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룸북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지식은 보편적이며 인간이 고대부터 쌓아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보물이다.

이 세상을 살며 인류의 반짝이는 보석을 향유하는 것이 독학이다. (pg 199) 




벌써 마지막 포스팅을 한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두 개의 큰 카테고리로 블로그를 운영 중인데 둘 다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책이다.

제목으로 딱 두 글자가 적혀 있는데, 이 두 글자가 마음에 확 꽃혔다.

뭔가 심오한 가르침을 기대한 바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 200페이지 정도로 두께가 얇고 글씨가 커서 부담없이 넘겨보게 되었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독학.

사실 학창 시절에도 수업이나 학원에 의존해본 기억이 없던 터라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공부도 사실은 '학습'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외부에서 정해진 기준에 맞추어 일정 수준 이상을 도달하기 위한 공부는 '학습'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가 학습인 이유는 그 목적이 교과서나 선생님을 잘 흉내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역사 공부를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는 바 대로 암기를 해서 어떤 시험 문제를 잘 맞출 수 있으면 이는 좋은 학습이 된다.

반대로 내가 고려시대를 공부했는데 이번 시험 범위가 조선시대라면 그 공부는 좋은 학습은 되지 못한다. 

이런 학습은 단순한 정보 습득에 유용하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지혜가 쌓이는 공부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다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지식이 아니다. 단지 사항일 뿐이다. 자신이 정말 궁금해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pg 37) 


하지만 스스로가 정말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 이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부는 독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 '궁금증'이라는 것을 갖는 게 중요하다.

특히 나도 많이 느끼는 바지만 궁금한게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뭐든지 멍하니 바라보며 세상에 있는 것 일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의문은 생기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에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으면 지식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어른들이 이 신선한 정신을 잃어버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라는 일종의 체념과 나태 속에 푹 잠겨 상습적인 음주와 하찮은 취미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pg 38-39) 


뜨끔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저 문구를 보는 순간 다음 페이지로 잘 넘어가 지지 않았다.

난 언제부터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된걸까.


생각해보면 '왜 이 세상은 이렇게 불평등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던 20대 초반의 나는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생활 중 학회 활동을 시작했었고 지금까지도 관련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나 나름대로의 생각은 많이 정리된 듯 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일을 시작하고서부터는 새로운 의문 자체를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순간이 언제쯤이었는지조차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특별히 엄청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봐야 월급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내가 버는 돈은 딴 사람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왜 그리도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란 인생 경험을 쌓고 사물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곧 보통의 어른은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어른은 멋있어 보이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의문을 구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pg 33)


난 그저 나이를 먹은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런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난건 어찌보면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다시금 스스로 공부하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책과의 인연에서도 우연은 없는 것 같다.)


굳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있고 이를 알고 싶다는 노력 그 자체가 공부고 수련이다.


이 책에서는 지식은 늘 유효하다고 말한다.

물론 지식 그 자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일상 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 지식을 얻게 된 과정 자체가 수련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을 읽을 때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독학의 핵심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용을 모두 알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책은 나의 지적 능력 향상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견해가 어떤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견해에 이르렀는가가 문제다.

이를 확인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 중략 -

그리고 이는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손을 잡고 가르쳐줄 수 없는 독학의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pg 175)


이 부분도 곱씹어 볼 문제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 내가 진심으로 이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을 보고 싶은 것인지,

단순히 유명인이 어떤 책에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를 아는척하고 싶을 뿐인지에 따라 독서의 수준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후자의 목적으로 책을 읽었던 경험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은 나의 지적 허세를 위해 읽어왔을 뿐이다.

그러니 그 책의 내용이 나를 성장시킬 지혜로 작용할 수 없었음이 당연하다.


이 책에서는 독학을 할 때의 방법론적인 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특히 책을 볼 때 어학사전과 백과사전, 지도를 옆에 두고 독서를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에 나오는 모든 사항을 내가 알고 있을리 없다.

물론 대체로는 전후 문맥을 통해 대충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는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 단어나 개념을 한번만 더 찾아본다면 그 내용이 훨씬 더 머리 속에 잘 남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면 내용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에 의한 영상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으로 멍하니 스쳐지나갈 뿐이다. (pg 67)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 책에 나오는 내용을 모두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한산도대첩을 공부하는 중인데 한산도가 어디쯤인지도 모른다면 당연히 상상에 의한 영상도 생겨날 수 없는 것과 같다.

특히 역사나 과학 관련 공부를 할 때에는 전후 문맥만으로는 알기 힘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공부법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분량은 짧지만, 저자가 오랜 기간 스스로 독서를 함에 있어서 갖고 있던 팁들까지 잘 제시해주고 있어서 정리할 내용이 많았다.

특히 아래와 같은 팁들은 이후에 독서 생활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1.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일부러 마련하기 보다는 시간이 남는다 싶으면 책을 읽을 것

2. 해설서에 의존하지 말고 원문을 그대로 읽는 습관을 들일 것

3. 꼼꼼히 공부하면서 볼 책들은 반드시 사서 볼 것

4. 책에 밑줄을 일관성있게 쳐 둘 것, 관련 내용을 메모할 것



이런 저런 핑계로 책을 잡기가 영 힘들었던 요즘 적절한 채찍이 되어주는 책을 만난 기분이다.

특히 가르치려는 자세나 현학적인 태도로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 다르다.

매일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하다 못해 오늘 본 드라마의 내용은 어제는 몰랐던 것이므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는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관련된 문구 하나를 인용함으로써 글을 마치고자 한다.

 

독서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세계관이 바뀐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 자신이라는 변모로 이어진다. ​(pg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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