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걷는사람 에세이 16
이병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에서 녹을 먹는 입장에서 시간강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이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지도 않고 고용의 형태 역시 불안하다.

물론 시수도 적고 연구나 행정에 대한 부담도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임금 차이가 정당하냐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편함을 더해주는 듯 시간강사이면서 배민 라이더를 뛰는 저자의 책이 나왔다.

책의 서두는 저자 자신의 자조로 출발한다.

내 얘길 듣고 속이 탄 엄마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할 알이 그것밖에 없어?"

말했고,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할 일이 이것밖에 없는 거야" 대답했다.

(pg 14)

책은 담백하게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담았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배달을 뛰는 삶,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달이 주업이 되고 수업과 글쓰기는 부업이 되어버린 삶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청승맞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내용만 담고 있지는 않다.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연배인 듯한데 아직 독신이어서 그런지, 태생이 원래 긍정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배달 일을 뛰는 자신에 대해 지나친 비하에 빠지거나 우울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지는 않았다.

(자녀가 있고 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달을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울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담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후반 '작가의 말'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페이소스 과잉이 될까 두려워' 책 쓰기를 망설였다는 고백이 있는데 이 점을 의식하며 쓴 덕분인지 책 자체가 마냥 우울하진 않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 배달을 다니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한 일들, 배달기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들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감동까지 말이다.

게다가 작가가 시집을 두 권이나 출판한 시인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장들도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중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남겨 두려고 한다.

사이드미러에 차오르는 붉은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 바라보았다.

신호를 기다리다 보니 누군가는 머리에 쟁반을 이고, 누군가는 리어카를 끌고,

또 누군가는 양손에 무거운 봇짐을 들고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고 있었다.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는구나.

저 노을은 수많은 이들의 성실한 생이 익어 가는 빛깔이겠지.

그래, 다시 달려 보자. 안 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또 오겠지.

(pg 102)

시인의 감성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신호를 기다릴 때 주변의 차를 보며 '나랑 비슷한 나이인 거 같은데 뭘 해서 저렇게 좋은 차를 탈까'를 궁금해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밥 한 끼를 얻어먹은 감상도 아래처럼 멋있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나는 OO족발에서 그 밥 한 끼를 먹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생이다.

거나하게 취해 인사하고, 문 열어 밖에 나오니

봄바람에 실려 온 라일락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발레리의 시구를 외웠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pg 122)

작가가 배달기사 일을 하면서 느낀 다양한 소회들이 짧은 글들에 담겨 있는데 이 중에서도 애주가인 나에게 너무나도 와닿는 글이 하나 있었다.

'소주 한잔하자'라는 글인데 이 부분은 전체를 다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문장마다 명문이다.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슬플 때도 맥주 마시는 미친놈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소주에 대한 감상은 가슴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소주는 눈물이다. 소주는 비틀거리며 마시는 술, 울면서 마시는 술, 나타샤를 기다리며 혼자 쓸쓸히 앉아 마시는 술, 빗물에 타서 마시는 술이다.

사업 망하고 생맥주 마신다는 사람 못 봤다.

실연당하고서 복분자주 마시는 미친놈도 못 봤다.

기쁜 날에 마시는 술은 소주 말고도 많지만 슬프고 괴로울 때는 오직 소주뿐이다.

(pg 166)

소주는 일단 싸다. 그리고 쓰다. 싸고 쓰다는 건 가성비가 좋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주량 따라 다르겠지만, 두 병 3천 원이면 원만하게 슬픔과 합의가 된다.

한 병쯤 더 마시면 블랙아웃, 부활이 예정된 유사 죽음을 경험할 수도 있다. - 중략 -

소주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계속 썼고, 쓰고, 쓸 것이다. 나도 소주처럼 쓰고 싶다.

