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사라졌다
미야노 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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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특정한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른바 '루프물'은 SF나 판타지 장르에서 자주 시도되는 소재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기에 가끔 삶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전형적인 루프물로, 어느 날 갑자기 하루가 반복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루프에 빠지게 되는 시기가 마치 전염병처럼 각기 달라서 루퍼가 한 명 발생하면 그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전염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는 작품 내내 알려주지 않고, 또 그 이유가 그리 중요하지도 않으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작가의 안내에 따라 상상의 세계로 떠나면 된다.

작품은 총 다섯 명의 중심인물들이 루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배경은 일본이 셋, 캐나다 하나,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 하나로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 작품도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인지 첫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어린 딸이 강간 후 살해된 한 엄마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미성년자여서 얼마 되지 않는 형을 살고 나온 후 교통사고로 한 병원에 입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딸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던 그녀는 공교롭게도 복수에 성공한 바로 그날부터 루프에 빠져버린다.

아무리 죽여도 다음 날이면 다시 되살아나기에 그녀는 매일매일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를 죽이러 간다.

이렇게 충격적인 첫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루프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학교에 피신하는 여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슨 범죄를 저질러도 모든 증거가 다음 날이면 사라지기에 사회는 대혼란에 빠진다.

특히 아직 루프에 걸려들지 않은 여성은 성폭행을 당해도 다음날이면 기억도, 증거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에 범죄의 타깃이 되고 만다.

인간의 기억 외에는 모든 게 초기화되는 세계.

실제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다음 날이면 자유로운 몸이 되는 세계.

인간의 짐승 같은 본능이 풀려나 본성을 드러낸 신세계.

비명이 거리를 뒤덮으리라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선설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바보일 뿐이다.

(pg 160)

하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이야기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상으로 회복 중이던 운동선수가 끝까지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에서 홀로 공부하며 자신의 주변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언론인의 이야기, 루프 때문에 끝나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는 중증 환자들을 돌보는 죽음의 천사 이야기 등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도 있다.

드디어 깨달았다. 내일이 오는 세상이든 오늘이 이어지는 세상이든 매한가지다.

후회 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열중해 있는 것에 온 힘을 다하면 된다.

(pg 189)

전혀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영향을 받게 된다.

코로나 시대에도 모두가 거리를 유지했지만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작품 속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중에는 짐승과도 같은 공포도 있지만 반면에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인간미도 숨어 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해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책을 덮을 무렵에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는 긍정적인 감상만 남게 된다.

루프라는 소재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내용이지만 그 속에 인간의 악함과 선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꽤 재미도 있고 분량도 그리 길지 않으니 요즘처럼 날씨 좋을 때 심심풀이로 딱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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