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블랙북 - 여행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컬러링북
손무진 지음 / 글로세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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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힐링 열풍이 불 무렵, 다양한 힐링 방법 중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 바로 컬러링북이다.

열어보면 하얀 도면에 빽빽히 나눠진 칸들이 있는데 이를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칠하면 되는 책들이다.  

그러다 보면 집중도 되고 자연스레 힐링이 된다 뭐 그런 컨셉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엔 별 시덥잖은 짓 다하네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아내가 컬러링 북을 하나 사 와서 진득히 앉아 색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구경하다 보니 재밌어 보여서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집중하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져서 금새 시간도 흘러가고 의외로 성취감도 있어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었다.  

그러다 작가가 다녀온 멋진 곳들이 담긴 책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접해보게 되었다.


모처럼의 연휴를 앞두고 있었지만 모처럼 전혀 기쁘지 않게 시작했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가 금요일에 결정되었는데, 나는 출근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이 기분좋게 빗나가면서 뜻밖의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출근할 줄 알고 전혀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연휴지만 막상 어딜 나서자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저 밥 먹고 멍청히 있던 차에 아내의 제안으로 카페에 가서 컬러링북 채색을 같이 하게 되었다.

준비물은 컬리링북과 색연필 조금이 전부다.

진득하게 작업해야 하므로 시원한 음료와 함께 하기로 했다.


이 책은 다른 책들처럼 도면만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않다.

나름 컬러링 팁도 적혀 있고 여행에 관련된 명언이나 생각해 봄직한 글귀들도 적혀있다.

도면들도 단순한 그래픽들이 아닌 손으로 직접 그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스케치 형식이다.

 



이런 식으로 재료도 자기 마음대로, 색깔도 자기 마음대로 쓱쓱 칠하면 그만이다.

같은 그림이지만 그리는 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2페이지짜리 그림을 아내 한 쪽, 나 한쪽 그리기로 했다.
 



완성된 모습.

좌측이 아내가 채색한 쪽인데 확실히 좀 더 선명한 느낌이다.

스케치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이 배경이지만, 난 뭔가 우리나라 시골의 느낌을 내보고 싶어서 채색을 밋밋하게 했다.

같은 그림을 둘이 나눠 채색하니 확연히 다른 느낌이 재미있는 것 같다.  

 



스케치 중에는 전체를 칠하지 않아도 될법한 것들이 제법 있다.

그림쪽은 잘 모르지만, 아래와 같은 그림은 여성의 상의만 칠해줘도 뭔가 느낌이 있어 보인다.

(자꾸 우리나라 대통령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작가가 여행한 곳의 흔적들에 색깔을 입히면서 여행에 대한 찬양이 가득 담긴 글귀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렇게 아내와 함께 조용한 시간을 함께 보내다보니 마치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나의 채색이 작가의 멋진 스케치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지만 그 또한 이 책의 재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채색이 다 되고 나면 나중에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채색할 때의 추억도 함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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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밥
이복구 지음 / 문학수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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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나를 찾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무의미 속에 던져진다는 게 아닐까? (pg 100 - 식물의 시간)



간만에 여유를 찾은 김에 소설책 한 권을 골랐다.

책이 때마침 휴가를 낸 아침에 도착했다.

식사 후에 머리나 식힐 겸 책을 잡는다는 것이 그 날 저녁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모두 읽었고 결과적으로 머리는 더 뜨거워졌다.


총 6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한 권에 묶여 있다.

보통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공통된 주제가 없어 평을 하기가 난감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6개의 이야기들이 상호 연관성은 없지만 작가가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을 남김에 있어서 이렇게 망설여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주제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는 개인적인 감상이며 스토리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있어 보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을 담고 있다.

어떤 소설이든 당연히 삶과 죽음을 담고 있게 마련이지만,

이 책은 '소외'된 삶과 이를 둘러싼 '죽음'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듯 하다.


이 책에서의 '소외'는 '미친 발'에서의 주인공처럼 단순히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족에게서의 소외(짖는 아이, 맨발), 심지어는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식물의 시간, 돌산)도 담고 있다.