(pg 167-168)

사실 배달기사라는 직업이 인식이 좋은 직업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위험하기도 한데다 경제적인 보상 외에는 그리 얻을 것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이렇게 멋진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짐작건데 작가의 시집들보다는 판매량이 제법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페이지 정도로 얇아서 금새 다 읽는데 다 읽고서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읽어도 공감할 만한 내용인데다 작가의 문장 자체가 정말 좋다.

좋았던 구절 중 서평 속에 담지 못한 구절들을 인용한다.

아래의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면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스쿠터가 닿는 길들은 다 옛날로 이어져 있고, 거기엔 아직 내가 너무 많다.

담벼락에 기대 서 있고,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슈퍼에서 나오고, 술 취한 채 비틀거리고,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오다가, 더 오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풍경에는 그 풍경에 갇혀 버린 사람이 보인다.

투명한 유리막 속에서 순간이 영원인 줄 아는,

한때 나였으나 이젠 내가 아닌 수많은 내가 길 위에 있다.

(pg 145)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욕심내도 되는 세상,

'건강'과 '행복'도 좋지만 더 크고 많은 것들을 원해도 되는 세상,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쯤은 반드시 이뤄져서

노력마다, 눈물마다 순수익이 늘어나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불법 상속과 증여, 투기, 탈세, 사기 등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거져먹는 자들,

남의 것 뺏어먹는 자들만 없어져도 우리 삶의 수익이 증대할 텐데,

그러면 건강과 행복은 이자처럼 따라붙을 텐데 말이다.

(pg 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싸를 죽여라 -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앤절라 네이글 지음, 김내훈 옮김 / 오월의봄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

'Normies'라는 단어를 '인싸'로 번역한 제목인데 개인적으로는 옮긴이의 센스가 초월 번역 수준이라 생각한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일까 싶지만 부제를 보면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트럼프의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4chan과 reddit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집한 극우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베, 메갈, 가세연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라고 보면 되겠다.

이들이 부상하게 된 계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의 보급 덕분이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집에만 인터넷이 보급된 것도 아닐 텐데 왜 좌우가 동등하게 성장하지 않고 극우 세력들만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 사이버유토피아주의자들은 '분노가 네트워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제도권의 전통적인 미디어는 더 이상 정치를 통제할 수 없고,

리더 없는 이용자 생산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새로운 공론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그 네트워크라는 것이 분명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가 권력을 잡는데 일조했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인터넷 중심의 네트워크를 물신화하며 그 외 다른 형태의 정치 행위를 모두 구태의 것으로 폄하했던 좌파는 '리더 없음'은 단지 형식일 뿐이며 그것이 철학적, 도덕적 혹은 개념적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말해주는 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pg 57)

오늘날 온라인 우파의 부상은 우파 정체성 정치가 승리를 거둔 결과이기도 하고, 1960년대 좌파의 반문화 및 위반의 형식들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pg 116)

말이 조금 어려운데,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의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나 반문화적인 행위들이 1960년대에는 좌파 세력들이 당시의 기득권이었던 우익 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때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좌파들이 이제는 새로운 기득권이 되자, 현재의 젊은이들은 정 반대 노선으로 그 전략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그 물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이를 설명하면,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486세대가 이제 사회의 주축이 되자 그들을 '꼰대'로 보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이 결집된 곳이 일베라고 보면 미국과 한국의 현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탄생 배경이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태생적으로 현재의 가치에 반하는 주장을 펴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은 안티페미니즘, 이민자 인권 무시, 인종차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 이민자, 흑인, 동양인 등이 백인 남성의 지위를 모두 빼앗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처음 세력을 형성할 무렵 좌파에서의 대응도 이들의 성장에 불을 붙였다.

