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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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힘들게 읽은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작품이 어렵거나 현학적이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가상의 세계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돈 이야기를 참 싫어한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학 전공이지만 그 흔한 주식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금융생활이란 대출과 상환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 나에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이 작품은 마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세상이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너무도 차갑고도 현실적이라 글에 가슴이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중심인물은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형구'다.

말 그대로 찢어질 듯이 가난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다른 형제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돈을 모아 사업을 일으킨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자왈 맹자왈 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생활력이 없었던 첫째는 술독에 빠지고, 셋째가 착실하게 공부를 지원해 미국에서 박사까지 한 둘째는 부모형제를 뒤로한 채 오로지 돈과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형구의 할아버지 세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형구의 자식들 세대까지 이어지며 피로 이어진 관계가 돈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티끌 같은 내가 왔다.

새끼 아홉 놈을 떨구었지만 나를 안아 주는 놈이 없구나.

(pg 154)

저자는 중심인물에게 형제들의 공통 돌림자인 '형' 자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듯한 '구'로 끝나는 이름을 붙여주고, 형구의 아내 이름도 자신의 아내 이름의 역순인 이름을 부여했다.

이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두 인물의 행보는 저자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배우지 못했지만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선험적으로 알았던 '형구'와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사랑의 가치를 잃은 '형남'의 대비가 작품 속 중요한 갈등의 축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형구' 역시 형제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게 되고 결국 똑같은 돈의 노예가 되면서 작품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럼, 돈보다 중한 건 뭘까? 허허, 벌레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데..."

(pg 172)

저자는 끝내 그 어떤 인물들에게도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지 않는다.

돈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의 뒤통수도 서슴없이 치던 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대척해 가족들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조차도 그 끝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돈에 미친 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경고라면 수긍할 만한 결말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인 이야기는 밀도가 있었다.

형제들이 많은 만큼 인물 간의 갈등이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며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선악의 구분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이익 앞에 지나치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집안의 이야기임에도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서사가 꽤나 일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아쉬웠던 부분을 찾자면 중후반쯤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부분이 다소 뜬금없어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해당 부분은 저자가 한 작품 안에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나치게 많이 담아내고자 했던 욕심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여하간 일제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을 통해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연을 끊었다는 소식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돈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는 요즘, 자신은 돈에게 얼마나 지배당하고 있는지를 자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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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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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양자역학하면 떠오르는 고양이 그림이 귀엽게 반겨주는 물리학 교양서가 나왔다.

산뜻한 표지처럼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읽게 되었는데, 진짜 이게 양자역학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쉽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문돌이 주제에 양자역학이 알고 싶어 이런저런 과학 교양서를 들춰오다 보니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

사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양자역학의 교양서를 읽는 것이 종교인이 경전을 읽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종교인이 경전을 읽을 때는 '아, 이게 신의 말씀이구나' 하며 그냥 적힌 문구를 믿는 수밖에 없다.

비전공자가 보는 양자역학 교양서도 그렇다.

'아, 이게 과학자가 증명한 내용이구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믿음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같이 증명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양자역학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양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관측하는 순간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된다는 점이다.

이 '관측'이라는 것이 꼭 눈으로 봐야만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호하고 또 인간이 아닌 개나 햄스터가 관측하면 붕괴되지 않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한 유튜브에서 이를 설명할 때 '우주는 그냥 그렇게 움직인다. 이게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결과를 통해 우주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도의 뉘앙스로 설명한 것이 기억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에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파동함수가 왜 붕괴하는지를 두고 양자역학의 거장 보어가 설명한 것처럼 '큰 물체와 작은 물체는 다른 법칙으로 움직인다'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의견이 가볍게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붕괴 과정에 '의식'이라는 개념을 결합한 해석들이 있는데 과학자들은 '의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뒷부분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의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도입해서 비웃음을 사느니,

차라리 보어의 가설처럼 불완전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물론 그 심정은 나도 십분 이해하지만,

사실 이것은 논리적 선택이 아니라 다분히 심미적인 편견이다.

(pg 93)

저자는 보어의 설명을 대체하고자 했던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아미트 고스와미'는 우주가 잠재적 세계와 관측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잠재적 세계에는 모든 가능성들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것이 '의식적'인 행위로 관측되면 그 가능성 중 하나가 짠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해석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 더 믿기 어려우므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가 더 좋아하는 견해이기도 하고, 요즘 많은 SF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는 견해가 바로 다중우주 개념이다.