또한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죽음을 경험했거나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 등 모두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 분노, 슬픔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무렇지 않음'을 경험한다.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외된 삶은 죽음과 밀접하게 닿아 있으며,

이들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잘사니까 죽는 겁니다, 아주머니. 사람은 행복하면 죽고 싶답니다."

"에이, 사장님도. 그런 말이 어딨어요?"

"행복이라는 것, 손에 쥐면 그런 고독이 없거든요."

"그럼 그건 행복이 아니죠..."  (pg 96 - 식물의 시간)



다 읽고서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이 6개 이야기들의 순서가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열자마자 '짖는 아이'라는 이야기에는 마치 세상 다 산 듯한 노년의 시선을 지닌 아이가 등장한다.

본래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아린 아이의 몸 속에 자리한 늙은이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더욱 추악하기만 하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어 자란 아이의 무서운 시각을 통해 세상을 돌아볼 무렵,

'식물의 시간'을 통해 독자는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환멸과 허무에 빠지는지를 보게 된다. 


나를 찾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무의미 속에 던져진다는 게 아닐까? (pg 100 - 식물의 시간)


그러다 '맨밥'과 '돌산'을 통해 세속의 가치를 추구하다 인간의 가치를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접한다.

책의 후미에 등장하는 '미친 발'과 '매직 아워'에서는 삶과 죽음을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당신이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소모하는 시간쯤으로 생각하는 자체에 나는 공포심을 느꼈어.

나는 시간이란 늘 현재가 중요하고,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야 하며,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한다는 생각은 자칫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pg 263 - 매직 아워)


학수 아재는 아마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에만 매직아워가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몰라.

즉, 인생 그 자체가 온통 매직아워라고 말이야. (pg 295 - 매직 아워)



회사원의 삶이라는 것이 뭐 다 그렇지만 때때로 의문과 회의가 들게 마련이다.

그러던 차에 보게 된 이 소설은 상당히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과연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지금 나의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책의 뒷편 해설을 보면 작가가 본래 허무와 환멸의 정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해설자 역시 '이복구의 소설에서 희망의 거처는 뚜렷하지 않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작가가 그 희망을 온전히 독자에게 맡겨두었다는 느낌이다.


읽어본 이복구 작가의 글은 이 책이 전부라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나 이후에 접하게 될 다른 작품들이 상당히 기대된다.

6개의 이야기 모두 등장인물의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들이 달라 매 이야기마다 독특한 시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서술 방식들도 조금씩 달라서 한 권을 다 읽으면서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문장들도 곱씹어 읽어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충분한 울림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흡인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글을 쓴지는 상당히 오래된 작가라 하는데 책으로 출간된 것이 적다는 것으로 보면 상당히 신중하게 글을 쓰는 모양이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마치 긴 꿈을 꾼 듯하다.

작가가 제시하는 또 다른 삶의 시각을 빠른 시일 내에 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를 찾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무의미 속에 던져진다는 게 아닐까? (pg 100 - 식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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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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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정답을 찾아 살아가지만 진짜 삶은 질문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pg 301)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지도 벌써 5년차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내가 대학에 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 기억력이 감퇴할 나이는 아니니 분명 별 이유가 없었음에 틀림없다.

웃기지만 현재 월급을 받고 있는 곳도 대학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대학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최근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하는데 방송을 보지 못한 터라 흥미롭게 읽어갔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사회인이 보기에도 지금 대학은 내가 다니던 시절의 대학과 느낌이 다르다.