이들을 그저 '교육이 덜 된' 존재로 치부하고, '공부하면 알게 된다'라는 식의 대응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징적 재현의 다양성과 이에 대한 인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지워버렸다'고 꾸짖었으며

[당신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 시스젠더라면 그저 '듣고' '믿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pg 140)

표적이 된 좌파와 우파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우파는 온갖 문제적 발언으로 더욱 폭주하는 반면,

좌파는 당혹스러워하거나 방어적이거나 변명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좌파로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 좌파 정치의 텀블러화가 초래한 지적 퇴행이

한동안 지속될 악영향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pg 157)

문제는 이러한 세력들의 활동이 표면적으로는 '유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애초에 일베도 '일간 베스트'라는 유머 게시판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모든 대상을 조롱한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좌파들이 이런 시도를 무조건적으로 용인하는 정도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일베의 모습은 단식투쟁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폭식 행위나 전 대통령, 세월호 희생자 등 고인에 대한 비하 같은 행위를 일삼는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들은 그것 못지않게 자기 스스로를 조롱하는 활동에도 열심이다.

애초에 그런 커뮤니티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태동하게 된 계기도 자신들은 번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근원적인 활동에서 배제된 존재들이라는 점을 활용한 유머에서 기인했다.

그러다 보니 전업주부를 취집이라 비하하거나 패미니스트를 쿵쾅이로 부르는 등 여성 혐오 단어들이 생겨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남성들 역시 퐁퐁남이다 뭐다 하면서 비하하는 컨텐츠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제목인 '인싸를 죽여야'하는 이유들이 태동하게 된다.

자신들이 잃은 것 혹은 잃었다고 믿는 것을 얻고 있는 자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발현되는 것이다.

일부일처의 쇠퇴로 인해 달라진 성생활에서 엘리트 남성은 한층 더 넓은 성적 선택권을

쥐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남성 인구는 점점 더 독신주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자신의 낮은 지위에 대한 그들의 불안과 분노는 여성과 인종 문제를 향한

철저한 위계질서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 중략 -

대안우파의 인종적 위계질서 정치는 이러한 인셀들의 사회로부터 배태됐다.

(pg 189)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지적에서 멈춘다.

그저 '이들이 더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으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이들을 강제적으로 없앨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아쉬운 결말이었다.

전반적으로 주제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지만 저자가 미국인이고 책에 실린 사례 역시 미국 사례뿐이어서 독서가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게다가 역자가 미칠듯한 초월 번역 센스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문장 자체가 너무 길고 장황한데다 책의 대부분이 사례의 나열이어서 읽는 과정이 재밌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저자가 '얘네들이 이렇게 나쁜 짓들을 많이 한다니까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외국인 독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보다는 그런 사례를 통한 저자의 생각과 주장, 통찰을 더 읽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후반부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 오히려 책 본문보다 이 부분이 더 좋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단순히 '옮긴이의 말'이라 하기엔 분량이 다소 많아 보일 정도로 역자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역자가 우리나라의 사례로 이런 책을 쓰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 농장 (그래픽 노블)
백대승 지음, 조지 오웰 원작, 김욱동 해설 / 아름드리미디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처럼 읽을 것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읽게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이미 두 번에 걸쳐 서평을 써 본 동물농장이지만 이번 책은 뭔가 다르다.

바로 그래픽 노블로 발매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고전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명작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를 보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폴레옹이 보인다.

그리고 동물농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처음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작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에 작화를 담당한 사람이 되도록이면 원작의 흐름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인다.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의 경계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림이 단순하거나 유치한 느낌이 없어서 원작의 심각한 느낌을 잘 살린 것 같다.

등장인물들도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이미지들과 대체로 잘 맞아떨어지게 캐릭터를 잘 살려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복서와 몰리는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이미지가 그대로 인쇄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았다.

그림 소개도 할 겸 몇 페이지만 소개한다.

아래는 나폴레옹이 본격적으로 독재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독재에 반대하며 용감하게 발언해 보지만 나폴레옹의 곁을 지키는 호위대의 기세에 눌려 몸을 사려야 하는 한 돼지의 비참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pg 90)

동물들이 혁명에 성공한 뒤 수립했던 7계명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나폴레옹의 독재가 심화되면서 그는 저 7계명 전부를 어기게 된다.

