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진화한 공룡 도감 너무 진화한 도감
고바야시 요시쓰구 지음, 고나현 옮김 / 사람in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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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짤 중에 이런 그림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brunch.co.kr/@sting762/431)


딸아이가 공룡지식의 고점을 찍을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지 나도 공룡 이름을 제법 외우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어릴 적 한번은 외웠던 것이었을테니 다시 기억해내는 것에 가깝겠지만)


언젠가 본 육아책에서 아이가 관심있어 하는 것이 많아질 무렵 꼭 챙겨야 하는 것이 도감이라고 한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스스로 책을 찾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집 같은 걸 미리 구비해두기 보다는 관심있는 분야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갖추어가는 것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간 그래서 집으로 들이게 된 공룡 도감.

무려 '좀 더 진화한' 녀석이다.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시리즈를 찍어내는 '포켓몬스터' 시리즈 때문에 아이들이 '진화'라는 개념을 잘 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진화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화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지 단순히 포켓몬처럼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물론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진화도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기는 하겠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공룡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가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 


어릴 적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때는 공룡 도감에 깃털이 표현되지 않았었다. 

시조새 정도 나와야 깃털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상당 수의 공룡 그림에 깃털이 묘사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진행된 연구에서 공룡에 깃털이 있었을 수 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최신 도감으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공룡에 깃털을 표현해주기 시작했다. 
 

(pg 28~29)


아이들을 위한 책이니만큼 텍스트도 간결하고 설명도 엄청 어렵진 않다.

지금까지 인류가 공룡에 대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비교적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공룡은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지고 이렇게 살았다'라고 단정짓는 표현 대신,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럴 것으로 추측된다'라는 식으로 표현된 문구들이 많다. 


즉, 아이들에게도 지금까지 연구된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뉘앙스로 알려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깃털을 가진 공룡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나중에 자신이 읽은 것과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어릴 때에는 공룡 이름을 붙일 때 외형적 특성(뿔이 세 개라 트리케라톱스)을 주로 고려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 먹어서 다시 공룡 책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종이 발견된 장소를 기반으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위 예시도 그런 공룡 중 하나이다.)


여하간 딸아이를 보여 주기 위해 접하게 된 책인데 지금까지는 내가 더 재밌게 읽은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읽어줘야 하지만 아이가 한글을 떼면 바로 스스로 읽어도 될 정도로 쉽고 재밌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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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그래픽노블
머라이어 마스든 지음, 브레나 섬러 그림, 황세림 옮김,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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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소중하고 예쁜 생각을 하되, 보물처럼 가슴속에 간직하면 더 좋다는 걸 배운 거죠. (pg 192)


이 작품처럼 '세계명작' 반열에 올라 있는 작품의 이름을 접할 때 흔히들 겪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분명 어릴 적 한 번 이상은 읽었던 것 같은데 막상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좀처럼 다시 읽고 싶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나에게 '빨강 머리 앤'도 그랬다. 

어릴 적 TV로 본 동명의 만화영화도 주제가는 가사까지 다 기억이 나는데 막상 만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역시 단순한 텍스트보다는 음악의 힘이 월등히 강한 것인가)

노래 가사처럼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나는 내용이었겠지 싶다가도 그래도 뭔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래픽노블이라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게 발간된 책이 있어 기뻤다.

더구나 소개 자료로 본 몇 장의 그림들이 너무 이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이미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니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이 작품을 그래픽노블이라는 형태로 접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풍경과 장소에도 이름을 붙이며 사랑에 빠지고 마는 앤이 어떤 곳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글로 보는 것과

예쁜 그림으로 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서술된 글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떠올린 풍경을 선호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림작가가 예쁘고 개성적인 그림체로 표현한 다양한 장소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예를들면 처음 마차를 타고 커스버트 남매의 집으로 가면서 보게 되는 푸르른 풍경은 밝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반면,

밤에 심부름 길에 나서면서 보게 되는 풍경은 어둡고 으슥한 느낌을 제대로 시각화해서 보여준다. 