우리때도 분명 1학년부터 도서관에 쳐박혀 토익을 공부하던 이들이 있었고

3, 4학년이 되면 너도나도 CPA 준비를 한다며 고시생 코스프레를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우리 때는 혼밥(혼자 먹는 밥)과 독강(혼자 듣는 강의)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1학년부터 OT조를 중심으로 같이 수강신청을 하고 비교과 활동이었던 학회 활동도 나름 열심히 했었다.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혼밥과 독강이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끔 학생회나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날이 갈수록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학점이나 스펙에 관계 없는 비교과 활동에는 점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 활동이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 관계까지 포기해 가며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에서 시작한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대인 관계에 이상이 있어서 혼자 지내는 사람이 아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스로 한시적으로 혼자이기를 택한 사람들이다. (pg 52)


이미 많은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그저 사회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더 좋은 간판을 따기 위해 편입 준비를 하고 반수를 하는 학생들도 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스스로 소외된 삶을 지속하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기에 이른다.

이는 분명 취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고립을 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어느 소속 집단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교감이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생활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혼자 있는 편안함이 습관이 되어 불편함을 못 느끼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pg 52)



시간은 없고 취업은 해야겠고...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의 2장에서는 위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연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대학교수, 기업 인사담당자, 헤드헌터 등의 전문가들을 붙여 멘토링을 진행한다.


다양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대학생들은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재'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매우 편협했다.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재란 자기 삶의 국면에서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pg 177)


위와 같은 문구는 얼핏 그럴듯 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상당히 공허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성장해 간다고 한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사회'라고 말하는 기업에서 인정해주거나 창업으로 고객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말짱 헛짓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어떤 사람이 인재인가 아닌가는 타인의 평가에 기초한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참한 일이다.

어떤 사람의 노력이라는 것도 결국 타인의 인정이 없이는 아무 가치도 지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진행한 멘토링이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 진지하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가져온 '긍정적인' 변화라는 것도 결국에는 프로그램에서 인정한 '전문가'들의 시각에서나 그런 것이다.

오히려 어떤 인사담당자들에게는 변화 전의 모습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겉모습과 내면을 일치시키기 위한 연습 같은 건 없다.

아기가 배고프면 울고, 기분 좋으면 웃듯이 사람은 본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다.

오히려 내면과 다른 겉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까지 연습해 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필요한 건 자신의 본래 모습에 충실하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 것이다. (pg 127)


인재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인재로 타고났다는 것이다.

단지 그 인재의 모습에 무엇을 담아낼지는 각자의 몫이다. (pg 193)


본래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했는데 사회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작 각자의 몫에 맡기고자 한다는 결론이 못내 아쉬웠다.



마지막 3장에서는 질문을 빼앗긴 우리들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사실 나도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질문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나마도 내가 질문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은 학회 생활을 했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조차 하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에게 질문은 매우 낯선 것이기 마련일 것이다.


그도 당연한 것이 학교륻 들어가면 점차 선생님이라는 어른이 말씀하시는 데 딴 소리를 하는 행동 자체가 제지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중략-

오히려 생각이 많을수록 틀릴 수 있다는 걸 배운다. (pg 217)


이런 상황에 어찌 질문을 하는 학생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일방적인 강의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수업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게 되는데 거기에 누군가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그 지루한 수업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질문한 학생은 자연히 다른 아이들에게 찍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조용한 독서실에 쳐박히는 것보다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쌍방으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공부법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런 공부법을 장려하는 대학의 사례도 등장한다.


이러한 공부법을 통해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메타 인지이다.


메타 인지는 바로 나의 사고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자 내가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분하고 파악하는 능력이다.

(pg 259)



여기에서 교육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도출된다.

제공하는 교육으로 학생들의 메타 인지를 신장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이란 본연의 가치가 중심에 서고, 여기에 시대의 특성과 현실적 필요성이 균형있게 맞물릴 때

대학은 지식 사회의 심장으로서 세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pg 229)


얼핏 보면 굉장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말 같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배움이라는 가치가 교실에서 온전히 실현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다가 시대적 특성과 현실적 필요성까지 만족시키려면

어지간한 물적, 인적 자원으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책 자체가  TV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지만 책을 구성하고 있는 3개 챕터의 연관성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마치 세 개의 책을 한 권으로 묶어둔 느낌이랄까.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있었으면 했지만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룬 대한 비중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게다가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되찾아주는 일은 대학 보다는 중, 고등학교에서 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면 이미 사회화가 너무 충분히 진행되어 이들을 변화시키려면 상당히 큰 언러닝 과정이 수반된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이러한 공부법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 효과면에서 더 탁월할 것이다.


