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상깊은 구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최근들어 과학 관련 교양서적을 찾아 읽고 있다.

뭔가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갈망이 커져서 그런 모양이다.

이번에는 김상욱 교수의 책을 골랐다.


사실 김상욱 교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김상욱의 양자공부'라는 책을 통해 저자를 영상 매체가 아닌 책으로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읽는 동안에는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고, 뭔가 알아가는 것 같아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기억되는데

막상 내용을 정리하려고 블로그 창을 여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읽고 정리해 봐야지' 했지만 역시나 요즘처럼 읽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 책을 읽고서는 그런 우려가 없었다.

무언가 우리가 평소에 모르고 있을법한 엄청난 과학적 사실들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일반 대중인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한 과학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가깝다.

특히 대학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저자가 느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학문의 융합, 문이과의 통합이 요즘 학문과 교육의 화두이다.

하지만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pg 14)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서적보다 영어책 보는 학생이 더 많다.

영어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불과 수천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부가 사용한 언어에 불과하다.

영어에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학과 수학에 써보면 어떨까? (pg 107)


4차 산업혁명이다, AI 시대에 대한 대비다 하며 정부에서 강조하는 인재상이 창의적인 인재, 융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이다.

그러다보니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이런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미래의 대학 경쟁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정부의 따뜻한 지원금이 당장 대학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면서 학제간 벽 허물기라던가 교과목 수준에서의 융복합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서 과학과 인문, 사회학이 정말 대등한 비율로 다뤄지고 있는지는

행정 측면에서 대학을 바라보는 내 수준에서 볼 때에도 충분히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문사철을 가르치면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는 고작해야 코딩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입장에서도 반론할 여지가 많기는 하다.  

이공계가 취업이 월등히 잘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문사회계열을 선택한 이유를 조사해보면,

'인문사회계열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이공계열 공부가 싫어서'인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관련 강좌를 열어도 수강신청에서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들 과목을 필수로 지정해서 수강하게 한다면 학생들의 중도탈락이 증가할 우려가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기도 어렵다.


때문에 일단 학생들이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보다 쉽고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신은 성직자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는 성경이 라틴어로 쓰여 있어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독점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였고, 우리는 그 시기를 중세암흑기라 부른다. (중략)

과학적 지식 역시 독점되면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과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민사회는 그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pg 166)


책 제목이 과학 공부이긴 하지만, 과학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고 있지는 않다.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부제에 맞게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과학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관에 대한 주장은 매우 신선했다.


역사시대의 역사는 이미 민족과 국가, 전쟁이 존재하는 세상을 다룬다. (중략)

역사를 역사시대에 국한하는 한,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용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역사는 사회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애초부터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 속에 가두게 된다. (중략)

이런 점에서 '빅 히스토리'라는 새로운 관점은 역사를 보는 신선한 틀을 제공한다.

모든 것은 빅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별과 원소의 탄생,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과 인류의 탄생, 농경의 탄생, 세계의 연결,

변화의 가속, 그리고 미래이다. (중략)

이런 관점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21세기의 역사관이라 생각된다. (pg 47)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범국가, 범민족의 역사관이다.

물론 국가와 민족이라는 프레임을 없애는 것이 과연 옳은가부터 가치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므로

이는 학문적인 논의가 꽤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없다면 전세계적으로 경제력에 바탕을 둔 계급사회가 부활할 가능성도 크므로 마냥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그 밖에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대학과 고등교육이 가야할 길에 대한 고찰도 빼놓지 않고 있다.


故 고현철 시인은 대학, 아니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였다.

탄광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광부들은 재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도, 그 많은 비민주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도 무감각해졌거나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부산대의 총장직선제는 지켜냈지만, 대학 민주화, 아니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이제 다시 시작점이다.

카나리아가 죽는 것을 보고도 가만 있는 광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pg 101)


부끄럽지만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고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대학을 외부평가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직업이 되고부터는 총장 선출 방식이 재정지원사업 지표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개별 대학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 현실에서 총장의 선출 방식은 대학의 수많은 고민거리 중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학의 민주화까지 실로 다양한 주제에 걸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영상 매체에 등장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책도 쉽고 친절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가 편했다.

그러면서도 과학적인 사고가 무엇인지를 맛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즐겁게 읽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과연 양자 공부는 언제쯤 완전히 이해하게 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