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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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라는 저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법의학자로서의 삶과 매일 죽음을 접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바 있었던 저자가 새로운 책을 발간했다.

이번 책에서는 '유언을 통한 죽음의 고찰'이라는 주제로 범위를 좁혀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미리 유언을 준비해 보라'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유언'의 사전적 의미는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라 한다.

따라서 사고나 심장마비 등으로 급작스럽게 죽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죽음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유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지병도 없는데 유언을 '미리 준비한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기는 유언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저자는 책 초반에 이러한 오해를 먼저 풀어낸다.

저자가 유언을 미리 준비하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물론 인간사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금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다.

유언을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고 오늘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끝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한 다짐이자 생의 매 순간을 음미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오늘을 더욱 사랑하고 내일을 준비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이 우리가 남은 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pg 157)

또 다른 이유는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다.

개인적으로도 가족을 급작스럽게 떠나보낸 경험이 있어서 이 부분이 더 와닿았는데, 사실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도 슬픈 와중에 밀려드는 사람들을 응대해야 하고, 이런저런 잘 알지도 못하는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갈수록 자동화되는 이동 수단들, 높아지는 스트레스 지수로 인해 진짜 멀쩡하던 사람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도 얼마든지 있다.

나에게도 언제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몇 가지 세심하게 고민해 작성한 문건이 있다면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운 감정을 내면에 품은 채 계속해서 일상을 꾸려나가야 한다.

일상 속에서 절절한 그리움과 함께 밥을 먹고, 잠들고 일어나며 출퇴근을 하다 보면,

어느 날 그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마음속에 있는 채로,

세상을 떠난 이가 원하던 모습의 자기 자신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g 57)

또한 여기서 말하는 유언은 단순히 재정적인 부분을 어떻게 상속한다거나,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을 때 어떻게 하라는 등의 실용적인 내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 기억되고 싶은 나의 모습 등 자신의 삶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좋다.

유언은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가치를 함축한 메시지로, 때로는 그의 정체성과 철학,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 된다.

(pg 184)

물론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갑자기 유언을 작성해 보는 것은 평소에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돕기 위해 세심하게 마련된 유언 노트가 별책 부록으로 제공된다.

법적으로는 직접 자필로 쓰고 서명한 유언이 효과가 있다고 하니, 미리 노트에 연습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글씨를 너무 못써서 컴퓨터로 먼저 작성해 본 후 노트에 옮겨보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용기로 인해 아름답게 남는다.

(pg 51)

저자 역시 1년에 한 번씩 유언을 작성해 보고 있다고 한다.

그중 일부가 책 후미에 수록되어 있으니 스스로의 유언을 작성해 보려는데 샘플이 없어 막막한 사람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죽음은 무거운 주제지만, 책 자체는 전혀 무겁지 않다.

250페이지가 조금 넘을 정도로 두껍지 않고 서술도 매우 친절한데다 사진 비중도 많아서 읽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짧은 분량임에도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아래의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제를 올렸던 절의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오래전이라 문장은 정확하지 않으나, "먼저 간 자식이지만 부모 가슴에 못 박은 불효자인 것만이 아니라 먼저 감으로써 우리에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된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으니 우리의 스승이 된 것이기도 하다." 정도의 의미가 담긴 말씀이었다.

아래의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걸 보면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비슷한 철학적 귀결에 다다르는 모양이다.

죽음을 통해 배운 가치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했던 이와의 관계, 남긴 기록, 함께한 시간은 삶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유산이 된다. 그래서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선생님과 같다.

(pg 229)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타인의 죽음이 아닌 자신의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해 다가올 죽음을 미리 떠올려보라는 저자의 조언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유효할 것이기 때문에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삶을 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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