아쉬운 부분을 다소 길게 쓴 느낌이지만, 그만큼 고민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박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는 반증이니 말이다.

서술도 알아보기 쉬우면서도 문체가 깔끔해 언제 읽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교육기관 종사자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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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룸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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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지식은 보편적이며 인간이 고대부터 쌓아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보물이다.

이 세상을 살며 인류의 반짝이는 보석을 향유하는 것이 독학이다. (pg 199) 




벌써 마지막 포스팅을 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두 개의 큰 카테고리로 블로그를 운영 중인데 둘 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책이다.

제목으로 딱 두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 두 글자가 마음에 확 꽃혔다.

뭔가 심오한 가르침을 기대한 바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 200페이지 정도로 두께가 얇고 글씨가 커서 부담없이 넘겨보게 되었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독학.

사실 학창 시절에도 수업이나 학원에 의존해본 기억이 없던 터라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공부도 사실은 '학습'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외부에서 정해진 기준에 맞추어 일정 수준 이상을 도달하기 위한 공부는 '학습'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학습인 이유는 그 목적이 교과서나 선생님을 잘 흉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역사 공부를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는 바 대로 암기를 해서 어떤 시험 문제를 잘 맞출 수 있으면 이는 좋은 학습이 된다.

반대로 내가 고려시대를 공부했는데 이번 시험 범위가 조선시대라면 그 공부는 좋은 학습은 되지 못한다. 

이런 학습은 단순한 정보 습득에 유용하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지혜가 쌓이는 공부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지식이 아니다. 단지 사항일 뿐이다. 자신이 정말 궁금해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pg 37) 


하지만 스스로가 정말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 이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부는 독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 '궁금증'이라는 것을 갖는 게 중요하다.

특히 나도 많이 느끼는 바지만 궁금한게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뭐든지 멍하니 바라보며 세상에 있는 것 일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의문은 생기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에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으면 지식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어른들이 이 신선한 정신을 잃어버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라는 일종의 체념과 나태 속에 푹 잠겨 상습적인 음주와 하찮은 취미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pg 38-39) 


뜨끔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저 문구를 보는 순간 다음 페이지로 잘 넘어가 지지 않았다.

난 언제부터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걸까.


생각해보면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불평등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생활 중 학회 활동을 시작했었고 지금까지도 관련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나 나름대로의 생각은 많이 정리된 듯 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일을 시작하고서부터는 새로운 의문 자체를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쯤이었는지조차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특별히 엄청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봐야 월급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내가 버는 돈은 딴 사람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왜 그리도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란 인생 경험을 쌓고 사물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곧 보통의 어른은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어른은 멋있어 보이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의문을 구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pg 33)


난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건 어찌보면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다시금 스스로 공부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책과의 인연에서도 우연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있고 이를 알고 싶다는 노력 그 자체가 공부고 수련이다.


이 책에서는 지식은 늘 유효하다고 말한다.

물론 지식 그 자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일상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지식을 얻게 된 과정 자체가 수련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을 읽을 때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독학의 핵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용을 모두 알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책은 나의 지적 능력 향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견해가 어떤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견해에 이르렀는가가 문제다.

이를 확인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 중략 -

그리고 이는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손을 잡고 가르쳐줄 수 없는 독학의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pg 175)


이 부분도 곱씹어 볼 문제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내가 진심으로 이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을 보고 싶은 것인지,

단순히 유명인이 어떤 책에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를 아는척하고 싶을 뿐인지에 따라 독서의 수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후자의 목적으로 책을 읽었던 경험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은 나의 지적 허세를 위해 읽어왔을 뿐이다.

그러니 그 책의 내용이 나를 성장시킬 지혜로 작용할 수 없었음이 당연하다.