계명을 어길 때마다 문구를 수정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바뀐 문구를 동물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원래 이랬던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데 이 책에서는 동물들이 바뀐 부분을 정확히 알고는 있지만 무서워서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하는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pg 45)

전반적으로 아주 흡족하게 읽은 책이다.

사실 동물농장이 스토리 자체도 중요한 책이긴 하지만 조지 오웰이 쓴 멋들어진 문장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를 그림으로 읽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이 심리적인 장벽을 많이 낮춰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동물농장이 그저 옛날 작품이라 생각해 읽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이미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기억을 떠올리면서 컬러로 보기 좋게 그려진 그림들과 함께 감상한다면 더 좋은 독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제목만 보고 평범한 자기개발서일 것이라 생각해 관심 밖에 있던 책이다.
우연히 첫 장을 열었는데 앞에 김정운 박사가 쓴 추천글이 눈에 띄었다.
특유의 문체로 '이 책은 좋은 책이다'라며 소개하는 글을 보니 불현듯 읽고 싶어져서 단숨에 읽어냈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평범한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걸출한 심리학자의 이론을 풀어낸 책이었다.
그의 사상 전반에 걸쳐 '용기'라는 단어가 주요 키워드로 등장해서 제목을 이렇게 뽑은 모양이다.

특이하게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흉내 낸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한 청년이 철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청년이 계속 철학자에게 반박을 하면 철학자가 아들러의 사상을 전개하며 하나하나 일깨워가는 방식이다.
실제 인터뷰를 기록한 것은 아니고 아들러에 심취한 작가 둘이서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라 보면 되겠다.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심리학 하면 가장 먼저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된다.
프로이트식 심리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어릴 적 겪은 경험들이 현재를 구성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아들러는 이와는 정 반대의 논리를 전개한다.
즉, 과거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일 뿐이고 현재의 나는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사건 자체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내가 그 사건을 지금의 내 모습이 되게끔 선택해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얼핏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아들러의 경우 선택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는 고정값이지만 그 고정값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같은 집안 환경에서 자랐지만 삶의 궤적이 상당히 다른 형제자매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물론 반대 진영에서도 형제라 할지라도 부모에게 받는 관심도나 지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아들러 사상의 첫 출발점은 이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달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세계일 테지. - 중략 -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받고 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pg 12-13)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pg 37)

이 지점에서 '용기'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변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pg 63)

따라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인지 아들러의 심리학을 '개인심리학'이라 부른다.
개인심리학의 '개인'이 영어로는 'individual'인데 이 단어의 어원이 '나누어질 수 없다'라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즉 개인은 육체와 정신, 의식과 무의식 등으로 구분되지 않고 온전한 개체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관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때문에 모든 고민의 시작은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아들러는 단언한다. 
단순히 인간관계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내면의 고민들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건강에 대한 고민처럼 명백히 자신만을 위한 고민으로 보이는 것 역시 타인의 존재가 있기에 생겨난다.
진정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면 굳이 건강해지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건강해지고자 하는 것 역시 결국 타인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 혹은 노후에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등 타인과 관련된 여러 이유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아들러는 심지어 우리는 고독할 때에도 타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자네가 혼자라서가 아닐세. 
자네를 둘러싼 타인, 사회, 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 거지.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 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네. 
(pg 81)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 역시 온전한 개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헌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예를 들면, 아무리 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하루에 몇 시간은 공부를 하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간섭이다.
하지만 자식이 공부를 할 의지를 보일 때 장소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상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믿고 있지.
물론 여기서 개입은 조종이나 다름없네. 
어린아이에게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부모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겠지.
본인은 선의로 그렇게 말했는지 몰라도, 결국은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의 일에 불쑥 끼어들어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려고 하는 거지. 
(pg 230)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라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pg 236)
이렇게 때문에 아들러는 '행복이란 공헌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헌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수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초석이 바로 '변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 중략 - 
내가 말하는 자기수용이란 이런 거네. 
(pg 261)
아들러가 말한 것들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짧게 표현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이 이 책 내용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는 나름 깊은 뜻과 논리 전개 과정이 있으므로 이 문장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pg 126)
아들러의 철학이 이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대중들에게는 아무래도 프로이트의 심리학만큼 알려져 있지는 못했는데, 아들러가 기본적으로 저술활동보다는 소크라테스처럼 직접 대화하면서 일깨우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역시 역사에 오래 남는 건 저술활동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지점이다.)

