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먹고 자라는 문해력 국어가 좋다
정윤경 지음, 백명식 그림 / 다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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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가 이전 세대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듯 매 순간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우리처럼 세대를 거듭하며 계속 변화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신이 어릴 적 쓰던 언어와 요즘 아이가 쓰는 언어가 꽤 다르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속담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굉장히 오랜 기간 사용되어 온 표현들이지만 지금도 자주 쓰이며 그 뜻도 온전히 전해지고 있어서 세대가 달라도 속담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담을 잘 쓴다는 것은 곧 언어를 잘 구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에게 속담을 통해 문해력을 높여준다는 책이 나와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지금도 자주 쓰이는 속담 서른여 개가 담겨있다.

가장 먼저 속담이 가진 원 뜻을 소개해 준 뒤 그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 꼭지마다 왜 이런 속담이 생겨났는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해당 속담과 잘 어울리는 고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어려워할 수 있을 법한 단어들에는 빨간색으로 강조가 되어 있고, 이 단어들의 뜻을 뒤 페이지에서 상세히 알려준다.

예를 들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을 설명할 때 사용된 '경솔하다', '거창하다', '허세'와 같은 단어들이 추가로 소개되는 식이다.

'알곡', '파동', '배냇저고리', '벌초', '독촉' 등 알려주는 단어의 수준도 그리 낮지 않다.

이런 단어들은 성인들도 그 뜻은 알지만 막상 아이에게 무슨 뜻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꽤나 어려울 텐데, 정확한 뜻은 물론이고 예시 문장도 있어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을 것 같다.

그런 다음 해당 속담을 어떨 때 쓸 수 있는지 다양한 예시와 함께 익힐 수 있다.

책 후반부에는 간단한 퀴즈와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속담들을 간략히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서 전반적으로 알찬 구성이었다.

처음 목차를 보고 속담이 서른 개 정도 수록되어 있어서 분량이 다소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 속담마다 네 페이지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속담이라는 문장을 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정확한 의미, 그리고 이야기 속에 담긴 어려운 어휘들을 공부할 수 있어서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졌다.

글씨가 다소 작은 편이기는 하나, 글 양 자체가 아주 많다고는 볼 수 없는 정도여서 만화에서 줄글로 넘어가는 아이라면 살짝 도전적으로 읽어봄직한 분량이었다.

딸아이도 학습만화만 읽어서 줄글로 전환해 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라 이 책이 반갑게 느껴졌다.

물론 만화책만큼은 아니겠지만 꽤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적인 용어와 관용적인 표현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 곧 문해력의 기초라고 볼 때, 제목에 충실하면서도 좋은 내용의 어린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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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성격을 숫자로 평가해보겠습니다
박재용 지음 / Mid(엠아이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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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류가 자연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것들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과학의 이름을 빌어 증명하지 못할 가설들로 사람들을 속이는 '유사과학' 역시 아직 그 위세가 꺾이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쉽고 명쾌하게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유사과학이 왜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지를 설명해 준다.

MBTI처럼 사람을 일정한 유형으로 구별하는 것부터 건강에 좋다는 여러 민간요법과 건강 보조식품, 기후 위기나 백신에 대한 음모론까지 크고 작은 유사과학들에 대한 반박이 수록되어 있다.

MBTI야 사실 일반적으로는 스몰 토크 주제로나 사용하지 이를 과학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 같고, 바이오리듬도 이미 한물 간 주제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위기나 백신에 대한 음모론 같은 것들은 진짜로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꽤 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도 꽤 크기 때문에 이런 교양서들을 통해 진짜 사실들을 파악하는 것이 꽤 중요할 것 같다.

또한 이런 유사과학들이 대체로는 장삿속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콜라겐이나 효소, 해독주스처럼 건강에 굉장히 좋은 것처럼 포장된 것들도 사실 과학적으로는 그다지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쇼핑몰에서 검색해 보면 관련된 건강 보조 식품들이 굉장히 많이 판매되고 있고, 여기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있다.