이 견해의 창시자는 '휴 에버릿 3세'로 생전에는 보어를 비롯한 주류 물리학자들에게 재고의 여지도 없는 가설로 무시당했었지만 그 매력적인 해석 덕분에 최근 들어 더 주목받는 모양이다.

물론 이 역시 검증의 불가능성 때문에 아주 '과학적'인 가설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해석들이 논리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이러한 견해들을 현재 우리 사회의 도덕, 법, 철학에 적용해 보는 부분이 훨씬 재미있었다.

물리학을 통해 우리가 진정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우주가 결정론적인지 아닌지 등의 여부는 우리가 한 행위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AI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곧 창조하게 될 인공적인 '의식'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아직 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데, 물리학에서 이 부분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농담을 굉장히 많이 섞어 놓아서 읽기에 별 부담이 없었다.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는 '켓'이라는 기호를 통해 그림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있는데 이 그림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쏙쏙 된다.

번역도 과학자가 해서 중간중간 역자가 저자의 설명을 돕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 책이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적합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양자 중첩과 파동함수의 붕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적인 가설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전공자에게 과학자가 쓴 책은 마치 경전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기 때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가설들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라는 주제로 쓴 책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양자역학에 도전했다가 비전공자의 서러움을 느껴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힐링(?!)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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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알고 있다
모리 바지루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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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듯 문학에서도 독창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재, 배경, 줄거리, 복선, 반전 등 작가가 독창성을 발휘해 작품의 매력도를 높이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독특한데, 적어도 내 일천한 독서 경험 중에서는 이 작품처럼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성을 발휘한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각 장마다 제목이 붙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장르가 다 다르다.

1장은 추리, 2장은 청춘, 3장은 SF, 4장은 판타지, 5장은 연애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단편집인가 보다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연작소설이다.

즉 이 모든 이야기가 같은 배경 안에서 펼쳐지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각 장마다 시간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하나, 공간적인 배경은 그리 크지도 않은 일본의 한 변두리 마을이다.

각 장의 주요 인물과 사건만 정리하면 이렇다.

'추리'편에는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야쿠자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등장하고 '청춘'편에서는 TV 만담 쇼 우승을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는 남녀 고등학생의 도전기가 펼쳐진다.

이어지는 'SF'편은 웬 변태 시간 여행자에게 쫓기는 여고생의 이야기고, '판타지'편은 고향을 지키려다 금지된 마법을 쓰는 바람에 우리 세계로 추방되는 마법사의 이야기다.

마지막 '연애'편에는 이별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접점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조합인데, 이 책이 참신한 이유는 이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가 배경만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추리'편의 탐정이 가장 좋아하는 TV 쇼가 '청춘'편의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이고, 이 고등학생들의 친구가 'SF'편의 주인공인 식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연애'편에 이르면 등장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 마주치며 연결되어 있는지가 모두 밝혀지게 된다.

굉장히 이질적인 장르의 이야기들이 한 배경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서로 얽혀있다는 점 자체가 주는 참신함이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제목의 의미 또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오로지 이야기 밖의 존재인 독자만 알고 있다는 뜻인데, 제목에 걸맞게 전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의 숨겨진 맥락을 꿰뚫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300페이지 후반대로 살짝 두께감이 있기는 하나, 글씨가 큰 편이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워낙 개성 넘쳐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물론 각 장마다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장르별 특징들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관심이 갔던 'SF'편만 보더라도 작중 설명충이 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열심히 설명하지만, SF를 좀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설정이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장이 나름의 완결성을 가지며 그 속에서 풀리지 않은 작은 의문들이 이어지는 다른 작품에서 해소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상당히 좋아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었던 것 같다.

작품 내에서 사투리가 상당히 중요한 장치인데 이를 번역을 통해 잘 살렸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저자의 데뷔작이라 하는데 흥미로우면서도 긴 서사를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었고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한 편이라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된다.

호흡이 길지 않은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내용이니 부담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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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
정윤선 지음, 시미씨 그림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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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정말 과장 없이 100미터마다 하나 꼴로 편의점이 있다.

이 많은 편의점들이 다 장사가 될까 싶은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요즘 아이들에게 편의점이 갖는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부모가 맞벌이고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는 아이들에게 편의점은 식당이자 휴게소이며 만남의 장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친숙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빌어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나와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식품들이야말로 식품공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당연히 몸에 흡수되는 것이므로 안전해야 할 것이고 일정 기간 보존이 가능해야 하며 동시에 섭취도 간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한 음식 보존 방법인 통조림만 보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한지, 통조림 뚜껑을 따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 배울 수 있는 과학 지식들이 방대하다.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특히 '소시지는 왜 세로로 터질까'라는 챕터가 기억에 남는데, 지금까지 40년 넘게 수많은 소시지를 먹어왔을 텐데도 이러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의 출발이 곧 질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법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과학지식 이외에도 환경과 지구에 관한 지식도 담아내고 있다.

