으리라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선설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바보일 뿐이다.

(pg 160)

하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상으로 회복 중이던 운동선수가 끝까지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에서 홀로 공부하며 자신의 주변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언론인의 이야기, 루프 때문에 끝나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는 중증 환자들을 돌보는 죽음의 천사 이야기 등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도 있다.

드디어 깨달았다. 내일이 오는 세상이든 오늘이 이어지는 세상이든 매한가지다.

후회 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열중해 있는 것에 온 힘을 다하면 된다.

(pg 189)

전혀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영향을 받게 된다.

코로나 시대에도 모두가 거리를 유지했지만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작품 속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중에는 짐승과도 같은 공포도 있지만 반면에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인간미도 숨어 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해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책을 덮을 무렵에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는 긍정적인 감상만 남게 된다.

루프라는 소재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내용이지만 그 속에 인간의 악함과 선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꽤 재미도 있고 분량도 그리 길지 않으니 요즘처럼 날씨 좋을 때 심심풀이로 딱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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