더불어 계절의 변화나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도록 지면을 크게 활용하여 주변 풍경을 표현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의 표현도 좋은 편이다.

만화라고 해서 등장인물들을 미화해서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어릴적 본 만화 주제가에서는 앤을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고 묘사했지만 막상 만화 속 앤은 '저 정도면 예쁘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표현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정말 그 가사에 매우 적합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주변 인물들도 단순히 외모를 개성적으로 표현한 것 뿐만 아니라 앤을 처음 접하던 순간의 표정과 책의 후미 부분에서 앤을 바라보는 

표정들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원작 소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시점이어서 비교가 어렵지만 분량이 다소 짧다는 느낌은 들었다.

물론 그림의 비중이 큰 책이라 그럴수도 있겠으나 그림을 충분히 감상하면서 읽어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분량이었다. 

일부 장면들은 좀 더 길게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서인지 책을 덮은 후 만족감이 꽤 좋았다. 


다음부터는 사족이지만, 어릴 적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을 법한 부분들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고아를, 그것도 아직 미성년자를 단순히 먹이고 재워주면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

앤이 같은 반 친구 머리를 석판이 깨질 정도로 후려 쳤는데 아무 징계도 없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등등 

(학교에 간 자식이 뚝배기가 깨져서 왔는데 부모가 가만히 있었다고?!)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지난 100년간 사람들 인식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온지 100년도 넘은 작품이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다양한 형태의 매체로 제작되고 있는걸 보면(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시대를 뛰어넘는 감성이 분명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런 작품들은 확실히 나이가 좀 들고 난 뒤에 접하면 느껴지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pg 192)


이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마릴라의 독백은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궁금한 사람은 작품을 접해보기 바란다. 

이처럼 앤이 세상을 대하는 동심 어린 시각과 앤의 성장을 바라보는 커스버트 남매의 심리 변화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들은

사실 세상의 때가 좀 묻은 눈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느껴지는 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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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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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삶의 절정을 이루는 황홀경이 있다.

그리고 삶은 그 황홀경 너머로 오를 수는 없다.

그런 점은 일종의 생존의 역설이다.

이 황홀경은 가장 생기 있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찾아온다.

이 황홀경, 생존에 대한 망각은 예술가가 창작열에 사로잡혀, 불타는 격정 속에 자신을 상실할 때 오는 것이고, 

전장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항복을 거부하는 병사에게 오는 것이다. (pg 57)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에는 책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책 소개를 보니 호기심이 일어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 한 마리가 자신의 야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작가의 이력을 보아하니

개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 사회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지한 폰트로 적힌 강렬한 제목에 웬 EBS 다큐 썸네일 마냥 늑대 두 마리의 사진이 실린 표지.

개인적으로 책은 그 속의 내용으로 평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6월에 받아 들기엔 다소 당혹스러운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그 당혹감도 책을 펼치고 1장을 읽으면서 싹 사라졌다.

뒤에 해설까지 포함해도 160여 페이지로 얇은 편인데다가 글씨가 조밀한 것도 아니어서 읽은 시간으로 따지면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읽으면서 화장실도 가지 않고 한 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 두 시간 동안 한 개의 삶을 스펙터클하게 지켜본 느낌이다.


읽기는 매우 즐거웠지만 소감을 쓰기는 다소 난해하다.

개를 통해 인간 사회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던 애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벅이라는 개의 삶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삶에 대한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가까웠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에게 속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벅은 서서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간다.

하지만 그 적응의 과정은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되찾는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조상,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그 이전 세대의 본성까지도 찾아 나서게 된다.

(블랙팬서 영화를 보았다면, 티찰라 왕이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어 선대 왕들에게 지혜를 전수받는 장면이 떠오르는 구절이 등장한다.) 


벅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 중에 인간은 옆에서 때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벅의 주변환경을 변화시킨다.