프로이트의 심리학도 수박 겉핥는 정도밖에는 모르지만 이에 반하는 개념으로 보이는 아들러의 철학 역시 상당한 설득력과 매력이 있었다. 
특히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인식 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인생을 특정한 목표 지점이 있는 직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들러는 그 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했다.
즉 목표만을 쫓는 것이 아닌 점 하나하나, 삶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고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도 누구에게나 다를 것이다.
행복을 외치는 책 역시 너무도 많고 이 책도 그중 하나지만 그중에서도 설득력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장점을 지닌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영 땡기지 않는 제목을 가진 책이지만 아들러라는 걸출한 심리학자를 하나 더 알게 되어 기쁘다.
2권도 이미 수년 전에 나온 모양인데 이 역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서술 방식이 대화 형식이라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320여 페이지 정도로 얇은 느낌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리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책 속 청년이 의도적으로 계속 철학자에게 딴지를 거는 역할인데 그 깐족거림이 다소 거슬리긴 했다.
하지만 논지를 전개하기 위한 의도적인 깐족거림이니 나처럼 거슬리는 사람들은 철학자의 말에 더 집중하며 보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이라 인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최근에 자주 듣는 노래가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 이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 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거든.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pg 1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작가의 신작을 보고서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을 집어 들었다.

작가의 책은 두 번째 읽는 것인데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것이 잘 느껴질 정도로 상당한 몰입감을 보여준다.

숙취가 살짝 남아 있는 주말 아침에 책을 들었는데 점심시간이 채 되기 전에 다 읽고 말았다.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소개해야 작품에 대한 감상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자잘한 범죄가 쌓여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삶을 마감하려 하는 한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러다 한 노파를 만나게 되는데, 노파는 자신은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끔찍하게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대신 해달라며 전 재산을 맡긴다.

청년은 그 돈으로 신분을 세탁해 새 삶을 살게 된다.

15년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그 노파의 이름으로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당하게 된다.

그는 억지로 해야 하는 살인을 피하면서 협박범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런 협박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 변화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죽은 사람이 돌아올리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협박의 내용이 점차 현실화되면서 '진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하지만 살해의 순간을 앞두고 그 선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망설인다.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마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전 신분일 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부터 시작해 작은 단서들을 모아 협박범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추격을 시작한다.

추리소설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협박범의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구조이다.

때문에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이런 반전이!' 정도의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백미는 협박범의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여러 인물들이 범죄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데 그중에서도 범죄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이 특히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죄인들이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저지른 짓을 얼마나 참회하고 사는지도 희생자와 그 가족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내가 만약 피해자의 유족이라면 나 역시 처벌의 수위에 절망감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강력범이 낮은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 기사가 나오면 댓글에는 이제는 자력구제가 답이라는 자조적인 댓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는 물론 형량이 높으면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가해자가 평생 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후회하며 사는 것을 더 원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런 감정이 극단에 치달을 경우 사람이 어떤 심리에 몰리게 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억울할지언정 가해자를 직접 제거하여 복수를 마친다고 해서 마음의 짐이 모두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복수를 해도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어.

오히려 모든 감정이 뽑혀버린 것처럼 내 마음속은 텅 비었어."

(pg 369)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을 두 번째 읽고 나니 '역시 작가의 명성이 그냥 형성된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380페이지 정도로 그리 얇지 않은 책인데 읽으면서 지루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던 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 테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