이 책에서는 독학을 할 때의 방법론적인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특히 책을 볼 때 어학사전과 백과사전, 지도를 옆에 두고 독서를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에 나오는 모든 사항을 내가 알고 있을리 없다.

물론 대체로는 전후 문맥을 통해 대충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는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 단어나 개념을 한번만 더 찾아본다면 그 내용이 훨씬 더 머리 속에 잘 남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내용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에 의한 영상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으로 멍하니 스쳐지나갈 뿐이다. (pg 67)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한산도대첩을 공부하는 중인데 한산도가 어디쯤인지도 모른다면 당연히 상상에 의한 영상도 생겨날 수 없는 것과 같다.

특히 역사나 과학 관련 공부를 할 때에는 전후 문맥만으로는 알기 힘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공부법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은 짧지만, 저자가 오랜 기간 스스로 독서를 함에 있어서 갖고 있던 팁들까지 잘 제시해주고 있어서 정리할 내용이 많았다.

특히 아래와 같은 팁들은 이후에 독서 생활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1.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일부러 마련하기 보다는 시간이 남는다 싶으면 책을 읽을 것

2. 해설서에 의존하지 말고 원문을 그대로 읽는 습관을 들일 것

3. 꼼꼼히 공부하면서 볼 책들은 반드시 사서 볼 것

4. 책에 밑줄을 일관성있게 쳐 둘 것, 관련 내용을 메모할 것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잡기가 영 힘들었던 요즘 적절한 채찍이 되어주는 책을 만난 기분이다.

특히 가르치려는 자세나 현학적인 태도로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르다.

매일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하다 못해 오늘 본 드라마의 내용은 어제는 몰랐던 것이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관련된 문구 하나를 인용함으로써 글을 마치고자 한다.

 

독서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세계관이 바뀐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자신이라는 변모로 이어진다. ​(pg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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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인간 -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제대로 모르는 존재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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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고민이나 안타까움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느끼는 문제거든요. -중략-

과거는 과거만큼 영향을 미칠 뿐 현재 생활을 좌지우지할 만큼은 아니에요. (pg 57)

 

 

한참 혈액형을 통한 성격 구분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도 믿지 않지만 모임 자리에서 '넌 O형이라 그래', '넌 A형 같아' 따위의 말들을 우스개소리로라도 이따금 하고는 한다.

이러한 성격 분류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전 직장에서의 직업 때문에 다양한 ​심리 분류 툴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가장 흔한 MBTI부터 이전 회사가 가지고 있던 소셜스타일, 이와 유사한 DISC, 애니어그램 등등 다양한 툴들을 접했는데,

모두가 나름의 신빙성과 현업적용성들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툴들이 나름의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혼란스러운 면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WPI라고 하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툴을 활용해 인간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황상민 교수는 기존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MBTI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조사 방법임을 지적하며.

WPI가 한국인에게 적합하게 개발된 툴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WPI 분류법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리얼리스트, 로멘티스트, 휴머니스트, 아이디얼리스트, 에이전트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다섯가지의 성격 모두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정 성향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성격이 된다.

각각의 성향들은 관계, 믿음, 규범, 자아, 향유라는 다섯 개의 중시하는 가치가 있고 각 성향에 따라 이 가치들도 다르게 느끼게 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WPI 진단을 하려면 유료로 진행해야 하고, 책만 가지고는 약식의 검사라도 받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성향 별 특징들을 읽다가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성향을 유추해 내야 한다.

책에 의하면 나는 아이디얼리스트와 에이전트 성향이 높게 나올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인간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기본 생각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모든 툴들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경향'이 있을 뿐"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경향'은 모든 인간들이 다들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때끄때 선호하는, 혹은 보여지는 경향이 다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어떤 검사에서 특정 스타일이 강하게 나오더라도 매 순간 그 스타일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이성의 동물'이라는 책이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는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책만 가지고는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고,

책도 본인이 워크샵을 진행했던 흐름 그대로를 옮겨 두어서 보기가 썩 편하지는 않다.

저자의 네임벨류나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안에 내용이 생각보다 빈약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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