환경의 변화는 벅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벅은 자신이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즉 스스로를 자신이 원하는 최상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이리하여 삶이 얼마나 꼭두각시와 같은가를 증명이나 하듯, 원시의 노래가 벅의 몸속으로 파도처럼 흘러들었고 

그는 다시 본성을 되찾았다.

그가 이처럼 원시적 본성을 되찾게 된 것은 사람들이 북쪽 지방에서 황금을 발견했기 때문이며, 

매뉴얼이 자신의 임금만으로는 아내와 여러 자식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 없는 정원사 조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g 39)


삶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인다고 여기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도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국민들을 상대해야 하며 이재용도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오죽할까.


삶에서 변화는 내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찾아온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진짜 나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변화 속에서 함께 변화해야 할 모습과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주었다.

짧고 굵은 소설이었지만 감상만은 가볍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원문인 '콜 오브 더 와일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어 국내에도 개봉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이라 하니 더 관심이 간다. 

코로나 여파로 흥행에는 실패한 모양이지만, 예고편을 보니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비교적 잘 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이 아닌 개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인지라 개의 본성 찾기 과정을 얼마나 상세히 담아 낼 수 있었을지 걱정도 되지만)

극장에는 가지 못했으나 추후 스트리밍으로라도 접하게 되면 원작과 비교하며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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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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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할 때 책을 읽고는 한다는데 나는 마음이 복잡하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지난 3월에 이직을 하면서 거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여러모로 심란해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재밌는 소설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접하게 된 추리소설이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제목에 작가가 일본에서 손꼽히는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작가는 대범하게 책 도입부에서 '이 책에서는 쌍둥이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며 독자들에게 승부를 건다. 

책에서 등장하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이다.

둘이 너무도 똑같이 생긴 한 쌍둥이 형제가 외모를 이용한 강도 행각을 벌인다. 

이들은 형제 중 누구 하나로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는 한 둘 모두 함부로 체포할 수 없다는 법의 함정을 이용해 

얼굴도 가리지 않고 대범하게 범행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관설장이라는 한 시골 호텔에서는 서로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 6명이 무료 숙박이용권에 당첨되어 모이게 된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일부러 모은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나하나 살해당한다. 

이 두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가며 해결해가는 내용이다. 


얼핏 전혀 연관성 없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건이 실제로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 배후에 있는 진짜 범인, 그리고 그 범인이 만든 트릭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가는 과정이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지나치게 상세히 적는 것은 추후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생략하고자 한다.)


두 사건 중 '살인'은 관설장 사건에서만 등장하고(물론 강도 사건에서도 후반에 우연히 사람이 죽게 되긴 하지만) 

고립된 공간에서 이어지는 연쇄살인이라는 점이 자극적이지만, 사건 그 자체의 흥미로움은 쌍둥이의 강도 쪽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잡을 수 없는 경찰의 답답함과 이를 조롱하듯 다음 범죄로 넘어가는 쌍둥이 형제들의 대담함 뒤에

이를 조종한 배후의 인물이 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전체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책을 받아든 후 다 읽을 때까지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빠른 서술과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사건들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만 장르적 한계라고 해야 할지...일반적으로 소설에서 기대하는 좋은 문구나 문장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 서평에는 인상적인 구절을 뽑을수가 없었다.)

또한 고립된 공간에 갇혀 죽음의 공포와 대면한 사람들의 심경 변화 같은 세부 묘사들이 적어서 다소 아쉬웠던 것 같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답게 사건 위주로 서술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라는 요소 하나만으로도 다른 단점들을 다 씹어 먹는다는 느낌이었다. 


사족이지만, 이 책을 접할 사람들이라면 책이 쓰여진 시기와 작품 속 배경이 모두 70년대라는 점을 염두해두기 바란다.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가능한 상황 연출이 꽤 있기 때문이다. 