예를 들면 왜 생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오는지, 햄버거를 많이 먹으면 환경에 왜 좋지 않은지 등 아이들이 무심코 섭취하는 음식들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학습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만화가 아니어서 좋았다.

아이가 워낙 만화만 읽으려고 해서 줄글로 된 책 중에 아이가 흥미를 가질만한 책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이 책이 그 역할을 잘 해줄 것 같다.

흥미롭게 읽고 나면 아이가 이것저것 아는 척하기 좋은 책이라서 아이도, 부모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아이에게 선물할 책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선택지에 넣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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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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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법의학자로서의 삶과 매일 죽음을 접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바 있었던 저자가 새로운 책을 발간했다.

이번 책에서는 '유언을 통한 죽음의 고찰'이라는 주제로 범위를 좁혀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미리 유언을 준비해 보라'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유언'의 사전적 의미는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라 한다.

따라서 사고나 심장마비 등으로 급작스럽게 죽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죽음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유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지병도 없는데 유언을 '미리 준비한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기는 유언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저자는 책 초반에 이러한 오해를 먼저 풀어낸다.

저자가 유언을 미리 준비하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물론 인간사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다.

유언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고 오늘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끝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한 다짐이자 생의 매 순간을 음미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오늘을 더욱 사랑하고 내일을 준비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이 우리가 남은 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pg 157)

또 다른 이유는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다.

개인적으로도 가족을 급작스럽게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이 더 와닿았는데, 사실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도 슬픈 와중에 밀려드는 사람들을 응대해야 하고, 이런저런 잘 알지도 못하는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갈수록 자동화되는 이동 수단들, 높아지는 스트레스 지수로 인해 진짜 멀쩡하던 사람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도 얼마든지 있다.

나에게도 언제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몇 가지 세심하게 고민해 작성한 문건이 있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운 감정을 내면에 품은 채 계속해서 일상을 꾸려나가야 한다.

일상 속에서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밥을 먹고, 잠들고 일어나며 출퇴근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그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는 채로,

세상을 떠난 이가 원하던 모습의 자기 자신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g 57)

또한 여기서 말하는 유언은 단순히 재정적인 부분을 어떻게 상속한다거나,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을 때 어떻게 하라는 등의 실용적인 내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 기억되고 싶은 나의 모습 등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좋다.

유언은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가치를 함축한 메시지로, 때로는 그의 정체성과 철학,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 된다.

(pg 184)

물론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갑자기 유언을 작성해 보는 것은 평소에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돕기 위해 세심하게 마련된 유언 노트가 별책 부록으로 제공된다.

법적으로는 직접 자필로 쓰고 서명한 유언이 효과가 있다고 하니, 미리 노트에 연습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글씨를 너무 못써서 컴퓨터로 먼저 작성해 본 후 노트에 옮겨보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용기로 인해 아름답게 남는다.

(pg 51)

저자 역시 1년에 한 번씩 유언을 작성해 보고 있다고 한다.

그중 일부가 책 후미에 수록되어 있으니 스스로의 유언을 작성해 보려는데 샘플이 없어 막막한 사람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죽음은 무거운 주제지만, 책 자체는 전혀 무겁지 않다.

250페이지가 조금 넘을 정도로 두껍지 않고 서술도 매우 친절한데다 사진 비중도 많아서 읽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짧은 분량임에도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아래의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제를 올렸던 절의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라 문장은 정확하지 않으나, "먼저 간 자식이지만 부모 가슴에 못 박은 불효자인 것만이 아니라 먼저 감으로써 우리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된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으니 우리의 스승이 된 것이기도 하다." 정도의 의미가 담긴 말씀이었다.

아래의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걸 보면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비슷한 철학적 귀결에 다다르는 모양이다.

죽음을 통해 배운 가치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했던 이와의 관계, 남긴 기록, 함께한 시간은 삶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유산이 된다. 그래서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선생님과 같다.

(pg 229)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타인의 죽음이 아닌 자신의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해 다가올 죽음을 미리 떠올려보라는 저자의 조언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유효할 것이기 때문에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삶을 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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