물론 속이는 자들이 더 나쁘다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 쓸데없이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이런 지식들로 무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비판할 지점은 유사과학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기업과 그들과 결탁한 과학자들입니다.

최근의 사례는 남양유업 불가리스 사건이 대표적이지만,

각종 건강식품과 건강 관련 여타 제품 문제가 가장 많이 보입니다.

(pg 173)

개인적으로는 최근 '전청조 사건'으로 인해 주목받았던 '리플리 증후군'이 실제로 존재하는 정신병명이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워낙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도 해서 당연히 실제로 존재하는 정신병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나니 그런 병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플리 증후군이 유사과학인 이유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떤 사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 사실이라고 믿는지' 아니면

'자신의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는 척 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병명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pg 102)

보통의 성인들이 중학교 2-3학년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저자는 이 정도 나이 대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서술도 친절하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다.

줄글에 익숙하기만 하다면 초등학생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딸도 '이 정도면 나도 볼 수 있겠는데?' 하더니 다이어트 부분을 읽고서 관련 내용을 간추려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중간중간 토론 주제도 던져주고 책 후미에는 워크시트들도 수록되어 있어서 교사나 부모가 아이 지도용으로 활용하기에도 편한 구성이었다.

전반적으로 쉽지만 그러면서도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담고 있는 책이었다.

학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을만한 책이므로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 이런저런 유사과학에 대한 토론을 펼쳐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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꽥 만약에 2 - 생각을 더하는 가치 수업 꽥 만약에 2
김강현 지음, 홍거북 그림, 김필영 감수, 꽥 원작 / 서울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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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책보다는 영상 매체를 선호하다 보니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학습만화 시리즈가 정말 많이 나오고 있다.

학습만화의 효과성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들마다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기 위한 목적으로는 이만한 매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아이와 함께 읽게 된 학습만화는 '꽥 만약에'라는 시리즈로 '꽥'과 '악마 꽥'이라는 단순한 이름의 캐릭터들이 나오는 시리즈다.

형식적으로는 여타 학습만화와 동일하게 주인공들의 모험 이야기 속에 철학적 개념들을 살짝씩 녹여놓고 각 챕터마다 주요 개념 정리와 간단한 퀴즈들이 포함되어 있다.

1권도 같이 읽었었는데, 여타 학습만화와 달리 '철학'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2권에서도 아이들 수준에 맞는 철학 이야기들을 '꽥'과 '악마 꽥'의 좌충우돌 모험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입시교육 측면에서 철학은 주로 암기과목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철학이야말로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연습이 곧 철학을 공부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질문들이 일단 눈길을 끈다.

2권에는 죽음과 아픔이 사라진다면, 시험에 통과해야만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사람이 인공지능 로봇이 된다면, 상상한 일이 현실로 펼쳐진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묻는다.

네 가지 질문 모두 어른들 눈에도 결과가 궁금해지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50억 년을 홀로 보내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같은 반이 되기도, 수많은 로봇 '꽥'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등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들로 아이들을 데려간다.

특히 법적으로는 성인의 기준을 생년 이후의 일정 기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이 다 되었다'라는 표현 속의 어른은 법적 성인과는 꽤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른이 곧 성인이므로 그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이들 눈 높이에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이유로는 크게 문해력 향상과 지식의 습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관찰하면 학습만화로 문해력을 높이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지식의 습득 측면에서는 꽤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는 줄글로 전환했으면 하는 마음에 애가 타기도 하지만, 일단 학습만화라도 붙들고 읽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아이가 워낙 좋아하는 시리즈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나오는 대로 접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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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
법정 지음, 김인중 그림 / 열림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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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목이 그 자체로 모순이지만 저자에 '법정'이라고 쓰여있으니 뭔가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신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의 가르침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가 남긴 가르침이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의 세상, 미래의 더 많은 소유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침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말은,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 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pg 126)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집필했던 작품들에서 좋은 글귀들을 뽑아 화가 김인중의 그림과 함께 수록한 책이다.