꽤 오래된 작품이어서 이후에 많은 작가와 작품들에게 영향을 주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관설장 연쇄살인사건 부분이 마치 예전에 좋아했던 만화인 소년탐정 김전일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에서는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여하간 꽤 오래 책을 잡지 않았었는데 나의 책태기(?)를 한번에 깨준 고마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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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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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근들어 과학 관련 교양서적을 찾아 읽고 있다.

뭔가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갈망이 커져서 그런 모양이다.

이번에는 김상욱 교수의 책을 골랐다.


사실 김상욱 교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김상욱의 양자공부'라는 책을 통해 저자를 영상 매체가 아닌 책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읽는 동안에는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고, 뭔가 알아가는 것 같아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기억되는데

막상 내용을 정리하려고 블로그 창을 여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읽고 정리해 봐야지' 했지만 역시나 요즘처럼 읽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서는 그런 우려가 없었다.

무언가 우리가 평소에 모르고 있을법한 엄청난 과학적 사실들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일반 대중인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과학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가깝다.

특히 대학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저자가 느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학문의 융합, 문이과의 통합이 요즘 학문과 교육의 화두이다.

하지만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pg 14)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4차 산업혁명이다, AI 시대에 대한 대비다 하며 정부에서 강조하는 인재상이 창의적인 인재, 융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이다.

그러다보니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이런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미래의 대학 경쟁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따뜻한 지원금이 당장 대학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면서 학제간 벽 허물기라던가 교과목 수준에서의 융복합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서 과학과 인문, 사회학이 정말 대등한 비율로 다뤄지고 있는지는

행정 측면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내 수준에서 볼 때에도 충분히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문사철을 가르치면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는 고작해야 코딩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도 반론할 여지가 많기는 하다.  

이공계가 취업이 월등히 잘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문사회계열을 선택한 이유를 조사해보면,

'인문사회계열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이공계열 공부가 싫어서'인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강좌를 열어도 수강신청에서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들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서 수강하게 한다면 학생들의 중도탈락이 증가할 우려가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때문에 일단 학생들이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보다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신은 성직자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는 성경이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독점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였고, 우리는 그 시기를 중세암흑기라 부른다. (중략)

과학적 지식 역시 독점되면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과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민사회는 그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pg 166)


책 제목이 과학 공부이긴 하지만, 과학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부제에 맞게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과학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관에 대한 주장은 매우 신선했다.


역사시대의 역사는 이미 민족과 국가, 전쟁이 존재하는 세상을 다룬다. (중략)

역사를 역사시대에 국한하는 한,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용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역사는 사회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애초부터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게 된다. (중략)

이런 점에서 '빅 히스토리'라는 새로운 관점은 역사를 보는 신선한 틀을 제공한다.

모든 것은 빅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별과 원소의 탄생,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과 인류의 탄생, 농경의 탄생, 세계의 연결,

변화의 가속, 그리고 미래이다. (중략)

이런 관점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21세기의 역사관이라 생각된다. (pg 47)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범국가, 범민족의 역사관이다.

물론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가부터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이는 학문적인 논의가 꽤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없다면 전세계적으로 경제력에 바탕을 둔 계급사회가 부활할 가능성도 크므로 마냥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그 밖에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대학과 고등교육이 가야할 길에 대한 고찰도 빼놓지 않고 있다.


故 고현철 시인은 대학, 아니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였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광부들은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그 많은 비민주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졌거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부산대의 총장직선제는 지켜냈지만, 대학 민주화, 아니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이제 다시 시작점이다.

카나리아가 죽는 것을 보고도 가만 있는 광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pg 101)


부끄럽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고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대학을 외부평가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직업이 되고부터는 총장 선출 방식이 재정지원사업 지표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개별 대학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총장의 선출 방식은 대학의 수많은 고민거리 중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학의 민주화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에 걸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영상 매체에 등장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책도 쉽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사고가 무엇인지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겁게 읽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과연 양자 공부는 언제쯤 완전히 이해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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