화가 소개를 보니 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사제라고 한다.

즉 책 자체가 종교의 통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법정 스님 역시 종교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여러 저서에서도 밝힌 바 있어 생전 그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나, 여기 저서에서 짧게 인용한 글들의 모음이라 딱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편집 역시 한 페이지에 길어야 열두 줄을 넘지 않고, 중간중간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잔잔한 법정 스님의 글과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인 재미를 더해준다.

장미꽃을 보면서, 왜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에 하필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고 불만이 생긴다.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저 대견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pg 167)

책의 후반부에는 법정 스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단어가 '무소유'인 만큼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집중되어 있다.

예전에 그의 책을 읽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의 철학이 최근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 운동에도 영향을 꽤나 주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지라 그의 철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가나 물질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 - 중략 -

물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낄 줄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좀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할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 버린다.

물건만 버리는 게 아니라 아끼고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pg 169)

생전 법정 스님이 사후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버젓이 박힌 책이 나오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의 한 측면이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가르침 자체가 잊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유를 지양하라는 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를 곁에 두고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의 저작을 좀 읽었던 사람이라면 굳이 다시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깔끔한 편집과 아름다운 그림이 합쳐져 읽기에 편한 책이므로 그의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에 두고 심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 곳이나 펴서 다시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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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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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직장인으로 산 지도 15년이 넘었다.

첫 직장은 책 읽는 걸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책 선물을 많이 받았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그런지 책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여하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 선물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서점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이, 도서관에서 빌리지 뭐' 하고 내려놨던 책을 선물받았을 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꽤 오랫동안 해외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23년에 소개되었는데, 지금 판매되는 판본이 무려 106쇄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어서 읽은 후 영화로 감상을 이어가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12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 소개를 보니 저자의 스타일이 길게 쓰지 않고, 작품을 많이 내지도 않는 모양이다.

짧아서 그런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면서도 문학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 것 같아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는데 좋은 기회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라 주요 서사도 사실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제목처럼 사소한 일상 속 어느 한 지점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작품은 '펄롱'이라는 남성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그는 한 부잣집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주인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 운수업을 하며 슬하에 딸 다섯을 두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간다.

하지만 그는 그 평범한 일상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점점 더 민감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언제 그들처럼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 정도라도 유복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작품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로, 동네에 흑맥주처럼 검은 강 배로가 흐르고 규모가 제법 큰 것으로 묘사되는 수녀원이 있다.

바로 이 수녀원에서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1996년까지 운영되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운영한다.

인터넷에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검색하면 사건의 진상이 상세히 나오는데, 성모의 이름을 딴 그 세탁소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노동력 착취와 학대, 감금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꽤나 최근까지 교회의 이름으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이라 그 심각성이 더 부각되는 모양이다.

여하간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배송을 하러 갔다가 석탄 창고에 감금된 한 여자아이를 목격하게 된다.

수녀원장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인 양 넘기려 하고, 입막음용임이 명백한 봉투까지 건네자 그는 돈을 챙겨 집으로 오게 된다.

주변에서도 수녀원과 맞서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가 그토록 참혹한 환경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g 119)

어찌 보면 작품을 통틀어 단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한 것이라고는 문을 열어 아이를 밖으로 데려온 것뿐이지만, 그 하나의 움직임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소시민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교회 권력은 사회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데 그 당시 교회와 척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지를 짐작해 본다면 그의 행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g 120)

길이가 길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옮긴이의 글'에서 역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반복해서 읽으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숨겨진 의미가 더 잘 느껴질 것 같다.

시종일관 잔잔한 호수같이 진행되다가 딱 한 번 수면에 떨어진 돌처럼 마음속에 파문을 남기는, 재미와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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